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 여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유일한 여선생님에 훤칠한 미모여서인지, 한산하던 도서관이 갑자기 붐볐다.
어느 날, 전교생이 한 시간 동안 수업을 보류한, 교내 백일장이 열렸다.
아마도 교장 선생님이 사서 선생님의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시제(詩題)가 흔하지 않고 어려운 ‘창(窓)’이었다.
고민에 빠진 급우가 글 짓다 말고 노래를 불렀다.
“창~문을 열어다오, 나의 그대여~”
이틀 후 쉬는 시간에, 도서관 사서 학생인 친구의 안내로 그 여선생님이 우리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나를 찾았다.
나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일어섰고, 조용해진 급우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니가 재영이가? 시, 참 잘 썼대. 공부도 잘한다면서? 누군가 싶어, 궁금해서...”
나는 괜히 홍당무가 되어 뒷머리만 긁적거렸고, 급우들은 부러워서 웅성거렸다.
아, 황홀했던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여!
창(窓)
진주 중 3학년 이재영
벽엔
하이얀 벽엔
기도하는 소녀의 그림
그 아래
침대에 몸을 눕힌
파리한 소녀의 얼굴
남으로 트인
하얀 커튼 사이로
멀리 푸른 바다가, 파릇한 섬들이
소녀는 살며시 일어나
창가로 다가선다
이제는
호흡이 자유로운 가슴으로
한 아름 안기는 시원한 바람
소녀는 살며시 손을 모아
주여-
감사를 드린다.
[ 1966년 진주 중학교 교내 백일장 장원 시 ]
001. 이웃별
21.03.23 22:17
중딩 재영이가 시 짓는 솜씨가 제법입니다. ㅎㅎㅎ
시 속에 색감 대비와 운율이 눈에 띄네요.
소녀는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해 졌으리라 믿어요^^
재영이 고 녀석, 문과 쪽으로 갔어도 잘 했을 것 같아요. ㅎㅎㅎ
무기 전문가가 아닌 유명한 문인이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재영이 홧팅~~~ ^ㅁ^
002. Lv.55 맘세하루
21.03.24 10:26
하하, 별님이 그 사서 여선생님 같고 제가 중3 소년이 된 기분입니다. ㅎㅎ
그 당시에 진주의 일간지 '경남일보'가 주최하는 '개천 예술제'가 있었습니다.
1949년에 시작해서 다음 해는 6.25동란으로 못 열고 1951년 2회,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64년에 제15회였습니다.
가장행렬을 시작으로 5일동안 남강 유등축제, 각종 문화 및 예술 행사가 열렸습니다. (작년 2020년 제70회는 코로나로 보류됨)
저는 6학년 때 백일장에 출전해서 시제 '가랑잎'을 동요로 써내어 참방(4등) 했고, 중학교 1학년 때는 시제가 '아침'이었는데, 중등부 차하(3등)했습니다.
중학교 때 악대부에서 작은북 치다가 트롬본 불어서 가장행렬 앞서 행진하면서 사열대 위에 앉아있는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도 봤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