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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 키우는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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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12 13:53
최근연재일 :
2024.06.22 18:2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3,541
추천수 :
128
글자수 :
79,100

작성
24.06.22 18:20
조회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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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일 배운다고 생각하세요.

DUMMY

임지현은 손목에 들어온 침이 뜨겁게 느껴지면서 심장 뛰는 소리가 격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마냥 시원하던 치료와는 상반되게 고통스러웠다.


‘아플 수도 있다더니······’


그럼 부작용도 있을까? 당장 우울이라는 늪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덜컥 수락했는데, 이제 와서 겁이 났다.


하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원장님의 집중을 깨는 순간, 더 큰 문제가 생길 거란 본능 때문이었다.


“아······”


얼마나 지났을까.


고작 침 한 방. 하지만 결코 효과는 가볍지 않았다.


가뭄으로 메마른 기의 강물이 조금씩 차오른다. 차오른 물은 점차 흐르기 시작한다. 작은 물줄기는 점차 큰 물줄기가 되어, 임지현 내부의 기가 정상적으로 흘러간다. 그 느낌과 동시에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너무너무 슬펐으나, 미처 다 슬퍼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지현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울면 더 슬플 것 같았기에, 어떻게든 안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버텼다. ‘나 엄마랑 사이 나빴잖아.’라며 슬픔을 부정했다.


‘나······ 많이 슬펐구나······’


엄마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비록 지속적인 공부 강요로 인해 사이가 나빠지긴 했으나, 그건 임지현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보처럼. 아직도 엄마가 보고 있다 생각하고 공부하는 주제에 그립지 않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마음껏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다.


‘어쩌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지?’


잘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지금 눈물에 그때의 슬픔이 흘러갔다는 거다. 한바탕 우니까 얼마나 후련한지 모르겠다.


그동안 느끼던 개운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울이란 늪에서 정말로 벗어난 느낌이었다.


“어어? 치료는 잘됐는데······ 많이 아팠어요?”


박근성 원장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물었다. 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할 것처럼 생겼으면서, 생각보다 여린 사람인 게 웃기다.


임지현은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와······ 진짜 신기해요. 고작 침 한 방으로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죠?”

“심맥을 지나는 기운이 탁해지는, 감정의 순환이 선천적으로 어려운 체질이었어요. 그 체질을 조금 손 봐준 거예요. 아직 체질의 여파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처럼 생활하면 다 털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


그저 단 한 방의 침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바둑에서 신의 한 수로 전세를 역전하듯, 신의라 불릴 만한 침술이었다.


“제가 한의원은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다른 한의원도 이래요?”

“다 그렇듯 잘하는 곳도 있고 못하는 곳도 있죠.”

“원장님은 잘하는 편이죠?”

“말해 뭐해요.”


자신감 있는 말투. 자기 말을 지키는 실력. 참 멋있는 사람이다.


“감사합니다. 저 지금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정도예요? 신기하네······”

“네?”

“아니에요.”


반응이 뭔가 미적지근하긴 하지만, 증상이 호전됐다는 것은 사실. 임지현이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부끄러워져서 진료실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한의사시면 항상 감사 인사를 들을 텐데 뭐 그거 말했다고 부끄러운지. 스스로가 웃겼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꽁꽁 숨겨왔던 때와는 달리 오감이 생생했다. 진료실 내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표정, 아령 들고 운동하다가 들켰다는 듯 내려놓는 간호사 언니의 행동, 진동하는 한약 냄새······


우울에서 벗어난 세상은 무언가 색감 있고 또렷했다.


마침 기다리던 아빠가 보였다.


‘언제 저렇게 건강해지셨대?’


아빠는 얼굴에 음영이 가득하고, 매일 마시는 술로 인해 배가 튀어나왔고, 지방간도 심했다. 누가 봐도 건강 적신호 켜진 아저씨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배는 홀쭉해졌고 얼굴은 밝아졌다. 건강하고 운동 좋아하는 아저씨의 모습. 제 나이보다 10년은 늙어 보였던 아빠는 이제 제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아빠의 표정이 보였다. 어딘가 애틋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눈빛.


얼마나 걱정했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그 모습을 이제야 알아본 것이 너무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타 출발하기 직전, 임지현은 솔직한 심정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아빠. 그동안 걱정시켜서 미안해.”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말인데, 오늘따라 말이 목구멍 바깥으로 나오더라. 어쩌면 체질이 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딸······”


임지현의 아빠는 그 말과 동시에 눈물을 떨어트렸다. 그걸 숨기고 싶었던 건지, 딸을 꼭 안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하. 한의원 오길 잘했네. 아빠도 평소 만성 피로에 어깨니 허리니 무릎이니 성한 데가 없었는데, 요즘은 뻐근하거나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어.”

“나도 많이 빠졌지?”

“그러게. 껴안을 때 부피감이 두 배 이상 줄어든 거 같은데?”

“그게 뭐야······”


빈말로라도 사이가 좋았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두 사람은, 이제는 누가 봐도 화목한 부녀지간으로 보였다.



***



나는 임지현을 치료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방금 치료는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극양의 성질을 띠는 화기. 그것으로 신체의 불순물을 정교하게 태웠다. 최대한 혈맥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체질은 변할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태우는 것으론 한계가 있었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했으나, 혈맥이 약해졌으니 그에 따른 부작용은 반드시 따라올 터.


‘오행의 기운이 다 있었으면, 부작용 없이 완벽하게 처리했겠지.’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다. 심맥에서 기의 순환을 막는 무언가를 제거했으니, 앞으로는 감정을 표출하지 못해 쌓이고 병드는 일은 없을 거다.


‘진짜 우울증이 치료된 것처럼 행동했지.’


어찌나 후련한 표정인지. 처음 보는 임지현의 환한 얼굴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깡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치료의 폭이 넓어진다. 앞으로는 공부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또, 토기와 금기 그리고 특히 목기를 빨리 얻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깡이를 더 빠르게 키울 필요가 있었다.


[뀨우······]

[뺘아······]


아. 얘네 무리했다고 탈진했네. 빨리 밥 먹여야지.


나는 다음 환자를 들여보내라는 사인을 백이설에게 보냈다. 이내 똑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느덧 붓기가 전혀 없는, 여리여리한 한윤슬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내일이 촬영이죠?”

“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목표 몸무게에 도달하셨나요?”

“아뇨, 5kg은 무리였나 봐요.”


일주일에 5kg.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는데,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 괜히 침울해진다.


3kg 감량 이후부터는 살이 빠지는 것만큼이나 근육이 성장해서 더는 몸무게가 줄지 않았던 거다.


내 표정을 본 걸까. 한윤슬이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목표치 초과 달성이라고 봐요. 전보다 몸 라인이 살아서 카메라 앞에서는 5kg 감량한 것보다 더 예쁠 거 같아요.”

“그래도 5kg가 목표셨으니······”

“제 몸무게에 5kg 감량은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는데, 거의 성공했잖아요. 사실 물 안 마시고 이틀 정도 굶었으면 성공했을걸요? 근데 지금이 더 좋아서 안 그랬어요. 다이어트하면 원래 기운이 쪽 빠져야 하는데 팔팔하잖아요.”


본인이 만족했다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엔 조금 거리도 있고 해서 안 오려고 했거든요? 와 보길 천만다행이네요. 다음에 또 다이어트할 일 있으면 무조건 여기 와야겠어요.”

“그땐 예약이 남을지 모르겠네요.”

“헉. 제 자리만 살짝 빼 주실 수는 없나요?”

“그럴 수는 없죠.”


한윤슬이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홍보는 어떻게 해드리는 게 좋을까요?”

“저야 그쪽으로는 잘 몰라서······”

“그럼 사진부터 찍을까요? SNS에 올려드릴게요. 그리고 저도 팬들과 소통한다고 가끔 올리는 유튜브 vlog 채널이 있거든요? 다음에 그거 찍으러 올게요.”


나는 한윤슬과 연락처를 교환했다. 가끔 안부 연락한다는데, 붙임성이 대단한 것 같다.


성은아의 블로그 여파도 꽤 컸는데. 나름 유명한 연예인의 SNS 위력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아······ 오늘이 마지막 추나네요. 맨날 생각날 것 같아.”


한윤슬은 익숙하게 추나용 침대에 엎드렸다.


나는 평소처럼 추나를 시작하지 않고 계획을 짰다.


한윤슬이 했던 운동. 그로 인해 손상된 근육의 위치. 그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선 얼마나 세게, 어떤 각도로, 어디까지 눌러야 하는지. 깡이는 어떻게 활용할지.


‘추나는 밀고 잡는다는 뜻으로, 근육 이완을 돕고 체형을 교정하는 치료야.’


알 배긴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 건, 깡이를 주입하기 위해 지압을 섞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루틴이다. 보통은 관절을 움직여 근육을 풀어 주거나, 척추 주변으로 힘을 가해 자세를 교정한다.


‘굳이 지압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깡이 활용에 익숙해졌다. 좀 더 골고루. 넓게 퍼트리면······!


“와······!”

“평소랑 느낌이 다르죠?”

“네. 뭔가 누른 부분만 시원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시원해지면서 피로가 싹 풀리네요.”


괜히 지압을 섞어 주느라 길어진 추나요법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체의 균형을 직접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는 올라갈 거다.


한윤슬은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미세하게 길다. 그로 인해 생기는 부조화가 골반을 뒤틀었다. 티가 날 정도는 아닌데, 힐이라도 오래 신고 있으면 허리가 많이 아플 거다.


그 미세한 골반의 틀어짐을 즉석에서 교정했다. 틀어진 정도가 작아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힘이고, 아플 수 있는 걸 깡이와 빵이가 보조하여 시원한 느낌을 만들었다.


“됐습니다.”

“벌써요? 평소보다 짧은 거 같은데······”

“실력 발휘해서 시간 좀 단축시켜 봤습니다.”

“와······ 근데 편안함이 다르네요.”


한윤슬이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몸이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종종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가 좋다. 나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갔다.



***



보람찬 하루가 끝날 무렵. 백이설이 추천한 간호사가 드디어 면접을 보러 왔다.


“연수야. 잘 왔어!”

“아······ 응. 여기 분위기 좋다. 응급실이랑은 차원이 달라.”


백이설과 잠깐 인사를 나눈 그녀가 내가 있는 진료실에 들어왔다.


이름은 김수연. 화장기로는 가려지지 않는 핼쑥한 얼굴이 인상적인 그녀는 뭔가 어두운 아우라를 풍겼다. 살짝 우울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 손목만 봐도 앙상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말랐다.


“안녕하세요.”

“어휴······ 너무 말랐네.”

“응급실에 있다 보니까 제때 끼니 챙기기 어려웠어요. 제때 잠도 못 잤고. 근데, 이래 보여도 틈틈이 운동은 하고 있었어요. 비록 공원 뛰는 정도였지만.”


그러한 습관이라도 없었으면 3년을 못 버텼겠지. 대단한 집념이다.


“그렇게까지 응급실에서 버틴 이유가 있어요?”

“젊을 때 바짝 땡겨야죠!”


간호사는 일한 만큼 돈을 버는 직업이다. 누가 봐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곳에서 근무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았을 거다.


“이제는 다 땡겨서 여기 온 거예요?”

“아뇨. 원래는 2년은 더 땡기려고 했어요.”

“근데 직장은 왜 옮기는 거예요?”

“건강 문제도 있고, 그 직장에 저한테 집적대는 환자가 하나 있어서······ 더는 일 하기 힘들고 불편했거든요.”


간호사에게 집착하는 환자가 꽤 있지.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 시달린 게 아닌 듯했다.


“건강 회복되면 다시 큰 데로 옮길 거예요?”

“듣기로는 여기도 일 열심히 하면 봉급 올려 준다고 들었거든요.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봉급만 챙겨주면 눌러앉겠다는 이야기네.


일단 마인드는 합격이다. 그 힘들다는 응급실에서도 곧잘 버텨낸 것도 그렇고, 힘든 와중에도 틈틈이 운동까지 했던 것은 내가 다 흐뭇할 정도다.


“1차 합격!”

“감사합니다.”

“2차는 체력 검정입니다.”

“······네?”


정장에 풀 메이크업까지 한 거 보면 예상 못 했나 보다. 하지만 간호사는 한의원의 간판 아닌가. 환자들은 운동시키면서 정작 간호사가 운동 부족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일 배운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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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명의 소리 들어도 되겠다. 24.06.20 176 10 14쪽
10 회춘한 게 맞네. 24.06.19 201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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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발······ 그만······ 24.06.17 240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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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발 살살. 24.06.13 301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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