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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몬의 방

무능한 용사는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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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몬몬
작품등록일 :
2021.05.15 14:21
최근연재일 :
2021.05.20 21:17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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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5,672

작성
21.05.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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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DUMMY

“아니 사람이 여기서 자나?”


노인의 궁시렁거림에 수혈은 잠을 깼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은 잘 처리되었네. 머지않아 가족들에게 복권당첨 등 온갖 방법으로 자네의 피땀 어린 능력을 판 대가가 갈 걸세.”

“...감사합니다.”


정수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그나마 가족이었던 밥값은 한 걸까. 사람은 너무 우울해지면 잔다던데, 왠지 괜히 졸렸다. 노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런 건 처음일세.”

“뭐가요?”

“자네는 역대 처음으로 ‘아무 능력도 없이 내려가는 용사’가 되었단 말일세.”

“아하하. 영광이네요.”

“에이, 스스로 비꼬지 말게. 중요한 건 마음이야 마음.”


노인은 허브차를 따라서 홀짝 마셨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랐다. 노인은 조금 심술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능력은 없을지언정, 문장은 아니지.”

“문장?”

“그래. 놀랍게도 능력만이 용사의 전부가 아니라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신기한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가 나타났다.


“이게 ‘문장’일세. 쉽게 말하면 이들은 ‘최상위급 정령’이네. 종이에 깃들어 마법진처럼 보이는 거지.”

“그렇군요.”

“이들은 용사에게 한 마리씩 붙어서, 용사의 여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지.”

“보조요?”

“그래. 예를 들어 자네가 ‘물의 마법’ 능력을 지닌 용사였다면, ‘증폭’의 문장을 선택함으로써 ‘물의 마법’을 증폭시켜 원래대로라면 물총이 나갈 마법을 폭포가 떨어질 마법으로 바꿀 수 있지.”

“호오....”

“그래서, 보통 용사들은 자신의 능력과 잘 맞는 문장을 고른다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아무 능력도 없잖아요?”


정수혈의 말에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그야 뭐, 물론 ‘문장’도 자신의 능력을 잘 키워줄 용사를 찾는다네. 그들도 신이 되고 싶을 테니까.”

“예? 신?”

“아.”


노인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안 말했군.”

“예?”

“그, 마왕을 물리치면 용사에게 무슨 보상이 있는지를 말하지 않았어....”

“보상이 있어요?!”


아니 그 중요한걸! 정수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노인은 멋쩍은 듯 머리털 하나 없는 반반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 그럼. 설마 대가 없는 여행을 하라고 하겠나.”

“....”

이 노인장의 기억력과 판단력을 믿어도 되는지, 정수혈은 고민했다.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큼큼,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용사는 마왕을 물리치면 신이 된다네.”

“예?!”

“그리고 용사를 도와서 마왕을 물리친 문장은 그 아래의 하급신이 되지.”

“스케일이 생각보다 크네요?”

“아무렴. 1700년 동안이나 싸웠으니 말이야. 우리도 필사적이라네.”

노인은 껄껄 웃었다.


“에이, 처음부터 이걸 말했으면 자네도 더 의욕적이었을걸 괜히 돌아갔군.”

“....”

“그래서! 문장들도 신이 되고 싶어서 용사를 고르는 데 열심이네.”

“....”

“어때, 신이 되기 위한 여행이라니까 의욕이 솟는가?”


놀랍게도 전혀 의욕이 솟지 않았다.

사람이 목표가 좀 현실 가능성이 있어야 의욕이 솟지, 판타지 세계에 가서 뭐 쓸 능력도 없고 빽도 없는 정수혈에게는 의욕이란 말과 로또란 말이 이음동의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자네는 새로운 능력이 없어서....”


노인도, 그렇게 말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수혈은 그 태도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문장들도 딱히 자네를 눈여겨보지 않을 거 같긴 하네.”

“그건 그렇죠. 그런데 그 문장이라는 게 꼭 있어야 하나요?”

“그래. 그게 없으면 용사가 아닐세.”

“흠....”

“하지만 난 자네를 믿네!”


노인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수혈은 그 눈에서 시선을 돌렸다.


“왠지 의욕적이시네요.”

“의욕적이지! 용사는 세상의 희망이라네.”


아무 능력 없는 용사인데도? 정수혈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자네에게 비록 추가적인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입이 있으니 말은 할 수도 있고, 지구에서도 특기라고 할 만한 게 있지 않았겠는가.”

“음....”


자기소개서에 취미, 특기 란을 쓸 때마다 언제나 10분씩 고민했는데. 도대체 왜 취업란에 이런걸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취준생에게 취미를 즐길 마음의 여유같은 게 넘칠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가?


“그러니 그걸로 어필하는 걸세.”


마치 본전 없이 장사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정수혈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언제나 남의 일은 쉽지....’

“문장들은 고대의 도서관에서 오래오래 살았다네. 다들 꽤 똑똑해.”

“그렇군요.”

“용사가 오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어서 용사들을 놀래게 만들기도 해.”

“뛰어든다고요?”

“자기를 데려가라고 어필하는거지. 만약 자네에게도 몰려든다면, 자네는 거기서 최대한 자네에게 도움이 될 문장을 골라야 하네.”

“그러니까 저는 아무 능력이 없는데....”

재료가 있어야 설득을 하지, 라고 말하려는 정수혈의 말을 노인이 얼른 가로막았다.

“그럼 자네를 믿고 도서관으로 워프시켜주겠네.”

“에?! 잠깐만요?!”

갑자기 정수혈 주변에 번쩍이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당황한 정수혈이 외쳤다.

“좀 더 이야기를...!”

“잘 갔다오게!”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이 정수혈을 감쌌다. 정수혈은 눈을 꼭 감았다. 정수혈이 도서관으로 사라지고 나서 노인이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설명 몇 개를 안했는데.... 뭐 괜찮겠지!”



***




눈을 겨우 떴을 때, 정수혈은 놀랐다.

“우와....”


정말, 사진에서나 본 적 있는 커다란 도서관이었다. 천장이 아득히 높았고 책장도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높이만으로는 건물의 약 4층에 맞먹을 것 같았고, 군데군데 층을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책 읽는 곳의 창문을 터서 무척 밝은 채광이 비쳤다.

그리고 거기를, 아까 노인이 사진에서 보여준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들이 마치 새처럼 파닥거리면서 날아다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에서 날아다니는 종이들을 보니 정수혈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나 진짜 판타지 세계에 온 게 맞구나....”


능력 하나 없는 용사지만.... 정수혈은 멍하니 그 광경을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잠깐만. 분명히 노인은 나한테 애들이 달려든다 뭐 어쩐다 했던 거 같은데.”


조용했다. 정수혈이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문장들은 도서관을 유유히 날아다녔다. 능력이 없어서 차별하는 것도 아니라 그냥 모르는 것 같았다.


“....”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고, 내가 진짜.”


온통 종이만 있는 곳에 사람이 뚝 떨어졌는데 이렇게 관심이 없을 줄이야. 멍하니 있던 정수혈을 어떤 문장이 툭툭 두드렸다. 예쁜 별이 그려진 문장이었다.


[왜 거기 서 있는 거야? 방해인데요.]

“엇, 죄송합니다....”


응? 분명히 노인은 문장들이 알아보고서 어필하러 달려온다고 하지 않았나? 정수혈은 혼란스러웠다.


“저기, 저 용사....”

[아아, 맞아. 용사 말이지!]

그 문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보아 하니까 신입 청소부 같은데, 보고 싶은 건 당연하겠죠. 그런데 어쩌냐. 대부분의 용사님은 문장을 선택해서 내려가 버렸어.]

“뭐라고!? 아니 잠깐, 대부분의 용사라니?”


용사가 나 하나가 아니었단 말이야? 정수혈이 당황하자, 문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엉~?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아, 날개도 없는 하급 천사라서 아무 말도 못 들은건가.]


멋대로 오해해버린 그 문장이 모서리를 파닥거렸다.


[이번에 100년에 1번씩 용사를 내려보낸 지 1700년째 되는 해라서, 17명의 용사를 내려보내잖아.]

“17명이나?!”

[응, 이번에 제일 많지. 벌써 열 넷은 내려갔어! 남은 게 딱 셋이야.]

“허어....”


노인장, 이런 중요한 정보를 전혀 알려주지 않다니!


‘아니 근데 잠깐.’


사실 용사가 많으면 더 잘된 거 아닌가? 수혈에게만 마왕을 물리치라는 압박을 주지 않을테니 말이다. 다른 용사가 열심히 노력하면 수혈은 뒤에 숨어서 편하게 농땡이 부릴 수 있는 게 아닌가.


‘깜빡 잊은 게 아니라 그냥 알려줄 필요가 없던걸지도 모르겠군.’


수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문장은 자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설명에 더욱 열을 올렸다.


[지금까지 온 열 네 명의 용사 모두 정말 대단했지! 그거 알아? 용사님들은 말이야,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래서 이 문장의 도서관에 오는 순간 빛을 팟하고 내뿜는다?]

“빛이요?”

[그래. 그분들은 지구에서의 노력을 여기서 아름다운 능력의 보석으로 보상받는다더라. 지금까지 오신 용사분들도 어찌나 눈부시던지!]


아하. 능력이 없는 정수혈은 그 빛이 없으니, 문장들이 정수혈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천사는 인간형인거 같으니 날개 없는 천사가 곧 하급천사라면 정수혈을 하급천사로 충분히 오해할만 했다. 어처구니없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문장은 그걸 오해했는지 정수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너무 기죽지 마! 아직 용사님 셋은 남았으니까. 용사님이 오면 그 찬란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100년마다 봐도 가슴이 떨리는데 신입 청소부는 오죽하겠니~]

“아하하....”


이제는 오해를 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여기서 사실은 내가 용사다, 라고 하면 오히려 증명을 어떻게 하는지가 문제가 될 거 같았다. 능력의 빛도 없고 몸도 약한 내가 용사라는 걸 증명하려면.... 진짜 뭘 해야 할까.


문장은 정말 진심 어린 위로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용사님들은 대부분 이 1층의 홀에서 소환되니까, 당분간은 1층 청소를 주로 해! 그럼 틀림없이 마주칠 수 있을 거야.]

“...자세한 안내 감사합니다.”

감사하지만 왜 이렇게 슬픈 걸까요. 정수혈은 머리가 아팠다. 문장이 높이 날아오르며 말했다.

[뭘. 아, 청소도구는 근처에 널려있는 거 쓰면 돼!]

“...네! 저기, 당신 이름은....”


그러나 그 문장은 날아가 버려서 이름을 듣지 못했다. 정수혈은 기가 차서 이마를 짚었다.


“나도 진짜 한심하다.”


왜 내가 용사라고 말을 못하니. 아무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용사라고 하겠니....


‘애초에 내가 용사가 되어야 하나?’


어차피 노인과의 거래는 끝났다. 여기서 적당히 땡땡이쳐도 별다른 문제가 있을까? 정수혈은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문장이 없으면 용사가 아니라며.

고민하던 정수혈은 다시 쓴웃음이 났다.


“아이고, 문장이 날 선택해줄지 말지도 모르는데 괜히 사치스런 고민이나 하고 있네.”


그는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어차피 지구에서도 한 번쯤 쉴까라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정수혈은 아름다운 도서관의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첫번째 에피소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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