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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태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송근태
작품등록일 :
2020.12.11 16:01
최근연재일 :
2021.01.10 17:2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3,162
추천수 :
1,090
글자수 :
184,853

작성
20.12.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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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11쪽

홍민호 < 1 >

DUMMY

8화


해가 진 시장은 무언가 을씨년스러웠다.

저녁부터 시끌벅적해지는 가게 말고는 모조리 문을 닫았고 간혹 보이는 사람들은 술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뿐이었다.


김태민은 간헐적으로 점멸하는 가로등 아래를 걸었다.

시장 특유의 분위기나 냄새에 취하자 부모님과 함께 시장 구경을 하면서 쇼핑을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소중한 추억이 어째서 그때 당시는 귀찮기만 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존재였다.


“태민이지?”


포장마차 분식집 옆을 지나고 있자니 사장이 김태민을 불러 세웠다.

사실 김태민은 상대가 누군지 몰랐지만 일단 인사는 하고 봤다.

이 당시 김태민은 나름 시장의 유명 인사라서 나는 몰라도 상대는 나를 아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늦게까지 장사 하시네요.”

“동창들이 놀러 와서 한 잔 걸쳤거든. 지금 마무리 중이었는데 괜찮으면 분식 남은 거 싸갈래?”


포장마차 조리대에는 양념이 꾸덕꾸덕한 떡볶이와 숨이 살짝 죽은 튀김이 2인분 정도 남아 있었다.

제일 먹음직스러운 건 칼칼한 냄새가 일품인 어묵 국물이었다.


‘저거만 있어도 소주 한 병은 뚝딱인데······.’


척추 반사적으로 떠오른 술 생각에 군침을 삼키자 분식집 사장이 알아서 분식을 포장해줬다.


“올해부터 수험생이지? 맛있게 먹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을게요.”

“감사는 뭘. 시장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아버지한테 말씀이나 잘 전해줘. 공용 난로가 낡아서 별로 안 따뜻하다고.”

“네. 꼭 말할게요.”


분식 세트를 챙긴 김태민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직도 영업 중인 가게가 하나 보였다.


<덕수네 옛날 치킨>


닭 다리를 쥐고 서 있는 해적 치킨 로고가 그려진 간판이 보였다.

옛날 치킨 특유의 냄새는 분식이 따위로 느껴질 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김태민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동네 꼬마처럼 무언가 홀린 듯 덕수네 옛날 치킨 쪽으로 걸었다.


‘절대 과민반응하지 말자. 가뜩이나 방황하던 때라서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알게 모르게 걱정하실 테니까.’


김태민이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조심스럽게 덕수네 옛날 치킨으로 들어갔다.

인산인해를 이룬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 가운데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김태민이 놀란 눈으로 카운터를 바라봤다.

있는 게 의아한 사람이 있었다.


“너 뭐야?”

“그럼 넌 뭔데?”


카운터에는 가게 종업원처럼 앞치마를 두른 서민초가 서 있었다.


“민초야 왜 그래? 밖에 무슨 일 있니?”


그때 주방에서 누가 나오더니만 김태민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어머? 태민이 네가 어쩐 일이니?”

“응? 태민이 왔어?”


이어서 또 다른 누군가가 주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과 마주한 김태민은 물먹은 솜처럼 가슴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감정이란 건 마음의 준비 따위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김태민은 최대한 감정을 숨긴 채 고등학생 시절 느낌으로 말했다.


“엄마 아빠. 얘가 왜 여기 있어요?”

“민초 말이니? 오늘따라 단체 손님이 많아서 잠깐 불렀어.”

“아무리 그래도 얘를······.”

“내가 뭐? 부모님 가게보다 PC방을 더 사랑하는 아드님은 발언권 없지 않나?”

“민초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네. 그런데 학교 과제는 다 끝냈니? 민초가 꽤 걱정하던데······.”

“제가 언제 저 바보를 걱정했어요?! 어제까지 흐느적 거리던 애가 오늘따라 조금 멀쩡해서 왜 그러나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게 걱정 아냐?”

“아니라고!”


서민초가 투닥투닥 주먹질하자 김태민이 큭큭 웃었다.


그래.

감동적이어야 할 부모님과의 재회가 물거품이 되면 어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울적해지는 감상이 아닌 계속되는 떠들썩함이다.


“그런데 엄마. 민초 쟤 시급 얼마나 받고 일하는 거예요?”

“5,000원에 끝날 때 치킨 한 마리 주기로 했어.”

“그럼 저는 무급으로 할 테니까 재 그만 퇴근시켜요. 제가 아는데 민초 쟤 5,000원의 가치는 없어요.”

“얘가 뭐래니. 친구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냐. 민초가 얼마나 일을 잘 했는데.”

“맞아. 아주머니가 이럴 줄 알았으면 딸 낳는 거라고 하셨어.”

“······ 마음대로 하세요. 내 돈도 아닌데 뭐.”


김태민이 빈 쟁반과 행주를 들고 지저분한 테이블을 묵묵히 치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서민초를 바라봤다.


“민초야. 정말 네 말대로 태민이가 조금 이상하긴 하네? 뭔가 말도 많고······.”

“그쵸? 그리고 쟤 시급 10,000원 줘도 일 안하다고 했잖아요.”

“철이라도 들었나?”

“제가 볼 때는 사고 쳤거나 칠 예정인 거 같아요. 저도 사고 치고 나면 쟤처럼 행동해서 잘 알아요.”


김태민이 능수능란하게 테이블 정리를 하면서 가게 인테리어를 둘러봤다.

20년의 역사를 가진 가게라서 인테리어에는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했다.

이번에는 시선을 카운터 쪽으로 옮겨봤다.

서민초는 음식값을 계산하고 어머니는 맥주를 따라서 손님에게 건넨다.

아버지는 완성된 통닭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고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참으로 그리웠던 장면이었다.


사실 부모님은 군대 전역 후 마땅히 할 게 없다면 가게 일을 배워서 가업을 이으라고 제안했다.

먹고 살기는 무리가 없을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리는 가게기도 했고 아버지가 시장 상인회 회장이라서 텃세를 받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김태민은 부모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김태민에게 시장은 촌스러운 장소였고 그런 장소에서 아름다운 청춘을 허비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청춘을 구직 활동에 전부 꼬라 박았지만. 만일 그때 방황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일 했다면 어땠을까.’


사업적 성공도 이루고 안정적인 삶도 얻었을 지도 모른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미래 속에서 김태민의 이목을 제일 사로 잡은 게 있었다.


‘부모님과 훨씬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살았겠지.’


김태민은 이런저런 후회를 가지고 살았지만 제일 큰 후회는 바로 부모님이었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걸 화재 현장에서 깨달은 순간 김태민은 어제 저녁 부모님의 전화를 무시한 게 후회스러워졌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철저히 무시하고 산 대가는 잔혹하기만 했다.


“쩝······.”


감정적인 기억은 나쁜 방향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김태민은 감정의 연쇄 작용을 끊고자 다시 테이블 정리에 힘썼다.

그때 손님이 남기고 간 맥주가 김태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잔 가득 따라진 맥주는 살얼음이 떠있을 만큼이나 시원한 상태였다.


“······.”


사실 마음 복잡할 때는 술보다 좋은 친구가 없는 법이다.

때마침 이쪽을 보는 사람도 없다 보니까 금주 각오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깜짝아!”


그 각오가 완전히 무너지는 걸 막은 건 서민초의 비명이었다.

취객이 서민초의 손목을 잡고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왜 이래요?!”

“아가씨 참 이쁘게 생겼네······ 아저씨 며느리 할래?”

“제가 아저씨 며느리를 왜 해요?!”

“아저씨가 며느리가 필요하거든······ 우리 아들 사진 한 번 보여줄 테니까 생각해 봐······.”


서민초가 도와 달라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고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돈도 안 되는데 체력과 정신력만 빨아 먹는 취객만 한 골칫거리도 없었다.


“저기 손님······.”

“제가 할게요. 엄마는 좀 쉬세요.”


사실 김태민은 군 전역 후 잠깐 아르바이트할 때도 취객 상대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게 당시의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까 취객 상대는 늘 부모님의 역할이었고 김태민은 그 역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고생을 줄이고 싶다.

또 취객의 심리를 가장 잘 아는 건 술꾼이다.


“형님.”


술꾼 김태민이 말했다.

취객이 반쯤 풀린 눈동자로 김태민을 바라봤다.


“동생은 누군데 나보고 형님이래?”

“뭐 어때요. 친근하면 됐죠. 오늘 좋은 일 있었나 봐요. 혼자서 뭐 이리 마셨어요.”


김태민은 굳이 취객을 억지로 내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인사불성이 될 만큼 취했다는 건 그만큼 좋은 일 혹은 슬픈 일이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혼자 취했다는 건 함께 술을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사람은 그저 대화 상대를 원할 뿐이다.


“좋은 일 있으면 들려줘요. 우리 같이 웃자고요.”


김태민이 꼭 동행이라도 되듯 자연스럽게 취객 맞은 편에 앉았다.

취객도 딱히 싫지는 않은 듯 금세 서민초의 손목을 놓고는 김태민에게 집중했다.


“딱히 좋은 일은 없고······. 세상 살기 더러워서 한 잔만 한다는 게 잔뜩 마시고 말았네.”

“그놈의 세상이 형님을 괴롭혔군요.”


김태민이 잔 가득 맥주를 따르면서 취객의 행색을 살폈다.

흙먼지로 지저분한 옷과 페인트 묻은 손가락.

딱 봐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집구석 들어가봤자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고······.”

“반겨주는 사람이 왜 없어요. 아들 있다면서요.”

“아들놈은 무슨······.”

“말은 그러면서 형님 지금 되게 행복하게 웃는 거 알아요? 사진 있으면 한 번 보여주세요. 얼마나 잘 생겼길래 내 친구 며느리 삼을라고 했나 궁금해 죽겠네.”

“보고 싶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취객이 비틀비틀 낡은 청바지에서 지갑을 꺼냈다.

10년 넘게 쓴 듯한 낡은 지갑에는 아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이 여러 장 담겨 있었다.


“음?”


김태민이 어떤 사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등학교 입학식 사진.

제일 고등학교 학생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취객 옆에 삐딱하게 서 있었다.


‘누구지? 조금 익숙한 얼굴인데?‘


기억이 꿈틀거릴 때였다.


쿵!

취객이 테이블 위로 쓰러지듯 머리를 박았다.


“죽었어?! 술 마시다가?!”

“안 죽었어. 필름 끊긴 거야.”

“그럼 어떡해. 정신 차리라고 물 한 바가지 부을까?”

“택시나 불러.”

“응! 알겠어!”


서민초가 쪼르르 카운터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 사이 김태민은 취객의 아들 사진을 재빠르게 촬영했다.


‘신경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


만일 회귀 전 기억 때문이라면 확실한 인과관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조사 결과가 의미 있는 일로 이어진다면 그건 곧 수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것.

김태민은 행복한 만수무강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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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임채리 < 1 > +4 20.12.29 1,019 32 13쪽
21 서민초 < 6 > +4 20.12.28 1,032 34 19쪽
20 서민초 < 5 > +6 20.12.27 1,058 34 12쪽
19 서민초 < 4 > +3 20.12.26 1,111 38 16쪽
18 서민초 < 3 > +3 20.12.25 1,173 32 14쪽
17 서민초 < 2 > +2 20.12.24 1,220 35 15쪽
16 서민초 < 1 > +3 20.12.23 1,277 36 10쪽
15 홍민호 < 8 > +6 20.12.22 1,297 36 17쪽
14 홍민호 < 7 > +3 20.12.21 1,280 38 13쪽
13 홍민호 < 6 > +2 20.12.20 1,360 38 12쪽
12 홍민호 < 5 > +3 20.12.19 1,379 40 11쪽
11 홍민호 < 4 > +4 20.12.18 1,453 37 13쪽
10 홍민호 < 3 > +1 20.12.17 1,512 39 11쪽
9 홍민호 < 2 > +3 20.12.16 1,598 37 13쪽
» 홍민호 < 1 > +3 20.12.15 1,658 47 11쪽
7 한예슬 < 4 > +4 20.12.14 1,794 46 13쪽
6 한예슬 < 3 > +4 20.12.13 1,792 47 9쪽
5 한예슬 < 2 > +2 20.12.13 1,769 37 8쪽
4 한예슬 < 1 > +3 20.12.12 1,945 4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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