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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야짤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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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안신아
작품등록일 :
2024.06.23 02:19
최근연재일 :
2024.07.07 17:2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629
추천수 :
42
글자수 :
39,725

작성
24.07.03 21:25
조회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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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3화

DUMMY

3화





“사······ 살았다!”



다음 날 아침 식사가 들어오고,


점심 식사가 들어오고,


저녁 식사마저 무사히 지나가고 나서야 폴은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 봐요, 폴 아저씨.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당장 오늘 목이 떨어졌을지도 모르는데도 놈의 표정은 싱글벙글.



‘꼭 다른 놈이 된 거 같단 말이야. 어린놈이 갑자기 인생사를 깨달은 것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인상을 쓰며,



——난 국가를 위해 마법사로 죽을 것이다!



이 지랄을 하던 소년이 맞나 싶다.


······그렇게 큰소리를 치는 주제에 간수만 보면 아무 말 못 하고 깨갱대긴 했지만.


반면 지금의 제이엘은 간수를 보고 깨갱대기는커녕, 오히려 친한 척을 하며 잘 지내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겨우 10대 중반의 아이가 행하기에는 처세술이 굉장히 훌륭하다.



‘에휴. 전생 군대에서나 하던 짓을 또 여기서 하네.’



하지만 실제로 제이엘에게는 수십 년의 인생이 더해졌다.


이번 생이 쉬운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생 역시 쉬운 삶은 아니었으니까.


이는 철부지 아이였던 제이엘을 보다 어른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야. 근데 무슨 그렇게 그림을 빨리 그리냐? 대단하네.”


“아,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제 실력은 별로 빠른 것도 아니에요. 어휴 힘들다 힘들어.”



제이엘이 그림을 마무리 짓곤,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힘든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다.


먹고 살기 위해 계속 그리다 보니 그 속도가 자연스레 빨라진 것이었다.


전생의 제이엘은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기에, 그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죽어라 그렸지.



“······.”



별로 특이한 대답이 아니었으나, 폴은 한숨을 내쉬는 제이엘을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린 녀석답지 않게 약삭빠른 면이 있군.’



폴은 24시간 제이엘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지금도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르지만 분명 그림을 더 빠르게, 더 많이 그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증거로 제이엘은 평소에는 대충 빈둥빈둥 놀다가, 간수가 순찰을 도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벌떡 일어나 열심히 손을 놀렸다.


그리고 발소리가 멀어지면 다시금 빈둥빈둥.


생긴 건 분명 어린놈인데, 하는 짓은 이상하게 닳고 닳은 인생 고인물의 냄새가 난다.



“으그그그극! 쇼생크!”



느닷없이 제이엘이 스트레칭을 하며 기묘한 단어를 내뱉었다.



“헉!”



그는 뒤늦게 대체 뭔 짓거릴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폴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볼을 붉혔다.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괴상한 단어를 무심코 내뱉은 게 부끄럽긴 한 모양.


전생에서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일을 하다 보니 이상한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하, 하하하······ 죄송.”


“아니,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런데 쇼생크가 뭐냐?”


“아, 그게요.”



사실 뭐 별건 아니고 그냥 그가 이름 붙인 스트레칭 방법이었다.


고개는 하늘로, 양팔은 쫙 벌린 채, 승모근에 힘을 주고 팔을 뒤로 당기며 가슴을 쫙 뻗는다.


그렇게 힘을 주고 빼며 몸과 팔다리를 쫙 펴주면 자연스레 쇼생크 탈출 포스터에 나오는 포즈가 된다.



“그냥 스트레칭인데. 해보세요. 개운함.”


“이렇게?”



폴이 엉거주춤 제이엘이 보였던 포즈를 따라 해보았다.



“네, 네. 이렇게······ 쇼생크!”


“쇼생크!”



오?


과연 뻐근했던 근육이 풀리며 온몸이 개운해진다.



“야, 이거 효과 좋은데? 쇼생크!”


“그쵸? 쇼생크!”


“크하하하하! 쇼생크!”


“쇼생크!”



감방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랐는지, 어딘가에서 욕설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꼬우면 올라와서 맞짱 뜨던가!”


“너희 진짜 걸리면 뒤진다!”


“죽여봐~ 나오지도 못할 새끼들이~!”



폴이 얄밉게 바이브레이션까지 주어가며 쇠창살 밖으로 소리쳤다.


저쪽에서 소리치는 일도, 이쪽에서 소리치는 일도 간수들의 순찰 시간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진짜 우리 패면 어쩌려구요?”


“야이 씨, 걱정 마라 인마. 저놈들이 뭔 수로 나오냐? 그리고 뭔 일이 생겨도.”



폴이 알통을 자랑하며 씩 웃었다.



“내가 지켜줄게 임마. 너 덕분에 따뜻한 밥도 먹고, 모가지도 안 잘리고. 고맙다.”



그 말에 제이엘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를 따라 씩 웃었다.



“뭘요.”



그가 그린 그림 덕에 덩달아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린 폴이었다. 당연히 제이엘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고 안 내고는 천지 차이.


사람이 독심술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감정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폴은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응당 그것을 입 밖으로 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후우, 그래도 당장 안 뒤지는 거지. 여전히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인 건 매한가지긴 하지. 이놈의 전쟁 언제 끝나나?”


“그러게요. 근데 폴 아저씨는 뭐 하다가 잡혔어요?”


“뭐 하긴. 그냥 마을에 쳐들어온 놈들한테 여기서 썩 꺼지라고 했다가 붙잡혔지.”



폴은 작은 마을의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폴은 병기로 무장하고 갑옷 입은 병사들에게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당연히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아니, 아저씨 제정신이에요? 군대한테 대체 왜 개겨요? 거기서 안 뒤지고 몸 멀쩡히 끌려온 게 용하네?”



폴은 자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이엘에게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왜 나한테만 그러냐?


지도 병신 같은 짓 해서 붙잡혔다면서?



“야. 나는 너랑 다르다. 그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아니었다고요?”


“크하하하! 그때 하필 술에 잔뜩 꼴아있었거든.”


“술요?”



술이라는 말에 제이엘의 입에 침이 고였다.


일러스트 작업을 끝내고 소형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는 싸구려 맥주는 어찌나 시원하고 상쾌했던가.



“술 얘기하니까 술 먹고 싶다······.”


“응? 애새끼가 뭔 술이야. 니가 술맛을 알어?”


“알죠 그럼.”


“에이. 꼬마야. 넌 술맛이 어떻디?”


“예? 그게 뭔······ 쓰죠?”



제이엘의 반응에 폴이 피식 웃었다.



“얌마. 넌 힘든 일 없이 그냥 순탄하게 자라서 그래······ 아저씨는 힘든 일 많이 겪고 나니깐 그냥 달달한 음료수 같다.”



······미친놈인가?


제이엘은 표정으로 말을 하는 신기한 재주를 부리고 있었으나, 폴은 자기 말에 취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아저씨 술도 없는데 혼자 취하네?



“내가 왕년에 모험가로 이름 좀 날렸는데. 어? 내가 술만 아니었어도 그깟 군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예, 예. 그러시겠죠.”


“아, 아니 이놈이? 진짜라니까?”


“예, 믿습니다.”



영혼 없는 대답에 폴이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뚜벅, 뚜벅.



이 시간에 들리는 장화 소리는 곧 잠자리에 들 때라는 이야기였다.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당연히 옥을 밝히는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바닥에서 흐물거리는 불꽃 그림자 사이,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여전히 불길한 느낌을 줬다.



“흠, 흠.”



통, 통.


다가온 간수가 헛기침과 함께, 검집으로 제이엘과 폴이 있는 감방의 쇠창살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제이엘이 스르륵 앞으로 다가와 둥글게 말린 종이를 그에게 건넨다.


그리고 조용히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한마디.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



무표정으로 그것을 건네받은 간수.


이윽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품속에 숨기고 그들을 지나쳐간다.



“······뭐야, 저놈 왜 저렇게 반응이 없어?”



간수가 보인 차가운 몸짓에 폴이 불안한 듯 목소리를 냈다.


혹시 이 녀석의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나?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내용물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하지만 제이엘의 목소리에는 평온함, 그리고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제이엘은 간수의 목젖으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일던 음욕 또한 놓치지 않았다.



‘내 그림을 보고 꼴리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신조차 두 눈이 멀쩡하다면 그의 그림을 보고 물건을 세우거나 다리 사이에서 꿀을 흘려내리라.


제이엘은 자신의 그림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일단은 한 장씩.’



간수들이 그에게 준 종이는 세 장이었다.


그 종이 셋이 제이엘의 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매력 넘치는 여인 셋으로 가득 찰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간수에게 단 한 장만을 채워 넘겼다.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많은 양을 그릴 수 있었다.


말마따나 짤공장으로나 불리던 그가 아닌가.


채색도 없고 이렇게 러프 같은 수준이라면 세 장이 뭔가. 순식간에 수십 장도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긴 감옥이지. 그것도 군대의.’



간수들 눈에 잘 띄어 보겠다고 처음부터 일 잘하고 많이 해봤자 이런 곳에서는 제대로 된 보수도 받을 수 없다.


군대 같은 곳에서 일을 잘하면 뭐 하는가?


꽉 막힌 집단에서는 부하가 일을 잘하면 상을 내려 치하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맡겨버린다.


이야, 벌써 끝냈어? 그러면 이것도 할 수 있지?


이것도 끝냈어? 독하다 독해. 그럼 이것도 해.


너 노는 꼴 절대 못 봐.


뿌득 뿌득.


제이엘은 과거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다 적당히.’



그 적당히를 못해서 전생에서도 허무하게 과로로 요절하지 않았던가.


이번 생만큼은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었다.


이세계 환생 특전이 엄마없음 + 돈도없음 스타트팩이라도 괜찮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두 다리 멀쩡한 신체, 건강하고 어린 몸뚱아리가 있지 않은가.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미 커다란 위기를 한 번 넘겼다.


운이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이 쌓아 올린 그림 실력이 아니었다면, 제이엘은 결코 오늘 목이 달린 채로 밤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쟁취한 생존이었다.



‘반드시!’



삶의 의지를 표명하며 양손의 주먹을 꼭 쥐는 제이엘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짤쟁아!”



간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제이엘이 있는 감옥으로 다가왔다.


그는 더 이상 철창살을 검집으로 쳐대지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제이엘을 부를 뿐.



“오! 어서 오십시오, 간수님. 간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그럼. 요즘 너 덕분에 밤이 아주 편안~하다.”



저게 대체 어떻게 포로와 간수와의 대화란 말인가?


폴은 뭔가 세상이 잘못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며 고심에 빠졌다.



“뭘 봐요?”


“······아니다.”



폴은 당돌하게 자기를 올려다보는 제이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제이엘은 이제 무슨 책상까지 받아내서 편히 앉아 야짤을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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