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26,684
추천수 :
956
글자수 :
256,612

작성
20.05.16 16:00
조회
1,770
추천
39
글자
14쪽

2. 평행세계? (1)

DUMMY

2.



이헌이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우연히 하굣길에 고물을 리어카에 얹은 채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는 노인을 발견했다.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는지 이헌은 리어카 뒤를 단단히 받치고는 노인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뜻밖의 도움에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리어카를 끌던 노인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미소와 함께 돌아보며 말했다.


“허허 고맙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뒤를 돌아본 할아버지의 작은 눈이, 마치 못볼 꼴을 본 듯 동그랗게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헌의 겉모습을 보며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이헌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굵직한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지금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있는 아저씨의 복장은, 전형적인 콤비(바지와 정장 재킷의 색이 다름) 정장 스타일을 입은 학생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남자의 변성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찾아오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외국인의 경우 더 어린 나이에 수염을 기르는 학생들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 할아버지가 진짜로 놀란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 듯했다.


“으, 으아아아아악!”


노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에 쥐고 있던 손잡이를 미처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리어카를 끌고 갔을 정도였다.


“어어?”


영문을 모르던 이헌은 도망가는 노인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노인이 무얼 보고 저렇게 놀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은 그냥 평지가 아닌, 그냥 걷기도 힘든 높은 언덕이 아니던가.

아무리 요즘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가진 노인들도 많다지만, 지금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는 노동에 익숙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다 다를까, 노인은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 리어카는 또 어찌나 휘청거리는지,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어어! 그러시면 안 돼요.”


결국 이헌은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흑심이나 사심이 없는, 순수하게 이루어진 이헌의 선의였다.


갑자기 리어카가 가벼워진 탓일까. 허둥대며 도망가던 할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이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으아아악!”


도대체 이 할아버지는 왜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단순히 착각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을 보고서도 모른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없었다.

저 노인이 두려워하고 있는 상대는 확실히 자신이라는 사실을.

노인은 마치 젊었을 때의 기력을 되찾은 듯, 다시 한 번 힘을 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헌 역시 리어카의 뒤를 빠르게 밀어주었다. 아무리 저 노인이 이상하다지만, 잘못하다간 괜히 초상을 치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인과 리어카는 보통이라면 몇 분이나 걸릴 언덕길을, 1분도 되지 않아 정상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정상 끝까지 도착한 할아버지는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어지간히 숨을 헐떡이는 것이, 달아날 기력은커녕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모습이었다.


“후우. 할아버지. 도대체 왜 그러세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며 이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자신은 분명 순수한 선의로 도움을 건넸다. 저렇게까지 혼비백산을 하여 도망가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크흐... 커허... 허억 허억!”


하지만 노인은 제대로 된 답변도 못한 채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하기야 이 언덕은 맨몸으로 걸어도 숨이 찰 정도의 경사였다. 그런 경사를 무거운 리어카를 이끌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렸으니, 그대로 숨이 안 넘어간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약 1분 정도가 지났을까. 겨우 숨이 돌아온 할아버지는, 기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헌을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자, 자네......”

“뭡니까.”

“날 죽일 생각인가?”

“뭐라고요?”


이젠 아예 기가 차는 이헌이었다. 기껏 도와줬더니 어쩌고 어째? 죽일 생각이 아니었냐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흐름이란 말인가?

손에 시퍼런 칼을 든 것도 아니었고, 몸에 문신 같은 게 그려져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자신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학생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다지만, 흔히 말하는 일진들처럼 무리 지어 다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 그러니까. 자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네. 어차피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지만, 그래도 난 더 살고 싶네.”

“할아버지. 혹시 치매세요? 가족분들 연락처는 있어요?”


뭔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헌은 최대한 상식적으로 대하려 했지만, 한쪽이 지나치게 일방통행이다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노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게. 내 이렇게 빔세.”

“할아버지, 잠시만 계세요. 경찰에 연락해서 가족분들 찾아드릴게요.”


이헌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보아하니 고물을 모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분 같은데, 안타깝게도 치매가 온 듯했다.

이런 경우 자식이 없거나, 혹 사실상 연락이 끊어졌을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렇게 이헌이 생에 처음으로 112 긴급 전화번호를 누를 때였다.


“자, 자네. 정말 날 죽일 생각이 없나?”

“할아버지 잠시만요.”

“그, 그만두게. 난 치매가 아니니까.”

“알았어요. 할아버지 치매 아니에요.”

“자네, 가족이 없지?”


하지만 이헌의 신고는 이어지는 노인의 말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헌의 얼굴엔 어느새 호기심이라는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계속해봐요.”

“얼핏 보기에 거칠어 보이지만, 얼굴이나 행동에 품위가 있어.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놀랄 게야.”

“뭐야. 할아버지 점쟁이? 무당 그런 거예요?”


이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헌은 1년 전, 차 사고로 가족을 잃었으며, 현재 보육원에 몸을 의탁한 상태였다.

하지만 특유의 성격 때문일까. 흔히 고아라는 편견과는 완전 동떨어져 있는 이헌이었다.

친구들은 물론 그 친구들의 부모들과도 잘 지냈으며, 학교 선생님들과도 별 탈 없이 무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후후 그럴 만도 하지. 감히 자네를 건드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자네를 보고 시비를 걸 정도의 간 큰 녀석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재벌 집안이나 나랏일 하는 집안의 괄괄한 녀석들 빼곤 없을 걸세.”

“그래요? 그러고 보니 이 동네가 잘사는 곳은 아니죠.”

“그러고 보니 자네와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군.”

“누군데요?”

“김중헌이라고 들어봤는가?”


할아버지의 입에서 김중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이헌의 눈빛이 바뀌었다.

김중헌이 누구던가? 단순히 대한민국을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신화라 불리는 괴물 중의 괴물이 아니던가?

김중헌 그자의 나이가 벌써 환갑이었다. 당장 당뇨와 고혈압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이에도 격투기 챔피언을 1라운드 만에 쓰러뜨리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바로 Mythic Champion이라 불리는 김중헌이라는 사람이었다.


“한국... 아니 지구에서 그 사람 모르면 외계인이죠.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외계인인 것 같기도 하고.”

“김중헌이 자네와 비슷해. 아마 사주도 같을 게야.”

“그래요?”

“그리고 김중헌도 어렸을 적 가족 모두를 잃었지. 마치 자네처럼.”


그때부터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나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야기를 듣던 이헌의 눈빛이 변했던 것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하는 정색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런 농담은 재미없는데.”

“농담하는 것으로 보이나? 난 아직도 자네가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린다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김중헌이는 운이 좋았어. 장군, 그것도 역사에 이름이 남을 정도의 강력한 장군님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거든.”


역사의 길이 남을 장군? 이건 흔히 무당들이 하는 말이 아니던가?


“그래서. 저도 뭐 신내림 같은 거라도 받으라는 겁니까?”

“안 돼! 김중헌이나 자네나 절대 신내림을 받으면 안 되네! 내 말을 명심하게! 괜히 어설픈 무당한테 갔다가 큰일이 날 게야!”

“뭐라는 거야.”


노인의 말에 집중하느라 가까이서 앉아 있던 이헌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게!”

“또 뭡니까 영감.”

“자네는 선천적으로 피와 살기를 태어났네. 백호대살? 아니 감히 그런 걸로 정의 내릴 순 없지. 그래 살성, 살성을 타고 났어!”

“그래서요?”

“중헌이란 사내는 운이 좋아 그 살기를 제어할 수 있었지만, 자네는 달라. 살아있는 자들 중엔, 감히 자네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참나. 그럼 그 김중헌은 어떤데요. 무릎이라도 꿇고 양자로 들어가게 해달라면 되겠네.”

“그건 안 돼.”

“그건 또 왜 안 되는데요?”

“도플갱어라고 들어봤는가?”

“그건 또 뭔데요?”

“자네는 판타지 소설도 안 읽는가?”

“그런 거 읽을 시간이 어딨어.”

“허허. 도플갱어란 이 세상에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또 다른 존재라네. 마주치면 둘 중 한 명은 죽는다는 괴담이지. 일종의 패러독스랄까.”

“와 할아버지 갑자기 뭔가 있어 보이네.”

“바로 자네와 중헌이 그런 거야. 특히 중헌은 자극이 강한 사내야. 그자야 원체 정신수양은 깊으니 상관없지만, 자네는 견디지 못할 걸세.”

“자극? 뭔가 단어 선택이 좀 이상한데?”

“피를 본다는 거야. 피를.”

“제가요? 김중헌이랑요?”

“그래. 그 김중헌이랑!”

“그 괴물하고? 내가? 피를 본다고? 이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이헌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미친 영감쟁이가 아까부터 무슨 재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바로 몇 년 전, 이헌은 똑똑히 보았다. 김중헌한테 함부로 아가리를 털었다가 영원히 장애인의 몸으로 살아야 하는 격투기 선수를.

그 광경이 어찌나 살벌했던지 아직도 짤(짤림 방지용 그림, 혹은 편집 영상)로 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런 김중헌을 보고 뭐? 자극? 피를 본다고? 보자마자 눈을 깔고 도망가면 모를까, 무슨 얼어 죽을 자극이란 말인가?


“이보게 학생.”

“뭐요? 또 시덥지도 않은 말을 할 거면...”

“자네 안의 살기를 키우게나.”

“하.. 또 뭔.”

“항상 김중헌, 그자를 떠올리게. 그를 생각하고 수양하면서, 스스로 살기를 제어하게.”

“이제 보니 치매가 아니라 미친 할아범이었네.”

“꼭 김중헌이어야만 하네. 아니면 자네의 살기가 만족하지 못할 게야! 잘못 하다간 희대의 살인마가 될 수 있어!”

“할배요.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입니까? 나 동물다큐 보면서 울어요. 얼마 전에도 동물 영화 보다가 엉엉 울었는데.”


이헌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는 운명이니, 주위에서 그렇게 만들 것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헌은 무시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나름 맞장구를 쳐주던 이헌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는 걸 듣고 있자니, 점점 기분만 나빠졌다.

아마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했다간, 중 2병이니, 오타쿠니 뭐니 하는 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놀랍게도 고등학생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이헌은, 자기도 모르게 그때의 노인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허... 그 노인네가 진짜......”


당연했다. 이헌은 당연히 그 리어카 노인네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노인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운명인지 아닌지, 이헌은 중헌을 죽이기 위해 무술을 갈고닦았고, 마찬가지로 중헌을 죽이기 위해 스스로 그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리고 중헌은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이헌을 제자로 받아주었다.


생각해보면 자신과 중헌은 닮은 점이 많았다. 일단 똑같은 성씨에 이름에 헌 자가 들어간다는 점도 그랬다.

또 무술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그러했고, 성격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았다.

물론 거칠 게 생긴 자신과는 다르게 70이 넘어서도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심지어 40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헌의 외모는 유감이라 할 수 있었지만.

하지만 그 노인의 말 중 제일 결정적인 것은, 다름 아닌 ‘피’였다.


결국 자신은 중헌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스승과 제자가 서로 칼부림을 벌이다 살인이 났다?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날만 한 뉴스가 아니던가? 후대를 위해 미리 카메라를 깔고 결투를 벌이긴 했지만, 그래도 재판이라던가 변호사 문제로 꽤 고생 좀 하고 있겠지.

이헌이 알기로 대한민국에선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같은 법을 적용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마 재판소 왔다 갔다 하느라 말년에 스포트라이트 좀 받을 것이다.


“거 고생 좀 할 거요.”


그렇게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김이헌은, 원래의 세상에서 고생하고 있을 김중헌을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9. 시프트 +4 20.05.20 694 20 12쪽
8 8. 진짜 괴물 +1 20.05.19 706 22 16쪽
7 7. 테스트 +5 20.05.18 733 27 15쪽
6 6. 고올든 명함 +1 20.05.17 795 25 18쪽
5 5. 과거 회상 +3 20.05.16 870 27 15쪽
4 4. 평행세계? (3) +2 20.05.16 1,085 26 17쪽
3 3. 평행세계? (2) +2 20.05.16 1,396 32 13쪽
» 2. 평행세계? (1) +4 20.05.16 1,771 39 14쪽
1 1. 프롤로그 +4 20.05.16 2,164 61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