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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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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4
추천수 :
310
글자수 :
597,391

작성
24.01.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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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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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알아가는 단계

DUMMY

환하고 따뜻한 햇살을 느끼면서 나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면 닿을 거리에 내 팔을 베고 미랑이 잠들어 있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그녀의 낮은 숨결이 뺨에 느껴졌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 푸근한 충만감이 나를 채웠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자 미랑이 눈을 떴다.


“어머, 언제 깼어요?”

“금방요.”

“더 자도 될 텐데···”


미랑이 시계를 올려다 본 다음에 말했다. 아직 여덟 시도 안 된 때였다.


“그럴까요?”

내 질문에 미랑이 미소로 답했다. 그래서 진짜로 더 잘까 생각하는데,


“삑삐빅삑삑!”

현관문 전자키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옴마!”

“우리 왔어요!”


미랑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어떻게 벌써?’ ‘발 소리도 안 내고’ ‘어떡하지?’ 등의 질문을 동시에 쏟아내는 표정이었다.

나는 황급히 이불에서 굴러나와 내가 벗어놓은 옷을 집어들었다. 옥,희가 후다닥 신발을 벗어제끼고 거실을 콩콩콩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다!

속옷을 꿰면서 어찌할 줄 몰라 미랑을 봤다. 미랑은 손가락으로 뒤에 있는 옷장을 가리켰다.

꽤 큰 옷장이긴 했다. 아무리 잠복에 능한 형사라도 이런 건 쉽지 않은데··· 나는 신속히 옷들을 챙겨서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미랑은 이불 밖의 옷들을 이불 안으로 잡아당기고, 이불 안에서 속옷을 입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문을 열고 옥,희가 들이닥쳤다.

“옴마!”

“뭐 해요?”

“옷은 쪼금만 입고?”

“어··· 엄마가 샤워를 해서 옷을 입으려고···”


나는 세 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어두운 옷장 안에서 소리 안 내고 바지를 입으려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옴마! 그럼 이불 속에서 다 말린 거예요?”

“우와 대단해요! 우리는 윙윙(헤어 드라이어의 의성어 표현) 한참 해야 마르는데!”

“어··· 머리는 안 감았거든. 화장실 수건으로 닦았고.”

이제 러닝 셔츠를 조심스레 입으면서 나는 미랑의 임기응변을 속으로 칭찬했는데,


“그런데 현관에 어른 운동화가 있다요.”

“위층 아저씨 신발이에요. 경찰 아저씨!”

아이고야! 이를 어쩐다냐? 나뿐만 아니라 옷장 밖의 미랑도 당황하고 있었다.


“어! 조기 양말도 있네. 아저씨 양말.”

양말을 챙기지 못하고 숨어들었음을 그제서야 옷장 안에서 깨달았다.


“아! 알겠다!”

가슴이 철렁했다. 저 어린 것들이 벌써 뭘 알았다는 거지? 요즘 유치원은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아저씨랑 옴마는 숨바꼭질을 한 거야요.”

“맞아. 아저씨가 숨은 거야. 양말 벗으면 안 미끄러지고 좋아요.”

그 타이밍에 나는 팔에 윗옷을 꿰느라 움직였는데 덜컥, 옷장문을 밀고 말았다.


“찾았다!”

“아저씨 고기 숨었을 줄 알았어요. 나는!”


나는 안면 경직이 온 것처럼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팔을 벌렸다. 짠! 나왔다!

하, 하하하, 아이들의 추리를 당황해서 지켜보기만 했던 속옷 차림의 미랑은 그제서야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우리 옥,희 정말 잘 맞히는구나.”

“맞다요. 옴마는 숨바꼭질을 하다가 아저씨 못 찾으니까 그냥 샤워를 한 거야요.”

“그럼 안 돼요. 술래는 끝까지 찾는 거야요. 못 찾으면 못 찾겠다 꾀꼬리 나와라 말해야 된다요.”

“숨어 있는데 술래가 가버리면 안 돼요. 샤워하는 것도 안 돼요.”


민망할 수밖에 없는 미랑은 숨바꼭질과 샤워라는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연호 이모랑 같이 안 왔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들어왔어?”

“연호 이모가 차로 데려다 줬어요. 요 앞까지.”


그리고 나서 두 아이는 미랑의 친구 연호에게 거짓 증언을 지시받은 티를 냈다.

“절대 몰래 들어가라고 안 그랬어요.”

“이모 얘기는 하지 말라는 말도 안 했다요.”


빠직! 미랑은 아이들을 풀어서 공격해 온 친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휴··· 어쨌거나 두 아이에게 의심받지 않고 빠져나왔지만 내 마음은 3층에 남아 있었다. 훈훈한 설렘과 뿌듯함이 다른 꿈을 꾸지 말라며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꿈 속에 빠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친구집에서 자고 온 옥,희는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고 오늘은 내가 미랑과 어울릴 차례가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궁금한 걸 생각했다. 지금 미랑이 어떤 표정으로 뭘 하고 있을까 다음으로 궁금한 건 구치소에 있는 최용근이었다.

괴물을 봤다고 주장하는 수감자.


“죄송한데요··· 면회 안 오시면 안 될까요?”

용근이는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 하면서 말했다.


“왜요? 군것질거리 정도는 넣어 드릴 수 있는데···”

용근이도 나를 존대하고 있었고 나도 용근이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 상황이므로, 스패너 이슈는 잊고 점잖게 존댓말을 썼다.


“지형사님, 지주성 형사님 맞죠?”

“그래요.”

“형사님 그 괴물하고 어떤 관계예요?”

“뭐라고요?”

“형사님 면회라길래 나오기 싫었는데 왜 나왔냐 하면요··· 그때 그 괴물이 그랬거든요. 저 형사 말을 들어. 그 무서운 게 그렇게 시켰어요. 저 형사 말을 들어. 그래서··· 형사님이 면회 나오라는데 안 나오면 또 무슨 살벌한 게 튀어나올까 봐···”


무시무시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에 나를 만나기 싫었지만 내 요구를 거부하면 괴물에게 보복 당할까봐 무서워서 나왔다는 얘기였다.

나는 기철이형한테 전해 들었던 용근이의 진심, 괴존재에 대한 솔직한 두려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특별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지만 보람 없는 면회는 아니었다.


“형사님. 솔직히 말해 주세요.”


마지막에 용근이의 말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그 괴물하고 같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예요? 상근이 형이랑 나한테 어떻게 할라구 그러는 거냐구요? 우리가 형사님한테 잘못한 거 있음 말해줘요. 형이랑 같이 사과할게요. 예? 형사님!”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용근이한테 의심받았고 오히려 내가 해명 해야 될 것 같았다.

면회가 끝나고 교도관을 따라 나가면서도 용근이 얼굴에서 의심과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주말을 보내고 그 다음 화요일에는 강력1팀 회식이 있었다.

공식 행사는 아니고 살짝 업무에 여유가 생기자 반장님이 삼겹살을 사겠다고 한 거였다. 선배 중 둘은 집안 일이 있다며 빠졌지만 나머지는 단골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깠다.

나는 토요일에 만났던 용근이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 반장님에게 얘기를 꺼낼 찬스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네 불량배들 얘기가 나왔을 때 그놈 이름을 끄집어 냈다.


“최용,”


아직 ‘근’자도 말하지 않았는데 반장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상근이 동생 얘긴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기철아 전달 안 했어?”

“하긴 했는데요···.”

기철이형은 술고래답지 않게 삼겹살과 소주 앞에서도 졸린 얼굴이었다.


“사수부터 말해 봐. 양아치와 괴수, 불량배 겁준 크리처 이런 게 경찰공무원이 논할 주젠가?”


기철이형은 숙면만을 애타게 바라는 만사 귀찮은 자세였다.

“아니요. 그런 건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하아암···”


대답하다 말고 하품을 하는 기철이형한테 반장님이 짜증을 냈다.

기철이형은 며칠 잠을 못 잤다면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내 병문안을 왔다 간 날부터 불독 땡구가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해서 주인까지 잠을 설쳤다는 거였다.

기분을 풀어주려고 땡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을 때는 희한하게도 길고양이가 땡구를 공격하기도 했단다.

인간의 보호만 받고 자란 땡구는 길고양이의 갑작스런 냥펀치 공격에 멍청히 당하기만 했고, 기철이형의 발길질 위협이 거듭된 후에야 길고양이는 후퇴했다는 거다.


“땡구가 상당히 자존심 상한 거 같더라고요. 길냥이한테 처맞고.”

“그렇겠지. 명색이 갠데.”


반장님은 기철이형의 불면과 반려견의 이상행동 얘기에서 갑자기 내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냥 내 얘기가 아니라 아랫집 과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망자 신호진 아내 구미랑 씨랑 사귄다며. 진지한 거야?”


나는 도끼눈을 뜨고 기철이형을 돌아봤다. 졸음에 시달리던 기철이형은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반장님이 나랑 기철이형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쟤가 분 거 아냐.”


그럴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이 바닥엔 비밀이 별로 없다. 동료 직원들이 모두 뭘 캐내는 데 전문가들이다.

자기 동네 상황에는 더욱 빠삭한데, 나는 이 동네 자취생이었다. 요 며칠간 경찰서 안팎에서 틈만 나면 실실 웃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기철이형 의심하기를 멈추고 반장님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제가 미랑 씨랑 사귑니다.’


반장님은 불판을 응시하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질문했다.

“하나만 알면 된다. 싫다는 여성을 억지로 가스라이팅 또는 그루밍 같은 걸 해서 소유욕을 채우진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맞나?”

“당근이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니가 최선을 다해 쫓아다닌 것이냐? 스토킹 판정이 안 나는 선에서?”

“아닙니다. 결코.”

“그럼 됐다. 사건도 이미 끝났다. 잘 해 봐라.”


반장님의 태도에 기철이형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왜 그리 미랑한테 부정적인지···

“예쁜 사랑 하세요.”


기철이형의 비뚤어진 축복에 반장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 김태희 남편은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구나.”

“뭔 말씀이에요?”

“비아냥.”


우리 강력 1팀은 정말 아재 개그가 만발하는 곳이다. 그런 조직의 리더이니 반장님의 아재 개그력도 만만찮을 수밖에.

“기철아. 후배 연앤데 축복은 못해도 비아냥은 자제해라.”


흥, 칫. 술기운을 빌려서 기철이형은 완전히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주성아. 니가 잘해서 여친의 친구 같은 사람 선배한테도 소개해 주고 그래.”

“넵!”


나는 반장님 주문을 긍정하면서 분위기를 조율하려고 했다. 그러나 토라진 백형사는 이미 담배를 물고 삼겹살집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반장님이 나나 미랑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어도 우리의 사귐은 알려질 수밖에 없었을 거다. 틈만 나면 만나서 서로를 ‘알아 가고’ 있었으니까.

옥,희한테 숨바꼭질을 들키고 용근이한테 의심 받은 다음날인 일요일엔 영화를 보러 갔고, 월요일 퇴근 후에는 딱히 살 것도 없는데 같이 쇼핑을 가서 소소하고 쓸모없는 선물을 서로에게 사주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화요일 점심시간에는 내가 살짝 빠져나가서 미랑이 체육관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남들은 우리를 보면 ‘선섹후사’라고 먼저 원나잇을 즐긴 다음에 감정을 키워가는 남녀로 규정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절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보낸 밤은 절대 즉흥적 충동에 의한 쾌락 추구가 아니었다고 믿었다. 이미 서로가 강렬히 이끌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서로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일요일에 옥,희가 옥상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때 미랑은 커피를 들고 내 방에 왔다.

영화관에 가기 전부터 취미, 식성, 가까운 친구들, 혈액형과 MBTI 등 많은 질문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미랑의 직업을 정확히 몰랐다.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길래 요가나 헬스 트레이너 같은 일일 줄 알았는데 기계체조 코치였다.


커피를 마시다가 그런데 가르치는 게 어떤 종목이죠? 물었다.

미랑은 일어나서 한쪽 다리를 쭉 들어올리고는 두 손을 위로 향하며 우아한 포즈를 보여줬다. 그리곤 다리를 내리더니 아무 데도 기대지 않고 물구나무를 섰다. 당연히 내 입이 딱 벌어졌다.


“기계체조라고 흔히 그러죠? 마루운동 평행봉 그런 거.”

“아, 예···”

“그런 거 가르쳐요. 보여줄까요?”


자기가 잘 하는 걸 소개하는 일이 기분 좋았나 보다. 미랑은 환한 표정이었다. 나야 당근 보고 싶다고 했고.

미랑은 창문으로 고개 내밀고 구경하라더니 후다닥 마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대각선으로 마당 끝에서 끝까지 펄떡 펄떡 재주를 넘었다. 마루 운동하듯이.

대단한 점프와 회전이었다. 30대 코치가 아니라 10대 선수의 퍼포먼스 같았다. 마당이 좁아서 그렇지 넓었으면 아주 대단할 것 같았다.


밥 먹으러 들어왔던 길고양이들이 환호하듯이 미랑 쪽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니야옹 니야옹 울었다. 옥탑에서 고개를 내민 영장류도 고양이에 지지 않고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착, 미랑은 발을 모으고 양팔을 펴서 마무리 자세를 보이고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올림픽 스타에 환호하는 팬처럼 마주 손을 흔들다가 나는 뜨끔, 불안한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히 본 적이 있어. 저 재주넘기. 복장은 특이했던 거 같은데··· 분명히 전부터 알던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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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늘부터 우리는 +4 24.01.03 75 7 18쪽
8 괴물을 보았다 24.01.02 79 7 14쪽
7 모든 길목 모든 모퉁이에서 24.01.01 93 7 14쪽
6 아래층 여자 위층 남자 +6 24.01.01 93 7 13쪽
5 요동치는 옥탑 +4 23.12.30 93 7 14쪽
4 하트 어택 Heart Attack +6 23.12.29 99 7 12쪽
3 피살자의 아내 +12 23.12.28 137 8 14쪽
2 수컷 삼대 +10 23.12.27 189 9 15쪽
1 총을 쥔 시체 +14 23.12.27 341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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