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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의 글방

설산대형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진필명
작품등록일 :
2011.12.22 06:11
최근연재일 :
2011.04.28 08: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37,805
추천수 :
856
글자수 :
30,928

작성
11.04.22 07:01
조회
21,853
추천
76
글자
8쪽

설산대형 1 한매촌3

DUMMY

삼숙은 청년을 상석으로 권하고 그 맞은편에 소녀와 나란히 앉았다.

“공자 말씀대로 아가씨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혹시 의술을 익히셨습니까?”

청년은 살짝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녀는 삼숙의 말에 화들짝 놀라 사색이 되었다.

“사, 삼숙,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삼숙이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속여서 죄송합니다.”

소녀의 눈망울에 반짝이는 이슬이 맺히더니 양 뺨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삼숙의 눈에도 대롱대롱 눈물이 매달리더니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간다.

숙연한 분위기였지만 청년은 부스럭대며 품에서 밤을 한 주먹 꺼내더니 엄지로 꼭꼭 눌러 껍질을 벌리고 숯불 위에 얹었다.

이 와중에 밤을 구워 먹겠다는 것 같았다.

단단한 생밤을 손가락으로 눌러 흠집을 내는 것은 상당한 완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삼숙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힘자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숙은 애써 공손한 눈빛을 내보이며 청년을 바라봤다.


소녀는 무심한 청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얼른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공자, 그런데 제 명이 보름 남았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청년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눈에 보이니 아는 거지.”

소녀는 너무도 성의 없이 말하는 청년이 야속해 다시 눈물을 쏟았다.

청년이 버럭 소리쳤다.

“신성한 사당에서 왜 울고 지랄이야? 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원을 만나면 살 수 있는 병이야.”

소녀는 이렇게 상스러운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너무 놀라 울음을 딱 멈추고 멍하니 청년을 바라봤다.

삼숙이 헛기침을 하며 정중하게 물었다.

“공자, 혹시 아가씨의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을 아십니까?”

청년은 밤을 까먹으며 구시렁댔다.

“구음절맥? 그 이름 한 번 거창하기도 하다.”

혼잣말을 하며 빈정대는 건 그의 버릇 같았지만 삼숙은 청년이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 생각하고 무릎까지 꿇으며 애원했다.

“공자, 아가씨의 병이 구음절맥이 아니라면 뭐라 말입니까? 제발 도와주십시오.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청년은 밤을 오물오물 씹어대며 눈을 깜박였다.

“충분한 사례라, 오늘 들어 본 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군. 먼저 꼬맹이가 왜 죽게 생겼는지 그 원인을 가르쳐 주겠소. 일단 한 냥 선불.”

삼숙은 기다렸다는 듯 금 한 냥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청년은 은 한 냥을 말 한 것이었는데 금 한 냥을 얻게 되자 입꼬리가 절로 찢어졌다.


돈을 잘 갈무리한 청년이 입을 열었다.

“대가리 피도 마르기 전에 처먹인 보약이 화근이야. 아직 기맥도 열리지 않았는데 몸에 좋다고 아무 거나 처먹이면 기맥이 막히는 법이거든.”

소녀도 얼른 삼숙의 옆에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공자, 기맥이 막히는 게 구음절맥인가요?”

청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구음절맥이 뭔지도 몰라. 하지만 막힌 기맥이 아홉 군데인 건 사실이야. 처먹은 영약의 기운이 단단한 돌처럼 굳어있어 상태가 더 안 좋은 거지.”

소녀는 눈을 샛별같이 반짝이며 더욱 공손히 물었다.

“혹시 천년설삼으로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나요?”

청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삼숙이 나섰다.

“공자,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청년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안색을 굳히며 대답했다.

“천년설삼을 먹으면 꼬맹이 넌 칠공에서 피를 토하고 즉사 해. 천년설삼이 아니라 백년 된 설삼을 먹어도 마찬가지지.”

삼숙과 소녀의 안색이 백지장으로 변했다.

삼숙이 목청을 가다듬고 물었다.

“기사회생의 영약인 천년설삼이 아가씨의 병에는 독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청년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단언하는데 설산에는 천년설삼이 없소. 있다면 내가 찾아 먹었겠지.”

삼숙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아니었으니 소녀가 다시 물었다.

“제 병엔 설삼이 독이 되나요?”

“극독이지, 꼬맹이 너에게 필요한 건 극양의 기운이야. 강한 양기를 가진 설삼이라 해도 네가 먹으면 극음으로 변해 독이 된다.”

소녀가 눈망울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극양의 기운?”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극음의 뒤편에는 반드시 극양이 있지. 인체란 음과 양이 조화로워야만 병이 생기지 않는 법이야. 그것도 모르고 아무거나 처넣으니 병이 되는 거고.”

음양의 조화가 바로 자연의 이치라는 건 맞는 말이었지만 극음의 지형인 설산에 극양이 있다는 것은 소녀의 상식으로써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소녀가 의혹의 눈빛을 보내봤지만 청년은 담담한 눈빛으로 마주 볼 뿐이다.


삼숙이 넙죽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했다.

“공자, 극양의 기운이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면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알긴 알지만 말 해 줄 수는 없소. 또 말 해 준다 해도 찾아 갈 수도 없는 곳이고.”

삼숙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를 파묻으며 애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 제발 아가씨의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당장 황금 오십 냥을 내놓겠습니다.”

무심하던 청년의 눈빛이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크게 출렁거렸다.

황금 오십 냥, 은자로는 천 냥이다. 그만한 돈이라면 대처에 나가도 갑부대접을 받는다.

청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당장 금 오십 냥을 내 놓는다면 꼬맹이의 병을 고쳐주겠소.”

삼숙은 얼른 봇짐을 풀어 열 냥짜리 금원보 다섯 개를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소녀도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절을 올렸다.

“공자, 구음절맥만 치료해 주신다면 평생을 두고 보은하겠습니다.”

청년은 제법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막힌 기맥을 뚫으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게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내고 내 말 대로 따라야 한다. 네가 귀여운 꼬맹이니 인심 쓰는 거지 열다섯 살만 넘었어도 일을 맡지 않았을 거야.”

소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다소곳이 말했다.

“맹세할게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자의 명을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를게요.”

청년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내일 아침 설산으로 떠나야 하니 오늘은 푹 쉬어라.”

소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서, 설산에 극양의 기운이 있나요?”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극음의 뒤편에 극양이 있다고. 천하에서 가장 음기가 왕성한 곳이 바로 설산의 성모봉이다. 성모봉을 올라야만 넌 살 수 있어.”

소녀가 울상이 되어 구시렁댔다.

“설산을 오르면 사흘 안에 죽는다 해놓고선······.”

“콩 알 만 한 게 어른 말씀에 토를 달다니.”

청년은 마치 글 선생이 학동을 벌하는 것처럼 점잖게 손을 내밀어 소녀의 이마에 알밤을 먹였다.

딱!

“아야!”

세게 때린 건 아니었지만 다리가 풀린 소녀는 중심을 잃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청년은 태연히 뒷짐을 진 채 문간으로 걸어갔다.

“그건 내가 동행 안했을 때 이야기지. 나랑 가면 안 죽어. 거산 편에 먹을거리를 보낼 테니 잘 챙겨 먹고 내일 아침 출발 하는 것으로 알아라.”

삼숙은 그저 황송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졸졸 따르더니 공손히 물었다.

“공자, 건량이나 따로 준비할 물건은 없습니까?”

청년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있지 왜 없겠소. 가져가야할 물건이 많아 짐꾼도 필요하다오. 필요한 물건과 비상약, 짐꾼은 내가 준비하겠으니 셈이나 하시오. 모두 합쳐 금 한 냥이면 됩니다.”

“예, 공자. 지금 드리겠습니다.”

삼숙이 다시 금 한 냥을 내밀자 청년은 돈을 챙겨 넣고 당당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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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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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7 [탈퇴계정]
    작성일
    11.04.22 07:55
    No. 1

    설산대형 너무 기대되는 소설입니다.
    짝패 좋아하시는군요. 전 주인공 어린시절만보고 접었는데. ㅎㅎㅎ
    많이 배우고 가네요.
    진필명님 건필하시고 자주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북미혼
    작성일
    11.04.22 08:15
    No. 2

    조금 묵혀서 보려고 하다가 시간이 나서 다 봐 버렸습니다. 올리다 보니 댓글을 하나도 못 달았네요. 그래도 fun은 매편 눌렀습니다.
    제가 매편 fun을 누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주 기대되는 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11.04.22 08:22
    No. 3

    앗, 북미혼님, 매화검수 대박 축하드립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11.04.22 08:22
    No. 4

    용기충천님, 감사합니다. 짝패 이제 재미있어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레인백
    작성일
    11.04.22 10:20
    No. 5

    주인공의 내력이 궁금한데 , 너무 돈을 밝히는 것 같군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아쿠마
    작성일
    11.04.27 03:45
    No. 6

    실리에 밝은 주인공 좋네요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땅꾼
    작성일
    11.04.27 08:06
    No. 7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일생동안
    작성일
    11.04.30 22:00
    No. 8

    貫中은 과녁에서도 한가운데 동그라미에 적중했을때로 알고 있습니다.그냥 과녁판의 원에 맞았을때는 적중이 아닐까요?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11.05.01 01:40
    No. 9

    일생동안님, 과녁의 중심에 홍심이 그려진 건 일제때 유래된 것이고 원래 과녁의 중심에는 그림이나 숫자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왕이 쏘는 과녁엔 곰 얼굴이 그려져 있었죠.
    또 과녁의 어디를 맞추건 명중한 것으로 하고 관중이라 했습니다.
    과녁을 관이라 불렀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물물방울
    작성일
    11.05.02 17:37
    No. 10

    짝패는 글쓰는 방법도 모르는 데 그 것보다 어려운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小山
    작성일
    11.05.05 07:41
    No. 11

    금 한냥이 은 두냥 이래놓고선 금 50냥이 은 천냥...?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진필명
    작성일
    11.05.05 08:10
    No. 12

    소산님,,,
    금 한냥이 아니라 금전 하나. 십전이 한냥입니다. 쉽게 말하면 금 한돈이 일전, 금전 하나입니다.
    금과 은의 교환비율은 1:20.
    설정이 아니라 당시 화폐단위를 따른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領天華
    작성일
    11.05.07 12:23
    No. 13
  • 작성자
    1111
    작성일
    11.05.10 05:44
    No. 14

    금전과 금원보라는 말이 연재글에 있었습니다. 금원보는 그야말로 금덩어리를 말합니다. 말발굽처럼 생겼지요~~~ 금전은 그냥 동전모양의 금이구요...

    연재글은 세심하게 읽으셔야 작가님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입니다. 작가님이 창조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첩경이겠지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9 musado01..
    작성일
    11.05.18 14:52
    No. 1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白雨
    작성일
    11.05.24 12:50
    No. 1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BeKaeRo
    작성일
    11.05.27 15:06
    No. 17

    사,,,,,,사기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슈달
    작성일
    11.06.07 19:35
    No. 18

    fun 은 어디서 누르는 거에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인천하
    작성일
    11.06.09 19:05
    No. 19

    이건뭐 거니보다 몽구보다 더한 상술이군요
    설마 이늠 장래가 세계 제일의 거부인가요? 흐흐흐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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