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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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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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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침 일찍 출발한 일행은 해가 중천에 뜰 즈음에 이동을 멈추고 휴식 겸 식사를 준비했다.


애버론은 간단한 식사를 즐기며 친히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번 임무의 또 다른 목표는 카르낙과 끝장을 보는 것. 떄문에 정보 유출의 위험을 줄이고자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했다. 나나 아슬론은 카르낙과 척을 진 당사자니까 알고있는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나왔는지도 모르고있다.


일단은 첫 번째 임무부터 설명하는 애버론. 대로변의 공터에 둘러앉은 일행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첫 번째 임무는 영토 내부의 순찰인데... 순찰이라곤 해도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럴 것이었으면 굳이 정예병력들을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먼저 북서쪽으로 향해서 길목에 잠복한 뒤에 지나가는 상단들을 수색합니다. 자잘한 상단은 뒤져볼 필요 없고,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곳들만."


"혹시 판매가 금지된 품목이라도 옮겨지고 있는겁니까?"


일행들 중 하나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아린의 천리안은 터무니 없는 범위를 커버할 수 있지만, 보는 것 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결국은 지금처럼 직접 발로 뛰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야한다.


애버론은 동료의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품목은 아니고... 노예입니다."


"아하."


자유 교역 도시는 노예 제도와 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극렬하게 금지하고있다. 노예 상인들은 물론이고 구매자들까지 즉결 처분해도 죄를 묻지 않을 정도. 이 금지령은 아린의 손에 의해, 막무가내다 싶을 정도의 기세로 밀어붙여졌다고 한다.


아린이 딱히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금지령을 내린 것은 아니다. 자유 교역 도시민의 절반 정도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 이종족들을 품으려면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노예 제도를 허가할 수 없다.


물론 아무리 그녀라도 영토 밖에서 이루어지는 노예거래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 영토가 워낙 넓다보니 금지령을 내려도 노예상인들이 뺀질나게 드나든다. 이곳을 피해가면 여행경로가 무척 길어지기 때문이다.


고가의 품목을 옮기는 노예상인들은 믿음직한 용병들을 고용하곤 하는데, 용병이 있는 만큼 걸리면 쉽사리 항복하지 않는다. 좀 커다란 노예상단과 싸우는 경우에는 어지간한 영지전이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아슬론은 시시할 줄 알았던 임무가 제대로 된 것이라는걸 알자 눈에 띄게 기뻐하기 시작했다. 애버론은 아슬론의 반응을 눈여겨보며 계속해서 설명을 진행했다.


노예상인이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첫번째 임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그냥 가서 때려부수고 노예들을 구출하면 그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임무다. 밝음을 유지하고 있던 애버론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리고 카르낙 교단을 처리하는 일은 조금 골치아프게 됐습니다. 카르낙이 소속된 길드에서 놈을 추방하지 않고 있거든요."


"네에?"


플레이어들의 생리를 비교적 잘 알고있는 카엘이 눈에 띄게 놀랐다. 이러한 소식을 미리 듣지 못한 나도 마찬가지. 단순히 쫓겨난 잔당들을 처리하면 되는 임무가 아니었단 말인가?


애버론은 동요하는 플레이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진 않을겁니다. 그걸 위해서 제가 동행한거니까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아슬론이 간단히 본론으로 들어가자 애버론도 간단히 답한다.


"일단 병력을 끌고가서 해당 길드에 경고를 넣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일이 해결되진 않을겁니다. 카르낙은 그쪽 길드 마스터의 친동생이니까요."


"뭐라고요?"


과연, 길드 마스터의 친동생이라서 여태껏 억지로 붙어있을 수 있었던건가? 아슬론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다시 묻는다.


"그쪽에서 양도를 거부하면요?"


"그럼 그대로 길드전에 들어가는거죠 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겁니다."


애버론이 은근슬쩍 자신감을 내비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말투만 보면 길드전이 아니라 무슨 산책 나가는 줄 알겠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아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고 참기로 했다.


그녀가 본인의 주교를 동행시킨 만큼, 대책없이 개돌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브리핑이 끝나자 일행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별다른 친분이 없는 아슬론으로서는 무척 난감한 상황이다. 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해야하는 카엘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해서 쩔쩔메고있다.


그러나 정작 아슬론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접근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애버론이다. 애버론은 아슬론의 표정을 보곤 함께 식사를 하려던 마법사들과 조금 떨어져서 자리를 옮겼다. 카엘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 묻고 싶은게 있는 듯한 얼굴이네요."


커다란 나무 아래에 도착한 초로의 노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슬론은 고개를 끄덕이곤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나조차도 아슬론의 돌발행동을 예상하지 못한터라 무척 당황하고있다. 갑자기 무슨 질문이 생긴 것일까.


"혹시 지금 도시에 저 말고 다른 용인이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아슬론은 동족들을 깊게 혐오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숲의 용인들까지 미워하라는 법은 없다. 이제와서 동족들과 어울리고 싶은 것일까? 그러나 무척 엄숙한 표정을 보니 단순히 친구를 찾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버론은 고개를 저으며 길지 않게 대답했다.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 처럼, 대답이 무척 빨리 나왔다.


"현재 자유 교역 도시에는 아슬론님 말고 다른 용인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다른 용인을 진료해보신겁니까?"


"응?"


나는 아슬론의 말을 듣고서야 위화감을 느꼈다. 애버론은 아슬론을 진료할 때 '다른 용인을 진료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슬론이 내게서 그걸 전해들었으니까 틀림없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 용인을 진료해본 것인가? 자유 교역 도시에는 아슬론 외에 다른 용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용인들 자체가 숲 속에 박혀서 안 나오고 있지 않던가.


애버론은 척 보기에도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그가 진료해봤다는 용인이 수십년 전의 사람일 수도 있겠지. 만약 옛 시대의 용인이 맞다고 하면...


'잠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폐쇄된 마을, 옛 시대의 용인. 그리고 아슬론. 이 세 가지 요소가 기묘하게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애버론은 아슬론의 물음에 피식 웃더니 내 추측을 조금이나마 긍정했다.


"내가 진료한 용인은 수십년 전의 사람이야. 용인들의 마을을 나와서 떠돌아다니던 모험가였지. 나는 그 용인과 함께 모험했어."


"설마..."


아슬론 또한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더듬었다. 이 자리에서는 카엘 뿐만이 영문을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있다. 애버론은 그의 반응을 즐기듯 말을 잇는다.


"그녀는 뛰어난 전사이자 동료였네.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지만 무척 매력있는 여자였어. 두려움을 모르고, 진실됨을 미덕으로 삼았다. 우리는 함께 모험하며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해냈어."


애버론의 눈은 어느새엔가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슬론과 나는 그의 회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빨리 결론을 듣고싶기도 했다. 결국 참지못한 아슬론이 그를 재촉했다.


"그래서, 그 용인의 이름이 뭡니까!"


"아실란. 자네가 짐작한게 맞아. 그녀가 바로 자네의 어머니야."


"뭐, 뭐라고요?"


카엘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아슬론은 그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걸리는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닌 것이다.


그는 대뜸 애버론의 말을 부정했다.


"거짓말. 만약 어머니께서 당신 같은 사람과 여행했다면... 왜 그토록 허무하게 죽으신거죠?"


그의 지적을 받은 애버론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듯 이야기했다.


"아실란은 모험의 끝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어. 나와 동료들이 온 힘을 다해서 치료했지만 굉장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했지. 결국 자네의 어머니는 자네를 잉태하자마자 용인들의 숲으로 돌아갔어."


"그러니까, 왜 굳이 숲으로 돌아갔냐는 말입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알고있는 사실과 이야기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허점이 있으니 쉽게 믿을 수가 없다. 애버론은 아슬론의 대답에 무척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 이유는 밝힐 수 없어. 나와 동료들은 침묵의 맹세를 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지. 그건 온전히 그녀의 선택이었어."


"... 침묵의 맹세요?"


노인의 얼굴에 거짓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 되는 실력자가 아슬론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아실란이라는 이름을 알고있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아슬론도 그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하고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 가정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자.


아실란과 애버론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모험을 했고, 꽤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그런데 모험의 끝자락에서 아실란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임신을 한 채로 모험을 하지는 않았을테니, 아슬론이 잉태된 것은 모험이 끝난 뒤겠지. 동료들의 보살핌 속에서 겨우겨우 상처를 치료한 아실란은 뱃속에 그를 품은 채 용인의 숲으로 들어갔다.


현재로서는 굳이 숲으로 돌아간 이유가 불분명하다. 침묵의 맹세를 했다고 하는걸 보면 애버론이 대뜸 말해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그들의 모험과 상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겠지.


내 추측을 전해들은 아슬론은 조금 분개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왜 가만히 계셨던겁니까? 함께 모험했던 동료라면 도와줄 수도 있으셨잖아요!"


"나도 도와주고 싶었어. 하지만 침묵의 맹세는 단순히 입만 닫고있으면 되는게 아냐. 나는 지금도 용인의 숲에 들어가지 못해. 그래서 네가 쫓기고 있을 때도 직접 도와주지 못한거야."


"뭐라고요?"


설마 아린이 내게 접촉했던 것도 애버론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나? 그는 카엘의 입을 빌린 내 물음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아슬론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슬론은 어머니가 숲으로 되돌아간 이유에 대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으나, 애버론은 그것들 중 어떤 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살짝 김이 빠진 듯한 그가 아슬론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혹시 아버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나? 내 동료들 중 한 명이었는데..."


"전혀요. 마을에서 배를 곪을 때에 너무 많이 궁금해해서 지금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이번에는 애버론이 경악할 차례였다. 아슬론은 낯빛도 바꾸지 않고 태연히 덧붙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가 그자에게 줄거라곤 경멸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녀석도 나와 함께 침묵의 맹세를 맺었다고."


"그딴건 상관없어요. 어머니가 숲으로 돌아가는걸 말리지 못했으면 제대로 지켜주기라도 했어야죠. 단순한 동료라면 몰라도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그렇게 했어야합니다."


아슬론은 신랄하게 쏘아붙이곤 그대로 등을 돌려서 말에게로 돌아갔다. 카엘이 그런 그의 뒤를 황급히 쫓아갔다. 애버론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서있다가 힘 없이 걸음을 옮긴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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