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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야짤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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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안신아
작품등록일 :
2024.06.23 02:19
최근연재일 :
2024.07.04 20:20
연재수 :
4 회
조회수 :
295
추천수 :
29
글자수 :
22,288

작성
24.07.02 00:20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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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DUMMY

2화





“오······.”



별 기대치 않던 남자의 눈빛에 흥미로움이 감돌기 시작했다.



“오오오······!”



제이엘의 목탄이 벽에 선을 그을 때마다, 점차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헐벗은 여인의 형태.



“······.”



본디 그는 나체를 즐겨 그리지 않았다.


꼴림이란 모두 벗은 것보다 몸을 가린 것이 있을 때 증폭되는 법.


인간의 상상력은 그 가려진 부위를 스스로 떠올리며 보는 자의 욕망을 더욱 강화시킨다.


하지만 제이엘은 남자를 위해 나체를 선택했다.


내일 아침이면 목이 잘릴 운명. 옷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풍만한 여인의 육체,


보드라운 젖가슴일 테니까.



“오, 씨발······.”



벽에 그려지는 여인은 남자의 취향에 쏙 들어맞았다.


긴 생머리, 커다란 가슴.


팔은 양손이 위로 묶여 있고, 양다리는 V자로 벌려져 천박하게 사타구니를 드러낸다.


화룡점정은 표정이었다.


부끄러움, 희열, 기대, 반항 등 몇 가지 감정이 뒤섞인 얼굴에 남자는 감탄했다.


목탄은 그리 좋은 그림 도구가 아니다.


말이 목탄이지 제대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 그냥 횃불에서 타고 남은 나무다.


그런 거친 선으로도,


단 몇 개의 선으로도 이렇게 세심하게 표정을,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그림에 문외한인 그로서도 감탄스러웠다.



“어때요?”



제이엘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남자와 눈을 맞췄다.



“어우 자, 잘 그리는데······.”



남자가 양손으로 가랑이를 가리곤 엉거주춤하며 대답했다.


이 녀석, 허언이 아니었다.


이걸로 밥 벌어 먹고살았다는 말은 진짜인 것 같다.


야한 그림을 사고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이 정도나 되면 진짜 돈 주고서라도 사서 볼 사람이 있지 않을까?



“······.”



남자의 시선은 벽의 그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혹시 뭐, 남자도 필요해요? 저 남자 알몸도 잘 그리는데.”


“꼬추 새끼는 필요 없어.”



그는 딱 잘라 말하며 계속해서 그림을 눈에 담았다.


남자는 평생 이런 그림, 음화(淫畫)를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민, 그것도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이 춘화는커녕 그림 같은 것을 볼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애초에 그림이라곤 촌장 집에서 엉망진창으로 과일 하나 그려진 거 하나 본 게 다다.



“뭐야, 이놈들 뭐 하고 있어!”



두 사람은 호통치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


“가, 간수님······.”



제이엘과 남자가 식은땀을 흘렸다.



——퉁퉁퉁퉁퉁!



간수가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검집을 집어넣어 쇠창살을 하염없이 두드렸다.



“당장 이쪽 보고 손들어! 너! 손에 쥔 거 뭐야!”



두 포로는 그의 말대로 양손을 들어 보이며 벽에서 물러났다.


간수가 눈을 부라리며 감옥 내부를 살폈다.



“······???”



잔뜩 일그러져 있던 간수의 표정이 커다랗게 벽에 그려진 제이엘의 그림을 보자 황당하다는 감정을 내비쳤다.



“이게 대체 뭔······.”



외설스러운 낙서야 그도 군에 있었으니 많이 봤다.


벽에 저속한 단어를 휘갈겨 쓰거나, 남성기나 여성기를 그려둔 것도 많다. 물론 애들 낙서 수준이다.


하지만 이렇게 예술에 가까운 경지에 이를 정도로 그런 짓을 해댄 놈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쥐어져 있는 목탄 때문에 제이엘의 손이 새까맣게 물든 것을 확인한 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어린놈이 그린 건가?


기다란 머릿결, 도발적인 표정, 풍만한 젖가ㅅ······.



“어흠흠흠!!”



간수는 고개를 흔들어 음욕을 떨쳐냈다.


하지만 자꾸 눈이 가는 것만은 그도 사내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전쟁 때문에 여자를 만나기는커녕 눈에 담아본 지가 벌써 까마득하다. 대체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이 새끼들이 돌았나! 어딜 낙서질을 해!”



하지만 그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벌거벗은 여자가 그려진 담벼락을 힐끗거리면서.



“당장 지ㅇ······!”



툭, 툭.



“응?”



뒤에서 뭔가 콕콕 찌르기에 간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붙은 동료 간수였다.


이쪽이 하도 소란스러워서 다가온 모양.



“뭐? 왜 그래.”



그러자 동료 간수가 그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



그것을 지켜보던 제이엘이 눈을 반짝였다.


다가온 동료 간수의 귀는 이쪽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새빨개져 있었다. 그도 제이엘의 그림이 마음에 든 것이 분명했다.



“흠······ 흠흠.”



서로의 귓속말이 끝나자,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환기하는 간수.



“야외 활동이다. 뒷짐 지고 뒤로 돌아서.”



그러자 감방 동료가 눈썹을 찌푸렸다.



“뭔 놈의 야외 활동? 지금까지 바깥 구경시켜준 적도 없으면서.”



맛대가리 없는 개밥 같은 식사조차 제대로 주지 않은 곳이 여기였다.



“나가라면 나가, 포로 새끼들아. 시키는 대로나 하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간수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간수를 따라 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한 감방 동료를 제이엘이 황급히 말렸다.



“나가요 저희. 좋은 일 아니에요? 나가서 햇빛도 좀 쐬고, 풀도 밟아보고 하면 좋죠.”


“아니 씨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시키니까 그렇지 불안하게. 그냥 나가서 멱 따려는 거 아니야?”



그러자 간수들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냥 야외 활동이다. 얌전히 지시에 따르면 만족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다.”


“······.”



간수와 한참을 눈싸움하던 감방 동료는 결국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진짜.”


“괜찮아요. 나가요.”



그의 등을 툭툭 치며 도닥이는 제이엘.


한참은 어린아이가 수염 난 아저씨를 위로하는 모양새였지만 이곳의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참, 아저씨. 윗옷 좀 벗어봐요.”


“뭐? 또 뭔 지랄이야.”


“제 말 믿어요 아저씨.”



제이엘은 그리 말하더니 자기도 웃옷을 훌렁 벗는 것이 아닌가.


감방 동료는 영 미덥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그를 따라 옷을 벗었다.



“뭐야? 옷은 왜 벗어?”



간수들은 이놈들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하여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 별거 아니고요. 소지품 검사하시려면 조용히 집중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희 옷으로 창살을 가리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헤헤, 하면서 웃어 보이는 제이엘을 보며 간수 둘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 새끼······.”



간수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험악한 말이었지만 그것에 담긴 감정은 적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놈 봐라? 이런 어조에 가깝다.


간수가 씨익 웃고 있었다.



“흠흠. 아무튼 내가 먼저 이들을 데리고 다녀오겠네.”


“어, 그래.”


“5분이면 충분한가?”



벽의 여자 그림을 힐끗거리며 말하는 간수였다.



“야이 내가 무슨 조ㄹ······ 인 줄 알아!? 어떻게 5분 만에 끝내?”


“그럼 10분?”


“야. 이 포로 새끼들은 사람도 아니냐? 어떻게 10분만 쉬어. 얼마 만에 보는 바깥세상인데 15분은 쉬어야지.”



그러자 다른 간수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15분일세.”


“당연하지.”



자기도 15분을 할당받는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렇게 다른 간수는 그들의 손을 묶어 바깥으로 데려갔다.



——후욱.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후끈후끈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습기가 폐부를 답답하게 틀어막았음에도 제이엘과 남자는 오히려 쾌활함을 느꼈다.



“스읍, 하! 와, 뒤지기 전에 바깥에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제이엘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여전히 울타리 안에다가, 살풍경한 감옥 주변이었지만 그래도 바깥이었다.



“문제 일으킬 생각은 하지 마라.”



차가운 간수의 목소리가 그들의 뒤통수를 찔렀다.


간수는 족쇄를 풀어주지 않았고, 팔을 묶은 줄도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이엘은 간수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저 말인즉슨 간수의 말대로, 그들을 처형시키기 위해 데려온 것이 아니란 뜻이었고, 제이엘의 생각이 맞았다는 증거였다.



“산책 정도는 괜찮습니까?”


“그래.”



제이엘의 말에 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걸으시죠?”


“어······ 어.”



내일 아침에 뒈질 놈답지 않게 활짝 웃으며 말하는 제이엘을 보며 남자는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왜 이리 잘해주지? 불안하게.”



남자가 불만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인간들이 괜히 잘해주겠어요? 제가 얻어낸 거죠, 제가.”


“네가?”


“그럼요. 괜히 저희보고 나가라고 했겠어요? 안에서 할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아니 잠깐. 네 말은 씨발 그 새끼들이 ㄸ······ 그걸 우리 감방에서 한다고?”



남자가 역겹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제이엘은 그게 뭐 대수냐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옷 벗어서 감방 가리라고 줬죠. 어차피 건너편이 먼 구조라 잘 보이지 않긴 할 텐데, 아무래도 가려주는 게 있으면 사람이란 게 맘이 편하니까.”



제이엘이 고개를 돌리며 스트레칭했다.


전생의 그는 항상 해오던 것이지만, 낡은 천장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이 기분 좋다.



“저 인간들도 얼마나 굶주렸겠어요. 음, 하고 감상하는 것도 여유가 있을 때나 그렇지. 아저씨라면 몇 년 동안 군대에 끌려와서 여자 얼굴 하나 구경 못하고 있는데, 제 그림 보고 참을 수 있겠어요?”



제이엘의 말에 남자가 아? 하고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저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나쁜 것도 아니고.’



성이라는 욕망은 건전하게만 해소할 수 있다면 오히려 생활에 활력소를 준다.



“어이! 교대해!”



벌써 15분이 지났나?


교대하러 온 간수는 뭐가 그리도 개운한지 아주 얼굴이 싱글벙글이었다.



“흠흠, 흠. 이놈들 감방에 위험한 물건은 없는 것 같더군. 하지만 모르니 자네가 한번 더 봐주게.”


“으음, 음. 무, 물론이지······.”



그들은 되도 않는 연기를 어색하게 하며 위치를 바꿨다.



“······.”



간수가 힐끗 제이엘과 남자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눈길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같은 인간이 맞나 싶다.


그렇게 또 15분이 지났다.


들어갔던 다른 간수도 근엄한 표정으로, 세상만사를 다 깨달은 듯한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편안해 보인다.


그렇게 제이엘과 남자는 30분동안 바깥 공기를 마시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아, 아니!?”


“오. 수프네요. 빵도 있고.”



감방 동료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이놈들이 이렇게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을 넣어준 적이 있던가?


심지어 따뜻한 수프였다!


남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허겁지겁 음식을 떠먹기 시작했다.



“하하하. 간수님들. 감사하긴 한데, 이거 최후의 만찬인가 뭔가 그런 건가요? 저희 내일 목 날아가니까?”



제이엘이 너스레를 떨며 친근한 척, 간수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간수들은 그것에 대답하지 않고 흠흠, 헛기침하며 제이엘에게 무언가를 몰래 내밀었다.


그것은 종이, 깃털 펜. 그리고 잉크였다.


물품들을 보이지 않게 재빨리 받아든 제이엘이 씩 웃었다.


믿고 맡겨주십쇼 고갱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8 기리기리기
    작성일
    24.07.02 00:42
    No. 1

    음 이 댓글이 작가를 조종하는 댓글일지 그냥 감상을 표현한 댓글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후자라고 생각하고 작는다. 무슨 나중에 이걸로 귀족이 된다거나 세상을 구한다거나 하는 뇌절전개면 나중에 관심이 끊어질 것 같은데 그럴거라고 한적 없으니 지금의 감상으로는, 신박하다.(물론 야짤그려서 포로신분에서 풀려나고 돈 많이 버는 걸로 끝나면 분량도 적을 것 같고 뒷내용에 쓸게 없어지겠지만 적어도 그림 하나로 거창한 신분이 되는건 좀 너무 뇌절같이 느껴지긴 해서. 그렇게 보면 뒷내용이 기대만큼 걱정도 되는 작품이려나?)나중에 다른 누군가의 평가를 들어보는게 좋을 것 같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 니코딱지
    작성일
    24.07.02 01:14
    No. 2

    개웃김욬ㅋㅋㅋ잔잔한데 왤케 재밌짘ㅋㅋㅋㅋ 아, 웃음벨ㅋㅋㅋㅋ

    뒷내용전개 어케될지 저도 궁금하네용. 야짤중에 실제 공주의 얼굴이나 이종족 여왕의 얼굴이랑 존똑이라 나중에 얘 잡아죽이겠다고 전쟁나고 이리저리 쫓겨다녀도 재밌을듯.

    근데, 작가님. 지금 전연령가로 되어있는것 같은데, 직접적인 씬은 없어도 내용이나 단어가 19금 달아야할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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