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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태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 즐기는 인생 N회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송근태
작품등록일 :
2020.12.11 16:01
최근연재일 :
2021.01.10 17:27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43,15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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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4,853

작성
20.12.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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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9쪽

한예슬 < 3 >

DUMMY

6화


한예슬에게 선물할 옷이 완성된 순간 김태민의 역할은 끝났지만 하교는 잠깐 미뤄두기로 했다.


‘반응을 직접 봐야만 마음이 편할 거 같아. 그래서 일단 가기는 하는데······.’


김태민이 슬쩍 운전석을 바라봤다.

이채호 선생이 할 말 많은 얼굴로 김태민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채호 선생이 고개를 돌렸고 김태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고아원 주소만 물어보고 따로 갈 걸 그랬나. 계속 저러니까 부담스럽네.’


이해는 된다.

인간은 이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공포 혹은 호기심을 느끼니까.

그러나 이해한다고 어색한 분위기가 즐거워지는 건 아니었다.


끼이익.


기나긴 침묵을 계속 버티고 있자니 금세 별빛 고아원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50대 중반의 고아원 원장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어서오세요. 이 선생님.”

“안녕하세요. 원장님.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퇴근도 못 하게 만든 제가 더 미안하죠. 아직 저녁 식사도 못 하셨죠?”

“일 끝나고 먹을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괜찮습니다. 원장님 덕분에 수당도 꾸준히 받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어머 그래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싹 사라지는데 괜찮죠?”


이채호 선생과 고아원 원장이 넉살 좋게 웃었다.


“그런데 이쪽 학생은?”

“저희 반 학생입니다. 일손을 자처해서 데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태민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태민 학생. 그리고 고마워요. 어서 집가서 게임도 하고 놀고도 싶을 텐데······ 요즘 학생 답지 않게 참 착하네요.”

“게임보다 봉사가 더 의미 있어서요.”


활짝 웃은 김태민이 의류 박스를 번쩍 들고는 별빛 고아원으로 들어갔다.

어른 사이에 으레 있는 형식적인 대화 보다는 어서 한예슬부터 만나고 싶었다.


별빛 고아원은 부지까지 포함해서 50평 쯤 되는 작은 고아원이었다.

허름한 외벽은 원생의 그림으로 가렸고 녹이 슨 놀이기구는 알록달록 페인트칠 되어 있다.

인형의 집처럼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인테리어한 내부까지 포함해서 별빛 고아원의 시설물은 세월의 흔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원생들이 주거 환경으로 기죽지 않게 하려는 원장의 노력이었다.


‘그래도 20명이 지내기는 너무 비좁네.’


문득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살았던 집이 떠올랐다.

시작은 7평 짜리 원룸이었는데 살다 보니까 불편한 점이 많아서 1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투룸으로 이사를 갔다.

그마저도 비좁게 느껴져서 또 다시 1년 뒤에는 20평 빌라로 이사를 갔지만 내면의 욕심은 좀 더 넓은 집을 원했다.


무언가 복잡한 심정으로 별빛 고아원 현관문을 연 김태민이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산타를 기다리는 듯한 원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쏠렸기 때문이다.


“칩입자다! 공격해!”

“침입자 아냐! 우리 옷 주러 온 아저씨들이야!”

“다들 진정해! 진정하고 일단 한 줄로 서! 말 안 듣는 애는 옷 제일 늦게 받을 줄 알아!"


중학생 원생들이 잔뜩 흥분한 초등학생 원생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고등학생 원생들은 김태민과 이채호 선생을 도와 선물 증정식을 준비했다.

김태민이 좌우로 긴 테이블 위로 옷과 간식을 차곡차곡 쌓고는 말했다.


“제가 애들 옷 나눠줄 테니까 선생님은 애들 간식 챙겨주세요.”

“괜찮겠어?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달라고 하는 애들도 간혹 있어서 힘들 텐데.”

“그러니까 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짜악!

밝게 웃은 김태민이 한 차례 박수를 치자 원생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저 사이에 한예슬이 있다고 생각하자 묘한 긴장과 설렘이 들었다.


“친구들 안녕.”

“안녕하세요!”

“다들 목소리가 기운이 넘치네.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었나 봐?”

“오늘 원장님이 치킨 사줬어요!”

“근데 재훈이가 다리 두 개나 먹었어요! 그래서 형 누나들은 못 먹었어요!”

“뭘 그런 거까지 말해!”


아무런 연관도 없는 얘기가 정신 없이 쏟아지는데도 김태민은 즐겁게 웃고 잇었다.

이토록 긍정적인 떠들썩함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자기소개부터 할게. 형은 제일 고등학교 글로벌 디자인 학과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 이쪽에 계신 분은 담임인 이채호 선생님. 오늘 친구들이 받을 옷 만드느 과제를 준 착한 분이니까 다들 감사의 박수 세례 한 번 부탁해.”

“왜 시키지도 않은 걸······.”


이채호 선생이 어색한 미소로 원생들의 박수 세례를 받아줬다.


“혹시 다들 종일 이 시간만 기다렸어?”

“네!”

“그럼 바로 선물 증정식을 시작해볼까? 호명되는 친구들은 차례대로 줄 서!”


원생들이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옷과 함께 간식을 받고 기뻐하는 원생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행복이란 뭘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게 학생들의 작품은 인건비를 더해서 얼마하지 않는다.

작은 걸로도 행복할 줄 아는 원생들은 점점 더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앞으로도 종종 만들어서 줄 거니까 너무 아끼지 말고 팍팍 입어도 돼!”


아무렴 어때.

술과 담배만 쥐던 내 손이 저 애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는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김태민의 손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다.

원생들이 먹는 간식이 흘리는 냄새는 누가 뭐래도 행복의 냄새였다.


“그럼 다음은······.”


기쁜 마음으로 선물 증정식을 이어가던 김태민이 움찔했다.


“안녕하세요.”


딱 봐도 낮가림이 심해 보이지만 또래보다 훨씬 키가 크고 성숙하게 생긴 초등학생이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원단 명단과 초등학생을 번갈아 본 김태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한예슬?”

“네. 제가 한예슬이에요.”

“아······”


김태민이 한 손으로 입술을 쓸어 내렸다.

내 옷 때문에 상처 받은 친구를 실제로 보자 느슨해지던 긴장의 끈이 팽팽해졌다.


“그렇구나······ 이런 애였구나······.”


놀람과 별개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프로필 사진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까 신체 밸런스나 이목구비의 분위기가 상당했다.

장래가 유망한 아동복 모델을 본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저기······”

“미안.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여기. 예슬이 네 옷이야.”

“감사합니다.”


작지만 기대로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 한예슬이 옷을 받고는 쫄레쫄레 구석으로 이동해 옷이 담긴 비닐을 뜯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와······.”


한예슬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은하수가 깃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옷이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예슬은 좀처럼 기쁜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다.

공평.

나 혼자만 차원이 다른 수준의 옷을 받고 기뻐하는 게 별빛 고아원 생활 수칙을 어기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기적이어도 좋으니까 내 행복을 확실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어때? 마음에 들어?”


김태민이 은근한 미소 뒤로 긴장을 숨기고 물었다.

혹여나 다른 원생들이 들을까봐 한예슬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런 예쁜 옷 살면서 처음 봤어요······.”

“다행이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네?”

“그거 말인데. 사실은 내가 만들었거든.”

“오빠가요? 오빠가 이걸 만들었다고요?”

“응. 예슬이 네 미소만 생각하면서 정말 열심히 만들었어.”

“네? 제 미소는 왜······.”


한예슬이 얼굴을 붉혔다.

의미를 떠나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대사를 남자에게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널 울린 적이 있거든. 그래서 이번에도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마음에 든다니까 한시름 놓이네. 정말 고마워.”


김태민이 조심스럽게 한예슬의 손을 잡고는 진심을 내뱉었다.


“내 옷 받고 기뻐해줘서.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

“참. 간식 안 받아갔더라. 뭐 먹을래?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봐. 내가 근처 편의점 가서 사올게.”

“아니에요! 음식 가리면 벌 받아요!”


한예슬이 허겁지겁 간식을 챙기고는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그런 한예슬을 따라가려고 하자 대뜸 중심이 앞으로 기울었다.

김태민의 엉덩이를 걷어찬 이채호 선생이 어이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뭐하냐?”

“네?”

“민증도 안 나온 게 카사노바도 아니고 무슨. 꼬실 게 없어서 초등학생을 꼬시려고 들어? 너 항상 서민초랑 다니던데 걔한테 얘기할까?”

“······ 선생님? 제가 조금 오해를 살 법한 발언을 하기는 했는데······.”

“오해는 개뿔. 좋은 의도로 따라온 줄 알았더니만 이제 보니까 아주······.”


이채호 선생이 김태민의 귀를 붙잡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살다 살다 이런 오해를 받은 줄은 몰랐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조금은 친해진 거려나?’


나를 바라보는 이채호 선생의 시선이 점점 더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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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홍민호 < 6 > +2 20.12.20 1,360 38 12쪽
12 홍민호 < 5 > +3 20.12.19 1,379 40 11쪽
11 홍민호 < 4 > +4 20.12.18 1,453 37 13쪽
10 홍민호 < 3 > +1 20.12.17 1,512 39 11쪽
9 홍민호 < 2 > +3 20.12.16 1,598 37 13쪽
8 홍민호 < 1 > +3 20.12.15 1,657 47 11쪽
7 한예슬 < 4 > +4 20.12.14 1,794 46 13쪽
» 한예슬 < 3 > +4 20.12.13 1,792 47 9쪽
5 한예슬 < 2 > +2 20.12.13 1,769 37 8쪽
4 한예슬 < 1 > +3 20.12.12 1,945 4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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