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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야짤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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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안신아
작품등록일 :
2024.06.23 02:19
최근연재일 :
2024.07.04 20:2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294
추천수 :
29
글자수 :
22,288

작성
24.07.01 00:20
조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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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1화

DUMMY

1화





뭐 그런 얘기 있지 않나.


전생의 기억을 갑자기 떠올려서 소드마스터가 된다든지, 대마법사가 된다든지 하는 것들.


제이엘에게도 전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떠올린 전생은 뛰어난······ 아니, 보통의······ 아니, 그닥······ 아니, 별로······.



‘······내 전생이 야, 야짤러였다니?’



야짤이란 야한 그림을 뜻하는 전문 용어이다.


-러가 붙었으니 그렇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뜻.


본디 제이엘이라면 알지 못했을 단어다.


이전 생,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살아온 기억이 차츰 그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으어어억······.”



그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말았다.


심지어 사인은 과로사였다.


왜? 너무 잘나가서.


유려하지는 않지만 꼴릿꼴릿 천박한 그림체, 고객들을 몰입시키는 완벽한 시츄에이션.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그들이 전생의 제이엘 지갑에 쑤셔 넣는 수많은 돈은 그를 매일 그림을 찍어내는 짤공장으로 이끌었다.



——으헤헤, 헤헤헤! 돈이다 돈!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힘들게 살아왔기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돈에 눈이 멀었다.



——개꼴리네 진짜 ㅋㅋㅋㅋ


——닥치고 내 돈 받아!


——오늘도 신세 졌습니다...


——그는 야짤의 신인가?


——작가 새끼 어디 사냐 군만두 주면서 야짤만 그리게 하고 싶다.



게다가 비록 음지였지만 자신을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댓글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식음까지 전폐하고 야짤을 그려내던 그는, 결국 건강이 무너져 허무히 요절하고 만 것.


제이엘은 전생의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가엽구나.


명예(?)야 그렇다 치고 모아둔 금전마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명을 달리하다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야짤 같은 걸 그리다 죽는 건 좀 아니ㅈ······! 그웩!”


“시끄러워, 이 새끼야!”



제이엘의 안면에 흙으로 진탕된 더러운 맨발이 쑤셔박혔다.



“안 그래도 내일 포로들 목 짤려 뒤진다는 말에 심란해 죽겠구만, 제발 입이라도 좀 닥치고 있으면 안 되냐?”


“ㅁ, 뭐!? 모, 목이 잘린다고요?”


“그래 이 새끼야! 조용히 마음의 준비 좀 하자! 제발!”


“난······!”



마법사인데? 라고 말하려던 제이엘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 이 멍청한 새끼는 마법사면서 대체 왜 이런 감옥으로 잡혀 온 거지?



‘어······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순간적으로 제이엘은 자신 스스로가 타인처럼 느껴졌다.


전생의 기억과 섞여 머릿속이 뒤죽박죽 하다.



——나는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마법사! 국가를 위해 이 한 몸을 바칠 것이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 그가 쳐들어온 적군에게 호기롭게 외쳤던 말이 문뜩 떠오른다.



‘아, 아니! 제이엘 이 새끼가 미쳤나!?’



제이엘은 과거의 자신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이엘 나이 15세.


대한민국이었다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나이.


질풍노도의 어린 치기가 무지한 아이에게서 두려움을 앗아갔다.


나라에서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희생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 가르치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아카데미에서,


거리의 연극에서,


나라의 모든 곳에서.



‘이 거지 같은 놈들이!’



귀족 같은 특혜 계급이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제이엘은 나라에서 무엇 하나 받은 것도 없었다.


왜냐고?


그는 천애 고아에 거지새끼였으니까.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민들 또한 추레한 차림에 씻지 못해 냄새나는 그를 가까이하려는 자는 없었다.


그러니 입신양명을 위해서는 군에 입대해서 국가에 몸을 바쳐 멋있게 고등 마법을 배우는 수밖······.



‘입대? 미쳤냐? 군대를 또 가라고?’



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곤 제이엘의 뺨을 후려쳤다.


군대 2번 가느니 죽는다.



“???”



옆에서 그를 걷어찼던 자가 갑자기 이놈이 왜 이러나, 하면서 식겁하며 쳐다보았으나 제이엘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자기 뺨을 치며 분노에 떨었다.


뭐? 국가? 국가아아아아?


그는 전생에 대한민국의 남아로서 삶을 살아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군대는 사람을 끌고 갈 때는 국가의 아들이라는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막상 그런 이가 다치거나 죽으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애들이 호구로 보이지?


국가의 부름엔 우리 아들.


지병 앓아누우면 느그 아들.


사망하면 누구세요?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제이엘은 군대의 ㄱ자만 떠올라도 이가 뿌득뿌득 갈렸다.


그도 군대 때문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어 제대 후에도 아무 일을 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극심한 다리 통증에 병원에 가고 싶다 호소했으나 군은 그를 꾀병이라며 보내지 않고 오히려 병을 키웠다.


결국 그를 좀먹은 병은 그의 다리뼈를 완전히 썩혀버렸다.


뛰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고, 걷는 것도 30분만 걸으면 찌를듯한 통증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


하지만 군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혀 내밀지 않았다.


그쪽에서 보상의 손길 대신, 선심 쓰듯이 내민 카드는 의가사 제대.


달랑 하나였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대 후에는 억울해서 군을 상대로 소송도 걸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이미 지나간 허망한 년 단위의 시간과 텅 빈 통장, 그리고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리 병신 몸뚱어리뿐.


그는 철저히 ‘느그 아들’이 되어 나라에 외면당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취미로 그려오던 그림을 파는 일이었다.


상업성을 좇다 보니 대중성과 자극적인 면을 파고들게 됐고, 어쩌다 보니 19금의 세계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별 계획도 없이 시작하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이쪽에 무궁무진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 못 할 욕망을 꼬집어주는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자연스레 커미션 의뢰와 금액의 후원도 끊이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그에게 그것은 희망이자 등불이었다.


그림이 좀 야하면 어떤가?


야한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돈이 되는데!


게다가 사람들이 댓글로 마구마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삶이 생지옥 같았던 그에게 그것은 마약이었다.


그래서 계속 그렸다.


그러다 요절했지.



‘에휴. 그래도 그게 뭐였다고. 몸 좀 사리면서 일할걸.’



제이엘은 아쉬움에 한숨을 쉬었지만 이미 지난 생이었다.



“······.”



그리고 이번 생도 곧 지난 생이 되게 생겼다.


아까 이 인간이 뭐라고 했지?


뭐? 포로는 내일 목이 잘려?


허허. 허허허허······.



“후우······.”



한숨이 절로 새 나온다.


왜 도망치지 않고 대항했을까? 아무런 힘도 없던 거지 주제에.


왜 마법사라고 사칭했을까? 마법의 ‘마’자는커녕 아무것도 모르던 주제에.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국가가 내려주는 마법 자격 증명이 꼭 필요했다.


자격 증명은 비싸디비싼 아카데미를 졸업해야만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그런 게 거지새끼에게 있을 리가.


그가 알고 있는 마법이라곤 거리에서 공연하는 마법사들에게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운 환상 마법뿐이었다.


당연히 전투 쪽으로는 효과가 전무. 심지어 그 수준도 매우 저열하다.


그런데도 마법사라 외친 이유?



‘이유라······.’



이전까지의 제이엘은 그 이유를 알기는커녕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지금의 제이엘은 알 수 있었다.


종종 길거리에서 보이는, 양민들에게 화려한 마법을 구경시켜주던 마법사라는 직업을 그저 어린 마음에 동경하고 있었을 뿐이란 것을.


그 꿈이 나라가 심은 가치관과 얽혀 어린 제이엘을 적군에게 내던진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무기도 없이.



“이 등신 새끼!”



느닷없는 욕설에 옆에 앉은 남자가 눈을 부라렸으나,


짝! 짝!


또다시 제 뺨을 때리기 시작한 제이엘을 보곤 오히려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야, 야. 왜 그러냐. 아무리 곧 죽을 몸이라도 그렇지.”


“제이엘이 한심해서 그럽니다. 한심해서.”


“제이엘은 네 이름이잖아. 뭔 개소리야.”



아.


그러고 보니 제이엘은 이 남자에게 이름을 밝혔었다.


앞으로 다시 없을 마법사가 될 거라고 떵떵 소리까지 쳤다.


등신이.


당연히 목 잘려 죽으면 다시 없겠지.



“하······ 또 이렇게 젊은 나이에 뒤지게 되다니.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인생 2회차라지만 지금까지의 제이엘에게는 1회차나 다름없었다.


제이엘이 어렸을 적부터 전생에 살았던 성인의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나아졌을 것이다.


적어도 이런 거지새끼 꼴로 살진 않았을 텐데.



“아저씨는 뭐 하고 싶어요?”



제이엘은 자기 얼굴을 걷어찬 남자에게 눈빛을 보냈다.


조금 전 그에게 당한 굴욕쯤이야 지금 처한 상황을 생각하니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뭐하고 싶긴. 그냥 마을로 돌아가서 여자나 실컷 안고 싶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처음 보는 어린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일 사이좋게 효수당해 죽을 처지인데 서로 거리낄 게 무엇 있으리.



“······볼래요?”


“뭐?”


“야한 거요.”



남자는 이놈이 대체 뭔 개소리를 지껄이나, 하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저 야짤······ 아니, 야한 거 잘 그려요.”



환상 마법으로 원하는 것을 그려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가능하다 해도 이곳에서는 쓸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일이 아니라 당장에 목이 달아날 것이었으니까.


제이엘은 소시민이었다.


살날이 하루가 남았다 하더라도 그 하루 24시간을 꽉꽉 채워 살고 싶다.



“우린 포로잖아. 여긴 종이고 양피지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다 그리게?”



남자는 표정을 찡그렸으나 싫다는 말은 하지 않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살풍경한 감옥 내부.


튼튼한 철창살과 널따란 벽뿐······.


······벽?



“그리는 건 여따 그리면 될 거 같은데요. 벽돌도 아니고 그냥 통짜 벽이라.”


“근데 뭐 그릴 만한 게 없는데. 간수 새끼들이 미쳤다고 붓 같은 걸 준비해주지도 않을 거고.”


“그런 소리 했다간 아저씨 머리털을 뽑아서 붓을 만들어준다고 할걸요.”


“당연히 그러겠······ 아니 이 어린 새끼가 못 하는 말이 없네?”


“내일 아침에 목 잘려 죽을 건데 못 할 말이 뭐가 있어요.”


“그건 그렇네······.”



잔뜩 화를 내던 남자도 제이엘의 말에 침울해져선 눈썹을 뉘었다.



“씨이펄. 내가 왜 안 도망치고 싸운다고 나대선 이 모양 이 꼴이······ 어?”



남자의 눈에 물건 하나가 띄었다.


철창살 쪽 바로 옆 벽에 설치된 횃불 아래에 타고 남은 나무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창살 밖이었으나 워낙 가까운 곳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손을 뻗어 가져올 수 있었다.



“이거면 되냐?”


“될 거 같은데요.”



그러자 남자가 휙, 하고 그에게 목탄을 던진다.


제이엘은 그것을 받아 내지 못해 얼굴에 맞고 말았다.



“악!”



전생에서도, 이번 삶에서도 그는 운동 신경과 거리가 멀었다.


그것을 보고 남자는 뭐가 그리도 웃기는지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었다.



“푸하하하하! 야, 그것도 못 받냐?”



어찌나 행복해하며 웃어대는지, 눈가에 눈물마저 보이는 게 보는 입장에선 아주 얄밉다.



“우씨. 더 놀리면 안 그려줄 거예요.”


“미안하다.”



읏차.


제이엘이 목탄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삼스럽지만 다리가 멀쩡한 것부터 감사스럽다.


전생의 그는 두 다리로 서는 그것조차 버거워하던 삶이었으니까.



“음, 여자 취향 같은 거 있어요? 기왕 그릴 거.”


“ㅁ, 뭐 그런 걸 묻냐······.”


“다 큰 어른이 뭘 부끄러워해요.”


“넌 애새끼가 부끄럽지도 않냐?”


“전 이게 직업인데요? 이 부끄러운 게 날 먹여 살렸다고요.”


“그, 그럼 긴 생머리에······.”



남자는 가슴께에 양손을 가져가 보이더니 무언가를 큼지막하게 움켜쥐는 듯한 손짓을 보였다.


차마 말로는 못 하겠는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이엘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가슴 큰 여자 싫어하는 남자 어디 있겠어.


그건 어느 세계에서나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기다려 봐요. 끝내주는 거 하나 그려드릴게.”



그는 목탄을 들고 슥슥,


아름다운 나체의 여인을 벽에 그려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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