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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검림(刀山劍林)

구룡천하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도검
작품등록일 :
2007.07.11 18:23
최근연재일 :
2007.06.01 11:48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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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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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수 :
54,340

작성
07.06.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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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구룡천하(九龍天下) 第四章 빗방울은 오랫동안 쏟아져 내렸다 - (二)

DUMMY

아침이 되자 장대비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비와 수련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적어도 용소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비가 온다고 해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동백 또한 그것을 만류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구룡창을 들고 비가 쏟아지는 밖으로 나가려는 용소진을 서동백이 불러 세운 것이다.

“이리 오너라. 할 얘기가 있구나.”

용소진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서동백은 잠시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다 용소진이 답답해할 때쯤에야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무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니와 네가 원한다고 해서 경지가 올라서는 것도 아니질 않느냐? 그걸 알면서도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면 분명 탈이 나기 십상이다. 네가 얻고자 하는 것엔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따른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았으면 싶구나!”

“........”

용소진은 말이 없었다.

어찌 그라고 해서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르겠는가? 알면서도 앞서가는 마음을, 조급해 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늘부터는 하루에 한 시진씩은 수련을 중단하고 이곳 의원들이 시키는 대로 환자를 돌보는 일을 돕도록 하거라.”

“사부님!”

용소진이 깜짝 놀라 했다.

그러나 서동백은 단호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한낱 살귀가 될 뿐이다. 그러니 잠자코 내말대로 하거라.”

단호한 서동백의 모습에 용소진의 어깨가 처졌다.

서동백은 제자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복수에 연연해 무공에 미쳐가는 제자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런다고 해서 무공이 금방 올라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신이 명경지수처럼 깨끗한 상태에서 수련을 해야 일취월장이라는 소릴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잠시 후에 령아가 올 것이니 그리 알고 기다렸다가 따라가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용소진에게 서동백이 한 마디를 더 했다.

“이놈아! 언제 이 사부가 복수를 하지 말라더냐? 이 사부는 부처도 뭣도 아니다. 원한은 갚아야겠지. 이 사부 또한 사문의 원한을 갚고자 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허나 모든 일엔 순리가 있는 법. 원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 터,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선 그만한 무경(武境)에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 네놈처럼 마음만 앞서가지고 몸만 놀린다고 경지에 오를 것 같더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지극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네 자신부터 관조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평정심을 갖추어야 한다고 누누이 이르지 않았더냐?”

숨 한 번 쉬지 않고 쏟아내는 서동백의 일갈에 용소진이 고개를 떨구었다.

“휴! 이놈아! 급한 마음을 버리면 흘러가는 시간이 널 원하는 경지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 사부를 못 믿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황급히 고개를 드는 용소진.

서동백이 어느새 두 눈에 위엄을 가득 싣고 있었다.

용소진은 감히 스승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다시금 고개를 떨어트렸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고개를 떨군 용소진을 내려다보는 서동백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제자와 좀 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서동백은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네가 바른 길을 가야 이 사부도 마음이 놓일 것이 아니겠느냐! 이 늙은 사부가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서동백의 얼굴은 일 년 전과는 달리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나고 있었다.


* * *


맑은 물에 손을 담그자 이내 붉은 핏물이 번져갔다.

손을 가만히 휘젓자 붉은 핏물이 더욱 빠르게 퍼져갔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 있던 손은 그만큼 더 빨리 제 색을 찾았다.

손을 건져내자 붉은 물이 손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붉게 물들어 있는 손, 반쯤은 제 색을 찾고 있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피가 두렵진 않아! 복수를 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것이 두렵다.’

용소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때 쾌활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뭐해?”

“.....”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화영령이었다.

“손 씻다 말고 뭐하냐구?”

곁에 거리낌 없이 쪼그려 앉으며 묻는다.

“그냥.”

대충 대답하고 손을 씻는 용소진.

화영령이 그런 용소진을 보고 피식거린 후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장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억수같이 퍼붓더니만, 이제 물러가려나 보네.”

용소진이 화영령을 돌아봤다.

희고 고운 얼굴선이 보였다.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는 보슬비가 그런 화영령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화영령이 눈을 감았다.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옅은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난 환자를 돌보는 게 좋아.”

“........?”

“내 도움으로 병이 낫거나 편안해 하는 환자들을 보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

용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진심이리라.

처음으로 그녀를 도와 환자들을 보살펴 보았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새하얀 무명천을 건네고, 약병을 건네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짓이겨진 환자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당황스러울 법도 하건만 화영령은 침착하게 환자를 다루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환자, 화영령을 도와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핏물이 이내 손을 적셨지만, 침착하게 환부를 살피고 치료하는 화영령의 모습을 바라보느라 느끼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잠이 든 환자를 내려다보는 화영령의 모습은 너무나 자애로워 보였다.

그동안 수련을 방해하는 존재로만 여겼었는데, 새롭게 느껴졌다.

“비도 그쳤으니까, 밥 먹고 잠깐 나갔다 오자.”

순간 흠칫 상념에서 깨어난 용소진이 특유의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열흘 되려면 멀었는데?”

화영령이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금선토룡(金線土龍)을 잡으러 가려고 하는데, 너랑 같이 갈까하고 물어 본 거야. 근데 싫어?”

“......?”

“나하고 함께 있는 게 싫은 거냐고?”

“그게 아니라...”

용소진은 말을 맺지 못했다.

화영령이 고개를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풋!”

웃음을 터트린 화영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으면 마라. 네 말대로 열흘이 되려면 멀었으니까.”

멀어지는 화영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용소진은 벌써부터 갈등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 *


휘두르는 창에 힘이 없었다.

움직임도 어지럽기만 한 것이 그가 휘두르는 건지 창이 그를 인도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난했다.

상념을 떨치고자 크게 휘두른 창을 땅에다 강하게 내리 찍었다.

쿠-웅!

지면의 울림이 발바닥을 간지럽게 할뿐, 머릿속의 상념을 떨쳐낼 순 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자 지나가는 먹구름 속에 갇힌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저만큼 이동해 있었다.

족히 일다경은 지났으리라.

고개를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질척인 땅이 헝클어진 그의 머릿속만큼이나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휴우!”

한숨을 토해낸 용소진이 구룡창을 분리해 허리에 차며 걸음을 옮겼다.

의가의 정문을 향해서였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까?’

벌써 일다경이나 지났으니 아마도 출발했으리라.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정문으로 향하는 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을 빨리했다.

질척이는 땅이 신발에 달라붙었고, 성큼 걸음에 튀겨진 흙탕물이 바짓가랑이를 적셨지만, 용소진은 그에 아랑곳 않고 오히려 걸음을 빨리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괜스레 다급해 진 것이다.


의가의 정문에서 서성이는 화영령.

오가는 의가의 사람들이 그런 화영령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안 오려나 보네.”

의가의 안쪽을 바라보던 화영령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이제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동이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누나! 빨랑 가자.”

화영령의 부친에게 의술을 배우고 있는 엽송이란 사람의 아들로 이름이 엽대보였다.

화영령이 엽대보의 채근에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밖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돌아선 그녀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투덜거렸다.

“쳇, 서운하게...”

바로 그때 귀에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줄 알았는데...”

화영령이 번개같이 돌아섰다.

용소진임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함박만한 웃음이 지어졌다.

“왔구나.”

“아직 안 갔네?”

“응, 지금 갈 거야. 같이... 갈 거지?”

용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영령이 방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마주 끄덕인 다음 돌아서서는 엽대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뭘?”

엽대보는 등에 작은 등짐을 지고 있었고, 어깨에는 가죽주머니를 걸치고 있었다. 자신은 사내니까 자신이 들어야 한다고 우겼던 것이다. 그리 무거운 게 아니었기에 화영령은 내버려 두었었다.

화영령이 가리킨 것은 엽대보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가죽 주머니였다.

엽대보가 가죽주머니를 움켜잡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싫어. 내가 잡을 거란 말야.”

순간 화영령이 눈을 부라리며 인상을 썼다.

엽대보가 또 다시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화영령이 눈을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더욱 크게 치뜨고는 삐죽이 내민 입을 씰룩이며 한 걸음 다가갔다.

그제야 엽대보가 가죽주머니를 내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갈 거야.”

엽대보의 손에서 가죽주머니를 채간 화영령이 손을 들어 의가 안쪽을 가리켰다.

따라오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무언의 명령.

엽대보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리고는 도리질 쳤다.

무언의 반항.

그러나 화영령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고, 한 번 안 되는 것은 영원히 안 되는 마녀라는 것을 어린 엽대보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의가 안쪽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엽대보가 용소진을 지나치던 순간 용소진의 정강이를 느닷없이 걷어찼다.

“어?”

그동안 수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용소진이 엽대보의 발길질을 어렵지 않게 피해버렸고, 그로 인해 헛발질을 하게 된 엽대보의 몸이 뒤로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뒤뚱하며 넘어갔다.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엽대보가 질퍽이는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재빨리 일어나 허리에 양손을 척하니 올리고는 용소진에 맞서는 엽대보.

“이씨, 협객불망원(俠客不忘怨)! 히히히!”

화를 내다 갑자기 히히거리며 줄행랑을 치는 엽대보, 영웅전기를 듣고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내뱉게 되어 좋아라하는 엽대보의 마음을 두 사람은 알 도리가 없었다.

“저 녀석이...”

뒤에서 화영령이 으르렁거려 보지만 엽대보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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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천하(九龍天下) 第四章 빗방울은 오랫동안 쏟아져 내렸다 - (二) +27 07.06.01 14,744 4 11쪽
9 구룡천하(九龍天下) 第四章 빗방울은 오랫동안 쏟아져 내렸다 - (一) +31 07.06.01 15,93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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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룡천하(九龍天下) 第一章 용가촌(龍家村) - (一) +25 07.05.26 23,098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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