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송근태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송근태
작품등록일 :
2020.12.11 16:01
최근연재일 :
2021.01.10 17:2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3,153
추천수 :
1,090
글자수 :
184,853

작성
20.12.17 21:35
조회
1,511
추천
39
글자
11쪽

홍민호 < 3 >

DUMMY

10화


버스 뒤쪽 창가 자리에는 어제 만난 취객의 아들로 추정되는 남학생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 때 홀로 이어폰 너머 음악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역시······ 언젠가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아마도 회귀 전일 텐데 나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상대를 기억하게 되는 이유큰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필요로 인하거나.

강렬한 경험이 있었거나.

저 남학생은 어떤 식으로든 김태민과 관련이 있는 걸로 추정됐다.


“아까부터 뭘 그리 심각하게 봐?”

“아무것도 안 봤는데.”

“웃기네. 계속 저기만 봤으면서. 재밌는 거면 나도 구경하게 좀 알려줘.”


서민초가 심기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내 얘기를 법으로 알던 김태민이다.

나 말고 다른 이성 친구가 없어서 그런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의도적으로 놀리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런 김태민이 어제 점심 이후로 우위에 선 듯 행동하자 괜시리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쁜 애가 있어서 넋 놓고 보고 있었어.”

“이뻐? 누가? 너 나 안 보고 있었잖아.”

“우리 민초 님은 안 봐도 이쁘니까 볼 필요가 없죠.”


김태민이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저도 모르게 눈썹 가득 힘을 준 서민초는 김태민의 시선이 닿았던 곳을 바라봤다.

딱 봐도 침 좀 뱉을 법한 인상의 여학생이 스마트 폰을 만지고 있었다.

짙은 화장과 슬림하게 줄이 교복 때문인지 만석 버스인데도 여학생 근처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난 또 뭐라고. 동물원에서 팬더 탈출한 줄 알고 보는 거였네.”


서민초가 관심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는 가방에서 손거울 하나를 꺼냈다.

급히 일어나는 바람에 칠하지 못한 입술이 괜히 마음에 안 들었다.


* * *


버스에서 내린 김태민은 꼭 탐정처럼 남학생과 일정 거리를 두고 등굣길에 올랐다.

그 결과 두 가지 정보를 얻게 됐다.


첫 번째는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있다는 거다.

아무래도 교우 관계 문제로 기억에 남은 건 아닌 듯했다.


두 번쨰는 글로벌 디자인 학과 후배라는 거다.

그러나 회귀 전 글로벌 디자인 학과 학생이기는 했어도 열정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어서 의미 있는 추론을 하기는 힘들었다.


“내일은 해가 동쪽에서 뜨려나. 어쩐 일로 지각 결석이 한 명도 없네.”


조회 시간 출석 체크를 끝낸 이채호 선생이 드물게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올해는 출결 관리 똑바로 해라. 학생 때 성실했던 놈이 사회 나가서도 성실하다는 거 알지? 대학 입학 때도 사회 나가서도 영향 끼치는 게 출결이야.”


학생 때는 썩 와닿지 않는 조언이라서 대다수 학생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만 했다.

진지한 자세로 듣는 건 김태민과 서민초가 유일했다.


“그리고 너희가 만든 옷 들고서 어제 고아원 방문했었다.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아쉬워 하는 애들고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놈은 없겠지. 너희가 만든 옷이 학교의 얼굴이니다. 다음부터는 제일 허접하게 만든 놈은 고아원 동행이니까 각오하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학생의 자유를 보장하라!”

“자유는 개뿔. 교복이란 죄수복 입은 놈들에게 자유가 있겠냐?”


학생들의 불만 속에서도 이채호 선생의 뜻은 완고했다.

김태민은 출석 체크가 끝나면 바로 자리를 뜨던 이채호 선생이 계속 자리도 지키고 학생들 짐짝으로 여기면서도 저런 결정을 내린 게 놀라웠다.


“마지막 전달 사항이다. 사실 두 달 전부터 문체부에서 패션 일러스트 공모전이 있었어. 상금도 적당하고 입선만 해도 대학 진학에 크 도움이 되는데 말해봤자 참가할 놈 없을 거 같아서 말 안 했거든.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말한 거니까 관심 있는 애들은 언제든 교무실로 와. 오늘 조회는 이걸로 끝. 그리고 김태민.”

“네?”

“너는 선생님하고 상담 좀 하자.”


모두의 시선이 김태민에게 쏠렸다.

그다지 존재감 없던 반 친구가 그다지 학생에게 관심이 없던 선생의 부름을 받은 게 놀랍고 신기하다는 분위기였다.


“김태민! 드디어 뭔가 저질렀구나!”

“뭔데 확정인 것처럼 말하냐”

“딱 보면 알지. 나도 뭔가 저지르면 면죄부 받으려고 일부러 의젓하게 행동하거든. 내가 꿀팁 알려줄게. 일단 교무실 가자마자 무릎 꿇고 빌어! 쌤이 아무리 냉혈한이어도 다른 쌤들 앞에서 너를 혼내겠어?”

“그건 모르겠고. 너는 조금 혼날 필요가 있겠다.”


김태민이 딱밤을 날리자 서민초가 화들짝 놀라면서 이마를 만졌다.

쓰라린 이마의 죗값을 묻고자 했지만 김태민은 벌써 교무실로 도망간 뒤.

교무실에 도착한 김태민이 받은 건 공모전 참가 신청서였다.


“써.”

“네?”

“쓰라고. 넌 일단 공모전 참가 확정해.”


김태민이 공모전 포스터 내용을 확인했다.

대상 300만원.

공모 분야는 일반 패션과 산업 패션.

대상 수상작은 후원 업체가 희망할 경우 실제 상품으로서 판매된다는 매력적인 내용이 있었다.


“입상만 해도 30만 원이다. 한동안 PC방에서 컵라면 사이즈 고민 안해도 될 금액이야. 그걸 떠나서 입상만 해도 대학 진학에 큰 도움 되는 게 좋은 거지.”

“대학인가요······.”


사실 김태민은 대학 진학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일단 딱히 배우고 싶은 것도 없을뿐더러 전공 살리고자 흥미도 없는 패션 디자인을 대학에서까지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남들 대학가서 공부할 때 빠르게 군대를 다녀오고 어디라도 취직해서 경력 쌓고 돈벌이 하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지만 살다 보니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대학 졸업장은 단순히 학력을 떠나 어떠한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제일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관심이 생긴 분야를 밑바닥부터 배우고자 채용 공고를 둘러봐도 초대졸부터 지원이 가능해서 시작조차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걸 알고도 대학을 안 가는 건 어리석은 거겠지.’


김태민은 캠퍼스 라이프라는 청춘이 궁금했다.

단순히 대학 진학만으로 훗날 늙어서도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가 생길지도 모르고 말이다.


“조금만 생각해볼게요.”


물론 공모전 참가는 다른 얘기였다.


“뭐? 왜? 무슨 생각이 필요한데.”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 있잖아요. 공모전 보다 더 집중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뭔데?”

“비밀인데요.”

“······ 강제할 수는 없으니 이해는 하겠다만 되도록 참가해. 어제 수준만 되도 최소 입선이야. 선생님이 봤을 때는 그래.”

“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잘 해결하고.”


이채호 선생이 다소 어색하게 김태민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런 이채호 선생을 잠깐 바라보던 김태민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늘 무관심 하던 누군가가 오직 내게는 관심을 드러내는 게 즐거웠다.

김태민의 공모전 참가 신청서를 받지 못한 이채호 선생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쌤.”


그때 공예 담당 교사인 김지혜 선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화들짝 놀란 이채호 선생이 부모님의 습격에 놀란 학생처럼 모니터를 가렸다.


“뭐에요. 교무실에서 뭘 보고 있었길래 모니터까지 가리세요?”

“별 거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 청소년 디자인 공모전 알아보고 있었어요. 만만한 거 있으면 애들 참가나 시키려고요.”

“어라? 이 쌤이 어쩐 일이세요? 쟤들은 알려줘도 관심 안 가집니다. 참가해봤자 쪽만 팔릴 텐데 뭐하러 힘 씁니까. 선생님 18번 아니었어요?”

“······ 참가 자체가 좋은 경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살다 보니까 생긴 확신이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누군가가 보여줬다.


“지혜 쌤.”

“네?”

“선생님 말씀이 맞았네요. 학생한테도 배울 게 있었습니다.”


* * *


급식 시간이 됐다.

오늘 급식은 가정식 오므라이스.

한 때 오므라이스에 빠져서 전국팔도의 오므라이스 맛집을 돌았던 김태민으로서는 이래저래 아쉬웠지만 급식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 지금부터 볼 일이 있는데. 넌 어쩔래.”

“볼 일? 너 화장실 가는 거 말고도 볼 일이 있는 사람이었어?”

“응. 개념 없는 친구 주둥아리도 혼내줘야 하고.”

“우으으!”

“건방진 친구 볼도 꼬집어야 하고.”

“아악!”

“이거 말고도 할 일 많으니까 이따 보자.”


김태민이 어딘가로 휙 사라졌다.

제자리에서 서서 아픈 볼을 문지르던 서민초가 투덜거렸다.


“쟤 설마 날라리팬더 보러 가나······.”


그 시각.

김태민은 글로벌 디자인 학과 2학년 교실이 있는 3층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홍민호. 날도 추운데 또 바람 쐬러 가냐?”

“응.”


취객의 아들로 추정되는 홍민호가 교실에서 나와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구매.

운동장 벤치에서 홀로 식사를 끝내더니만 공책에 뭔가를 그리는 게 지금까지 김태민이 본 홍민호의 행동 과정이었다.


‘날도 추운데 왜 굳이 밖에서 저러지.’


김태민이 산책하는 척 슬쩍 홍민호의 뒤로 걸으면서 공책을 훔쳐봤다.

공장이나 공사판 작업복으로 추정되는 디자인이 있었다.

무난한 디자인과 달리 문제점은 제법 치명적이었다.


“실용성이 너무 부족한데.”


저도 모르게 훈수가 튀어 나왔다.

갑자기 뒤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홍민호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간이 미운 고양이처럼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미안.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지?”

“누구세요?”

“나? 네 선배. 글로벌 디자인 학과 3학년.”


김태민이 자기 넥타이를 가리켰다.

넥타이 색깔이 다른 걸 확인한 홍민호가 말했다.


“저한테 용건 있어요?”

“응. 혹시 디자인 공책 좀 볼 수 있을까?”

“이건 왜요?”

“나도 산업 의류 디자인이 취미라서? 실력 있는 후배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계속 찾아 다녔거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나오는 거짓말 위로 해맑은 미소가 피어 올랐다.

잠깐 망설인 홍민호가 조심스럽게 디자인 공책을 넘겼다.


패션 디자인과 달리 산업 의류 디자인은 학생 사이에서 마이너한 분야에 속했다.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의 등장이 반가워서 일단 경계를 푼 거였다.


홍민호의 디자인 공책은 전부 다 산업 의류 디자인으로만 가득했다.

그 중 한 개의 디자인 초안이 유독 김태민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역시 얘가 걔였구나.’


어째서 홍민호로부터 기시감이 느껴졌는가.

회귀 전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호작 / 추천 /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되고 연참도 부르고 연중까지 없애는 놀라운 응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 회귀자의 청춘 라이프 ->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1 20.12.23 813 0 -
32 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4 21.01.10 879 6 2쪽
31 임채리 < 10 > +4 21.01.08 617 29 16쪽
30 임채리 < 9 > +3 21.01.07 533 21 14쪽
29 임채리 < 8 > +5 21.01.06 603 24 21쪽
28 임채리 < 7 > +4 21.01.04 691 23 15쪽
27 임채리 < 6 > +2 21.01.03 696 23 16쪽
26 임채리 < 5 > +4 21.01.02 810 23 16쪽
25 임채리 < 4 > +5 21.01.01 829 27 14쪽
24 임채리 < 3 > +4 20.12.31 862 33 19쪽
23 임채리 < 2 > +4 20.12.30 932 33 12쪽
22 임채리 < 1 > +4 20.12.29 1,019 32 13쪽
21 서민초 < 6 > +4 20.12.28 1,032 34 19쪽
20 서민초 < 5 > +6 20.12.27 1,058 34 12쪽
19 서민초 < 4 > +3 20.12.26 1,110 38 16쪽
18 서민초 < 3 > +3 20.12.25 1,173 32 14쪽
17 서민초 < 2 > +2 20.12.24 1,220 35 15쪽
16 서민초 < 1 > +3 20.12.23 1,277 36 10쪽
15 홍민호 < 8 > +6 20.12.22 1,296 36 17쪽
14 홍민호 < 7 > +3 20.12.21 1,280 38 13쪽
13 홍민호 < 6 > +2 20.12.20 1,360 38 12쪽
12 홍민호 < 5 > +3 20.12.19 1,379 40 11쪽
11 홍민호 < 4 > +4 20.12.18 1,453 37 13쪽
» 홍민호 < 3 > +1 20.12.17 1,512 39 11쪽
9 홍민호 < 2 > +3 20.12.16 1,598 37 13쪽
8 홍민호 < 1 > +3 20.12.15 1,657 47 11쪽
7 한예슬 < 4 > +4 20.12.14 1,794 46 13쪽
6 한예슬 < 3 > +4 20.12.13 1,791 47 9쪽
5 한예슬 < 2 > +2 20.12.13 1,769 37 8쪽
4 한예슬 < 1 > +3 20.12.12 1,945 4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