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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1.08.22 15:48
최근연재일 :
2021.09.01 12: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034
추천수 :
152
글자수 :
69,051

작성
21.08.23 12:30
조회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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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다크엘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3)

DUMMY

전갈은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김상식이 가까이 다가가자 전갈이 식사를 멈추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집게발이 벌어지고 꼬리가 진동했다. 폭력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홀리 쓋···’


김상식이 입술을 깨물어 공포를 억눌렀다.

그는 싸움에 소질이 없다. 주먹질이라고는 고등학생 때 일진에게 얻어맞다가 본능적으로 붕붕펀치를 휘두른 것이 전부다. 김상식은 극히 평범한 찐따였다.

그런 사람이 스킬북 한 번 읽고 이렇게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물리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불확실하다.

하지만 도망치기는 싫다. 도망은 현실에서 많이 쳤다. 김상식은 평생을 도전하지 않고 도망만 치다가 결국 도태한 남자가 되었다.

이세계에서는 승리하고 싶다.

강한 남자.

글래머 여친.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그가 칼을 단단히 쥐었다.


‘한다. 할 수 있다. 겁먹지 마. 어차피 인생은 한방이야. 지금 죽으나 숫총각으로 늙어 죽으나 다를 바 없어.’


전갈이 공격을 개시했다. 집게발이 좌우에서 김상식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공기가 난폭하게 갈라졌다.

김상식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수그렸다.


- 캉


집게발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불티가 번쩍 튀었다. 김상식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잘려나갔다.

전갈의 집게는 독일산 면도날만큼 날카로웠다.

모골이 송연했다. 조금만 늦게 피했으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모가지가 잘릴 뻔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후달린다. 오줌 마려워. 혹시 지렸나?’


딴생각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전갈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꼬리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단단한 각질로 둘러싸인 꼬리가 김상식의 허리를 노렸다.


- 부웅


김상식이 공중제비를 넘었다. 전갈의 꼬리가 김상식의 등과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높이뛰기 선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여전사들이 탄성을 흘렸다.


“우와!”

“피했어. 용사님 엄청 빨라!”

“얼굴은 둔하게 생겼는데 몸은 아닌가 봐.”

“저 남자, 침대에서도 빠를까?”


김상식 스스로도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운동에 젬병이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이 언제나 괴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허공을 붕붕 날아다닌다.

그가 원인을 깨달았다.


‘쾌속낙뢰검법!’


성용남 매니저의 말이 사실이었다. 스킬북이 김상식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었다. 두통이 헛되지 않았다.

자신감이 생겼다.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힘이 솟았다. 글래머 여자 군단이 그를 주목했다. 다들 복장이 헐렁했다.

용기!

그가 몸을 굴리며 칼을 낮게 휘둘렀다. 칼날이 전갈의 가느다란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서걱


전갈의 다리가 하나 잘렸다. 화살촉을 손쉽게 튕겨내던 난공불락의 요새가 처음으로 손상을 입었다. 각질은 무적이 아니었다.

전갈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 후다닥


김상식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글의 지면을 빠른 포복으로 기어가 전갈의 아랫배에 다다랐다. 2년 동안의 합법 노예 생활이 의외의 순간에 도움을 주었다.

전갈의 아랫배는 다른 부위보다 각질이 얇았다. 껍데기 안으로 내장이 훤히 비쳤다.

그가 몸을 뒤집으며 회전력을 이용해 전갈의 아랫배를 베었다.


- 촤악


껍질이 갈라졌다. 체액이 쏟아졌다. 상처 사이로 내장이 삐져나와 덜렁거렸다.

전갈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 차르르르


놈이 꼬리를 반대쪽으로 말아 독침을 아랫배 밑으로 겨누었다. 사선의 끝에 김상식의 정수리가 놓였다. 독침이 미묘한 소리를 발생시켰다.

김상식이 위험을 감지하고 방패를 세웠다.


- 푸슉


독침이 독액을 발사했다. 방패가 독액을 맞고 연기를 뿜어냈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상식이 방패를 던져버린 뒤 초승달 모양의 칼을 전갈의 상처 틈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팥빙수 기계의 손잡이를 돌리듯 괴물의 뱃속을 휘저었다.


- 후드득


곱게 저민 속살이 떨어져 내렸다. 어묵이 따로 없었다.

전갈이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다. 김상식을 떨쳐내기 위해 좌우로 펄쩍펄쩍 뛰었다.


- 흔들흔들


그러나 김상식은 괴물의 내장을 단단히 움켜쥐고 버텼다. 인내력은 그의 장점이었다. 가족 같은 중소기업 생활도 5년이나 견뎠다.

마침내 전갈이 힘을 잃었다.


- 파르르


놈의 다리가 허약하게 떨렸다. 집게발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꼬리가 독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출근길의 직장인처럼 늘어졌다.

김상식이 전사들에게 외쳤다.


“공격 개시!”


다크엘프 전사들이 용사의 활약을 넋 놓고 감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참 전사가 칼을 높이 세우며 소리쳤다.


“공격하라. 지금이 기회다. 용사님을 도와라!”

“꺄아아아아!”


전사들이 날카로운 톤으로 기합을 지르며 전갈에게 달려들었다. 투박한 칼이 갑각류의 다리를 때렸다. 몇몇은 집게발을 타고 올라가 괴물의 눈알을 찔렀다.

김상식은 아랫배에서 내장을 꾸역꾸역 뽑아냈다.


- 주르르륵


마침내 끝이 도래했다.

전갈이 몸뚱아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다리가 지나치게 벌어졌다. 이윽고 반대편 다리도 넙죽 퍼졌다.

김상식이 괴물의 밑에서 재빨리 굴러나왔다.


- 쿵


전갈이 엎어졌다. 풀과 진흙이 튀었다.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을이 고요해졌다. 살육이 중단되고 공포가 사라졌다.

승리였다.

다크엘프 전사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아···”


믿을 수 없었다. 전멸이 명백한 상황에서 검은 머리 용사가 홀연히 나타나 강대한 적을 혼자 힘으로 무찔렀다.

놀라운 활약이었다.

절망이 걷히고 희망이 솟았다. 그의 용기가 뱀 씨족에게 생명을 주었다.

전사들이 감탄했다.


“용사님···”

“강해. 멋있어. 잘 생겼어.”

“그··· 그런가? 빠르게 훑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김상식이 몬스터의 시체를 밟고 서서 심호흡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취감에 손끝이 짜릿했다. 중소기업 직장 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승리의 쾌감!

아랫배에 활력이 감돌았다. 뭔가 성장한 기분이었다. 눈이 맑아지고 팔다리에 힘이 충만했다.

확실하다.

남자는 승리를 먹고 자란다.

김상식은 그 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

제사장이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김상식을 겁쟁이라고 비난하던 사람이 결과를 보고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경배하라. 위대한 뱀의 신께서 강인한 용사를 보내주셨다. 이제 적들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할 것이다. 찬양하라, 김상식 용사를. 복종하라, 신의 권능에!”

“용사님!”


마을 주민들이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몇몇이 무릎으로 기어와 김상식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간혹 손가락을 핥기도 했다.

김상식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 잠깐만요.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


사람들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그는 21세기 한국 출신이라 남녀노소 모두가 평등하다고 배웠다. 귀인 대접은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위가 온통 여자다. 이렇게 많은 여자가 김상식을 둘러싼 적은 처음이다.

김상식이 다리를 애써 오므렸다. 청바지를 입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제사장이 팔을 펼쳐 군중을 진정시켰다.


“그만.”


김상식을 만지작거리던 주민들이 아쉬워하며 물러섰다. 부족 사회에서 주술사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우리는 염치를 안다. 용사님께 은혜를 입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기쁨을 드려야 마땅하다. 누가 용사님께 봉사하겠는가?”


주민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금빛 장신구를 목에 둘렀고 비단옷을 입었으며 몸매가 절구통처럼 펑퍼짐했다.

그녀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걸어왔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튼실한 허벅지 살이 흔들렸다.


“제가 봉사할게요, 제사장님.”


제사장이 기뻐했다.


“훌륭하다, 리나베. 씨족 최고의 미녀가 직접 나서니 나의 마음이 참으로 든든하구나.”


나머지 여인들이 절망스럽게 탄식했다.


“아아··· 리나베라니. 너무 예쁘잖아.”

“우리는 상대가 안 돼. 저 풍만한 몸매를 봐. 용사님은 우리 같은 말라깽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을 거야.”

“크흑, 나도 용사님이 마음에 드는데. 나는 어째서 예쁘지 않은 거지?”

“예쁜 여자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주민들이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제사장의 결정에 반항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가 절구통 여인의 아름다움을 인정했다.

오직 김상식만이 대세를 부정했다.


‘예쁘다고? 저 여자가? 어째서? 그냥 살찐 아줌마인데?’


그는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저런 체형의 상인을 자주 보았다. 국밥집 아줌마, 분식집 사장님, 생선가게 이모님이 떠올랐다. 다들 인심이 참으로 좋으시다.

하지만 그 분들을 여자로 느끼지는 못했다. 김상식은 날씬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절구통 여인이 김상식의 코앞에서 끈적한 눈빛을 쏘았다.


“나는 용사님의 강함에 반했어요. 당신에게 기쁨을 드릴게요. 최선을 다해서.”


승리의 기쁨이 빠르게 식었다.

김상식이 움츠렸던 허리를 다시 폈다. 이제는 청바지가 아니어도 문제없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충분히 기쁩니다. 봉사는 안 하셔도 됩니다.”

“후응, 부끄러움을 잘 타시네요. 귀여워라. 나는 반전 있는 남자가 좋더라.”

“저는 단순합니다. 반전 없습니다. 빡대가리거든요. 수능 9등급입니다.”


리나베는 김상식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감이 넘쳤다. 여태껏 모든 남자가 유혹에 넘어왔다.

그녀가 두터운 입술을 고혹적으로 움직였다.


“나는 기름진 밭이에요. 어떤 씨앗을 뿌려도 쑥쑥 자라죠. 볼래요?”

“아니요.”


절구통 여인이 겉옷을 젖혀 속바지를 드러냈다.

예상대로였다. 넓고 튼실했다. 다산의 상징이 현실에 강림했다. 생식능력이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김상식은 생식이 아니라 연애를 원했다.

그녀가 주장했다.


“마음에 쏙 들죠? 나는 아이를 벌써 여섯이나 낳았어요. 모두 튼튼하게 자랐죠. 한 명도 죽지 않았어요.”

“저는 아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아이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원해요.”


그녀가 김상식을 바짝 끌어당겼다. 팔뚝 힘이 상당했다. 얼굴이 가까워져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지경이었다.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혔다.


“봉사는 핑계예요. 나는 용사님에게 반했어요. 나를 가져요. 마음껏 유린해요. 무엇이든 가능해요. 어때요, 짜릿한가요?”


김상식이 고개를 힘껏 돌렸다.


‘불가능해. 내가 아무리 숫총각이라지만 이건 힘들어. 이 세계에는 파란약도 없잖아!’


위기였다. 미녀 마을의 유일한 돌연변이가 김상식을 찜했다. 분위기를 보니 절구통 여자는 지위가 대단한 듯했다. 아무도 훼방을 놓지 못했다.

김상식이 몸부림을 쳤다.


‘김상식 주니어가 벌써 생긴다니. 말도 안 돼. 나는 아직 젊어. 아빠가 되기는 이르다고. 사장님, 나를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정답은 오지 않았다.

제사장이 두 팔을 한껏 펼치며 군중을 움직였다.


“용사님을 교접실로 모셔라. 극한의 쾌락을 준비하라. 우리 씨족의 명성을 헛되게 만들지 마라.”

“와아!”


주민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교접! 교접!”

“쾌락! 쾌락!”

“잉태! 잉태!”


열광이 군중을 휩쓸었다. 전사들이 힘을 모아 김상식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더니 풍요의 노래를 불렀다.

김상식이 발버둥쳤다.


“잠깐만요! 저는 정말로 보답을 바라지 않아요. 무료로 싸워드릴게요. 밥만 주세요. 쾌락은 혼자서 찾을게요. 오른손으로 충분하다고요. 휴지도 필요 없어요. 나뭇잎으로 닦을게요. 제발···”


군중이 마을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외딴 집 현관에 명패가 붙어 있었다.


[교접실]


김상식이 집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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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5 노블매니아
    작성일
    21.08.30 10:26
    No. 1

    ㅋㅋ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6 겜판소조아
    작성일
    21.09.29 21:47
    No. 2

    아니 김상식 바본가. 다른여자랑 하고싶다고 거절하라고 ㅠㅠ 가족같은 회사를 5년이나 다닌이유가 있규나... 자기의사를 확실히 말 못하고 남 하란대로 끌려다니기만 하니 그런델 5년이나 다니지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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