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6,693
추천수 :
956
글자수 :
256,612

작성
20.05.17 18:00
조회
795
추천
25
글자
18쪽

6. 고올든 명함

DUMMY

6.



드디어 D-DAY의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기업의 사모님들과 비서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히 보육원의 직원들을 피를 말리는 기분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보육원생들은 혹여나 자신들이 실수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뷔페 음식이나 축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열심히들 산다.”


이헌은 접시에 산처럼 쌓인 뷔페 초밥을 먹으며 순수하게 감탄했다. 특히 보육 교사와 함께 정신없이 인사를 건네며 돌아다니는 고주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정계에 출마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벌써 몇 접시냐. 적당히 먹어라.”


그런데 반대로 그런 이헌을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머리가 반쯤 벗겨졌지만, 마치 모델 같은 세련된 중년의 모습을 한 백인이었다.

이헌과 눈을 마주친 중년인은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 지냈니.”

“......누구세요?”


우물우물거리며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던 이헌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중년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그러지 마라. 명함까지 받아가 놓고선.”

“그래요?”


상대의 말에 이헌은 지갑을 꺼내 명함을 살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애송이가 명함을 가져봤자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헌의 지갑 안에는 꽤 많은 명함이 들어 있었다. 하나 같이 코치, 학교, 에이전트 같은 운동과 관련된 명함들이었다.


“그거다 그거. 금색 테두리 명함.”


중년인이 말한 금색 테두리의 명함은 세련된 모더니즘보다는 클래식한 품격과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신 국제 고등학교 체육부 부장 크리스찬 헤이든.”

“그래 그거.”

“아저씨 이름 멋지네.”

“하하. 그 소리도 벌써 두 번째다.”


이런 사립 명문고의 체육부 부장이라면 대기업 부장 못지않은 직책일 것이다. 그것도 고주원의 말에 의하면 미국의 챔피언 학교들과도 대결을 펼친다 하지 않았던가.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놀랍네요.”

“뭐가.”

“코치도 아니고 부장님이 직접 찾아올 정도로 제가 대단한 겁니까? 제가 뭐 보여준 것도 아닐 텐데.”


이헌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이 세계의 이헌은 제대로 된 운동을 한 적도 없을뿐더러,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운동부 코치들은 물론, 저 부장이라는 양반까지 자신에게 목을 맨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헌을 보며 크리스찬은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너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뭘요?”

“9.99.”

“그게 뭐요.”

“너의 100m 달리기 기록이다.”

“아... 예.”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이헌이었지만, 그 역시도 속으로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그런 미친 기록을 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물론 비공식이다. 수업 중에 나온 기록인 데다, 기록 역시 손으로 잰 거라 실수했을 가능성이 높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50m 기록이면 모를까 100m는 좀 더 제대로 된 연습이 필요한 걸로 아는데요.”

“그래. 비록 교과 과정 때문에 한 달 동안 연습했다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훈련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

“맞습니다. 그냥 우연입니다.”

“당시에도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갔었다. 너는 귀찮다는 이유로 두 번 다시 뛰지 않았고, 덕분에 당시 체육 교사는 임의로 A를 줘야만 했지.”

“그런 해프닝을 왜 다른 고등학교의 부장님이 신경 쓰시는 거죠.”

“9.99니까! 설사 그 기록이 우연이라고 해도 9.99는 그런 기록이다!”


아직 뼈도 제대로 아물지 못한 고등학생이 9.99의 기록을 냈다.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않은 미성년자가 10초의 벽을 깬 것이다.

설사 그것이 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헌이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만약 이대로 육상에 전념한다면, 정말 아시아인 최초로 올림픽 100m 달리기 종목을 제패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사 10초대의 벽을 넘지 못한다고 해도 크리스찬은 개의치 않았다. 이헌의 운동능력은 비공식 9.99 하나만으로 이미 증명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달리기가 빠른 선수는 어디에서나 써먹을 수 있었다. 각종 육상부터 시작해 미식축구, 축구, 농구, 심지어 야구까지.

다른 재능있는 선수들이 그러했듯, 이헌 역시 여러 종목을 로테이션하면서 재능을 시험하면 되는 일이었다.


“네 재능이라면 미식축구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나타낼 거다. 야구와 축구는 늦은 감이 있지만, 미식축구는 다르거든.”


야구나 축구는 기술을 쌓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미식축구는 달랐다. 다른 종목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들의 다재다능함을 요구했다면, 미식축구는 선수들의 강력한 장점 하나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선수교체가 완전히 자유롭다는 점과, 때와 상황에 따라 쿼터백이 변화무쌍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루어지는 이 종목만의 특성이었다.

때문에 미식축구는, 야전사령관이라 불리는 쿼터백과, 그 쿼터백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는 포지션들을 제외하면, 캐치와 달리기 중 하나만 잘해도 선수로 뛸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미식축구가 기술적으로 쉬운 운동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압도적인 육체적 재능은 물론 지능까지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강한 수비에도 견딜 수 있는 내구도가 있어야 했으며, 그 내구도를 가지고 100m에 10초를 끊을 수 있는 순발력이 있어야만 했다.

그것마저 없으면 거대한 덩치와 힘으로 상대의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피지컬이 필요했다.

거기에 지금이야 고등학교 수준이니 크리스찬 부장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대학과 NFL 수준으로 가면, 전술 암기와 이해도 같은 지능적인 면이 훨씬 많이 부각 된다.

순수한 만큼 어렵다. 이것이 바로 미식축구의 힘이요, 근본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저는 공놀이 안 좋아하는 데요.”

“그, 그래? 그래도 네 중학교 때 이야기 들어보면 운동부 애들을 해당 종목으로 박살 냈다고......”

“그냥 그게 재밌나 하고 해본 거예요.”

“그럼 달리기는 어떠니?”

“그건 더 지루한데요. 공놀이도 지루한데 달리기가 재밌겠습니까.”


이헌의 말대로였다.

애시당초 원래의 세계에선 한국인에게 미식축구 따위 짤방으로나 즐기는 다른 나라의 종목이었다. 워낙 미국의 색채가 강해 호불호가 강한 것은 물론이고, 아예 대중들에게 노출 자체가 안 된 운동이었다.

원래의 이헌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이헌에겐 아무런 흥미조차 없는 종목이었다.


“그럼 네가 관심 있는 종목이 뭔데? 너도 네 육체를 이대로 썩힐 생각은 아니잖아?”


크리스찬은 침을 꼴딱 삼키며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장인 자신이 두 번이나 몸소 찾아왔다. 찾아오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절만큼은 두 번은 듣고 싶지 않은 그였다.

다행히도 이헌은 이번엔 제법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 것 같았다.


“흐음...... 지금 그쪽 고등학교에 운동부가 몇 개 있죠?”

“남자 여자 통합해서 전부 다?”

“네.”

“많지. 아주 많아.”

“말해보세요.”

“미식축구, 농구, 야구, 육상, 레슬링, 펜싱, 검도, 태권도, 수영, 치어리딩, 복싱, 골프, 승마, 테니스, 여자 배구, 여자 라크로스, 여자 축구......”

“남자 축구부는 없나 보죠?”

“혹시 축구가 하고 싶니?”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여자 축구부는 있어도 남자 축구부는 없다니. 확실히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티가 났다.

심지어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신 국제고는 운동부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이것만 봐도 이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 네가 원하는 종목이라도 있는 거냐?”

“사실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종목은......”

“종목은?”


사실 이헌이 진짜로 잘할 수 있는 종목은 오직 한 가지밖엔 없었다.

김중헌 장검술.

미국에서는 김중헌 소드맨쉽 앤 택틱스, 일본에서는 중헌류라고 불리는 김중헌 장검술이야말로 이헌이 가진 진짜 특기였다.

그 김중헌 장검술을 세세하게 보면, 복싱, 레슬링, 종합격투기, 검도, 펜싱 같은 것들로 나눌 수 있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그의 정체성은 김중헌 장검술에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복싱이나 레슬링이 좋겠군요.”

“뭐?”


이헌은 굳이 검도나 펜싱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운동 신경이 좋다 하더라도 이곳의 자신은 평생 검 한 번 못 잡아 본 고아였다.

육상을 잘하는 선수가 미식축구나 축구를 잘할 순 있었다. 하지만 펜싱이나 검도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종목이었다.


“복싱하고 레슬링이라고?”


하지만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이헌의 입에서 나온 복싱과 레슬링은, 크리스찬이 생각했던 종목들과는 완전히 다른 운동이었다.

이헌이야 나름 배려를 해준 것이지만, 크리스찬 입장에선 검도와 펜싱만큼이나 동떨어진 답변이었을 것이다.

복싱이야 그럴 수 있다. 가끔 프로의 경기에서도 등장하지 않던가. 잽이나 풋워크 하나 제대로 밟을 줄 모르는 인간이, 강한 피지컬과 펀치력만 가지고도 챔프가 되는 기상천외한 광경을.

물론 그러한 도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벗겨지기 마련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잠깐이나마 정점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복싱이라는 종목이 얼마나 재능 위주의 스포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장담컨대 레슬링은 아니었다.

레슬링이나 유도, 유술 같은 그라운드 스포츠는 재능도 재능이었지만 얼마나 더 많이 땅바닥에서 굴렀나로 정해지는 종목이었다.

게다가 복싱과 레슬링이라니? 이는 100미터 달리기는커녕 서로 간에 접점조차 없지 않은가?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건 아니겠지?”

“혹시 그쪽 학교에서 종합격투기도 해요?”

“그건 프로 경기잖아.”

“그러니까 복싱이랑 레슬링이요.”


방금까지만 해도 이헌을 이해할 수 없었던 크리스찬이다. 하지만 방금 답변으로 답답했던 머리가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종합격투기라면 저 두 개의 종목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이헌이 어렸을 때부터 격투기를 훈련했다면, 100미터의 그 기록도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었다.

완벽한 무산소 운동인 50미터 달리기와는 달리, 100미터는 무산소를 더 길게 끌고 가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다 한들, 초보들이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격투기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컨디셔닝 운동(강도 높은 무산소 운동과 휴식을 반복하여 섞는 운동)능력이 따라줘야 하는 운동이었다.

어쩌면 이헌이 100미터 달리기에서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것도, 강도 높은 컨디셔닝 운동을 훈련했기 때문이리라.


“이번 주 월요일. 시간 내라.”

“왜요. 시험이라도 하시려고?”

“잘 알고 있네. 만약 네가 합격한다면.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마.”

“오. 구기 종목도 아닌데 후하시네요.”

“우리 학교는 그동안 많은 스포츠 스타를 배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림픽 쪽과는 연이 없었다.”


이신에서 주력으로 삼고 있는 미식축구, 야구, 농구는 프로에서 더 빛이 나는 스포츠였다.

복싱과 레슬링은 인기도 면에선 저 셋보단 낮았지만, 역사라는 정통성에선 그 어떤 스포츠보다 빛나는 종목이기도 했다.

만약 이헌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학교의 트로피 장식 칸에 올림픽 금메달이 추가되는 영광스러운 일이 될 터였다.

물론 크리스찬이 정말로 올림픽을 노리는 건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이헌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준 뒤, 자연스럽게 미식축구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으니까.


“어때. 관심 있나?”

“만약 어제였다면 무시했을 겁니다.”

“그런데?”

“뭐 그냥 철이 든 거죠.”


지금의 이헌과 전생의 자신은 큰 차이가 있었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갔던 전생의 자신과는 다르게, 지금의 몸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한 훈련을 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미국 스타일 특유의 인재 쟁탈전이 이헌이라는 사람의 가치를 더욱 빛내준 것이겠지.

다만 과거의 이헌이 그 많은 제의들을 뿌리친 이유는 지금의 이헌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단순한 치기였는지, 자존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헌은 지금의 기회를 걷어찰 생각 따윈 없었다.

평범한 삶? 기왕 평범한 삶을 사는 거, 조금 더 좋은 조건에 사는 게 좋지 않은가?

그리고 기왕이면 몸도 편하면 더욱 좋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문고의 코치 생활은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지금부터 착실히 저 젊은 체육부 부장에 눈도장을 찍는 것은 물론, 세계 대회에서 그럴듯한 성적을 세운다면 이신 국제학교 같은 명문고에서 안락한 코치 생활을 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잠깐 고생만 하면, 여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헌의 명문고 코치 되기 계획은 천천히 활성화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게 요즘 말하는 격투기냐?”

“그럼 뭐가 있어요 형?”

“그 종합격투기 있잖아?”

“종합? 아 UFC?”

“그래 그거.”

“형 예전엔 그거 시시하다고 했잖아요.”

“시시? 그래 시시할 법도 하다.”


이헌과 그와는 친한 보육원생인 박대연은, TV 인터넷 채널을 통해 격투기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과연 격투기라 말할 수 있을까.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에서조차 나오지 못할 정도로 천박하고 잔인한 저 개싸움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보고 있는 TV 앞에서, 도저히 인간 같지도 않은 사이보그들이 나와 인체의 신비전을 열고 있는 저질 쇼가?

사람의 팔에서 칼이 나왔다. 그 칼로 상대방을 사정없이 난도질했으며, 어떤 이들은 기형적으로 큰 팔로 해머 휘두르듯이 상대방을 짓이겼다.

또 다른 이들은 마치 만화 속 캐릭터처럼 손등에서 날카로운 클로를 만들어 내, 내장 해체쇼를 보이기도 했다.

대놓고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물론, 온갖 유전자 조작과 약물, 불법적인 기계 수술까지.

아무리 모자이크가 되고, 흑백처리가 됐다지만, 이것이 어떻게 TV 화면에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격투기라고? 천만에, 이건 그저 서커스 프릭쇼에 지나지 않았다. 이헌이 알고 있는 결투란 결코 저런 것이 아니었다.


“너무 잔인한데.”

“TFF 처음 나왔을 때 말 많았잖아요. 지금도 저거 금지 시키려고 미국이랑 한국 학부모 협회가 난리도 아닐 걸요.”


격투기 대회를 금지하려는 학부모 협회라.

사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검열을 시도하려는 아줌마(?)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당장 미국에서는 80년대 록그룹을 상대로 검열을 시도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PMRC(국회의원 부인들이 주축이 된 학부모단체)가 대표적이었다.

또 한국의 학부모들은 만화책을 사다가 분서갱유를 하는 진시황스러운 짓을 하는가 하면, 게임을 질병으로 몰아가기 위해 정신과 의사들과 힘을 합치기도 했다.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간혹 엉뚱한 짓을 해내는 것이 바로 부모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헌은 지금의 학부모들에겐 100% 동의한다는 점이었지만.


“어우. 난 못 보겠다 야.”


손톱을 뽑고 그 자리에 쇠붙이를 박아넣은 암기로 상대방의 눈을 파는 장면이 나왔을 때.

그리고 그 후벼 파던 손가락을, 마찬가지로 팔목 안에 숨겨두었던 비수가 자르고 지나갔을 때, 이헌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형 왜 그래요. 제일 좋아했던 장면들인데.”

“......예전의 나는 괴물이었구나.”


진저리가 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떤 이헌은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안 그래도 이 세계는 자신이 알던 세계보다 지나치게 과학이 발달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설마하니 저런 신체개조 수술을 일반인조차 자연스럽게 받을 정도로 발달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제 일찍 자자. 나도 내일 면접 보려면 일찍 자야 하니까.”

“에이... 아직 안 끝났는데.”

“너 인마 나이가 몇이나 됐다고 벌써 저런 걸 보고 있어. 너무 어릴 때부터 저런 거 보면 사이코패스 된다.”

“참나. 그런 게 어딨어요!”

“그냥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이제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학생은 물론 성인도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이헌이 형.”

“어.”

“정말 운동 시작할 거에요?”

“왜.”

“저번에 그랬잖아요 형이. 무섭다고.”

“......내가 그랬던가?”

“네 그랬어요. 자기는 승부욕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


대연의 말에 이헌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이헌이 왜 운동을 포기했는지. 그 압도적인 좋은 조건을 뿌리쳤는지를.

그는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승부욕이 강한 자기 자신을. 경쟁하고 있는 상대방에게서 단순히 승리를 빼앗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의 욕구를.

그러한 사실을 잘 아는지, 대연은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게 어딨어 인마.”


이헌은 피식 웃고는, 대연의 머리를 헝클이며 방 안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안심했다. 전생의 자신은 중헌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살기를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헌은 그럴 대상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잘 견뎌내고 있었다.

당장 더 대연이라는 아이의 반응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내일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줘야겠네.”


작가의말

김중헌에 대한 이야기는 그냥 이헌의 스승이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9. 시프트 +4 20.05.20 694 20 12쪽
8 8. 진짜 괴물 +1 20.05.19 707 22 16쪽
7 7. 테스트 +5 20.05.18 733 27 15쪽
» 6. 고올든 명함 +1 20.05.17 796 25 18쪽
5 5. 과거 회상 +3 20.05.16 870 27 15쪽
4 4. 평행세계? (3) +2 20.05.16 1,085 26 17쪽
3 3. 평행세계? (2) +2 20.05.16 1,396 32 13쪽
2 2. 평행세계? (1) +4 20.05.16 1,771 39 14쪽
1 1. 프롤로그 +4 20.05.16 2,165 6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