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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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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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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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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던전의 입구쪽에 모인 아슬론과 일행들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대기하던 병력들은 지루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살벌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블러우드가 이곳에 산책을 나온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선제 공격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만에하나 우리의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공격 주문을 한 방 쏘면서 시작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태양 아래로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했다. 모두의 장비는 격전을 치룬 듯, 피와 흙으로 더럽혀져있었다. 이건 블러우드를 속이기 위하여 던전 아래쪽에서 준비해둔 것이다. 몸의 이곳저곳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사실 전투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여마법사 일행은 양 손을 묶인 채 눈이 가려지고 입이 막혔다. 이것도 위장의 일종인데, 우리가 끈 하나만 당기면 손쉽게 풀어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블러우드의 의심도 조금은 걷히리라.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며 던전 밖으로 나갔다.


여마법사의 파티는 우리 팀의 손에 붙들려서 끌려가듯 이동했다. 아슬론은 용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누더기 같은 후드를 다시금 뒤집어쓴 상황. 태양 빛을 가리려고 팔을 들어올린 전사 리더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블러우드를 올려다봤다. 자기 목숨이 걸려서인지 모두의 연기에 힘이 들어가있다.


"브, 블러우드님? 여기엔 어쩌신 일입니까?"


"... 혹시 몰라서 마중을 나왔다. 이놈들은 뭐지?"


블러우드는 여마법사 일행을 보고 살짝 동요했으나, 그들이 구속되어 있는 것을 보고 눈에 띄게 안심했다. 보아하니 연기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 블러우드의 이름을 들은 여마법사 일행은 재갈 물린 입을 열심히 놀리며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우리 팀이 그들의 배를 걷어차서 조용히 시켰다.


그것을 본 블러우드의 표정에 안도의 빛이 스친다. 역시 이들을 거짓으로 구속시켜 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만약 눈과 입을 봉해두지 않았으면 블러우드의 속내를 캐묻는 일은 불가능했으리라. 전사 리더는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며 말했다.


"이 던전에 먼저 숨어들었던 쥐새끼들입니다. 저희가 성공적으로 제압했지요."


"... 잘 했다. 안쪽에 있던 유물은 들고왔겠지?"


"네. 여기에 있습니다."


리더가 품속에서 천으로 감싸놓은 돌조각들을 꺼내들며 말했다. 블러우드가 그것을 받기 위해서 말을 몰고 앞으로 나오자 리더가 대뜸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블러우드님의 던전을 탐낸 놈들이라곤 해도 같은 용병들인지라..."


"자비는 필요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을 치도록 하지."


블러우드의 말에 세 명의 기사가 장검을 꺼내들며 말에서 내렸다. 그러자 리더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그를 설득했다.


"지금 여기서 죽여버리면 이놈들의 배후를 알아낼 수 없지 않습니까? 누가 블러우드님의 재산을 노렸는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건방진 놈. 용병 주제에 말대꾸 하지 마라!"


블러우드는 리더의 말에 화를 내며 버럭 소리질렀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조언을 받는데에 익숙치 않은 듯 하다. 하기사 다른 국가도 아니고 무려 성왕국의 귀족이니 이럴만도 하다. 이렇게 된 이상 블러우드의 혐의는 거의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세 명의 기사들은 장검을 뽑아들고 무릎꿇려진 여마법사 일행에게 다가갔다. 이쯤에서 나서야 하나 싶었던 찰나, 블러우드가 돌연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깐. 저놈들부터 처리해."


여마법사 일행은 이미 구속된 상태이니 섣불리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 같다. 대신 우리들을 먼저 죽이고 유물을 확인하고 싶겠지. 주인의 명령을 받은 기사들은 대뜸 장검을 놀려서 우리 팀을 습격했다. 그러나 우리쪽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얘들아!"


아슬론과 전사들은 리더의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무기를 뽑으며 기사들을 덮쳤다. 흉악한 인상의 기사들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반응속도에 심히 당황했다. 아슬론의 대검이 기사들 중 한 명의 옆구리를 거침없이 강타했다. 상대는 갑옷을 입고 있었는지라 상하체가 분리되는 것 만은 면했다.


그러나 맹렬히 휘둘러진 대검을 맞고도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사의 갑옷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무슨 깡통 마냥 찌그러졌다. 땅에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니 옆구리가 완전히 함몰된 모양.


그 사이 다른 동료들은 수적인 우위를 살려서 기사들을 잡아뒀다. 아슬론은 병사들이 가세하기 전에 여마법사 팀의 구속을 풀어준다. 곧이어 블러우드의 명령에 따라 사병들까지 싸움에 끼자 던전 앞의 공터는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기사들에 비해서 실력과 무장이 부실한 병사들은 노련한 용병들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금세 피로 물드는 공터를 보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병사들의 피와 살점이 날아다니는게 가감없이 보이는 탓이다. 특히 참룡검을 휘두르는 아슬론이나 지팡이에서 불을 뿜는 여마법사의 주변은 무서울 정도로 참혹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블러우드의 사병들은 빠르게 정리된다.


"어, 어떻게 용인이 여기에..."


불쌍할 정도로 말을 더듬던 그는 금세 말머리를 돌려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궁수 청년의 화살이 말의 다리를 맞추자 그의 도주 시도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그 사이 전 병력을 정리한 용병들이 말에서 굴러떨어진 블러우드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다들 베테랑이라서 그런지 귀족의 사병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다.


전사 리더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멀쩡해? 다친 사람 없지?"


"제가 옆구리를 좀 베였어요."


"사제님께서 치료를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이쿠, 이놈 보게?"


치료를 부탁하던 전사 리더는 엉금엉금 기어가던 블러우드의 등짝을 밟았다. 그러자 블러우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팀원들을 협박한다. 그러나 성왕국의 시민이 아닌 이들에게 그의 명령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리더와 그는 잠시동안 상담의 시간을 가졌다.


리더가 그에게서 모든 것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는 동안 다른 용병들은 시체에서 전리품을 챙겼다. 죽은 사병들이 지니고 있던 용돈이나 물약 같은 것들이다. 어차피 성왕국에서 용병질 하는 것은 물건너갔으니 이렇게라도 정착 자금을 챙겨야겠다는 것이리라.


아슬론은 시체들을 뒤지는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체에서 멀찍이 떨어져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다른 용병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리품들 중 쓸만한 것들을 추려내서 그의 몫으로 챙겨줬다. 그는 내 말에 따라 전리품들을 사양하며 다른 것을 가리켰다.


"저는 저걸 하나 받고싶습니다."


그가 가리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블러우드가 타고있던 말이었다. 3성 귀족의 말이라서 그런지 기사들의 것 보다도 건장하다. 저 정도면 아슬론의 덩치를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마법사 일행은 그의 부탁에 난색을 표했다.


이 세계의 말은 그 유용성이나 가격 면에서 자동차나 다름없다. 블러우드 일행이 타고온 네 필의 말은 다른 모든 전리품들의 가치를 합쳐도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의 재산이다.


그러나 나와 아슬론이 팀에 기여한 것을 보면 네 필 중 한 필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듯 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사로잡혔던 여마법사 일행은 전리품을 분배받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겨야하지 않는가. 블러우드에게 모든 일을 확인받은 전사 리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당연히 드려야죠. 제일 좋은걸로 고르셔요."


아슬론은 처참하게 살해당한 블러우드의 시체를 지나쳐서 말에게 다가갔다. 싸움 중에도 용케 도망치지 않은 말들은 꽤 담담히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다. 다른 용병들은 남은 말들을 살펴보거나 전리품들을 한 곳에 모아서 분배를 시작했다.


"다들 적당히 뽀렸지? 넌 인마 다섯 명 털어서 이것밖에 안 나오는게 말이 되냐?"


모두가 모은 전리품들을 보던 리더가 팀원들 중 하나에게 핀잔을 줬다. 그러자 지적을 받은 팀원이 한숨을 내쉬며 품 속에 넣어두었던 돈주머니를 꺼낸다. 보아하니 전리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한두푼 정도 빼돌리는건 눈감아주는 듯 하다. 어차피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고, 그게 가능하다 쳐도 불만이 나올 것이다.


전리품을 적당히 갈라낸 리더는 가장 먼저 아슬론에게 그 일부를 내밀었다. 아슬론은 그것들을 챙기곤 다른 이들이 분배받는 것을 지켜봤다. 여마법사 일행이 조금 적게 받긴 했지만 그래도 인건비 정도는 나왔다고 한다. 궁수 청년이 던전의 입구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저 안에 있는 유물은 그냥 놔두고 갈거에요?"


"그걸 어느 세월에 가지고 나오게? 이 이상 시간을 끌어서 좋을게 없어. 얼른 성왕국을 뜨자."


일행은 귀족을 살해했다.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었지만, 이곳의 병사들은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는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는 일행을 살펴보다가 문득 대량의 신앙 점수가 쌓인 것을 발견했다.


신앙 점수는 신도의 신앙이 깊어지거나, 아니면 신도가 어떠한 업적을 이루면 주어진다고 들었는데... 이 경우에는 둘 다인 것 같다. 단순히 전자의 경우로만 보기에는 점수의 양이 좀 많다.


'적대적인 귀족을 죽여서 오른건가?'


병사들 좀 베어내는거야 아슬론의 입장에선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나는 명확한 답도 안 나오는 고민을 마치곤 남겨두었던 기적, 독수리의 눈을 사용했다. 이번에 보는 것은 우리가 출발한 도시. 그곳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이대로 떠날지 결정하려면 그곳의 상태를 봐야한다.


천만다행으로 그곳의 병사들이 블러우드에게 일어난 이변을 눈치챈 기색은 없었다. 대신 높고 튼튼한 성문 앞에는 한 무리의 거한들이 보였다. 후드를 쓰고있는 그들의 체구는 아슬론의 것을 상회했다. 나는 그들의 정체가 용인이라는 것에 모든 신앙 점수를 베팅할 수 있었다.


'벌써 쫓아왔다니.'


용인들은 외부활동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이곳은 용인들의 마을과 그리 가깝지 않았다. 꽤 먼 거리를 이동해서 안심하고 있었건만 어찌어찌 아슬론을 쫓아온 모양. 나는 아슬론에게 그 사실을 알리곤 이동을 재촉했다. 묘하게 투쟁심을 불태우던 아슬론은 내 당부에 따라서 감정을 접어뒀다.


아슬론의 무위는 내 상상 이상이었다. 기습을 했다곤 해도 귀족의 호위를 맡고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단번에 쓸려나갈 정도. 그러니 이곳의 용병들은 용인들간의 싸움에 큰 힘이 못 되어줄 것이다. 두 종족간의 전투력 차이는 조금 너무할 정도다.


"이만 헤어집시다. 저를 쫓아오는 놈들이 있어요."


아슬론은 그대로 일행들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목숨이 귀한 줄 아는 용병들은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아슬론이 쫓기는 판국인데 그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일행은 즉석에서 서로의 여행방향을 토론했다.


그들은 자유 교역 도시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슬론이 향하는 그곳에는 이종족들의 활동이 많은지라 인간 용병이 낄만한 자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사실 내가 고용주라도 같은 돈이면 인간 궁사 보다는 요정 궁사를 고용하겠다. 집단으로서의 인간족은 몰라도 개인으로서의 인간족은 최약에 가깝다.


"저... 그런데 용인님이 모시고 계신 분의 존함이 어떻게 되나요?"


여장부 인상의 마법사가 떠나려는 아슬론을 붙잡으며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려주지 말라고 답한다. 내 이름을 퍼뜨리는 것은 신도를 만들고 교세를 넓히는데에 필수적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슬론의 본명도 숨기고 다니는 판국이니 한가롭게 그런 짓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여기서 귀족 살해를 저질러버린 몸이다. 여마법사에게 내 이름을 알려준다면 성왕국 쪽에서 악명이 쌓일지도 모른다. 아슬론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이곤 지체없이 말을 몰고 나갔다. 아슬론에겐 승마의 경험이 없지만, 그의 기세에 짓눌린 말이 아주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아슬론과 말은 용인들의 눈과 귀가 닿지 않을만한 길을 골라서 여행을 재개했다. 공터에 남은 용병들도 서둘러서 자리를 떠나려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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