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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16. (수필) : 애연 40년

 

 

애연 40

심삼일

 

담배 연기를 한입 가득 빨아들인다. 흡입상태를 유지하며 붕어 입처럼 벌리고, 혀끝으로 조금씩 튕겨낸다. 동그란 구름 도넛 네댓 개가 점점 부피를 늘리며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40년 넘게 담배를 피워 온 애연가의 멋들어진 잔재주다.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는 강한 들숨으로 만든 불꽃이 수 밀리미터 길이의 담배를 빠르게 재로 변신시키는 모습을 즐긴 다음, 들이마신 연기를 통째로 꿀꺽 삼킨다. 그러고도 내뿜는 날숨의 콧구멍에선 연기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 되면 하루에 두 갑, 40개비 이상을 피우는 골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군에 입대하니 신병훈련소에서 휴식 시간 간식으로 별사탕과 담배를 고르라며 나눠줬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나는 처음엔 사탕을 먹었지만, 고된 훈련 기간이 끝날 즈음엔 담배로 바뀌었다. 제대하면서 훈장처럼 달고 나온 흡연은 자연스럽게 나의 직장생활에 동행이 되었고, 40여 년의 굴곡진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동반자로 따라다녔다.

 

젊었던 시절에는 통신기기 연구소에서 근무한 관계로 항상 개발 일정에 쫓기는 처지였다. 장비의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시험실 앉은 자리에서 두세 시간을 훌쩍 보내고는, 개선되지 못한 시험 결과에 탄식하며 한 모금 깊이 빨아대던 담배.

며칠씩 밤새우고 겨우 일정에 맞춘 날, 담배 연기 자욱한 술자리에서,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 으스대며 동료들과 다가올 미래를 논하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술 잘 먹고 담배 잘 피우면, 체력 좋고 능력 있는 사내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애연가의 사정이 너무도 판이해졌다. 가끔 대학 동창들 모임에서 담배라도 꺼내 입에 물면, “아직도 담배 피우나? 지독한 사람일세!”라는 핀잔을 받게 마련이다. 그것도 내가 담배 안 피우던 학창 시절에 식후 불연이면 삼초 후 즉사라~” 하면서 연기도 못 삼키는 뻐끔 담배 피우며 자랑하던 친구로부터.

당연히 건강 때문에 그렇겠지만 너무 약삭빠르게 금연으로 돌아선 친구들이 얄밉기까지 하다.

 

나는 외국산 담배의 숱한 유혹을 받으면서도 전매청과 담배인삼공사를 거쳐 꿋꿋이 국산 담배를 피우며 애국 충정을 지켰다. 그런데, 2015년 초에 담뱃세 일률적 2천 원 인상이라는 엄청난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피우던 담뱃값이 일시에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국회에서 찬성 65%로 통과시킨 일이라 할 말은 없으나, 그 당시 남자 흡연율이 43%인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라지만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모자라 식당을 비롯해 커피숍, 호프집, 피시방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더니, 다음 해에는 공동주택의 금연구역 지정 신청제를 실시함으로써 입주자들 의결에 따라 금연 아파트 지정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지하철 입구건 버스 정류소든 일정한 거리 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서 금연구역 신청을 추진할 기미는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접고 집안에 칩거하게 된 나에게 큰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나의 흡연으로 발생하는 아래윗집 층간 흡연 문제다.

인생 이모작으로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종일 책상에 앉아 머리를 짜다 보니 자연스레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고, 타이핑되는 글자 수에 비례해서 방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날씨가 추운 계절에는 창문을 닫아두고 가끔 환기를 시키다 보니 방안에 담배 냄새가 배는 건 당연하다.

한 달에 한 번쯤 들르는 초등학생 손녀는 자기가 작가의 방이라 이름 붙인 내 방문을 빼꼼 열고 들어와 뭐하냐며 잠시 얘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담배 냄새가 나서 그런지 놀러 와도 아예 내 방문은 노크도 안 한다.

 

한겨울이 아니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환기라는 것이 방안의 연기를 창문 밖으로 끌어내어 공중에 확산시켜 희석하는 것이니, 자연히 위층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새로 이사 온 윗집에 중년 부부와 고등학생 두 명이 사는데, 낮 동안은 빈집이지만 밤에 귀가하고 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하필 내 방 위쪽이 학생 공부방이었던지 참다못한 부모로부터 몇 번 항의가 있었다. 내가 나이가 있어서 직접 대놓고 얘기는 못 하고 메모지에 연기 때문에 참기 힘들다는 사연을 적어서 내 집 출입문에 붙여둔 것이다.

 

처음엔 내가 괜히 화가 나서 내 집에서 담배도 못 피우냐?”고 위층을 향해 고함을 쳤다. 사실은 윗집에서 내는 쿵쿵거리고 덜거덕거리는 소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파트 자체가 소음이 많이 나도록 지어진 줄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불만을 삼키며 참았던 터다. 그런데 담배 연기 좀 올라갔다고 어르신한테 감히 메모지를 써서 붙이다니. 고약한 젊은이들 같으니라고.

내 집 아래층에도 내 또래 주인 남자가 담배 피우는데, 그 집 연기가 올라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양반은 집 밖에 나가서 피우고 들어오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아내는 나보고 밖에 나가서 피우라고 했지만, 몇 번 그러다가 하루 두 갑을 피우는 골초가 할 짓이 아니라서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윗집이 신경 쓰여 담배 피울 때마다 창문을 닫아야 했던 나는 큰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병이던 위십이지장궤양이 도졌는데, 십 년 넘는 단골병원 젊은 의사 선생이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토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던 나는 조금 회복이 되면서 버릇처럼 입으로 가져가던 담배를 뎅강 분질러버렸다.

이까짓게 뭔데 여러 사람한테 창피한 소리 들어가며 피워야 하나?”

내 자존심이 담배와의 결별을 부추긴 것이다.

 

그리고는 독한 마음을 먹고 아깝지만, 한 개비를 절반만 피우다 꽁초로 버리는 방법으로 금연을 시작했다. 나중엔 니코틴이 약한 전자담배로 바꾸면서 근 두 달 만에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내 방에 번져있던 퀴퀴한 담배 냄새도 사라졌다. 그뿐인가, 예쁜 손녀가 오면 할아버지, 담배 끊었다.”라며 자랑스레 예전처럼 용돈도 많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어쩌다 응접실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아래층에서 올라온 담배 냄새가 솔솔 들어올 때가 있다. 그 냄새가 역겨워 눈살을 찌푸리던 나는 전에 윗집에서 꽤 힘들었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만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뀐 여유인가?

 

애연 40?

그게 뭐 그리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끊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창피한 거지.

 


 

< 계간지 [문학의 봄] 2020년 여름호(통권55호)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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