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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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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1.08.22 15:48
최근연재일 :
2021.09.01 12:3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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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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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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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크기가 중요하다(3)

DUMMY

고통은 다른 감각과 다르다.

후각은 금방 마비된다. 화장실에 아무리 구린내가 진동하더라도 참다 보면 결국은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시각 또한 방어기제가 철저하다.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눈꺼풀을 내리는 것만으로 회피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통은 언제나 새롭다.

어제 아팠다고 오늘 덜 아프지 않으며, 오늘 아프다고 내일 안 아프게 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은 매 순간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이 가능한 것이다.


“으으으···”


김상식이 신음했다. 시간이 흘러도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다.

뱀칼의 송곳니가 알을 자극한다. 맹독이 온몸에 퍼져 사지가 욱신거린다. 머리는 끓는 물에 담근 듯 부글거린다. 어금니에서 피 맛이 난다.

일진 무리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김상식이 앞니로 혀를 슬며시 물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점령했다. 이대로 혓바닥을 잘라버리면 끔찍한 고통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다.

안식.

평화.

해탈.

그가 고뇌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 부스럭


침대 머리맡에서 브코라가 몸을 뒤척거렸다. 그녀가 입술을 우물거리며 잠꼬대를 흘렸다.


“으음···”


그녀는 김상식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끼니를 몇 차례나 건너뛰어 볼이 핼쑥했다. 오로지 물만 마시며 김상식 곁을 지켰다.

그럼에도 글래머는 유지되었다.


“쩝쩝···”


브코라가 무의식중에 입맛을 다셨다. 붉은 혀가 입술을 촉촉하게 적셨다. 투명한 액체가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김상식이 마른침을 탐욕스럽게 삼켰다.


‘성스럽도다···’


문득 던전 안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대왕 거미 둥지에서 탈출할 때 브코라의 입속으로 침을 뱉었다. 그 순간 왠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졌다. 스스로가 변태 같았지만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브코라의 침이 입안에 들어와도 마찬가지로 짜릿할까?

궁금했다.

김상식이 혀를 내밀었다. 혀끝이 브코라의 턱선에 걸린 침방울로 다가갔다. 나비의 주둥이가 꿀을 찾는 모양새였다.


“아흐응···”


그러나 혀끝이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브코라가 윗옷을 끌어당겨 침을 닦아냈다.

목표물이 사라졌다. 김상식의 어두운 욕망은 충족되지 못했다. 그 대신 브코라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신체 일부가 드러났다.

골짜기.

김상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옷!’


전화위복이다.

침이 사라진 대신 골짜기가 등장했다. 짜장면에서 벌레가 나와서 컴플레인을 걸었더니 음식점 주인이 탕수육을 보내준 격이다.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가 혀를 더욱 길게 빼냈다. 죽기 전에 골짜기를 한 번은 느끼고 싶었다. 2D가 아니라 3D로 말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옥 같은 고통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 역시 저 멀리 물러갔다.

김상식은 욕망에 지배되었다.


- 핥핥


혀가 현란하게 흔들렸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미지의 땅에 깃발을 꽂기 직전이었다.

음산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었다.


- 용사여,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김상식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헉?’


고독한 유희를 즐기는 도중에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욕망이 흩어지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김상식이 생각으로 물었다.


‘누··· 누구야?’

- 극한의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나를 소유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뱀칼?’


알을 깨문 무기가 말을 걸었다. 텔레파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칼끝에 달린 뱀 대가리가 눈동자를 초록색으로 빛냈다.


- 대답하라. 나는 답을 원한다. 내가 왜 너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나는!’


김상식이 고민했다.

전설의 무기는 주인을 가려서 받는다. 오직 자격을 갖춘 영웅에게만 힘을 바친다.

그렇다면 뱀칼의 질문에 영웅스러우면서도 멋들어진 답변을 내놓아야 할까?

노우.

싫다.

위선은 욕망을 이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 온갖 고상한 척을 해대면서도 실제로는 음흉한 짓을 저지른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그러한 진리를 알 수 있다.

차라리 솔직한 것이 낫다.

뱀칼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김상식이 대답했다.


‘총각 딱지를 떼고 싶다.’


뱀칼이 잠시 침묵했다. 칼조차 당황한 듯했다. 녀석이 한참 만에 되물었다.


- 진심인가?

‘그렇다.’

- 강해지고 싶지 않은가?

‘그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 승리하고 싶지 않은가?

‘그 또한 후다로 가는 경로일 뿐이다.’

- 놀랍다.


뱀칼이 쉬리릭 소리를 내고는 눈빛을 붉게 바꾸었다.


- 천 년 만에 나타난 주인이 저급한 욕망에 물든 시정잡배라니. 네놈이 무슨 수로 관문을 뚫고 나를 손에 쥐었는지 의문스럽구나.


김상식이 답했다.


‘저급한 욕망이야말로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원동력이다. 그것이 인간이야.’

- 사실인가?

‘못 믿겠으면 경험해 보든가.’

- 좋다. 너의 저급한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평가하겠다.


뱀칼이 몸을 한 바퀴 뒤틀었다. 송곳니가 알을 헤집었다.


- 으드득


‘크아악!’


김상식이 턱을 힘껏 다물었다. 신음을 흘릴지언정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사나이의 자존심이다.

뱀칼이 종용했다.


- 포기해라. 너는 나를 소유하지 못한다.

‘개소리!’

- 감히 나를 그 따위 사냥감과 비교하다니.


뱀칼이 눈빛을 더욱 세차게 뿜으며 송곳니로 맹독을 배출했다. 김상식의 똘똘이가 성난 복어처럼 부풀었다. 끔찍한 고통이 몰려왔다.

김상식이 이불을 그러쥐었다.


‘끄오오오옷!’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발바닥이 쭉 펴졌다.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그러나 김상식의 입술에는 뜻 모를 미소가 걸려 있었다.


‘겨우 이 정도냐? 더 해봐라.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 어리석은!


뱀칼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김상식에게 고통을 주었다. 평범한 인간이 인내의 시험을 통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적어도 그를 빚어낸 창조자에 의하면 그러했다.

하지만 김상식의 입에서는 살려달라는 애원이 나오지 않았다.

뱀칼이 경악했다.


- 어째서!


김상식이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 웃었다. 그의 시선이 브코라의 가슴으로 향했다. 깊고 부드러운 골짜기가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했다.


‘나는··· 모태솔로다.’


- 흠칫


뱀칼이 살며시 떨렸다. 눈앞의 인간은 좌절을 몰랐다.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려도 목표를 향해 꾸역꾸역 나아간다.

음산한 목소리가 조용히 물었다.


- 너는··· 왜 이렇게까지 견디는가? 포기하면 편할 텐데?

‘나에게는 꿈이 있으니까. 못 해본 것이 아직 많으니까.’

- 총각 딱지를 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당연하지.’

-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너는 거시기가 없잖아.’


- 흔들


뱀칼이 구부러졌다. 덩달아 칼 속의 자아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녀석의 목소리에서 의구심이 묻어나왔다.


- 거시기. 그것이 정신력의 원천인가? 머리카락에서 힘을 얻는다는 전설의 용사 삼손처럼?

‘궁금해? 답을 알고 싶으면 나를 도와라.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위대한지 직접 보여주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뱀칼의 눈빛이 약해지더니 이윽고 연두색을 띠었다.


- 좋다.


뱀칼이 아가리를 벌렸다. 송곳니가 알 속에서 쑤욱 빠졌다. 놀랍게도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김상식이 환호했다.


‘드디어!’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뱀칼이 요구했다.


- 나를 쥐어라.


김상식이 시키는 대로 했다. 칼의 손잡이가 물컹해지더니 김상식의 손아귀에 알맞은 크기로 변형되었다.

무기 속 자아가 충성을 맹세했다.


- 나는 이제부터 너에게 복종한다. 네가 궁극의 목적을 이루도록 나의 모든 능력을 바친다. 다른 누구도 나를 사용하지 못한다. 오직 너만이 나의 주인이다. 받아들이는가?

‘당연하지.’

- 용사 김상식은 뱀칼의 주인이 되었다. 계약은 용사의 목숨이 끊어지거나 내가 파괴될 때까지 유효하다.

‘굿.’


뱀칼이 몸통을 뒤로 젖혀 코브라의 복부를 드러냈다. 복종의 제스처였다. 그러더니 칼날을 똑바로 세우며 정신적으로 포효했다.


- 용사 김상식, 정글을 지배하리라!


충성 서약이 끝났다.

뱀칼이 생기를 잃고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만 칼날이 김상식의 키에 맞게 길어지고 몸통은 가늘어졌다. 과연 신비의 명검이었다.

김상식이 감탄했다.


‘칼이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네. 혹시 다른 모양도 가능한가? 예를 들면···’


그의 머릿속에서 지저분한 상상이 떠오를 즈음, 브코라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하으음, 잘 잤다··· 용사님?”


그녀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용사의 급소를 물고 있던 뱀칼이 이제는 김상식의 손에 들려 있었다. 용사의 표정 또한 편안했다. 고통이 엿보이지 않았다.

브코라가 말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김상식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인내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나는 이제 뱀칼의 주인입니다.”

“정말요? 세상에!”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네? 제 덕분이라고요?”

“당신의 가슴··· 속 따듯한 마음이 눈앞에 없었다면 나는 고통에 굴복했을 겁니다. 고마워요, 브코라.”

“아아···”


브코라가 감격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리고는 김상식의 급소를 확인했다.


“상처를 치료해야 돼요. 살덩이가 송곳니에 찔렸으니 피가··· 어머!”


그녀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김상식이 민망하게 웃었다.


“하하, 나는 이제 아프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상처도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크기가···”


어헛?

김상식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실수다. 그는 동북아시아 인종이다. 중요 부위가 작고 귀엽다.

반면 다크엘프는 종족이 다르다. 다크엘프 남자가 동북아시아 남자보다 훨씬 우람할지도 모른다.

브코라가 김상식의 똘똘이를 측정하고 실망한 것일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지금까지는 고통을 견디느라 다른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지만, 안정을 되찾으니 현실적 문제가 보인다.

그가 이불을 끌어당겨 아랫도리를 가렸다.


“미··· 미안합니다. 나는 이런 남자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노력할 테니 이해를···”

“커졌어요.”

“으헉?”


김상식이 이불을 들추어 똘똘이를 점검했다.

충격적이었다.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도 두껍고 길쭉했다. 마치 새우깡을 물에 넣어 한참을 불린 듯했다.

그의 똘똘이는 이제 새우깡이 아니라 독일산 소시지였다.


‘게르만 민족의 힘···’


브코라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떡해요. 독이 안 빠지나 봐요. 큰일났네.”

“큰··· 일입니다. 하지만 왠지 이대로 살고 싶기도 합니다.”

“제사장님을 불러올게요. 치료법을 알고 계실 거예요.”

“치료 안 해도 되는데···”


그녀가 집 밖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


제사장이 탄식했다.


“구렁이.”


김상식이 다리를 벌린 채 항의했다.


“언제까지 보여줘야 합니까? 나는 멀쩡하다고요.”


제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문스럽다. 뱀칼에 물린 부위가 원래 크기로 돌아오지 않다니. 혹시 너희 종족은 몸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느냐?”

“그게 가능하면 전국의 비뇨기과가 절반은 망할 겁니다.”

“무슨 뜻이지?”

“불가능하다고요.”


김상식이 툴툴거렸다.

그는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 지금 상태가 좋았다. 아프지 않고 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크기는 만족스러웠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게르만 민족과 마주쳐도 부끄럽지 않다.

물론 불어난 똘똘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다만 그 사실을 알아보려면 혼자만의 시간과 자취방 컴퓨터가 필요하다.

제사장이 결국 수긍했다.


“어쨌든 좋다. 용사는 건강하고 뱀칼은 복종했다. 이제 정글은 뱀 씨족의 것이다.”


브코라가 감격했다.


“드디어!”

“반격을 준비하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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