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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NTA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 속을 털어라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SSANTA
작품등록일 :
2022.05.21 04:03
최근연재일 :
2022.06.05 06:05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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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2
추천수 :
598
글자수 :
168,732

작성
22.05.2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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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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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빠숑

DUMMY

4화. 빠숑


책상 아래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아래로 느려 뜨려 보았다.

어린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뭔가를 먹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방바닥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 소란에 오히려 놀란 하얀 고양이가, 희철이를 쳐다보며 꼬리를 세우며 경계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깨진 알 같은 것에 나온 듯한 점액질을 핥아먹고 있다.


‘저, 저거! 내가 가져온 두 달걀 중 하나같은데? 그리고 쟤는 누구지? 왜 고양이가 이 방에 있게 된 걸까? 동생이 데려다 놓은 건가?’


다 먹은 것인지 혀로 앞발을 핥으면서도, 꼬나보는 표정이 나머지 하나를 노리는 낌새다.

이대로 두면 무엇인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후회할 듯했다.

재빠르게 남은 달걀을 상의 안쪽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일단은 동생이 오면 그때 고양이에 관해 물어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이 두루마리 속 그림은 진짜 어디서 본 느낌인데···.’


그림이니, 그림 좋아하는 동생이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있을 법도 했다.

고전 산수화들을 소개하는 책은 두 권이었는데, 천천히 훑어보고 있다.


“어? 안견의 몽유도원도? 비슷한 거 같긴 해도 좀 다르잖아? 흠, 이 당시엔 낙관이란 게 없던 시대라고 써진 거 보니, 확인하긴 어렵겠어. 정확히는 같은 사람이 그린 건지는 모르겠네. 아니면 모작일까?”


두루마리 속 환상을 겪은 희철의 생각은, 그리 논리적이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달걀로 인해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 그림의 테두리 푸른빛도 이제는 안 보이네. 착각한 건가? 일단은 시도나 해보자.’


알 수 없는 두루마리 속 첫 장 그림을, 집중해서 쳐다보기로 했다.

저 풍경 속 세상에 들어간 것도, 이렇게 집중해 보다가 그리된 거 아니었는가.


신비했던 그곳엘 다시 들어가서 오래 있진 못했다.

그래도 희철에게 베푼 은혜는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이다.

닭을 골려주려 한 것이긴 해도, 결국은 또 그런 짓을 한 것이 새삼 양심에 찔렸다.


눈 아프게 한 시간 남짓 인내를 가지고 쳐다봤지만,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머지 세 장의 그림도 별 변화가 없다.

그냥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이고, 낙관도 없으니 더욱 알 수가 없었다.


단지 한 장의 그림만, 한자로 쓰인 네 글자가 오른쪽 위 한쪽에 적혀있다.

그것도 낙관 자체는 아니었다.


*****


-삐이걱···.


“오빠! 나 왔어! 밥은 먹었어?”


동생이 들어오는 소리에, 미련만 남던 두루마리는 장롱에 넣었다.

빠르게 방문을 열고 나선다.


“아···. 먹긴 했는데···. 너도 출출해질 시간이긴 하네? 그러게, 집에서 공부해도 될 걸, 굳이 힘들게 학교에서 늦게까지 있냐? 인문계 갈 것도 아니잖아?”


오빠의 잔소리에 픽 하고 웃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주방으로 들어간다.

동생이 어지간히 배고팠나 보다.


문득 상의 안에 있는 달걀이 생각났다.

병아리로 만들 재주도 없거니와 놔둬 봤자다.

알 수 없는 고양이의 간식거리나 될 게 분명했다.

컵을 하나 꺼내서 폭 깨뜨려 따라놓고, 참기름을 살짝 올려 준다.


“이거 좀 비릴지도 모르지만, 오늘 낳은 유기농 달걀이야. 오빠가 하나 좀 전에 먹고 이건 너 먹이려고 놔둔 거야.”


가끔 기관지나 목이 안 좋을 때, 오빠가 이런 식으로 챙겨줄 때가 있었다.

그리 입맛엔 안 맞았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을 과장되게 보여주는 동생이다.


희정은 눈을 딱 감고, 건네받은 날달걀을 호로록 고개 젖혀 삼켰다.

먹는 동생의 모습에 희철의 입가엔 미소가 절로 번진다.


“어라 오빠? 이거! 이거! 평소 먹던 달걀이랑 다른데? 맛이 상큼 달콤해! 어. 엄.청! 특별한 느낌이야. 어디서 사 온 거야?”


동생의 호들갑에 기분이 좋긴 했다.

마땅히 대답해줄 게 없는 데다, 또 사 오라고 할까 봐 화제를 돌렸다.


“너 혹시 고양이를 어디서 분양받아온 거야? 잘 키울 자신은 있고?”


“응? 무슨 고양이? 도둑고양이라도 마당서 본 거야? 나도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도둑고양이는 습관 고치기 어렵잖아?”


갸웃거리던 희철은, 동생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일단 들어왔다.


“저기 보이지? 책상 아래에 하얀 고양이 새끼가 있잖아. 쟤는 어디를 통해 이 방에 들어온 거니? 진짜 저놈 첨 봐? 난 네가 데리고 왔는지 알았는데. 이상하네? 생긴 건 꽤 비싸 보이는데.”


“저, 저 고양이···.”


“이 동네서 저런 고양이를 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읍 사무소 최 주사댁에 페르시안이란 하얀 고양이가 있거든?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쟤처럼 생기진 않았더라고.”


"꺅! 그럼, 내꼬야! 어머! 어머! 이게 뭐야? 얘 진짜 어디서 났어? 설마 깜짝 이벤트 설정! 아냐? 어쩜! 어쩜!”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향해 꼬리를 세우며 경계하던 고양이가 이놈 맞나?'


그런 의심이 갈 정도로, 동생이 껴안아 주니 야옹 소리도 안 냈다.

오히려 꼬로롱 대며 동생의 몸에 머리를 비벼 댄다.


달걀을 같이 먹은 동지다 보니, 동질감이 생긴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혹시나 하여 며칠간 동네를 돌아다녔고, 읍 사무소도 갔다 왔다.

동생 친구들을 통해, 고양이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가도 알아봤다.


그리고 저녁에는 두루마리를 펼쳐, 그림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별다른 소득도 없는 일주일을 보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편해져 갔다.

더는 두루마리에 미련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고양이를 다시 보낼 일도 없었다.

그러고 나니, 이보다 속 편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알아낸 게 있다.

저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내긴 하는데, 어쩌다 한번 하는 식이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동생이 사 온 고양이 사료도 잘 먹긴 하지만, 가끔가다 생 닭고기도 먹는다.

그 외에도 신선한 건 잡다하게 다 먹는 것도 같다.

최 주사 아저씨에게 물으니, 고양이가 그럴 리 없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성실한 머슴 오빠로 재등극하였다.

요즘은 동생도 미대를 위해 준비 중인데,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인천을 다녀왔다.

그 덕분에 주말엔, 고양이랑 놀아주는 집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요즘은 꽤 많이 어울려 줘서인지, 자기 머리를 비벼대고 어쩌다 가끔은 안겨 오기도 한다.

최 주사 아저씨 말로는, 고양이는 어릴 때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한다.


‘그럼 조선 시대 내시들은, 엄청나게 오래 살았단 말인가?’


빠숑이를 데리고, 교동도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동물병원으로 갔다.

중성화 수술도 받아야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서다.

한 달 정도도 안 돼서 등치가 너무 커졌다.

소문으로만 얼핏 들었던, 외국종이라는 노르웨이숲 고양이 정도는 될 듯하다.


버스를 타고 올 때부터 시선의 집중을 받더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대신 동물병원의 분위기가, 버스 분위기와 비슷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걸려있던 종소리가 딸랑딸랑 거렸다.

장난치고 놀던 동물들은, 새로운 고양이가 보이자 관심을 두고 눈을 반짝인다.


그중 대형 견인 도베르만이 철장 안에 있었다.

저 도베르만은 큰 식당을 하는, 읍내 유지인 함 사장이 기르는 개인데 유명하다.

좋은 뜻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사고를 종종 쳐서다.

자기 주인을 닮아서 성격이 개차반이다.


그 도베르만이 빠숑이가 지나갈 때, 험악하게 이를 드러내고 끄르르 댔다.

자기 딴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신입에게 인지시키려는 것이다.

빠숑이는 그게 어이없었는지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그걸 느낀 도베르만은, 철창 밖으로 나오려는 듯이 탕탕 치면서 이를 더 드러냈다.

그 순간 빠숑이가 한 짓은 딱 두 가지다.


10초간 노려보는 거! 그리고 ‘키히~햐악~!‘ 하고 소리 내준 거.


빠숑이의 번득이는 눈빛에, 도베르만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후다닥거리며 놀던 것들도 조용해졌다.

개와 고양이들이 얼음 땡 걸린 것처럼, 몇 초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런 의외의 분위기에 희철이는 괜히 미안해졌다.

반갑게 맞아주던 원장과 직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하하, 우리 고양이가 좀 시크 하답니다.”


희철의 너스레에 원장은 웃더니만,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빠숑이를 보던 원장은, 좀 전의 그 특이한 울음소리에 기죽던 도베르만이 생각났다.

비록 원장도 동물을 사랑하지만, 그 도베르만만큼 악의적인 놈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여러 번 다치게 했던 놈이고, 그걸 반성하기보단 자기의 훈장으로 삼았다.


그런 개가 눈빛 한번과 울음소리 한 번에 오줌을 쌌다.

그 울음소리에 무슨 특별한 파장이 있나 싶었다.

어쨌든 지금 자신이 할 일은, 고객이 요청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 암컷이군요. 생후 몇 개월인가요?


”음,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우리 집에 왔거든요. 근처에 주민들도 다 모른다고 하고요. 집에 온 지는 한 달 좀 되었네요.“


한 달? 한 달 된 고양이가 성인 묘보다 훨씬 더 크다.


”금방 자라기에, 원래 이 종족이 그런 건지 알고 싶어 온 것도 있습니다.“


”아? 이 고양이의 종족을 알고 계시나 보네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 고양이는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그 희귀하고 귀한···.“


”우 와, 우리 고양이가 그 정도로 전설을 찍는 고양이인가요?“


”아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덩치까지 큰, 비만 고양이 아닌가요?“


특이한 종족이긴 한 거로 여겨지긴 했었다.

희철이가 아는 고양들과는 묘하게 달라서다.


”놀라시기에 기대했는데, 단순하게 비만 고양이라뇨! 제가 아는 거랑 다르잖아요! 전문가이신데 장난 그만하시고, 대체 어떤 고양인가요?“


”오! 고객님이 알고 있는 이 고양이 종이 뭔가요? 특이하긴 특이하네요.“


’이 사람 멀까?'


희철은 원장과 눈빛을 맞췄다.


‘자신이 동물병원 원장이면서 손님에게 고양이 종을 묻다니. 설마, 돌팔이는 아니겠지?’


”이거 노르웨이숲 고양이잖아요. 다 아시면서.“


”네? 알긴 제가 뭘 알아요. 노르웨이숲과 닮은 거라곤 덩치 크다가 전부입니다만.“


”어디가 다른데요?“


괜한 질문을 했다.

노르웨이숲에 대해 열렬히 지식을 뽐내고 계셨다.

어찌 됐든 특별하고 희귀하고 희귀한, 잡종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중성화 비용 상담을 위해 희철은 원장실로 들어갔다.


”암컷은 10만 원이고 수컷은 4만 원입니다. 그리고 건강하게는 보이는데, 접종 같은 것은 전혀 안 했습니까?“


”네,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건강이 넘치기에 별로 생각도 없었고요. 저 정도면 굳이 안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럼 이제 성별도 없어지는 건가요? 중성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자신이 수의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아서 판단 다 내리고 있는 희철을 원장은 빤히 쳐다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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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교토 국립박물관 22.06.05 227 7 11쪽
32 나라 국립박물관 22.06.04 257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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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당 용병과 신도 용병 22.05.27 366 13 12쪽
14 가정교사 +1 22.05.26 389 16 11쪽
13 빠숑의 정체 22.05.26 370 17 11쪽
12 새 가슴인가? 22.05.24 391 16 11쪽
11 웬 금 달걀? 22.05.24 382 14 11쪽
10 청일전쟁 코스프레 22.05.23 403 14 11쪽
9 이제 건물주다 22.05.23 401 15 11쪽
8 주식을 모른다 22.05.22 431 18 11쪽
7 그림 경매 22.05.22 441 17 11쪽
6 그림 팔기 22.05.21 505 22 11쪽
» 빠숑 22.05.21 554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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