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782,544
추천수 :
25,197
글자수 :
786,849

작성
17.01.19 00:00
조회
10,949
추천
326
글자
11쪽

9회

DUMMY

팀원들에게 포박당한 선객들은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한 명에게 이렇게 당하다니. 자기들이 털려놓고도 참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슬론이 기습을 가했다곤 했지만, 아예 대처를 못한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냥 서로간의 역량차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팀의 리더는 처음부터 핵심을 찔렀다. 서로 면식이 있는 듯 해서 긴 말은 필요 없을 듯 하다.


"너희 누구 의뢰받고 왔어?"


"몰라. 의뢰주가 중개인을 통해서 접촉했어."


리더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예의 여마법사였다. 아까 아슬론의 습격 때 비교적 침착히 대처하던데, 그녀가 저 팀을 이끌고 있었던 모양. 마법사는 비교적 머리가 좋고 후방에서 전투를 지켜볼 수 있으니 리더 역할에 제격이리라. 우리 팀의 리더는 헛수작 말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진짜 누군지 모른다고? 우리 이짓거리 한두번하는거 아니잖아?"


용병질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다. 의뢰주가 정체를 숨긴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의리있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거다. 내가 그녀였다면 뒷조사를 해서라도 의뢰주의 정체를 밝혀냈으리라. 아니면 아예 의뢰를 받지 않았겠지. 우리 팀의 리더도 나와 똑같은 생각인 듯 그녀의 거짓말에 속아주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녀의 의뢰주는 우리 의뢰주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남의 던전을 털어내라는 의뢰를 넣었겠지. 그러나 나는 찝찝함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이 파티의 행동은 도둑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의 던전을 털어대는 것 치고는 뒷처리가 많이 미흡했고, 아슬론의 습격에도 너무 쉽게 당해버렸다. 이건 도둑이 아니라 주인의 행동이 아닌가. 만약 우리 팀이 던전에 먼저 들어왔다면 이렇게 공략을 진행했었을터다.


'설마...'


순간, 내 머릿속에 불안한 상상이 번뜩였다. 나는 아슬론을 시켜서 리더를 데리고 방의 구석으로 갔다. 리더는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 아슬론의 말에 주목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사람들... 혹시 의뢰주한테 속은거 아닐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용병이라고 해도 남의 물건을 털어대는 의뢰를 대뜸 받아들일리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슬론의 입을 빌려서 내 추리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 사람들의 의뢰주는 자기가 이 던전의 정당한 주인인 것 처럼 행세한거에요. 그러니까 저렇게 당당하고 조심성 없게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겠죠."


저들은 의뢰주의 정체를 모른다고, 중개인을 통해서 의뢰를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거야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저쪽도 지금 예상 외의 상황을 맞이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을텐데 우리에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겠는가? 분명 자신들의 패를 감추고 우리의 패를 넘보려고 애쓰는 중이겠지.


그러나 리더는 내 추리를 지체없이 부정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요?"


나는 대답이 너무 단호한 나머지 화가 나지도 않았다. 리더는 확신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 던전의 공략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도시의 관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관청에서 확인을 했고, 저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했을거에요. 여기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왔다는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들이 주인인 것 처럼 공략을 하고 있었잖아요."


"그건..."


내 지적에 리더의 말문이 막혔다. 베테랑 용병의 관점에서 봐도 그들의 공략은 구멍 투성이였던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잠시 상황을 정리해봤다.


저들은 이곳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왔다. 리더가 저토록 호언장담을 했으니 그 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저들을 저토록 당당하게 공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


반쯤 확신을 얻은 나는 아슬론에게 대기를 명령하곤 그대로 기적을 사용했다. '독수리의 눈'. 신도들에게 묶여있는 플레이어의 시야를 넓게 확장시켜주는 효과의 기적이다. 자유 교역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아린의 천리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지만 그만큼 값이 싸다.


독수리의 눈을 발동시킨 나는 재빨리 시야를 옮겨서 던전의 밖을 탐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던전의 입구쪽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잘 통제되고 있는 느낌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똑같은 장비를 착용하고있다.


그런 그들의 후위에 말을 탄 사내들이 몇 명인가 보인다. 제대로 된 갑옷과 질 좋은 장검을 착용한 기사들이 세 명. 그리고 그 기사들의 한가운데에 고급스러운 복장의 사내가 있다. 나는 저 사내를 처음 봤건만, 그가 누군지 확신할 수 있었다.


'블러우드 데 아스파거...'


저자는 분명 우리 팀의 의뢰주인 블러우드다. 가슴팍의 3성 배지가 그것을 똑똑히 증명하고있다. 나는 재빠르게 아슬론에게 돌아와서 밖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사정을 들은 리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러우드가 왜 자기 사병들을 이끌고 여기에 왔다는겁니까? 전사님은 그걸 또 어떻게 아시고요?"


그는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 하다. 나는 아슬론을 시켜서 사로잡힌 여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애써 침착하게 묻는다. 아슬론은 보기 드물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의 의뢰주... 블러우드 3성 귀족이죠?"


"!"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었으나 경악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녀 본인은 어렵사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동료들의 얼굴이 그것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분명 정곡을 제대로 찌른 것이리라. 팀의 동료들이 그들의 반응을 보고 되려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블러우드가 왜 이 팀에게 의뢰를 넣어요?"


"... 2중계약이에요. 이 사람들하고 저희를 싸움 붙여서 전력을 약화시키려고 한겁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짓을..."


"애초부터 의뢰금을 줄 생각이 없었겠죠. 그러니까 자기 사병들을 끌고 몰려왔잖아요. 저희 두 팀 중 하나가 유물을 가지고 나오면 그걸 억지로 빼앗을 생각입니다."


용병들이 토사구팽 당하는거야 하루이틀의 일도 아니다. 우리 팀원들은 성왕국의 시민권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일처리가 더더욱 쉽다. 만약 팀원들이 여기서 몰살당한다 해도, 경비들은 제대로 된 조사조차 시행하지 않을터다.


그러나 내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사용한 기적, 독수리의 눈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때 상대 팀의 사제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아슬론에게 물었다.


"거기 용인... 혹시 외계신을 모시고 있나?"


"외계신?"


아슬론이 생뚱맞다는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나는 그 단어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외계신이라... 이곳의 원주민들은 플레이어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사실 우리는 아예 다른 세계의 존재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아슬론을 시켜서 그것을 긍정시켰다. 그가 살짝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 그래서 바깥의 사정을 보고 올 수 있었나보네."


비교적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여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플레이어들에 대한 이야기가 크나큰 비밀은 아닌 듯 하다. 사제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슬론에게 말했다.


"하필이면 변덕스러운 외계신을 모시고 있다니,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서 우리쪽으로 개종하는게..."


"닥쳐. 지금 이렇게 사로잡혀있는 주제에 현명함을 논하다니!"


아슬론은 그의 말을 끊어내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기에는 지금 사제의 꼴이 많이 우스웠다. 저 팀의 궁수 전사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사제를 발로 찼다.


"지금 포교활동이나 할 때에요?"


"... 혹시 너희도 블러우드한테 의뢰를 받은거야?"


어렵사리 상황을 파악한 리더가 여마법사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의뢰를 받고 들어온 두 개의 팀. 그리고 밖에 진을 치고있는 의뢰주의 사병들. 좋은 상상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던 마법사는 머지않아 내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 뒤통수 맞은 것 같은데?"


"말도 안 돼. 우리를 여기서 다 죽이고도 멀쩡할 수 있을리가..."


이 상황에서도 행복회로를 돌리는 전사 리더. 여마법사가 내 대신 그에게 핀잔을 줬다.


"도시의 경비들은 우리 같은거 신경도 안 쓸걸. 무려 3성 귀족이 직접 나섰잖아."


"그래도 용병 고용소가 조사를 할거야."


"이미 돈으로 매수하거나 협박했겠지. 이짓거리 한두번 해보니?"


여마법사가 아까전에 리더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만약 그들이 매수당하지 않았다 해도 크게 기대할 수 있는건 없다. 그곳의 수준은 동네 인력사무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마침내 현실을 인정한 전사 리더가 한숨을 내쉬며 푸념하듯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유물을 갖다바친다고 우리를 무사히 보내주진 않겠지?"


"물론."


약속했던 보수를 받는건 고사하고 목숨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블러우드가 우리를 곱게 보내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그는 나와 아슬론의 참전을 예상치 못했다.


"블러우드는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을겁니다. 아마 서로 싸워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기대하고 있겠죠."


앞서 견식했던 이 파티의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전투에 숙련된 병사와 기사들이라고 해도 손쉽게 이기는건 힘들겠지. 그러니까 우리에게 의뢰를 넣어서 전력의 약화를 꾀했을터다. 나는 그 점에 착안해서 팀원들을 설득했다.


"저희가 먼저 공격하면 승산이 있어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공략을 마친 것 처럼 행세하죠."


사실 다른 방법도 없다. 설마 이 상황에서 공략을 속행하겠는가? 등 뒤의 적을 놔두고 싸우는 것은 무척 멍청한 짓이다. 블러우드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출구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내 말을 들은 전사 리더가 살짝 투덜거렸다.


"3성 귀족과 싸우게 되다니... 앞으로 성왕국에서 용병질 하는건 꿈도 못 꾸겠네."


"이렇게까지 뒤통수 맞고도 여기서 계속 일하고싶어?"


여마법사가 비웃음을 담아서 핀잔을 줬다. 전사 리더가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냥 해본 말이야. 그래서, 저쪽의 병력이 어떻게 됩니까?"


"병사가 스물 정도에 기사가 세 명."


내가 정찰의 결과를 알려주자 리더가 이를 바득바득 간다.


"와, 진짜 돌겠네. 니들 미리 유서 써놓고 나가라."


"대장은 안 쓰게요?"


"난 용인님 옆에 꼭 붙어있을거야."


그가 반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아슬론의 활약이 그에게 큰 감명을 준 모양. 우리는 그 농담에 피식 웃고는 자세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포박당한 팀원들도 우리와 함께 머리를 맞댄다.


작가의말

바뀐 제목이 극혐이라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게 효과가 꽤 좋네요...


제목이야 바뀌었지만 내용은 어차피 비축분 푸는거라서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독자님들은 안심하고 소설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군주의 정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35회 +20 17.02.08 6,434 233 11쪽
34 34회 +19 17.02.07 6,242 251 11쪽
33 33회 +10 17.02.07 5,989 239 11쪽
32 32회 +33 17.02.06 6,291 246 11쪽
31 31회 +21 17.02.05 6,637 249 11쪽
30 30회 +24 17.02.04 6,632 254 10쪽
29 29회 +30 17.02.03 7,121 274 12쪽
28 28회 +25 17.02.02 6,914 260 12쪽
27 27회 +22 17.02.01 7,197 272 13쪽
26 26회 +25 17.01.31 7,235 275 11쪽
25 25회 +28 17.01.30 7,406 279 12쪽
24 24회 +21 17.01.29 7,655 272 13쪽
23 23회 +24 17.01.28 7,563 295 13쪽
22 22회 +26 17.01.27 7,761 294 12쪽
21 21회 +33 17.01.27 7,836 302 12쪽
20 20회 +29 17.01.26 8,157 299 15쪽
19 19회 +23 17.01.25 8,151 308 12쪽
18 18회 +33 17.01.24 8,615 297 12쪽
17 17회 +31 17.01.23 8,699 327 13쪽
16 16회 +38 17.01.22 8,757 352 13쪽
15 15회 +23 17.01.22 9,182 303 11쪽
14 14회 +16 17.01.22 9,656 288 15쪽
13 13회 +18 17.01.21 9,734 317 14쪽
12 12회 +20 17.01.20 10,041 298 14쪽
11 11회 +14 17.01.20 10,293 306 11쪽
10 10회 +18 17.01.19 10,986 339 13쪽
» 9회 +25 17.01.19 10,950 326 11쪽
8 8회 +30 17.01.18 11,583 309 10쪽
7 7회 +21 17.01.17 12,995 331 10쪽
6 6회 +18 17.01.17 14,973 36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