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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의 글방

설산대형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필명
작품등록일 :
2011.12.22 06:11
최근연재일 :
2011.04.28 08: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37,803
추천수 :
856
글자수 :
30,928

작성
11.04.21 07:01
조회
22,275
추천
79
글자
8쪽

설산대형 1 한매촌2

DUMMY

마을의 끝자락에 자리한 제법 번듯한 모옥 앞에 거한이 멈춰 섰다.

편액에는 ‘문창각文滄閣’이라 써져 있었는데 문창각은 제자백가서와 천문지리, 중원의 각종 실용서를 모아 놓은 한매촌의 서고와 같은 곳이었다.

방에는 희미한 유등이 밝혀져 있었으니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대형, 거산입니다. 들어가도 됩니까?”

거한의 이름은 덩치와 딱 어울리는 거산이었다.

방 안에서 설산의 한설과도 같은 쌀쌀맞은 음성이 들려왔다.

“안 된다. 꺼져라.”

거산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대형,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금 한 냥이 걸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리더니 두툼한 손이 튀어 나와 거산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맥없이 끌려가 바닥을 굴렀다.

방안에는 육 척의 키에 탄탄한 체격을 가진 청년이 한 손에 책을 든 채 서 있었다.

“은도 아닌 금 한 냥짜리 일이라고?”

거산이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예, 대형. 중원에서 온 일남일녀인데 성모봉까지 안내하면 금 한 냥을 내 놓겠다 합니다.”

이십 대 중반의 거산이 약관에 불과한 청년에게 존대를 하고 대형이라 부르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떻게 생겨 먹었는데?”

“사내는 다부진 체격에 날렵한 경공을 펼치는 사십 초반의 무사입니다만, 계집애는 열 서넛이나 됨직한데 약간 골골댑니다.”

청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탁자로 가더니 다시 책을 펼쳤다.

“일 없다. 송장 치를 일 있냐? 그런 애를 데리고 산에 어떻게 올라가? 꺼져라 해.”

거산이 바짝 다가와 애절한 눈빛을 보였다.

“대형, 계집애가 아무리 약해 빠졌어도 대형이 조금만 수고한다면 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일이 끝나면 은 다섯 냥을 더 내 놓는다 합니다. 그러니······.”

청년은 손가락을 튕겨 거산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따악!

차돌 깨지는 소리가 나며 거산이 뒤로 발라당 나자빠졌다.

“아이코!”

“거간비로 얼마를 받기로 했는데 이 안달이야?”

청년의 말에 거산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가 슬며시 하나를 더 펼쳐 셋을 내보였다.

“두 냥이요, 일이 끝난 뒤 한 냥을 더 준다니 엄밀히 말하면 석 냥이지요.”

청년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무골에 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설산을 오를 수 없어. 골골 대는 여아라면 반도 오르기 전에 호흡이 끊겨 뒈지고 말거야. 또 동상이네 가슴앓이네 하며 나자빠지면 밟아 죽일 수도 없고 처치곤란이야. 돈 좀 벌어보겠다고 어린애를 죽게 하면 안 되지.”

거산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들러붙었다.

“잘 타협해서 여아는 남겨 두고 가면 되지 않습니까? 설사 따라 붙는다 해도 동상이니 가슴 병 따위는 대형 실력으로 충분히 치료······.”

말도 다 하지 못하고 거산은 다시 딱 밤을 맞고 나뒹굴었다.

“인간아, 말 되는 소릴 해라. 그렇게 되면 내 밑천을 다 드러내야 돼. 그러느니 안하고 말지.”

거산은 쓴 입맛을 다시며 청년이 보고 있는 책에 시선을 보냈다.

“그나저나 대형께서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무공서적이 아닌 잡서랑은 내내 소원하고도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셨습니까? 도대체 무슨 책을 보십니까?”

청년이 책 표지를 보여 줬다.

‘십팔사략十八史略’

원 대의 역사서로 고대에서 송 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뿐만 아니라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이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구나. 몸보다는 머리를 써서 살아야 장수한다고.”

거산이 침음을 흘리며 빈정거렸다.

“지난 역사책을 봐서 뭐 합니까?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발라당 까졌는데요. 세상 일이 궁금하다면 중원에서 온 사람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낫지요.”

청년의 눈이 빛을 발했다.

“그 사람들이 중원에서 왔다 했지?”

“예, 담비에 수달피까지 걸친 걸 보니 보통 부자가 아닌 것 같습디다. 계집애도 몸은 약해 보였지만 제법 총명해 보였어요.”

설산에 살며 중원에서 온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간혹 사천이나 운남의 약재상들이 오긴 하지만 철면피에 닳아빠진 장사치라 상종할 상대가 아니었다.

청년은 책을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어떻게 생겨 처먹었는지 상판이나 봐 볼까?”

거산이 얼른 유등을 끄고 문을 열었다.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는 생생한 지식을 얻어야 쓸모가 있는 법입죠. 소제가 모시겠습니다.”


@


사당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며 인사 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거산을 따라 온 사람은 뜻밖에도 약관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아닌가?

삼숙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모셔 온다던 분은 어디 계십니까?”

거산이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삼숙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년이 삼숙을 훑어보며 빈정거렸다.

“눈매가 아주 더럽구먼.”

전혀 예상치 않았던 말에 삼숙은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고 목구멍에선 욕이 튀어 나오려 했다. 하지만 소녀가 팔을 꼬집어 오자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청년을 살폈다.

홑겹의 마의를 걸친 초라한 행색이지만 눈매가 서늘한 것이 예사롭지 않고 당당한 체격을 가진 청년.

또래들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사나운 기세를 보인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청년이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딱 봐도 궁합이 안 맞네.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소녀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청년은 북극성 같이 차디 찬 눈길로 소녀를 바라봤다.

키는 오 척에도 손가락 두 마디가 모자라고 안색은 백지장 같이 창백한데다 호흡이 탁하고 맥까지 불규칙한 소녀.

청년은 이채를 띠고 다가오더니 소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매는 매섭지만 측은지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뒷걸음질치고 삼숙이 나섰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제게 하십시오.”

청년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신에겐 할 말이 없소.”

삼숙은 무례하고 대책 없이 나오는 청년에게 일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화를 꾹 누르며 억지 미소를 보였다.


청년은 시선을 돌려 소녀에게 말했다.

“꼬마야, 넌 설산을 오르면 사흘 안에 죽고, 즉각 하산한다 해도 보름을 못 넘기고 송장이 된다. 어서 하산해서 고명한 의원을 찾아라.”

소녀의 안색이 백지장으로 변하고, 삼숙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청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등을 돌려 문간으로 향한다.

삼숙은 청년이 나가려하자 날렵한 신법으로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거산이 주먹을 말아 쥐며 호통을 내질렀다.

“감히 대형의 앞을 막다니, 사지가 성하려거든 냉큼 비켜나시오.”

삼숙은 바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공자, 무례를 용서해 주시고 잠시 시간을 내주십시오. 그리고 이건 귀인을 소개해 주신 사례비입니다.”

삼숙은 소매에서 금전 두 개를 꺼내 거산에게 내밀었다.

금전 하나는 은자 두 냥이고 금전 두 개는 은자로 넉 냥이다.

약속보다 두 배를 더 챙기게 되었으니 운수대통 한 것이지만, 거산은 받지 못하고 청년의 눈치를 살폈다.

청년이 팔짱을 낀 채 나직이 말했다.

“뭐 하냐? 주는 건 일단 챙겨라.”

“대형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일단 받겠습니다.”

거산이 넙죽 돈을 챙겼다.

그러자 청년은 거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받았으면 꺼져야지.”

문간으로 밀려난 거산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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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대형 1 한매촌2 +15 11.04.21 22,276 79 8쪽
2 설산대형 1 한매촌 +10 11.04.20 25,956 46 8쪽
1 설산대형 序 +14 11.04.20 29,284 5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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