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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張譚) 의 이야기 세상

암천제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장담(張譚)
작품등록일 :
2009.04.15 19:43
최근연재일 :
2009.02.07 20:07
연재수 :
8 회
조회수 :
372,351
추천수 :
83
글자수 :
31,837

작성
09.02.03 20:57
조회
42,855
추천
7
글자
10쪽

암천제- 기이한 손님

DUMMY

.



독고무령은 노인의 팔다리를 침상에 달려있는 족쇄와 수갑으로 고정시켰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데다, 단전이 파괴되어 있어 반항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난 후, 기다란 장침을 하나 들고 와 서슴없이 노인의 가슴에 꽂았다.

“크으윽!”

둘을 세기도 전에 노인이 신음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유백하는 흐릿한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짧은 순간 두 번에 걸쳐 놀랐다.

첫 번째는 음침하고 비릿한 혈향이 가득한 곳에 어린소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소년이 바로 침 하나로 자신을 깨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세 번째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학자인 그조차 꿈에도 짐작치 못했다.

그는 목을 쥐어짜 소년에 대해 물었다.

“아이...야. 너는... 누구...?”

독고무령이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방의 주인. 당신의 입에서 천자무서에 대한 것을 불게 할 사람.”

고문술사라는 말.

유백하의 파르르 떨리던 눈이 한껏 커졌다.

말대로라면, 자신을 고문할 사람이 바로 눈앞의 소년이라는 말이 아닌가?

“네, 네가... 나를... 고문 하겠...다는 거냐?”

독고무령은 고개만 끄덕였다.

굳이 입을 열어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탁자 위에 놓인 것 중 두어 가지의 물건을 집어와 침상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 중 톱날처럼 생긴 침을 집어 들었다.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말할 때까지 백여덟 가지의 고문을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유백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정말 이 소년이 자신을 고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열을 세기도 전에, 그는 모든 의문을 접지 않을 수 없었다.

“크으으윽!‘

신음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머리꼭대기까지 치솟는 고통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러길 반의 반각.

몸에서 한겨울 바람에 문풍지 떨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 또 한 번의 극통이 찾아왔다.

그의 몸에서 침이 빠져나가며 밀려드는 고통이었다.

“으어어어어어...”

독고무령은 살점과 핏물이 범벅된 침을 한쪽에 내려놓고 또 다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작은 흑색 옥병이었다.

잠시 후.

쇠로된 침상이 들썩이며 유백하의 이가 우박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따다다다다....

“으드드드....”

조금 전의 고통이 장난처럼 생각될 정도로 처절한 고통이 그의 정신상태를 완전히 휘저었다.

쇠사슬에 묶인 손목과 발목의 살갗이 벗겨지고, 벗겨진 곳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데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오직 하나. 제발 이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고통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기껏해야 천천히 서른을 셀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도 유백하에게는 지옥을 넘나드는 시간만큼 길었다.

독고무령은 무심한 눈으로, 입술을 떨고 있는 유백하를 내려다보았다.

눈동자가 반쯤 돌아간 상태였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완전히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는 잠시 유백하를 그렇게 놔두었다.

그러고는 유백하의 입술이 떨리지 않을 즈음에야 진열장에서 가느다란 쇠줄을 하나 들고 왔다.

계속 고통을 주면 고통에 면역이 된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고통을 주면 밀려올 고통에 정신이 먼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쯤이면 유백하는 두려움에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무령이 가느다란 쇠줄을 들고 다가가자 유백하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 그만....”

천자무서가 아니라 만자무서라 해도, 학자인 그에게는 그저 사서삼경 중의 그 무엇보다 나은 게 없었다. 그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고집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일 뿐.

그럼에도 온갖 협박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천자무서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벌자는 것.

그렇게 악착같이 참고 견딘 덕분에 닷새의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버틸 여력도 없고, 더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다.

유백하는 목젖을 쥐어짜 좀 더 확실히 말했다.

“그만... 하게...”

너무 쉬운 항복이다. 독고무령은 손에 들린 쇠줄을 바라보고, 다시 유백하를 바라보았다.

비옥으로 데려올 정도의 이유는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워낙 강골이어서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때.

또 다른 하나는, 철저한 비밀을 요할 때.

유백하 같은 경우는 두 번째 이유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첫 번째 이유 역시 유백하가 이곳으로 끌려온 이유가 될 거라 생각했다.

아니라면 이곳에 끌려오기 전에 입을 열었을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것은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말하겠다는 거야?”

독고무령의 물음에 유백하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정도라면, 거짓을 말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잘 알 거야.”

유백하의 핏물이 흐르는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크, 크... 걱정...마라.”

“의외군. 좀 더 참을 줄 알았는데.”

고저없는 음울한 목소리. 도무지 소년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목소리다.

유백하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불...쌍한... 아이구나....”

독고무령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뭐가 불쌍하다는 거지?”

“이 세상에... 어떤 아이가... 너처럼... 감정이 마른 채... 살아가겠느냐?”

독고무령은 유백하를 똑바로 바라본 채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이곳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이곳에서 자랐어. 감정이 뭐 말라비틀어진 것인지 몰라도, 그보다는 일을 빨리 끝내고 한줄기의 햇살을 받으며 쉬는 게 더 좋아.”

유백하의 눈이 홉떠지고, 눈빛이 잘게 떨렸다.

전신을 치달리는 고통조차 그 순간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어,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아이가 저렇게 자란 것도 무리가 아니로구나.’

두 눈은 물결 한 점 없는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다. 게다가 하는 것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심성이 극악한 것 같지도 않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리 하는 것 뿐.

유백하는 난생 처음 대하는 삶을 보고 아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독고무령은 유백하의 반응이야 어떻든 자신의 할 일만 했다.

“이제 손을 하나 풀어주고, 붓과 양피지를 가져다 줄 거야. 거기에 적어.”

유백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수십 년 삶의 흔적, 원치 않았던 여인과의 인연, 딸의 얼굴,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소년의 모습...

‘하늘이 나에게 마지막 할 일을 남겨준 것인가?’

곧 오른손을 감고 있던 쇠사슬이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껍질이 벗겨진 손목에서 싸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유백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다섯 자 거리에 서 있는 소년이 보였다.

그가 갑자기 물었다.

“아이야, 너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

독고무령이 짤막하니 대답했다.

“여기가 내 세상이고, 나의 모든 것이야. 알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해?”

알 필요도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다.

유백하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그가 뭔가를 결심한 듯 나직이 물었다.

“언제까지... 나를 이곳에 놔둘 수 있느냐?”

“무슨 뜻이지?”

“네가 나에게서 대답을 못들을 경우, 저들이 너를 봐줄 수 있는 기한이 언제까지냐고 묻는 거란다.”

“무기한이야.”

“정말 저들이 무한정 기다려 줄 거라고 믿느냐?”

독고무령이 잠시 이마를 찌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마 한 달 안으로 내가 못 알아내면 다른 사람에게 데려갈지 몰라.”

유백하의 눈빛 깊은 곳에서 기광이 반짝였다.

처절한 고통에 시달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안정된 눈빛이었다.

그는 독고무령을 직시한 채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럼 나하고 거래를 하나 하지 않겠느냐? 거래를 하겠다면 하루에 열 글자씩 해독을 해주지.”

하루에 열 글자. 그렇다면 남조경도 백일 정도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줄 것이다.

어차피 심하게 고문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몸을 지닌 유백하가 아닌가.

한데 왜 그런 거래를 하자는 걸까?

독고무령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유백하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거래를 하자는 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이 먼저 거래를 하자고 할 때도 있었으니까.

먼저 거래를 제안한 자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몰래 나갈 수 있게 해준다면 나중에 보물이나 엄청난 재물을 주겠다는 것.

그리고 자신 역시 딱 한 가지 제안만 했다.

순순히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면, 고통없이 죽여주겠다는 것.

물론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비밀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함이었다.

그는 그렇게 손님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비옥 십팔호실에서는 오직 그것만이 낙이었으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준다면 거래를 하겠어.”

천자무서에 대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유백하로선 그 어떤 것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천자무서라는 것조차 그에게는 한권의 경전만도 못한 것이거늘, 그 무엇이 아까울까.

“말해주마, 천자무서든 뭐든.”

그때였다. 독고무령은 갑자기 떠 오른 어떤 생각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단... 천자무서 중 가장 중요한 백 글자는 맨 나중에 알려줘. 그 글자가 아니면 나머지가 무용지물이 될 정도의 글자여야 돼.”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너무 순순한 응낙. 더구나 눈빛마저 부드럽다.

독고무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전까지 열아홉 명을 취조했지만, 이런 손님은 처음이었다.

“좋아, 그럼 마지막 날에 고통 없이 죽여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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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암천제- 세상에 지지 않을 거야! +51 09.02.02 50,043 8 10쪽
1 암천제- 서(序) +62 09.02.01 58,753 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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