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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몬의 방

무능한 용사는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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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몬
작품등록일 :
2021.05.15 14:21
최근연재일 :
2021.05.20 21:17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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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72

작성
21.05.2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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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웃긴 놈이네.]


힘없는 목소리가 웃었다. 깜짝 놀란 정수혈은 얼른 사다리를 붙잡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너 괜찮아?”


구멍이 숭숭 뚫린 문장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늦은 것 같지만, 힘없는 목소리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서라. 그 사다리 무거워. ‘중력의 문장’이랑 ‘힘의 문장’이 손수 나를 여기 깔아뭉개놓은 건데.]

“아니 걔들이 뭔데 어떻게 이런 심한 짓을 해?!”


이거, 인간으로 치면 바위에 못질을 해서 매달아 놓은 셈 아닌가. 특히 얜 종이라서, 잘못 움직이면 몸이 찢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정수혈은 사다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야,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 올릴 테니까 나와.”

[아니, 너는 못 든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인간인데...!”


정수혈은 있는 힘껏 힘을 주었으나, 사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사다리를 강철로 만들기라도 했나. 정수혈은 땀이 날 정도로 힘을 주었으나 정말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었다. 차라리 끌 수는 있을 거 같은데 끌었다간 백 퍼센트 저 문장의 연약한 몸이 끝날 게 뻔했다.


“이건 진짜 너무해.”

[너 진짜 신기하다.]


사다리 아래의 문장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냥 지나쳐버려, 네가 보기에 우리는 그냥 종이인 거잖아. 지나쳐도 꿈에도 안 나타날 거야.]

“종이는 종이인데, 지금 나랑 같이 수다 떨고 있는 종이잖아!”


조금 전까지 나랑 수다 떨던 사람이 지금 고문을 받고 있는데 아 그렇군요, 하고 지나치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꿈까지는 안 나타날지언정 마음은 전혀 편치 않을 터였다.


[이번 청소부는 진짜 순진하구나....]


문장은 다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내 꼴을 보고도 여기 생태계를 모르겠어?]

“생태계?”

[우리 같은 약한 문장들은 강한 문장이 뭐라고 하던 뭘 할 수가 없는 생태계지.]


낡은 문장의 힘없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우리가 걔들을 이길 수가 없는걸. 용사님들도 바라는 건 강한 문장이고.]

“....”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있잖아.”


정수혈은 낡은 종이 주변에 쌓인 먼지를 조심조심 치우며 말했다.


“면접 볼때, 능력이 좋은 사람이 좋긴 하겠지만... 능력과 더불어 면접관이 꼭 보는 게 있어.”

[뭔데?]

“인성이랑, 친화력. 이 사람이 우리 조직에 어울릴까 하는 그거.”

[...?]

“내가 용사라면 문장을 능력만 보고 뽑지 않을 거란 말이야.”

[위로가 어설프네.]


낡은 문장이 피식 웃는다.


[능력이 없는 자에겐 기회조차 오지 않아.]

“그렇지만 능력이 있어도 인성이 쓰레기면 그건 쓰레기지. 그까짓 능력이 인성을 덮을 수 있을 거 같아? 결국 인성이 능력을 잡아먹게 될 거야.”

[기회가 오지 않으면 내 인성이 어쩐지조차 드러낼 수 없잖아.]


낡은 문장의 지친 목소리는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그동안 겪은 절망에서 비롯된 슬픈 의지였다.


[우리 같은 자들이 용기를 내서 저기 다가가도, 우리는 끝내 비웃음만 당하고 끌어내려 질걸. 언제나 그랬거든.]

“....”

[능력 있는 자들의 멋진 배리어지. 이제 날 좀 내버려두겠니? 신입 천사야. 나는 저 소란스러움을 들으면서 다시 잠이나 자고 싶어.]

정수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낡은 문장은 고개를 슬쩍 들어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주변이 깨끗했다.



***



[아, 이 청소부 미쳤어?]


문장들이 모두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수혈은 눈앞에 벽처럼 들러붙은 수많은 문장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지금 막 여기로 온 용사에게 향했다.


“미안, 지나갈게.”

[천사가 용사를 왜 봐!]

[이번 천사는 바보인가? 항의할 거야! 벌점이나 먹어라!]


뭐라 떠들던 간 정수혈은 그 빽빽한 문장들을 뚫고서 드디어 용사의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놀랐다.


정말로 사람에게서 오색찬란한 빛이 보였다. 거짓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이었다. 게다가 그 용사는 키도 커서 190은 되어 보였으며, 온몸에 잘 가꾼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거짓말이라고 할 만큼 모범적인 강한 용사처럼 보였다.


“와....”

“무슨 일이십니까.”


문장의 자기소개를 듣고 있었던 것 같은 용사는, 낮고 위엄있는 목소리로 정수혈에게 말을 걸었다. 정수혈은 순간 놀랐지만 이내 진정했다. 그 용사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꽤 이지적이고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그는 안경을 슬쩍 치켜올렸다. 그의 옆에 있는 문장이 그에게 말했다.


[새로 온 견습 천사에요. 청소부라고 하네요.]

“청소부....”


용사는 정수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볼 만큼 날카로웠다. 왠지 긴장되어서 정수혈은 주먹을 꼭 쥐었다. 용사가 물었다.


“새로 온 청소부가, 저에게 부탁할 게 있습니까?”

“저 위에 엄청나게 무거운 사다리가 있는데, 제 친구가 거기 깔려서요.”


정수혈은 아까 낡은 문장과 대화를 나누었던 4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장들이 그 말을 듣고 수군수군거렸다.


[뭐야, 저기 설마 걔 있는 데 아니야?]

[우와, 이번 신입 청소부는 양심도 없어라.]


정수혈이 그 수군거림을 듣고서 가만히 있는데, 용사 앞에 서 있던 어떤 아름다운 마법진이 그려진 문장이 수혈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철벽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신입 청소부 씨, 그가 자기를 풀어달라고 하던가요?]

“그가 풀어달라고 하건 말건 상관없습니다.”


정수혈은 철벽의 문장이라 이름을 밝힌 문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본 낡은 문장과 같은 문장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빳빳하고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철벽의 문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그건 청소부 씨의 억지잖아요. 그는 거기 있고 싶어서 있는 거예요.]

“그가 거기 있고 싶어도 끌어내야 해요. 전 제 일을 하지 그의 사정은 알 바 아닙니다.”


정수혈은 단호히 말했다. 그는 용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도와주십시오, 강한 힘을 가진 용사님.”

“....”


용사는 정수혈을 물끄러미 보았다.


“지금 저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굳이 저곳까지 가서 당신을 도와야 할까요? 당신의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저는 ‘두 번째 바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싸움을 하려 가야 합니다. 이미 늦어서 서둘러야 해요.”

“...공짜로 도와달라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번째 바람’의 사람들은 마족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도, 당신을 돕는 데 힘을 써야 합니까?”

“절 도와주시면, 문장을 고르는 데 중요한 정보를 드릴 수 있어요.”

“중요한 정보?”

“문장은 용사를 도울 파트너죠.”


정수혈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눈도 달리지 않은 수천 수백 개의 문장들이 그를 무섭게 노려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시선에서 명백한 적의가 느껴졌다.


‘우리가 만든 생태계에 끼어들지 말라’ 고 그들은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수혈이 알 바 아니었다.


“다른 문장을 괴롭힌 문장 같은 건 필요 없으시죠?”


그 말을 하자마자 주변의 문장들 사이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문장들이 수근수근대기 시작했다. 용사의 눈썹도 꿈틀했다. 정수혈은 더 힘을 주고 외쳤다.


“앞으로 일을 같이할 파트너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면 그런 파트너를 고르시겠어요?”

[잠깐만!]

철벽의 문장이 끼어들려고 했지만 정수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절 도와주시면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용사는 순순히 승낙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하시죠.”

[잠깐, 잠깐만요.]


철벽의 문장이 가로막았다. 용사가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당신 차례였죠, 갔다 와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철벽의 문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문장들의 살기등등한 기세는 정수혈도 느낄 수 있었다. 문장들이 마치 보호막처럼 용사를 쭉 둘러쌌다.


[순서를 지켜!]

[우리가 함께 갈게요!]

“아니, 그러면 움직일 수 없는데.”


용사가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수혈이 다른 문장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며 말했다.


“다들 서로 새치기 할까 봐 그런 거지? 그럼 내가 여기 남아서 새치기하는 문장이 있으면 바로 용사님에게 이르겠어.”

[애초에 너 때문에!]

[저기 있는 그 문장이라면 그 추한 녀석밖에 없는데!]

[네가 뭔데 걔를 꺼내겠다 말겠다야?]

[걔 친구라니 웃긴다]



용사가 시끄러운 문장들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의 말이 옳습니다. 모두 여기에 남아주십시오. 그리고 순서를 지켜서 움직이지 말아 주시길.”

[저는 같이 갈게요! 이번이 딱 제 차례였잖아요.]


철벽의 문장이 얼른 나섰지만, 정수혈이 막아섰다.


“그건 치사하지. 저 용사님의 옆에서 계속 네 어필을 할 거지? 그러면 다른 문장의 몇 배나 되는 어필 시간을 갖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수많은 문장이 분노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뒤로 가!]

[그래,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그건 아니지!]

[마왕의 코앞까지 가서 양심을 잃어버렸니!?]


살벌한 언성이 오가자 철벽의 문장은 기가 죽어서 물러났다. 정수혈이 그를 잡으려고 하자 철벽의 문장이 거의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감히 천사따위가 내 몸을 만지려고 해!]

“아 네 실례했습니다. 어서 갔다 오세요, 용사님.”


정수혈은 태연히 용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용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4층으로 올라갔다. 정수혈은 고개를 들고 자신을 노려보는 문장들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철벽의 문장이 날카롭게 외쳤다.


[너, 그 괴물에게 무슨 말을 듣고 온 거야?]



***


낡은 문장은 조금 깨끗해진 주변을 슬슬 만지작거렸다. 아래가 정말 소란스럽다. 무슨 일일까. 견습천사가 구경하러 가니까, 그게 신기해진 용사가 말이라도 걸었을까.


아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슬쩍 움직여 보았다. 꿈쩍도 안했다.


‘가뜩이나 약해진 몸인데 무리하지 말자....’


문장에게 죽음은 없을지언정, 지금 몸이 찢기면 어떤 상태가 될지 아무도 장담 못 했다.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된다던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건 싫어.]


아무도 오지 않는 4층 구석에서 낡은 문장은 중얼거렸다.


[이런 저주받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세상의 그 어떤 용사도 날 선택하지 않을 텐데, 죽기도 싫대. 우유부단이라는 말은 나 같은 놈을 가리키는 말이겠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바닥에 찰싹 엎드렸다. 기회 따위 오지 않을 걸 알지만, 몸이 더 상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그때 갑자기 엄청나게 찬란한 빛이 가까이 왔다. 깜짝 놀란 낡은 문장은 고개를 들었다.


[..용사...님?]


키가 크고, 오색찬란한 빛이 감도는 진짜 용사. 너무 오랜만에 본 거라 낡은 문장은 뭔가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니, 꿈인게 분명했다. 정말 이상한 꿈이다. 저것 봐, 용사가 나를 보고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어.


“당신이 그 문장이군요. 이런 무거운 사다리 밑에 깔렸다니, 어서 꺼내드리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그러시면 다른 문장들이 화낼지도 몰라요.]

“저는 그런 걸 알 바 아닙니다.”

[네? 하지만 용사잖아요. 좋은 문장을 골라가셔야 해요. 저 같은 낡고 이상한 문장이 아니라....]


낡고 이상한 문장,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인데 자신의 입으로 말하려니 왠지 슬펐다. 용사는 그 말에 대답 없이 사다리를 아주 가볍게 들어 올려 옆으로 옮겼다.


[앗....]


이제 낡은 문장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사라졌다. 둥그런 사다리의 다리 자국이 선명하게 남긴 했지만, 이제 자유였다. 낡은 문장이 용사에게 물었다.


[왜 저를 구해주셨나요?]

“용사에게 부탁받았습니다.”

[네?]

“당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용사에게 부탁받았습니다.”



용사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낡은 문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가 기다립니다. 가시죠.”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낡은 문장은 그 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덩치 큰 용사는 그를 손에 올리고 4층의 구석에서 나왔다. 문득 따뜻해진 공기에 낡은 문장은 몸을 떨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노을진 황금빛 저녁 햇살이, 몇백 년 만에 그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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