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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태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송근태
작품등록일 :
2020.12.11 16:01
최근연재일 :
2021.01.10 17:2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3,152
추천수 :
1,090
글자수 :
184,853

작성
20.12.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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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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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
8쪽

한예슬 < 2 >

DUMMY

5화


겨울의 끝자락이 흘린 눈과 달리 밖이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채호 선생은 교사들이 전부 퇴근한 시간에 홀로 학생들의 옷을 비닐로 포장해 박스에 담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이채호 선생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공예 담당 교사인 김지혜가 싱글벙글 웃고 있는 걸 확인한 이채호 선생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뭘요. 어서 퇴근 하세요.”

“또 또! 다른 쌤들 도움은 받으면서 왜 내 도움은 거절해요? 나 슬슬 진심으로 서운해지려고 하네.”

“그런 의도가 아니라······.”


김지혜 선생이 바지 한 벌을 포장하고는 이채호 선생에게 건넸다.

머리를 슥슥 긁은 이채호 선생은 결국 김지혜 선생의 호의를 받기로 했다.


“매번 드는 생각인데 의류 쪽은 디자인이 직관적이네요. 공예 전공으로서 너무 부러워요.”

“저는 너무 직관적인 게 가끔씩 싫더라고요. 디자이너의 취향이 적나라하게 보이잖아요.”

“알 거 같아요!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죠?”

“알 듯 말 듯한 비유네요.”

“그래요? 굉장히 직관적인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이쁜 옷이 참 많네요.”

“그래봤자 애들 수준이 거기서 거기죠.”


김지혜 선생이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처음에는 열정 넘쳤을 이채호 선생이 어쩌다가 학생들을 비관적인 태도로 대하게 된 걸까.


“그래도 선생님네 애들은 예술가 병은 없잖아요! 우리 애들은 잘 만들고 있다가도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와장창! 이런다니깐요?”

“열정이 없는 것보다는 낫네요.”


이채호 선생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유학 생활까지 한 엘리트가 바로 이채호 선생이다.

졸업 후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4년 간 경력을 쌓은 이채호 선생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본인이 배운 걸 미래의 디자이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 목표로 학원 강사 생활도 했고 예술계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생활도 했다.

명성도 수입도 줄었다.

그러나 내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 명문 대학에 입학하거나 유명 패션 브랜드에 입사하는 게 즐겁고 기뻐서 삶의 만족도는 높았다.

이후 슬슬 자리를 잡자라는 생각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제일 고등학교의 패션 디자인 담당 교사가 됐지만······.

열정과 진심으로 가득하던 초심은 해가 바뀔수록 빠르게 시들어갔다.


글로벌 디자인 학과.

딱 듣는 순간 무언가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문제는 예술계 고등학교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의 학과라는 거다.

어릴 적부터 디자인을 배운 학생들의 작업물도 자주 사람 답답하게 만들었는데 이제 막 디자인에 입문한 학생들의 작업물과 마주하고 코멘트까지 해주다 보니까 날이 갈수록 의욕은 줄고 스트레스는 늘어만 갔다.


자연스럽게 기계적으로 교과서만 주르륵 읽고 스마트 폰 게임으로 시간이나 때우는 게 일상이 되고 말았다.

후계자 양성이건 뭐건 다 때려치고 다시 해외로 갈까 싶을 만큼 지금의 이채호 선생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그래도 저건 레벨이 다르네요.”


김지혜 선생이 옷 한 벌을 가리켰다.

보아털 원단으로 만든 레트로 자켓이었는데 디자인도 마감도 다른 학생들의 옷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거는 초등학생 때부터 전문적으로 배운 애가 만들었으니까요. 서민초라는 학생인데. 걔까지 없었으면 저 스트레스로 쓰러졌을 걸요.”

“그 정도로 다른 애들은 별로에요?”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한 이채호 선생이 문득 어떤 학생을 떠올렸다.


‘김태민 걔는 아직도 작업 중인가?’


이채호 선생이 바라보는 김태민은 길가에 널린 돌과 마찬가지인 학생이었다.

손도 느리고 재능도 없는데 심지어 의욕까지 없다.

졸업 후 전공을 살리기 보다는 전문 기술이라도 배우는 게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김태민이 오늘은 달랐다.

흐리멍텅하던 눈동자는 의욕으로 불 타올랐고 작업 태도는 진지했다.

제일 놀라운 건 디자인 실력이었다.

지금도 계속 디자인 공부에 힘쓰는 이채호 선생조차 낮설지만 신선하다는 느낌의 디자인이 김태민의 손에서 탄생했다.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한 걸까.

······ 정답은 하나 밖에 없다.

바로 표절이다.

내 작품은 자신이 없지만 이미 검증된 디자이너의 작품은 자신이 있다.

이거 말고는 오늘 보인 김태민의 자신감과 디자인 실력이 설명되지 않는다.


타다닥.


이채호 선생이 곧바로 국내외 유명 패션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했다.

공부하라는 의미로 매년 마다 학생들에게 알려줬으니 김태민도 분명히 이 사이트를 알고 있을 거다.


‘요 근래 이 사이트 접속을 안 하긴 했지. 최근에 업로드 된 디자인 위주로 보면 똑같거나 비슷한 걸 금방 찾겠어.’


표절 작품을 본인의 창작물처럼 발표하는 학생은 생각보다 많다.

그때마다 명백한 증거로 해당 학생을 크게 혼냈지만 딱히 훈육의 의미가 있던 건 아니다.

내 인생이 담긴 예술을 욕 보이는 행동이 혐오스러웠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 아무리 둘러봐도 김태민의 디자인과 유사한 게 보이지 않는다.

혹시 놓친 게 있나 다시 둘러보고 있자니 별빛 고아원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원장님.”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서 미안해요. 다름 아니라 몇 시쯤 방문하실 건지 확인하려고 전화드렸어요. 애들이 새 옷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거든요.”

“죄송합니다. 8시 내로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채호 선생이 학생들의 옷이 담긴 박스를 들고 일어섰다.

김태민의 디자인 표절 여부는 차후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 작업 마무리부터 도와주기로 했다.


드르륵.


이채호 선생이 실습실로 들어갔다.

전등이 환한 실습실에는 김태민 대신 한 벌의 옷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건······.”


이채호 선생이 한 벌의 옷을 확인했다.

깔끔한 마감 처리.

센스 있는 단추 초이스.

적절한 밸런스의 주머니.

각 라인의 끝 선을 흰색 보아털 원단으로 마무리 한 포인트까지.

보는 순간 시선이 확 사로 잡히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분홍색 스웨이드 자켓이었다.


문득 김태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어린 친구에게 선물할 옷인데 너무 대충 만들고 있었어요. 많이······ 정말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친구를 위해서 만들고 싶어요. 」


정말 그랬다.

사소한 부분부터 적나라한 부분까지.

오직 상대방만 생각하고 만든 듯한 순수한 정성과 마주한 이채호 선생은 혼란스러웠다.


“······ 표절이 아닌가? 그런데 걔가 이걸 만들었다고? 대체 무슨 수로······.”


이채호의 혼란 가득한 혼잣말은 때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온 김태민에게 들렸다.

들어가기도 안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과 마주한 김태민이 생각했다.


‘너무 팀장 시절 감각으로 작업했나? 고등학생 수준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김태민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 올랐다.

과거 “넌 디자인 말고 다른 기술이나 배워라.” 라는 코멘트를 준 이채호 선생으로부터 이제라도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 지금은 내 실력이 더 위겠지만.’


똑똑.

김태민이 부하 직원을 보는 듯한 눈빛과 함께 실습실 문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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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임채리 < 1 > +4 20.12.29 1,019 32 13쪽
21 서민초 < 6 > +4 20.12.28 1,032 34 19쪽
20 서민초 < 5 > +6 20.12.27 1,058 34 12쪽
19 서민초 < 4 > +3 20.12.26 1,110 38 16쪽
18 서민초 < 3 > +3 20.12.25 1,173 32 14쪽
17 서민초 < 2 > +2 20.12.24 1,220 35 15쪽
16 서민초 < 1 > +3 20.12.23 1,277 36 10쪽
15 홍민호 < 8 > +6 20.12.22 1,296 36 17쪽
14 홍민호 < 7 > +3 20.12.21 1,280 38 13쪽
13 홍민호 < 6 > +2 20.12.20 1,360 38 12쪽
12 홍민호 < 5 > +3 20.12.19 1,379 40 11쪽
11 홍민호 < 4 > +4 20.12.18 1,453 37 13쪽
10 홍민호 < 3 > +1 20.12.17 1,511 39 11쪽
9 홍민호 < 2 > +3 20.12.16 1,598 37 13쪽
8 홍민호 < 1 > +3 20.12.15 1,657 47 11쪽
7 한예슬 < 4 > +4 20.12.14 1,794 46 13쪽
6 한예슬 < 3 > +4 20.12.13 1,791 47 9쪽
» 한예슬 < 2 > +2 20.12.13 1,769 37 8쪽
4 한예슬 < 1 > +3 20.12.12 1,945 4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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