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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ils 님의 서재입니다.

평행세계에서 조용히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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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1911
작품등록일 :
2020.05.16 15:45
최근연재일 :
2020.06.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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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5.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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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 평행세계? (2)

DUMMY

3.



처음 이헌이 회귀했을 때, 그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자세히 이 세상을 살펴보면, 세세한 부분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났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같았다. 기왕 돌아온 거 부모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이런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바로 지내고 있는 보육원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에 지냈던 보육원은 솔직히 말해서 좋은 시설이라고는 할 순 없었다. 노후화된 것도 많았으며, 한 방에서 2층 침대 네 개로 여덟 명이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헌이 지내고 있는 보육원은 어린아이들은 한 방에 두 명, 이제 막 사춘기가 되는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은 한 명 당, 방 하나를 배정받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Hung UP on you!”


바로 옆에서 콧소리로 흥얼거리는 저 여자애.

자신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가 될 거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애가 부르는 노래가 다름 아닌 마돈나의 노래였다.

마돈나라니? 그 이름은 과거 이헌이 중헌의 내제자(스승의 집에서 침식하며 수학하는, 바둑 사제 관계 중 하나)로 들어갈 때나 처음 들어봤던 노래다.

8, 90년대 문화에 깊이 빠져있던 중헌은 이따금 옛날 영화들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때 본 007 영화에서 마돈나를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심지어 마돈나는 70대였던 중헌의 세대에서도 아주 옛날 사람,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16살이 된 소녀가 마돈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한다? 이는 이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기.”

“응?”

“마돈나, 좋아해?”

“그럼 좋아하지.”


여자애는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며 맑은 미소로 이헌에게 답해주었다.


“특이하네.”

“뭐가?”

“요즘 애들은 아이돌이나 그런 걸 꿈꾸지 않나?”

“아이들?”

“아이돌.”

“그러니까 아이들 말하는 거 아니야? 비틀즈 같은 거?”

“뭐?”

“아니면 그 재패니스 아이돌을 말하는 거니?”


이헌은 머리가 아찔해졌다. 일단 이 여자애의 버터 바른 영어 발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거 그 노인네와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쪽은 말하는데 한쪽은 알아듣지 못한다.

한 마디로 이헌은 이 여자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그래. 재패니스 아이돌.”

“내가 말했잖아. 난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재패니스 아이돌은 뭔가 아닌 것 같아.”

“그런가? 허허.”

“아, 혹시 걸그룹을 말하는 거야?”

“그래 그거. 걸그룹."


그렇게 이헌은 이해 못 할 대화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며, 핀트가 어긋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린 고아 소녀가 세계적인 가수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저 미모를 이용해 유튜브 스타가 되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헌은 소녀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고아 소녀다. 위축되고, 열등감이 쌓이고, 또 자격지심이 생기게 된다.

허나 그런 모든 아픔을 이겨내며, 저렇게 크게 꿈을 갖는 것 자체가 참 대견해 보였다.

부디 이 어린 소녀가 자신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했다.



* * *





이헌이 17살(이곳은 전의 세계와는 달리 한국식 나이로 세지 않는다)로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지금 시간대는 막 방학이 시작된 시기였다. 덕분에 이헌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제법 수집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이헌이 알 수 있었던 정보는, 그가 살고있는 보육원의 음식의 질이 제법이라는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의 식사는 평균 이하일 수밖에 없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결국 나오는 음식들 대부분이 쌀이나 밀가루 같은 탄수화물이었기 때문이다.

지방이나 단백질 없이 탄수화물만 먹게 되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금방 꺼지지는 것은 물론, 성장에도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자료에 의하면 보육원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5cm가량 발육이 더딘 것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브리엘 보육원이라는 이곳은, 그 거창한 이름만큼이나 제법 사정이 좋은 듯했다.

끼니때마다 튀긴 닭고기가 나오는 것은 물론, 어떨 때는 잡고기를 섞은 찹스테이크가 나왔다. 심지어 어떤 때는 제법 두툼한 스테이크가 나오기도 했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매쉬드 포테이토와 라자냐 류의 파스타였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지방과 탄수화물도 제대로 섭취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래서야 마치 전형적인 미국 가정집 음식 같아서 어색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식단들이 기본적인 한식 밥반찬으로 나온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이헌은 원 없이 자신이 원하는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 현재 키와 체격이 전생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헌의 정보 수집은 계속되었다.

처음 그가 손을 댄 것은 역시나 신문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뉴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의 이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보다는 불편하겠지만, 적어도 하루 종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를 얻기엔 훨씬 더 수월했다.

그렇게 보육원의 와이파이를 통해 오늘의 뉴스를 샅샅이 뒤져보던 이헌은, 갑작스레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달려나간 그가 찾은 것은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였다. 그렇게 몇 개의 교과서를 찾아낸 이헌은, 중학교 교과서, 그리고 이내 고등학교 교과서까지 가져와 정신없이 속독하기 시작했다.


“......씨발.”


평생을 책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이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역사와 사회에 관련된 책을 읽고 난 뒤 내뱉은 말은, 다름 아닌 쌍욕이었다.



바뀌었다.

이곳은 이헌이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어느 날 차원이 열리며 괴물이 등장했다. 라면 차라리 웃기기라도 하지.

안타깝게도 지금 이헌이 새롭게 태어난 곳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대한민국, 아니 과거의 조선은 일본과 강제로 합병을 당했다. 분명 여기까진 역사와 똑같았으며, 마찬가지로 리틀보이와 팻맨(일본을 패배시킨 핵폭탄)을 결정적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했다.

그리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나라가 반으로 갈라진 것 또한 이헌이 알고 있는 역사와 같았다.

하지만 전생의 역사와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1950년에 터진 6.25 전쟁이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전쟁은 북한의 진격에 경상도까지 밀리며 함락 직전까지 놓이게 된다.

이에 대한민국은 연합군과 미군의 도움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본격적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그렇게 연합군과 미군의 샌드위치 공략으로 북한군을 평양을 넘어 소련까지 몰아냈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휴전하게 되는 것이, 이헌이 알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였다.


헌데 이곳은 아니었다.

처음 북한이 소련의 원조를 받아 대한민국을 공격한 것까지는 같았지만, 그 다음이 달랐다.

북한군이 미처 충청도에 도착하기도 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연합군과 미군의 병력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파죽지세였다. 패배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가공할 기세로 북한을 치고 올라간 미군은, 중공군의 등장에도 물러서지 않고 거세게 밀어붙였다.

심지어 항공모함을 더 많이 끌고 와 중국 본토를 노리는 것은 물론, 비공식 라인으로 여차하면 핵무기마저 사용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표명했다고 한다.

결국 김일성과 그의 공산당원들은 각각 소련과 중국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하나로 통일된 국가가 되었다.

얼핏 보면 원래의 한국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과거 정치인들의 선전도구였던 빨갱이에 대한 공포도 없었으며,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았던 독재 정치도 없었다.

미국의 강력한 서포트는, 대한민국을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로 완성 시켰으며, 그만큼 국민들이 흘렸던 피 역시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헌은 지금의 역사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과했다. 미국의 이 모든 행위, 이 모든 원조가 너무나도 지나쳤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한국을 아끼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미국의 낳은 걸작이었으니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신들이 얻은 부와 명예를 이용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 세계를 휘둘렀다.

하지만 강력한 힘으로 다른 나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하면, 으레 그렇듯 반작용이 나오기 마련이다. 당장 중동 지역이 그러했고, 베네수엘라 같은 극단전인 반미 성향을 지닌 나라 역시 그러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실패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는 소수였으며, 개중엔 싫어하는 것을 넘어 총칼을 들고 맞서 싸우기를 자처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보라. 그들은 미국의 도움을 받은 나라 중, 몇 안 되는 진짜 자유민주주의 나라였다.

심지어 단순히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기까지 했다.

세계경찰 노릇을 한다며 그만 오지랖을 부리라고 욕을 먹는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상징적인 나라라고 밖엔 볼 수 없으리라.

거기에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고, 직접 대륙으로 침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으니, 미국으로선 일본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허나 그것은 따지고 보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이헌이 보고 있는 역사책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은커녕 아프리카 대륙의 가난한 나라보다 더 못살던 1950년대의 한국이었다.

그런 한국에게 미국이 무슨 얻을 것이 있다고 제 3차 세계대전을 각오한단 말인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개소리다. 미국은 자유 진영이기 이전에 가장 무서운 자본주의 나라이기도 했다.

1950년의 한국에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언젠가 있을지 모를 소련과의 이념 전쟁에서의 거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뒤져 봤지만, 그 이상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인터넷을 좀 더 뒤져봤지만, 기껏 얻은 정보라고는 지금의 한국이 일본보다는 미국에게 더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6.25 이후 직접적으로 미국의 케어를 받았던 한국이다. 덕분에 생활, 문화, 습관 모든 것이 미국의 영향을 정통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아이 역시 아이돌 댄스 가수 대신 마돈나를 꿈꾸는 것이겠지.


그 외에 현재의 한국에 대한 정보를 캐보았지만, 인터넷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결국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점은, 현재 대한민국의 치안 사정이 아주 아주 많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음지 세력들은 독재정권과 연이은 군사정권으로 인해 아예 뿌리째 뽑혔어야 했다.

하지만 혼란한 전후 사정은 언제나 혼돈과 폭력을 가져오는 법이다. 옛날부터 그래왔듯, 법은 언제나 멀고 주먹은 가까웠으니까.

독재자와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아닌 이상, ‘자유’와 ‘자본’이 어설프게 합쳐진 한국은, 뒷골목 세력들이 빠르게 구축될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웃 나라인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심지어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마피아들까지 활개를 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항아리 속의 고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 작은 땅에 뭐 뜯어 먹을 게 있다고 이리 난리들이야?”


이헌은 더 이상 폭력과 엮이기 싫었다. 기껏 스스로 살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드디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주변이 도와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후우......”


그렇게 이헌은 깊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장래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때의 이헌은 알 수 없었다.

왜 이 작은 나라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목을 맸는지.

이 뜯어먹을 것 없는 작은 나라에, 왜 음지의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았는지.

아무 것도 없다고? 그것은 지금껏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이헌의 착각이었다.

왜 없겠는가? 이곳의 대한민국은 있었다. 호랑이부터 사자, 독수리, 하이에나들까지. 초원의 포식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향기롭고 달콤한 살코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귀중하고, 대단하며,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가.


이헌이 그것을 알게 되는 데는 지금으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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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평행세계? (2) +2 20.05.16 1,397 32 13쪽
2 2. 평행세계? (1) +4 20.05.16 1,771 3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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