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고싶다.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1.08.22 15:48
최근연재일 :
2021.09.01 12:3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0,037
추천수 :
152
글자수 :
69,051

작성
21.08.31 12:30
조회
430
추천
10
글자
13쪽

크기가 중요하다(2)

DUMMY

제사장이 꺼내든 단검은 칼날이 지그재그로 구부러져 있어서 수술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생자를 고문하는 데에 효과적일 듯했다.

김상식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 안돼.”


절망적이었다.

총각딱지를 떼려고 이세계로 건너왔는데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영원한 총각으로 남게 생겼다. 중성화 수술이 곧 벌어질 참이다.

환자는 김상식이다.

제사장이 가면 너머에서 차갑게 말했다.


“용사를 붙들어라.”


주변 사람들이 머뭇거렸다.

다크엘프 사회에서 제사장의 지위는 절대적이지만 김상식 용사는 그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생명의 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올바른 행위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제사장이 다시 명령했다.


“뭣들 하느냐? 용사의 팔다리를 잡으라니까. 이대로 용사를 죽일 셈이냐?”


그제서야 힘센 전사들이 김상식의 사지를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 부드러운 살덩이가 손과 발을 단단히 붙들었다.

김상식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그마한 기쁨을 느꼈다.


‘몽글몽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제사장이 혀를 찼다.


“용사가 환각에 빠졌다. 시간이 없다. 어서 잘라야 한다.”


그녀가 단검을 수술 부위에 가까이 댔다.

브코라가 황급히 말렸다.


“제사장님, 그만하세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다른 방법은 없다. 수호신의 맹독은 죽음을 반드시 불러온다.”

“단검으로 뱀칼의 아가리를 벌리면 송곳니가 빠질 지도 몰라요.”


제사장이 윽박질렀다.


“어리석은 것. 용사의 급소가 푸르죽죽하게 부풀어오른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맹독이 퍼졌다는 증거다. 인제 와서 뱀칼을 떼어내봤자 소용이 없다.”

“하지만 용사님이 거부하시잖아요.”


브코라가 김상식을 가리켰다. 그러자 김상식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는 잘리기 싫었다.


“마하(맞아). 으호하 마히 마하(브코라 말이 맞아).”


제사장이 부정했다.


“의미가 불분명하다.”


김상식이 다시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으호하 마히 마하오(브코라 말이 맞다고).”

“잘라 달라고?”

“아히(아니).”

“죽고 싶다고?”

“아히(아니).”

“떼어 달라고?”


김상식이 눈알을 까뒤집으며 소리쳤다.


“아헤가오(아니라고)!”


흰자위가 드러났다. 입밖으로 침이 줄줄 흘렀다. 고통 때문에 입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사장이 확신에 차 말했다.


“보아라. 수호신의 맹독에 중독된 자는 오히려 쾌락을 느낀다.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독의 무서움이다.”

“씨할!”


김상식이 온몸으로 발악했다. 뱀칼이 끄덕끄덕 흔들렸다. 그러자 제사장이 부하들에게 강하게 지시했다.


“더 단단히 붙들어라. 용사가 경련을 일으키지 않느냐?”

“아··· 알겠습니다.”


누군가 밧줄을 가져와 김상식의 손목, 발목을 꽁꽁 묶었다. 구속 플레이를 당하는 모양새였다.

김상식이 속으로 오열했다.


‘싫어. 싫다고. 이럴 수는 없어. 나는 모태솔로를 30년이나 견디면서도 성정체성을 유지했단 말이야. 왜? 여자가 좋으니까!’


문득 이세계가 원망스러웠다.

김상식은 던전 안에서 사타구니를 집중 공략당했다. 종유석이 가랑이를 타격했고, 대왕 거미가 그곳을 물었으며, 이번에는 뱀칼이 알에 구멍을 뚫었다.

증오스러웠다. 그가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도록 온 세상이 방해하는 듯했다.


‘모태솔로가 여친을 사귀고 싶어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일이냐!’


단검이 다가왔다. 울퉁불퉁한 칼날이 주름진 피부에 닿았다. 똘똘이가 겁먹은 자라처럼 한껏 움츠러들었다.

주변의 마을 주민들이 시선을 돌렸다.


“아아··· 못 보겠어. 너무 끔찍해.”

“용사님이 저 곳을 잃다니. 이제 용사님은 씨앗을 만들지 못할 거야.”

“이럴 수가. 우리들 중 아무도 용사님에게 씨앗을 받지 못했는데. 저렇게 강한 남자를 다시 만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그러기 전에 우리가 늙어 죽겠다.”

“잔인한 세상. 날씬한 여자는 자식도 못 남기는 더러운 세상!”


절망과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씨앗을 잃은 용사는 반쪽짜리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지만, 뱀 씨족에 번영을 안겨주지는 못할 것이다.

순간, 누군가 우렁차게 외쳤다.


“잠깐.”


리나베였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였고, 입술에는 각종 양념과 음식물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용사에게 거절당한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한 듯했다.

그녀가 제사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멈추세요, 제사장님. 이것은 옳지 않아요.”


제사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씨족 최고의 미녀 리나베. 너까지 나의 뜻을 거역할 셈이냐?”

“지금 당장을 말고 미래를 보세요. 우리 씨족에는 남자가 없어요. 용사님마저 남자가 아니게 되면 우리는 자식을 어떻게 잉태할까요?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늙은이만 남고, 뱀 씨족은 영영 사라질 거예요.”


주장이 논리적이었다. 인구가 늘어나야 씨족이 번성하고 그 결과 정글의 지배권을 쟁취할 수 있다.

그러나 제사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죽은 용사에게 씨앗을 받을 수는 없다.”

“제가 입으로 독을 빨아낼게요.”

“뭣이?”


제사장이 놀랐다. 김상식도 경악했다.


“끄아아?”


리나베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의지가 단단해 보였다.


“독을 빨아내면 용사님께서 살아날 지도 몰라요.”

“무의미하다. 용사는 뱀칼에 물린 지 한참 지났다. 오직 절단만이 해결책이다.”

“그래도 해봐야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어요.”


제사장이 침음했다.

씨족 최고의 미녀를 무작정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리나베는 튼튼한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다. 마을의 그 누구도 리나베만큼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녀가 지적했다.


“독을 빨아내다가 네가 중독될 수도 있다.”

“걱정 마세요. 방금 밥을 먹었어요. 제 입은 멀쩡해요.”


리나베가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왕만두 다섯 개가 거뜬히 들어갈 정도였다.

제사장이 결국 뜻을 굽혔다.


“스스로 고통을 원하다니. 나는 더 이상 말릴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의무가 아니다.”


단검이 물러났다. 쪼그라든 똘똘이가 긴장을 풀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위험이 김상식을 덮쳤다.

리나베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김상식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용사님, 긴장 풀어요. 나는 전문가예요.”


그녀가 고개를 수그렸다. 뜨거운 숨결이 살갗에 닿았다.

김상식이 기겁했다.

공포!

그는 순결하다. 그의 육체는 빌딩 옥상에 쌓인 첫눈처럼 깨끗하다. 비록 스스로의 의지는 아니지만 지금껏 어떤 사람도 김상식의 순결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친이 아니라 마음에도 없는 여자가 김상식의 첫경험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안 된다.

거부한다.

이런 방식은 싫다.

김상식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아다!”


강렬한 기합과 함께 팔다리를 묶고 있던 밧줄이 투둑 끊어졌다. 그의 몸을 누르고 있던 전사들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꺄악!”


김상식이 손바닥으로 리나베의 머리통을 막았다.


“머허(멈춰).”


그러나 리나베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내리눌렀다. 힘과 힘의 대결이 벌어졌다.


“끄으으···”


과연 그녀는 씨족 최고의 미녀답게 몸무게가 육중했다.

김상식의 손바닥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두꺼운 입술이 목표물에 가까워졌다. 살갗과 살갗이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그만.”


브코라가 다가와 리나베의 뒤통수를 옆으로 밀쳤다.

리나베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진흙에 처박혔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콧김을 씩씩 뿜었다. 분노 때문에 눈알이 희번득거렸다.


“네년이 또!”


브코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빨게요.”


사람들이 동시에 놀랐다.


“뭐야?”

“정말?”

“나흣?”


김상식의 가슴이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리나베는 싫지만 브코라는 좋았다. 브코라에게는 첫경험을 바칠 수 있다.

브코라가 용사의 행동을 해석했다.


“용사님께서는 현명하세요. 그러니 리나베 당신을 거부하시는 거예요. 씨족 최고의 미녀가 본인 때문에 희생되는 꼴을 바라지 않으실 테니까.”


리나베가 발을 굴렀다.


“거짓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용사님과 함께 망각의 아가리에서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넘겼어요. 우리는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요.”

“크흑···”


리나베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위기를 함께 극복한 동료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다.

그녀가 반론했다.


“하지만 너는··· 어떻게 빠는지도 모르잖아.”

“가르쳐 줘요.”

“배운다고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야. 실전 경험이 중요해.”

“내가 먼저 해보고 실패하면 그 다음에 그쪽이 해봐요.”

“감히··· 나에게 설거지나 하라는 뜻이냐?”


리나베가 솥뚜껑만한 손을 들어올렸다. 브코라의 모가지를 돌려버릴 기세였다.

김상식이 바닥에 누운 채 신음했다.


“좋소. 그리 하여도 좋소.”


브코라와 리나베가 김상식에게 달려들어 귀를 기울였다.


“용사님!”


김상식이 입을 힘겹게 움직였다.


“브코라··· 당신 말이 맞습니다. 나는 씨족의 미래를 위해 리나베를 거부했어. 그러니 당신이 해줘요.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용사님··· 역시···”

“하지만 여기서 말고 방에서. 단둘이. 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세상에 보이고 싶지 않아.”

“아아···”


감동의 해일이 밀려왔다. 용사는 자신의 목숨보다 뱀 씨족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주민들이 입을 모아 용사의 희생정신을 찬양했다.


“용사님은 진정한 구원자야. 수호신께서 내리신 축복이야.”

“어떤 남자가 저렇게 용감하고 현명할 수 있을까?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

“얘들아, 용사님을 거처로 옮기자. 어서!”


전사들이 김상식을 들어올렸다.


-


용사의 집에 도착했다.

주민들이 김상식을 침대에 눕혔다. 그의 아랫도리는 초록색으로 물들었고 길쭉한 뱀칼이 여전히 급소를 깨물고 있었다.

여인들이 축복의 기도를 올린 뒤 방을 떠났다.

이제 브코라와 단둘이 남았다. 본론에 들어갈 차례다.

브코라가 수건과 대야를 가져왔다. 그녀는 잔뜩 긴장했는지 손을 벌벌 떨고 마른침을 자꾸 삼켰다. 얼굴빛마저 창백했다.


“시··· 시작할게요.”


그녀가 뱀칼을 젖혀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김상식이 부드럽게 물었다.


“두렵습니까?”

“네? 아··· 아니요. 전혀···”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다칠까 봐.”

“에?”


브코라가 당혹스러워했다.

김상식이 말을 이었다.


“나는 용사입니다. 쉽게 죽지 않습니다. 뱀칼에 물리고도 지금껏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내 몸에서 독을 빨아내다가 당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슬픔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까 전에는 저한테 해달라고···”

“핑계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짓말이다.

김상식은 진심으로 브코라가 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미녀가 빨아주는 것은 좋다. 그러나 미녀가 중독되어 목숨을 잃는 것은 싫다.

브코라는 살아야 한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관없어요. 제 목숨을 바쳐서 용사님을 치료할 수 있다면···”

“당신이 사라진 세상은 나에게도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아··· 음···”


브코라가 눈동자를 잠시 흔들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러면 어쩌시려고요?”

“견디겠습니다.”

“네에?”


김상식이 선언했다.


“극한의 고통을 견디는 자만이 뱀칼의 복종을 얻으리라. 나는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설마··· 이게 시험이라는 말씀이예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는 당신과 뱀칼 둘 중 무엇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똘똘이도.

김상식의 원래 목표는 뱀칼을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여친을 사귀어 총각딱지를 떼는 것이다. 따라서 뱀칼과 브코라, 똘똘이 셋 중에서 하나라도 잃는다면 그의 모험은 실패다.

브코라가 김상식의 손을 덥석 잡아 가슴에 얹었다.


“용사님, 그러지 마세요. 저는 용사님의 하녀예요. 용사님께서 사라지면 제 인생도 의미가 없어요.”

“하녀는 주인의 지시를 따라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해요.”

“아아···”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뭐든지요.”


김상식이 브코라의 상체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춥네요. 나를 안아줄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브코라가 김상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눈코입이 지방층에 파묻혔다. 다크엘프의 전통 의상은 두께가 대단히 얇았다.


- 불끈


‘크오옷!’


김상식의 아랫배에서 삶을 향한 의지가 솟아올랐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에서 국제결혼 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시 쓰겠습니다. +2 21.09.01 381 0 -
12 크기가 중요하다(3) +3 21.09.01 406 7 12쪽
» 크기가 중요하다(2) +1 21.08.31 431 10 13쪽
10 크기가 중요하다(1) +3 21.08.30 540 10 12쪽
9 매력남의 조건(3) +2 21.08.29 582 11 14쪽
8 매력남의 조건(2) +1 21.08.28 635 11 12쪽
7 매력남의 조건(1) 21.08.27 680 10 12쪽
6 미녀역전세계(3) +1 21.08.26 758 13 13쪽
5 미녀역전세계(2) 21.08.25 899 12 13쪽
4 미녀역전세계(1) +1 21.08.24 1,026 11 11쪽
3 다크엘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3) +2 21.08.23 1,101 16 12쪽
2 다크엘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2) +2 21.08.23 1,247 18 13쪽
1 다크엘프는 도망가지 않습니다(1) +6 21.08.23 1,704 23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