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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의 글방

설산대형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필명
작품등록일 :
2011.12.22 06:11
최근연재일 :
2011.04.28 08: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37,800
추천수 :
856
글자수 :
30,928

작성
11.04.27 08:02
조회
20,411
추천
85
글자
7쪽

설산대형 3 설산 성모봉2

DUMMY

동혈의 입구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지만 안은 기화이초가 만발하고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온천이 있는 별천지였다.

강남에서도 제법 잘나가는 거부의 저택에서나 볼 수 있는 잘 가꾼 정원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춥다는 성모봉의 뒤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비는 소군을 내려놓고 풍로에 불을 지핀 다음 봇짐에서 약초와 약탕기를 꺼내 약을 달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알싸한 약 냄새가 동굴을 메우고 곤히 잠들어 있던 소군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소군은 코를 킁킁대며 사방을 둘러보고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허억! 여, 여기가 어디에요?”

비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이곳이 바로 극음의 뒤편에 있는 열화천이다.”

소군이 온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극양의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이 열화천인가요?”

“그렇지, 극양의 기운이 네 병을 낫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먹어야 할 약이 있다.”

소군이 쪼르르 달려와 비의 옆에 자리했다.

“저를 위해 이 약을 달이는 건가요?”

비가 뚱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럼 이렇게 쓴 약을 내가 먹자고 달이겠어? 난 입에 쓴 약은 안 먹는다.”

소군은 비의 팔짱을 끼며 바짝 기대왔다.

“전 쓴 약도 잘 먹어요. 고마워요, 소매를 위해 약까지 달여 주시고.”

비는 소군을 확 밀어내며 정이라곤 하나도 담기지 않은 냉랭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이 정도 수고는 해야지.”

소군은 바닥에 나뒹굴긴 했지만 그렁그렁한 눈으로 비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말과 행동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비의 눈에는 자신을 염려하는 인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자빠져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 약이나 먹어라. 그래야 열화천에 들어 갈 수 있다.”

“예, 오라버니.”

소군은 공손한 눈빛을 내보이며 몸을 일으키고 약을 마셨다.

비의 말대로 약은 정말 쓰고 매운 맛이 강해 삼키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소군은 꾹 참고 단숨에 들이켰다.

“이게 무슨 약인가요?”

대답해주리라 기대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물어 본 것뿐이었지만 비는 뜻밖에도 자세히 말해 줬다.

“성모봉 정상에서 자라는 설연화雪蓮花와 백리향百里香, 개체芥菜(겨자)를 달인 약이다. 설연화는 음기가 극에 달하면 양기로 바뀐다. 고질적인 내상과 각종 독을 치료하고 막힌 기맥을 뚫지. 그리고 백리향은 염증과 균을 억제하고 피를 맑게 하는 것이다.”

소군은 숨이 턱 막히며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설산의 설련화와 백리향은 천년설삼과 마찬가지로 기사회생의 영약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실지로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영약을 두 개나 먹었으니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런데 개체는 처음 들어 보는 약재였다.

소군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오라버니, 그런데 개체는 뭔가요?”

“개체는 매운 맛이 나지만 사기를 없애고 구규를 잘 통하게 한다. 또 눈과 귀를 밝게 하기도 하지.”

세 가지 약은 모두 자신의 병을 고치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소군은 감탄성을 내지르며 멍하니 비를 보기만 할뿐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멍청히 있지 말고 옷부터 벗어. 똑 바로 앉아 마음을 편히 해야 내가 약이 잘 흡수되게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소군은 비의 호통이 떨어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겉옷을 벗은 다음 가부좌를 했다.

두툼하고도 묵직한 것이 명문혈에 닿았다.

소군은 눈을 번쩍 뜨고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따끔한 손길이 정수리를 때려 왔다. 어느새 딱밤을 먹은 것이다.

“똑 바로 앉으라 했지? 한 번만 더 뒤 돌아보고 촐랑대면 너 혼자 놔두고 하산할 거니 알아서 해.”

소군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으로 전해 오는 통증을 간신히 참고 몸을 곧추 세웠다.

“예, 오라버니. 다시는 안 그럴게요.”

소군은 공손히 대답했지만 이번에도 꾸중을 들었다.

“멍청아, 대답 안 해도 되니 입 꾹 처닫고 정신을 맑게 해.”

어떻게 해도 호통을 내지르니 소군은 주눅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러고는 좌공을 하기 시작했다.

명문혈에서 봇물과도 같은 진기가 밀려오며 하단전을 맴돌고 있는 내기를 이끌었다.

소군은 그제야 비가 명문혈에 손을 대 내력을 밀어 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는 한 번도 하기 힘들었던 행공을 순식간에 세 번이나 할 수 있었다. 평생 처음으로 삼주천을 한 것이다.

소군은 감격에 겨워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다시 화끈한 딱밤을 먹었다.

“너 정신 똑 바로 차리지 않으면 반신불수 된다. 어린 나이에 똥오줌도 못 가리고 평생을 기저귀차고 지내고 싶냐?”

소군은 마음을 가다듬고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그런 경지 또한 평생 처음 도달한 것이었다.

막힌 기맥이 쿵쾅 소리를 내며 요동쳐댔지만 소군은 모든 것을 비에게 맡기고 마음을 비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온몸이 땀으로 젖은 소군은 청량한 기운이 백회혈에 닿자 번쩍 눈이 떠졌다.

“일어나라.”

소군이 몸을 일으키자 비는 무정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옷을 모두 벗고 열화천에 들어가 대주천을 반복해라.”

소군은 얼굴을 붉히며 비를 바라봤다.

무심한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는 비. 소군은 얼른 시선을 피하며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물었다.

“다 벗어야 하나요?”

“당연하지. 회음을 통해 양기가 들어가고 그 양기가 막힌 기맥을 뚫을 것이다. 고의까지 싹 다 벗어라.”

소군은 몸 둘 바를 몰라 사지를 꼬아 댔다.

“그럼, 뒤 돌아보시면 안돼요.”

비가 콧방귀를 날리며 빈정거렸다.

“쥐똥 만 한 게 웃기고 있네. 보라고 사정해도 안 본다. ‘영글지도 않은 계집아이 알몸을 보면 삼년동안 재수 옴 붙는다’는 속담도 있어. 앞길이 구만 리 같은 내가 그런 짓을 왜 하겠어?”

비는 태연히 말을 내뱉고는 화단으로 가 등을 보인 채 화초를 가꾸기 시작했다.

소군이 아는 바로는 그런 속담은 있지도 않았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옷을 벗은 소군은 작은 손으로 아래 위를 가리고 조심스럽게 걸어 열화천으로 들어갔다.

“허읍!”

종아리만 잠겼을 뿐인데 벌써 숨이 탁 막히며 화끈한 열기가 머리끝까지 밀려 왔다.

“너, 너무 뜨거워요.”

비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호통을 내질렀다.

“뜨거우니 열화천이라 하지, 시원하면 냉천冷泉이라 명명했겠지.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뛰어 들어라. 난 열 살 때 열화천에서 수중공부를 익혔다.”

소군은 호흡을 멈추고 이를 악다문 채 열화천에 몸을 던졌다.

설산의 추위가 팔한지옥이라면 열화천의 열기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이었다.

소군은 몇 번이나 첨벙대며 몸을 일으켰지만 그때마다 비의 서늘한 호통이 떨어졌다.

살이 타는 듯했고 백회와 칠공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졌다. 하지만 소군은 비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

일각이 지나자 고통이 사라지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소군은 마음을 편히 하고 운기행공에 몰입했다.


작가의말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바로 초목랑마, 성모봉입니다.
생각만 해도 춥습니다.
여름에 올렸더라면 좋았을뻔 했네요.
오늘도 당당하게 좋은 하루 되시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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