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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검림(刀山劍林)

구룡천하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도검
작품등록일 :
2007.07.11 18:23
최근연재일 :
2007.06.01 11:48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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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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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340

작성
07.05.3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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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룡천하(九龍天下) 第三章 제발 제게 힘을 주십시오 - (一)

DUMMY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분명 의식이 돌아왔건만, 낯선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머릿속에 자리한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지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했다.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몸은 잔뜩 웅크린 채로 누군가가 손을 내밀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움찔거렸다.

서동백은 소년을 방에 혼자 두고 화영령과 화대정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내게 맡겨도 될 듯 싶네. 정신이 돌아왔으니 방법이 있을 것 같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동백의 말에 화대정이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고, 곁의 화영령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것보다 자네에게 일러둘 것이 있네. 아니 부탁이라 해야 맞겠군.”

“말씀하시지요.”

화대정은 극진했다.

서동백이 소년을 안고 이곳 화씨의가로 처음 왔을 때 화대정의 부친인 화경선이 별원을 내주며 화대정에게 잘 보살피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평소 정중히 대하긴 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극진한 모양은 아니었다.

서동백은 속으로 ‘많이 놀라긴 했나보다’라고 생각했지만 모른 척 하며 제 할 말을 했다.

“원래는 저 아이가 정신을 차리는 대로 마련 중인 거처로 옮길 생각이었네만, 오늘 사단도 있고 해서 계속 머물러야겠네.”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한데, 저들이 다시 올 것 같습니까?”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화대정이 무거운 얼굴을 하자 서동백이 마지못해 말했다.

“내가 머무르는 동안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화대정은 무공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화씨의가에 적을 둔 모든 의원들이 그러하듯 화대정 또한 내공을 수련하고 있었고, 상당한 공력을 쌓은 상태였다.

그러하기에 좀 전에 보여준 서동백의 신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화대정의 걱정은 점창이라는 이름에 있었다.

낙일검문의 뒤에는 분명 점창이 있었고, 유고황은 이 점을 확실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화대정의 굳어진 얼굴이 펴지지 않고 있을 때 칼칼한 음성이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데 무얼 그리 생각하는 게냐?”

귀에 익숙한 음성에 화대정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 나오셨습니까.”

“할아버님!”

거미줄 같은 주름투성이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화씨의가의 가주인 화경선이었다.

화경선은 자신을 반기는 화영령에게 인자한 할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를 건네준 다음 화대정에겐 못마땅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저리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에잉! 쯧쯔쯔!”

혀를 차는 화경선에게 서동백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사람 보는 눈은 자네가 더 없는 것 같네.”

“엥? 그건 무슨 소린가?”

“세상에 저 친구만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리 불만이 많은 겐가? 덕(德)과 예(禮)를 알고 있어 위(上)를 공경하고 아래(下)를 불쌍히 여기는데다, 자네의 뒤를 이어 인술(仁術)을 펼치니 칭송하지 않는 이들이 없는데 무얼 더 바라는 겐가?”

“험험! 그런가?”

“더 말해 무엇 할까? 입만 아프지.”

헛기침을 하는 화경선이나 고개를 저으며 넌지시 투덜거려 본 서동백이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두 사람과는 달리 화대정은 얼굴이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잠시 후 화경선이 화대정을 바라보며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이 친구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다. 점창 아니라 강호 전부가 달려들어도 신경 쓸 것 없다. 알았느냐?”

“예.”

화경선의 말대로라면 서동백이 홀로 점창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너무 놀라운 말이라 쉽사리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믿었다.

부친 화경선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대충 듣긴 했다만, 자세히 말해 보거라.”

화경선의 말에 화대정이 자세를 바로 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짧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화경선은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이었다. 낙일검문의 횡포를 성토하듯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화대정은 부친의 그런 모습이 의아하면서도 서운했지만, 감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화경선이 그런 화대정을 슬쩍 바라보더니 말했다.

“불한당 같은 놈들이 내 손녀를 빼앗아가려는데 어찌 화가 나지 않을까. 이 친구가 있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난 근본이 의원나부랭이인지라 이 친구의 제자를 치료할 방도를 찾을 뿐이고, 이 친구는 무인이니 내 손녀를 지켜줄 것이 아니겠느냐? 켈켈켈! 그야말로 상부상조(相扶相助)인 셈이지.”

“허! 혼자서 정하는 상부상조도 있다던가?”

동의한 적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서동백의 표정은 잔잔한 가운데 모든 걸 수긍하는 듯했고, 화대정은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화영령은 어른들의 말씀으로 보아 모든 일이 잘 된 것만 같아 그저 방긋방긋 웃을 뿐이었다.

화영령은 방긋 웃는 얼굴로 소년이 잠들어 있는 방을 돌아보다 화경선의 말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내고는 물었다.

“할아버지, 저 애가 서 노야의 제자에요?”

“응? 그걸 몰랐더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인데. 저런 머리로 어찌 의원을 할꼬!”

나름 명석한 머리라 자부했었던 화영령이기에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말했다.

“제가 부족한건 다 할아버지 탓이에요.”

“엥? 그게 무슨 말이냐? 왜 내 탓이라는 거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물어오는 화경선, 그런 화경선에게 화영령이 심통 난 아이처럼 고개를 모로 돌리며 말했다.

“제가 어느 분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되실 줄 압니다.”

“잉?”

“푸하하하!”

대소(大笑)를 터트리는 서동백과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화대정을 번갈아 보던 화경선이 끝내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끄응!”

그제야 화영령이 입가의 장난기를 지우고는 싱긋 웃는다.

화경선이 화영령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십오 세에 침술이 경지에 오른 화영령이 어찌 명석하지 아니할까? 화영령을 바라보는 화경선의 눈엔 자랑스러움이 한 가득이었다.

“엣헴! 제자로 삼을 요량이 아니라면 지난 십년동안 소식 한 자 없던 사람이 기식이 엄엄한 아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을꼬. 아니 그렇느냐?”

과연 그랬다.

특별한 관계가 있는 이가 아니라면 가까운 의원을 찾지 이 먼 곳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화영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간단한 이치조차 간파하지 못한 자신의 우둔한 머리를 탓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화영령의 표정을 읽은 화경선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부족한 게 아니다. 이런 건 머리가 아닌 눈치로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고 눈치라는 놈은 지나가는 세월이 하나씩 가져다주기 마련이란다.”

그제야 화영령이 화경선을 쳐다보며 방긋 웃었다.

맑게 웃는 화영령의 모습에 세 사람은 흐뭇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따스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화씨의가는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의가이다 보니 여느 곳 보다 깨어있는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적막하리만치 조용하기만 했다.

침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동백의 노안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갑작스런 현실이 가져다줄 혼동을 소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눈앞에 선했다.

서동백 자신이 이어온 사문의 원한과 소년 개인의 원한, 운명은 소년으로 하여금 피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도록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복잡한 시선으로 소년을 내려다보던 서동백이 손을 놀리자 잠시 후 소년이 눈을 떴다.

“.........!”

소년은 말이 없었다.

낯선 방, 낯선 얼굴 때문인지 잠시 주변을 돌아보던 소년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이내 두려움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서동백은 부드럽게 말했다.

서동백이 갑자기 입을 열자 흠칫 하던 소년이 목소리에 담긴 따스함을 느꼈음인지 조금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자한 얼굴을 한 서동백이 예의 그 따스한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여기는 의가이니라. 넌... 오랫동안 아팠단다.”

순간 소년의 불안감이 커졌다.

서동백은 기감을 통해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서동백이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지금은 어느 때보다 건강하단다.”

금세 잦아드는 불안감, 소년은 서동백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서동백의 인자한 모습과 따스한 목소리가 소년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조금은 진정한 듯 보이는 소년이 방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서동백은 소년의 시선이 뜻하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이가 부모를 찾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이었다.

“네 손을 잡아 보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

부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금세 고개를 쳐드는 두려움 속에서 소년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말했지 않느냐? 넌 오랫동안 아팠다고. 하여 아픈 곳이 또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려 한단다. 물론 네가 원치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마.”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건 당황, 그리고 고민.

물론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서동백의 얼굴을 뚫어져라 올려다 보던 소년이 이윽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서동백이 예의 그 인자한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년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서동백이 소년의 손을 막 잡는 순간 소년이 흠칫했으나, 손을 빼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동백은 소년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손목의 맥을 짚지 않았다. 가만히 어루만지듯 잡고만 있을 뿐이었다.

기감을 통해 맥 정도는 쉽게 짚을 수 있었기에 굳이 손목을 잡을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소년의 손을 굳이 잡은 이유는 접촉을 통해 좀 더 소년과의 벽을 허물고자 함이었다.

서동백은 손을 통해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을 소년의 몸 안으로 흘려보냈다.

소년의 얼굴이 갈수록 편안해졌다.

잠시 후 소년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을 느낀 서동백이 부드럽게 말했다.

“좋구나. 아픈데도 없고.”

소년의 얼굴에서 경계심이 빠르게 허물어졌다.

“내 이름은 서동백이라고 하는데, 네 이름을 알 수 있겠느냐?”

잠시 멈칫하는 소년.

미간을 꿈틀거리며 서동백을 바라보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요, 용소진입니다.”

“용소진? 정말 좋은 이름이로구나!”

소년이 웃었다.

그러나 소리 없이 웃었다.

마지막 한 꺼풀이 벗겨지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빨리 가까워지는 것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었고, 마지막 한 꺼풀이 벗겨지지 않은 것은 낯선 곳, 낯선 얼굴 그리고 부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리라.

서동백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진아!”

“......”

서동백이 낮게 부르자 용소진이 입을 닫고는 서동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용소진을 내려다보며 주저하는 서동백.

서동백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결국은 꺼내야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형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동백은 용소진에게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계셨는지 형제는 몇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아는 거라고는 용가촌에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용소진의 부모형제가 몇이 되었든 살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동백은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어둠은 점점 짙게 깔렸고, 서동백의 음성은 낮고 차분했다.

그리고 용소진은 밤이 새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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