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가까워지는 걸음(3)
드물게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류선과 하리가 다소 피곤한 기색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늦었어요.”
검지를 흔들며 류선과 하리에게 말하는 신유의 얼굴에도 피곤이 가득 묻어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양이 적군.”
미리 와서 먹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저 식탁 위에 접시들이 한가득 쌓여 있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빈 접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접시에 담긴 음식의 양이 적어진 것으로 보아 먹기는 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뭐어, 맨날 많이 먹을 수는 없잖아요.”
신유의 무덤덤한 말에 과연 저 자가 신유가 맞나 하는 류선과 하리의 시선이 향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사건 이후 눈에 띄게 먹는 양이 줄은 신유였기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자도 잔 느낌이 안 드네요.”
분명 자기는 잘 잔 것 같은데.
인간이 아닌 지라, 고작 하루 못 잔 것 가지고 심한 피로를 느끼지 않을 텐데.
못 잔 것도 아니고, 잘 잤는데도 몸에 가득 달라붙은 피곤에 하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몸이란 게 생각보다 예민하거든요.”
하리의 의아함 가득한 말에 신유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무심히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런 거죠.”
그 말을 끝으로 묵묵히 먹고만 있는 신유를 향해 류선이 무심한 듯 관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오늘은 밖에 안 나갈 건가?”
“으음, 왜요? 저랑 산책 가고 싶으신 거예요?”
하여간, 이놈의 인기란.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신유가 씨익 웃었다.
“착각도 병이지.”
이젠 저 정도의 대답은 놀랍지도 않다며 류선이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밖에 나갈지 말지는 좀 더 고민해보구요.”
나가봤자 좋지 않은 것만 볼 텐데, 굳이 나가야 할까.
특히나 이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을에 흐르던 이질감을 알아챈 신유였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모른 척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끄응, 밖에 나가고 싶지는 않은데, 류선 공자가 원하는 것 같으니 특별히 같이 나가 드릴게요.”
“하?”
자신은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만?
류선의 어이없어 하는 시선에 신유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었다.
“아닌 척 해봐야 소용없어요. 전 류선 공자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거든요.”
“퍽이나 그렇군.”
자신의 마음을 읽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신유를 향해 류선은 늘 그렇듯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무언가가 거슬리는 군요.”
신유와 류선의 만담을 구경하며 천천히 식사를 하던 하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가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달까.
분명 이상한 건 없는데.
“헤에. 뭐가요?”
하리의 말에 관심을 보인 신유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쎄요, 그걸 저도 몰라 당황스럽습니다. 류선은 안 그렇습니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군.”
류선 역시 그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원래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감이 좋다고 하죠.”
“그 말은 이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말이군.”
그동안 그들이 느끼지 못했던 것을 항상 자신들보다 먼저 알아챘던 신유이니, 신유가 저리 말한다면 정말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일 터였다.
“요괴인가.”
“글쎄요, 요괴라고 해야 할지,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저도 그게 고민이네요.
장난스럽게 웃는 신유의 얼굴에 잠깐 날카로운 빛이 서렸다 사라졌다.
“자, 그럼 밥도 먹었겠다 소화도 할 겸 산책을 가볼까요?”
조금 전의 귀찮아하던 모습은 착각이었던 양 신유가 씩씩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유를 따라 걷던 류선은 걸으면 걸을수록 진해지는 묘한 이질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뭘까.
뭐가 이상한 걸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상한 점은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여느 마을과 같았다.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자기네끼리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
그들에게서 요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지.
요기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인간이 아닐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류선의 눈엔 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었다.
“왜요, 뭐가 이상해요?”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살펴보는 류선에게 다가가며 신유가 슬그머니 장난을 쳤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군.”
“무슨 느낌인가 싶었는데, 류선의 말을 들으니까 알겠군요. 그래요,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하리 역시 아까부터 드는 미묘한 느낌에 정체를 알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건만, 류선의 말을 듣는 순간 그것이 인위적임, 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작한 느낌의.
“헤에, 그래요?”
마치 제법이다,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의 표정을 지으며 신유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신유, 그대는 이유를 아는가?”
아까부터 보이던 신유의 미묘한 반응을 떠올리며 류선이 물었다.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그래서 지금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달까요.”
물론 신유가 느끼는 것이 류선이나 하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구체적이었지만, 그녀라고 전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마을에 돌아다니고 있는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 인간일지, 아니면 그저 평범하지 않은 인간일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 작가의말
이사 오고서 최대한 열심히 써서 겨우 어제 완결을 냈네요..
그런 고로 오늘 부터 매일 한편 씩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헷, 휴재라고 하고 일찍 왔는데, 저 예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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