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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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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1.08.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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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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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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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역전세계(1)

DUMMY

교접실에 끈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양초가 탁자 위에서 농밀한 향기를 피웠고, 그 옆에서 붉은 술병이 애주가를 유혹했다. 용도가 의심스러운 도구들이 방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채찍, 밧줄, 가죽 벨트, 그리고 슬라임으로 만든 원통형 막대기까지.

절구통 여인이 육중한 신체를 흔들며 다가왔다.


“이제 우리 둘 뿐이군요. 이 순간을 기다렸어요. 용사님, 가까이 와요. 기쁨을 드릴게요. 나는 기술이 많아요.”


김상식이 공포영화의 희생자처럼 뒷걸음질쳤다.


“어르신, 진정하세요. 우린 아직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절구통 여인이 고개를 젖히며 깔깔 웃었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했다.


“용사님은 보기보다 귀엽네요. 상대가 누구인지 굳이 알아야 하나요? 서로를 몰라도 쾌락은 나눌 수 있어요. 이리 와요. 내가 용사님을 천국으로 보내줄게요.”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렸다.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아른거렸다.


“아··· 안돼···”


김상식이 다급히 물러서다가 발을 헛디뎌 침대 위에 대자로 넘어졌다. 다리가 쩍벌남 각도로 벌어졌다.

절구통 여인이 두툼한 입술을 탐욕스럽게 핥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입으로는 싫다고 하지만 육체는 나를 원하고 있잖아요.”

“아니에요. 안 원해요.”

“후응··· 나는 반항하는 남자가 좋더라.”


여인의 손길이 김상식의 청바지를 움켜쥐고 아래로 확 끌어내렸다. 팔뚝이 두꺼운만큼 힘이 상당했다.

그러나 청바지는 내려가지 않았다.

바지 벨트가 김상식의 허리에 걸려 멈추었다. 현대 제조업의 위엄이었다.

여인이 짜증을 냈다.


“에잇, 허리띠가 왜 이리 단단해?”


그녀가 벨트의 금속 버클을 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다크엘프 종족은 현대식 장치에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여인이 참지 못하고 단검을 들었다.


“허리띠 자를게요. 괜찮죠? 내가 악어 가죽 허리띠를 새로 만들어 줄게요.”

“싫어요. 안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요. 자꾸 움직이면 뱃가죽에 구멍 뚫려요.”


다크엘프 여인이 칼날을 벨트 아래로 쑤셔 넣었다.

김상식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건 폭력이다. 남자도 강제로 당하기는 싫다. 아니라면 아닌 거다.

그가 여인을 발로 밀쳐냈다.


“싫다고!”


- 쿠당탕


여인이 침대 밖으로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육중한 소음과 함께 집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벌떡 일어났다. 실로 강인했다.


“후후, 거친 플레이를 원하나요? 좋아요. 그렇다면 나도 거칠게 갈게요.”


절구통 여인이 가죽 채찍을 집어들었다. 채찍 표면에 딱딱한 비늘이 우둘투둘 솟아 있었다. 한 대만 맞아도 피부가 까질 것 같았다.

김상식이 이를 악물었다.


‘망할. 여자를 때리기는 싫은데. 하지만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가 없어.’


그가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원통형의 물체가 만져졌다. 그가 물체를 꽉 잡았다.

양초였다.


“앗 뜨거!”


김상식이 황급히 손을 털었다. 붉은 촛농이 뱃가죽에 떨어져 동그랗게 굳었다.

절구통 여인이 뜨거운 숨을 토했다.


“플레이를 즐길 줄 아는군요. 역시 강한 남자!”


그녀가 채찍을 흔들었다. 채찍이 살아있는 뱀처럼 출렁거렸다. 뱀의 대가리가 김상식을 노리고 날아왔다.


“멈춰요!”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브코라가 들어왔다. 그녀가 중년 여인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아 멀리 던졌다.


“그만해요. 용사님께서 싫다고 하시잖아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김상식이 기뻐했고 절구통 여인은 분노했다. 중년 여인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기대가 큰 만큼 분노도 강했다.


“브코라, 천한 것이 감히 씨족의 거사를 방해하다니. 네 년이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브코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덩치가 작지만 용기는 커다랬다.


“저는 용사님의 전속 하녀예요. 용사님께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


절구통 여인이 비웃었다.


“용사님이 괴로워해? 훗, 순진한 것. 남자는 원래 처음에는 튕겨. 그러다가 본론에 들어가면 욕망을 드러내지. 안돼, 안돼 하다가 어느 순간 된다고 외쳐. 그것이 수컷의 본능이야.”

“거짓말.”

“너는 남자를 경험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몰라. 어른의 세계는 복잡하고 오묘하단다.”

“으윽···”


브코라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검은 피부가 고구마 색깔로 물들었다. 다크엘프 문화에서 성인 여자가 남자를 경험하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절구통 여인이 채찍 손잡이로 브코라의 턱을 톡톡 건드렸다.


“어머, 미안해라. 내가 너무 심했나? 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사실인 걸. 남자를 모르는 네가 잘못이지.”

“용사님은 우리 종족이 아니에요. 용사님이 살던 세상은 다를 수도 있어요.”

“똑같아. 남자는 다 그래. 숫처녀가 아는 척을 해대니 우습기만 하구나.”


브코라가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논리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녀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인간 세상의 규칙은 희미하고 물렁하며 온통 회색지대였다.

절구통 여인이 승리를 직감하고 턱을 한껏 들었다.


“너는 이만 나가보렴. 방금 일은 용서하마. 남자 경험이 없는 게 너의 책임만은 아니니까. 몸통이 삐쩍 마른 탓이지.”


브코라가 본능적으로 몸을 가렸다. 가느다란 팔뚝이 흉부와 복부를 감쌌다. 옷이 몸에 밀착되었다. 모래시계 형태의 신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김상식이 절구통 여인의 평가를 부정했다.


“노우.”


브코라는 마르지 않았다. 날씬한 글래머다. 그녀의 윤곽을 보니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더욱 분명해졌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똑바로 섰다.


“브코라는 마르지 않습니다.”

“응?”

“아니··· 브코라의 말이 맞습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싫다고 하면 싫은 겁니다. 노 민스 노(no means no), 유 노우 댓?”


절구통 여인이 당황했다. 상식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남자는 원래 속으로 좋아도 겉으로는 싫다고 해요. 백이면 백 다 그래요. 그런데 여자가 남자의 말만 듣고 접근을 포기하면 아이는 어떻게 만들고 쾌락은 어떻게 나누죠?”

“그래서 출산율이··· 크흠, 그건 우리나라 사정입니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닙니다.”

“이곳의 방식은 달라요.”

“내가 당신네 방식을 따라야 합니까? 어째서? 나는 이곳에 싸우러 왔지 노예가 되러 온 것이 아닌데?”


절구통 여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천한 신분이 보는 앞에서 남자에게 거절을 당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체면이 크게 깎인다.

그녀가 재도전을 시도했다. 두터운 손가락이 김상식의 가슴을 쿡 찔렀다.


“용사님은 인생을 잘못 살았어요. 여자를 계속 거부하다가는 자식도 못 남기고 죽어요.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죠? 마음을 바꿔요. 본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내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게요.”


김상식이 버럭했다.


“어허, 손 치우시오. 싫다고 했잖소. 용사를 불쾌하게 만들다니, 내가 당신네 마을을 돕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거지?”

“헉.”


절구통 여인이 손을 황급히 움츠렸다.

그녀는 김상식이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목격했다. 마을의 전사가 모조리 달려들어도 물리치지 못한 거대 전갈을 김상식이 순식간에 해치우지 않았는가?

용사가 마을을 버리면 패배만 남는다.

여인이 목소리를 떨었다.


“용사님 혹시 숫총각인가요?”

“나는!”


김상식이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진실은 대부분 고통스럽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를 더는 자극하지 마시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아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 합니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 적과 싸워야 하니까. 전쟁이 끝나면 만남을 고려해보지.”


절구통 여인이 김상식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공손히 숙였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제가 실수를 했어요. 저희는 용사님께서 쾌락을 즐기시는 줄 알았어요.”


김상식이 차갑게 대꾸했다.


“깨달았으니 다행이군.”

“용사님께서 승리하신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안 와도 됩니다.”

“물러갈게요.”


절구통 여인이 몸을 돌려 떠났다. 나무 바닥이 쿵쿵 울렸다. 그녀는 문을 나서며 브코라를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혔다. 교접실에 김상식과 브코라 둘만 남았다.

브코라가 긴장이 풀린 듯 숨을 내쉬었다.


“감사해요, 용사님. 제 편을 들어주셔서.”


김상식이 스윗한 남자의 태도를 연출했다.


“아닙니다. 내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절구통 여자에게 방아를 찍힐 뻔했습니다.”

“방아요?”


브코라가 눈을 순진하게 깜빡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인터넷이 없어서 타락하지 않은 듯했다.

김상식이 말을 돌렸다.


“다칠 뻔했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당혹스럽네요. 괴물을 물리친 대가를 이런 식으로 주다니.”

“저희가 용사님의 취향을 몰랐어요. 용서하세요.”

“절구통 여자가 정말로 예쁩니까? 장난 아니고 진짜로?”

“리나베요?”


브코라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예쁘죠. 리나베는 우리 씨족 최고의 미녀예요. 튼실한 엉덩이를 보세요. 어떤 남자가 리나베를 거부하겠어요?”

“홀리···”

“다른 씨족에서도 리나베를 납치하려고 몇 번이나 쳐들어왔어요. 사실 이번 전쟁도 리나베 때문에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왓?”

“전갈 씨족의 왕자가 리나베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앙심을 품고 쳐들어온 거예요.”


김상식이 쾌재를 불렀다. 전쟁을 끝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잘됐군. 리나베를 전갈 씨족에 넘기고 전쟁을 끝냅시다.”


브코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어요. 화해는 불가능해요. 둘 중에 한 쪽이 멸망해야 전쟁이 끝나요.”


다크엘프는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기나긴 전쟁 동안 두 씨족의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어디가 더 많이 죽고 어디가 덜 죽었는지 계산하기 힘들 정도였다. 때문에 그들은 서로 상대를 비난했다.

김상식이 탄식했다.


“평화를 불러올 방법은 오직 승리뿐인가.”

“저는 믿어요. 용사님이 도와주시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어요.”


브코라가 커다란 눈동자를 김상식에게 고정시켰다.

보석 같은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빛났다. 맑고 신비로웠다. 동공이 위아래로 길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김상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브코라, 기왕 교접실에 들어온 김에 원래의 목적대로 이용해보는 것도···”

“아차!”


브코라가 손뼉을 치더니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채찍과 양초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슬라임 기둥이 똑바로 섰다. 말랑한 대가리가 흔들렸다.

그녀가 작업을 마친 뒤 돌아왔다.


“숙소로 모실게요. 이곳은 너무 음탕해요. 용사님처럼 순수하신 분께 어울리지 않아요.”

“나는 순수가 아니라 순결인데···”

“리나베가 퇴짜를 맞았으니 마을의 다른 여자들도 감히 용사님께 다가오지 못할 거예요. 앞으로 용사님은 여자 걱정 없이 싸움에만 집중하실 수 있어요.”

“어라? 그건 조금···”

“가요.”


브코라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김상식의 손목을 스르르 잡았다. 여자의 손길이 촉촉하고 매끈했다.


‘헤으응···’


김상식이 홀린 듯 이끌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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