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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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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1.08.22 15:48
최근연재일 :
2021.09.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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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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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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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매력남의 조건(1)

DUMMY

애벌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곤충의 유충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껍질이 얇아서 먹기도 편하다. 아마존 원주민이 애벌레를 즐겨 먹으며, 영국의 생존왕 또한 이것을 생존 식량으로 추천한다.

김상식도 어렸을 적에 골목길 노점상에서 번데기를 사먹었다. 고소하고 짭짤하니 맛이 좋았다.

따라서 사람이 애벌레를 먹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소름이 돋을까?


“어이쿠.”


김상식이 딴생각을 하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다행히 넘어지기 직전에 재빨리 중심을 잡았다. 쾌속낙뢰검법을 배운 뒤로 몸놀림이 민첩해졌다.

브코라가 걱정했다.


“조심하세요, 용사님.”

“하하, 멀쩡합니다.”

“불빛을 더 키울까요?”


브코라가 허리춤에 맨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가방 안에 애벌레가 들어있다.

김상식이 손을 내저었다. 애벌레 생식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빛은 충분합니다. 신경쓰지 말아요. 실수입니다.”

“애벌레 많아요.”

“오우 노우, 넣어둬요.”


그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동굴 안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김상식이 결국 호기심에 굴복했다.


“저··· 브코라?”

“네?”


브코라가 환하게 웃으며 김상식을 올려보았다. 초록색 애벌레 껍질이 앞니에 아직도 붙어 있었다.

김상식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매너남은 여자의 실수를 모른척한다.


“흑마법을 쓰려면 애벌레를 꼭 먹어야 합니까?”

“애벌레 말고 다른 생명체도 괜찮아요. 쥐, 바퀴벌레, 지렁이, 개구리···”

“크흠··· 그렇군요. 평소에도 즐겨 드시고?”

“저는 애벌레가 좋아요. 맛있잖아요.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용사님도 하나 드실래요?”


브코라가 가방을 열었다.

김상식이 두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고개도 홰홰 저었다. 최선을 다해 거절하는 몸짓이었다.


“노우! 꺼내지 말아요. 아깝습니다. 앞으로 무슨 난관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마법 재료를 낭비해서야 되겠습니까?”

“애벌레 많다니까요. 정 부족하면 박쥐를 잡아도 돼요.”

“아서요. 워워. 진정해.”


브코라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가방을 다시 닫았다.


“용사님 세상에서는 애벌레 안 먹어요?”


김상식이 안전할 것 같은 멘트를 떠올렸다.


“먹··· 습니다. 대신 생으로는 안 먹고 익혀서 먹습니다.”

“에에? 애벌레를 익혀서 먹는다고요? 말도 안 돼. 애벌레는 산 채로 먹어야 맛있는데.”

“문화의 차이군요. 많이 배웁니다.”

“이번 기회에 날로 드셔보세요. 진짜로 맛있어요.”


브코라가 손길을 가방 쪽으로 다시 뻗었다.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가 반대로 벌어졌다. 이번에는 한국인이 희생자였다.

위기!

김상식이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어허! 으흠,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고··· 제물 없이 흑마법을 쓰면 어떻게 됩니까? 나쁜 일이 벌어집니까?”


사실 그는 흑마법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브코라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었다.

브코라가 왼손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오른손으로 턱을 받쳤다. 두 손 모두 애벌레 가방에서 멀어졌다.


“흑마법은 생명력을 소모해요. 강한 마법일수록 강한 생명이 필요하죠. 만약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흑마법은 주문 시전자의 목숨을 갉아먹어요.”

“저런. 가장 효과적인 제물은 뭡니까?”

“사람이요.”


브코라가 손을 흔들어 순수한 빛을 뱅글뱅글 돌렸다.


“불빛 마법 정도는 애벌레로 충분해요. 소환수를 부르거나 역병을 퍼뜨리려면 사람을 바쳐야 해요. 그것도 생명력이 충만한 사람을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

“숫총각.”


그녀가 대답을 마친 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대화가 멈추고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국인에게 애벌레 먹이기가 중단되었다. 브코라는 애벌레 생식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김상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위험했어. 애벌레도 크기가 적당해야 먹을 만하지. 저건 손가락보다 굵잖아. 날로 먹다가는 분명히 오바이트를 할 거야.’


하마터면 브코라에게 큰 실례를 저지를 뻔했다. 호의로 건넨 음식을 상대가 뱉어버리면 상심이 얼마나 크겠는가?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국제커플은 서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배려와 존중이 더욱 중요하다. 다문화 고부열전을 열심히 시청한 보람이 있었다.

동굴이 점차 넓어졌다. 종유석 사이사이에 거미줄이 보였다. 박쥐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르다가 거미줄에 걸려 손발이 묶였다.

김상식의 발등으로 벌레가 기어갔다.


“으앗!”


그가 황급히 발을 털었다. 맨발이라서 벌레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브코라가 벌레를 침착하게 집었다.


“거미예요. 새끼인가 봐요. 귀여워라.”

“그··· 그렇습니까?”

“이따가 먹어야지.”


브코라가 거미 새끼를 간식 가방에 넣었다. 표정이 대단히 행복해 보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가 아파트 잔디밭에서 쑥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김상식이 속으로 되뇌었다.


‘문화의 차이··· 국제커플··· 이해와 존중···’


갑작스레 브코라가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조심하세요!”

“음?”


김상식이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낭떠러지였다.

동굴이 갑자기 끊기고 길이 사라졌다. 밤눈이 어두워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낭떠러지 아래를 살펴보니 절벽이 수십 미터였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절벽을 건너야 했다.

김상식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절벽을 뛰어서 건너기는 힘들 것 같군요. 너무 멉니다. 페르시아 왕자도 이건 불가능입니다.”

“그럼 어쩌죠?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많이 아플 것 같은데.”

“흑마법으로 공중부양 안 됩니까?”

“그런 마법은 없어요.”


브코라가 주인을 실망시켜 미안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커다란 눈이 금방 촉촉하게 젖었다.

김상식이 대안을 제시했다.


“어딘가에 비밀 통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변을 살펴봅시다.”


그가 동굴 벽면을 더듬고 종유석을 만졌다. 혹시나 해서 바닥에 솟아오른 기둥을 밀고 당기고 위아래로 왕복운동까지 시켜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손바닥에 허옇고 끈적한 액체만 가득 묻을 뿐이었다.


‘이런 제기랄, 더럽게 찝찝하네.’


그가 바지에 손을 닦는데 브코라가 무언가 발견한 듯 외쳤다.


“용사님, 여기 글귀가 적혀 있어요.”


낯선 문자였다. 브코라가 불빛을 끌어와 동굴 벽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용기의 관문. 오직 용감한 자만이 시험을 통과하리라.”

“그게 끝입니까?”

“네.”


김상식이 신음했다.

시험을 통과하려면 용기를 발휘하라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무슨 시험인지는 알 길이 없다.

절벽을 뛰어서 건너라는 뜻인가?

말이 된다. 절벽 건너편은 한참 멀다. 뛰어넘다가 십중팔구 떨어져 죽을 것이다. 겁쟁이는 절대로 도전하지 못한다.

오직 용감한 사람만이 무모한 짓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건 속임수야.”


브코라가 흠칫했다.


“속임수요?”


그가 절벽 건너편을 가리켰다.


“메뚜기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멀리 뛰지 못합니다. 백 퍼센트 바닥으로 떨어질 겁니다. 이건 그냥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용감한 자만이 시험을 통과한다잖아요.”

“멍청함과 용기는 다릅니다.”


김상식이 턱을 긁으며 고민했다. 문득 조금 전에 갈림길을 지나친 사실을 떠올렸다.


“아까 갈림길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브코라가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는 오른쪽으로 왔죠.”

“이번에는 왼쪽 길로 가봅시다.”

“정말요? 제 느낌에는 이쪽이 맞는 것 같은데··· 그쪽은 왠지 불길해요.”


김상식이 호기롭게 웃었다.


“하하! 내가 누구입니까? 무적의 용사입니다.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든 칼로 썰어버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가 손날을 수평으로 휘두르고 수직으로 내리쳤다. 입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브코라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알··· 겠어요. 용사님의 뜻을 따를게요.”

“갑시다.”


그가 성큼성큼 앞서갔다. 용기와 자신감이 충만했다. 절벽보다는 몬스터가 낫다. 몬스터는 죽일 수 있지만 중력은 제거할 수 없다.

갈림길에 다다랐다. 가지 않은 길에는 거미줄이 더 많았다.

김상식이 너스레를 떨었다.


“거미가 많군요. 잘 됐습니다. 입이 심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거미줄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거미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붉은 거미, 푸른 거미, 노란 거미도 보였다.

김상식이 허세를 부렸다.


“뷔페로구나!”


브코라가 목소리를 떨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요. 돌아가요.”

“사나이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내 뒤에 서요. 안전할 테니까.”


브코라가 불안해할수록 김상식은 허세가 심해졌다. 미녀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강해 보이고 싶었다. 남자란 그런 동물이다.

어른 손바닥만한 거미가 지나갔다.

김상식이 짐짓 크게 웃었다.


“어이쿠, 녀석 큼직하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겠어.”


이번에는 솥뚜껑 크기의 거미가 벽을 기어갔다.


“킹크랩인가? 삶아서 먹으면 맛있겠는데?”


다음은 선풍기였다.


“이야, 월척이다. 얼른 잡아요. 잔치합시다.”


브코라가 어둠 속을 가리켰다.


“요··· 용사님.”

“왜요, 더 큰 놈이 나왔습니까? 이거 배 터지겠구만.”


허공에서 검은색 무덤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무덤이 아니라 거미의 눈알이었다.

새까만 눈알 여덟 개가 김상식을 노려보았다. 눈알 하나가 무덤만큼 컸다.

김상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어··· 너무 큰데.”


- 사사삭


대왕 거미가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움직임이 재빨랐다.

김상식이 칼을 뽑아 휘둘렀다.


“쾌검!”


- 끈적


팔뚝이 거미줄에 들러붙었다. 거미줄 두께가 동아줄 수준이었다. 접착력도 우수했다.


“망할.”


김상식이 거미줄을 떨쳐내려고 팔을 휘저었다. 그럴수록 거미줄이 더욱 들러붙었다. 허연 끈끈이가 온몸에 덕지덕지 묻었다.

대왕 거미가 꼬리를 흔들었다.


- 휘리릭


거미줄이 날아와 김상식의 팔다리를 하나씩 붙들어 동굴 벽에 고정시켰다. 김상식이 큰대자 모양으로 사지를 벌렸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


“으윽, 이 자식···”


수치스러웠다. M이 된 기분이었다.

대왕 거미가 앞니를 우물거리며 김상식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먹이가 맛이 있을지 평가하는 듯했다.

김상식이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꺼져!”


무익했다. 거미줄은 크고 단단했다. 인간의 근력으로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

대왕 거미가 김상식의 급소를 깨물었다.


- 콰직


“끄악!”


송곳니가 부드러운 살덩이를 찔렀다. 모종의 액체가 혈관을 타고 퍼졌다. 포경수술 마취 주사가 떠올랐다.


‘엄마는 돈까스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지···’


근육에 힘이 풀렸다. 감각이 사라졌다. 정말로 마취 주사였다. 오직 정신만 또렷했다.

김상식이 입 밖으로 침을 질질 흘렸다. 발음이 엉성해졌다.


“사흐어허(살려줘)···”


순간, 튀김 씹는 소리가 들렸다.


- 으적으적 쩝쩝


브코라였다. 그녀가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공포!”


보라색 빛이 일직선으로 발사되어 대왕 거미를 맞추었다. 거미의 표면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실패였다.

대왕 거미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빛의 입자를 털어냈다. 마력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브코라가 이를 갈았다. 대왕 거미를 제압하려면 더 강한 제물을 바쳐야 한다.


“치잇.”


그녀가 애벌레 가방으로 손을 넣었으나 거미가 더 빨랐다. 거미줄이 가녀린 여인을 들어올려 김상식과 한데 겹쳤다.


- 철썩


김상식의 앞면과 브코라의 앞면이 맞닿았다. 입술과 볼이 부딪혔다. 가슴과 가슴도 밀착되었다. 다른 부위도 단단히 포개졌다.

그러나 감각이 없었다.

김상식이 속으로 한탄했다.


‘제기랄, 왜 하필 이럴 때 마취가 되어서!’


대왕 거미가 두 인간을 한꺼번에 거미줄로 돌돌 말았다. 발끝부터 어깨까지 꼼꼼히 감았다.


- 돌돌돌


인간 고치가 완성되었다. 다행히 머리는 밖으로 노출되어 숨을 쉴 수 있었다.

대왕 거미가 고치를 둥지로 운반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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