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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5.31 07:20
연재수 :
1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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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1,175

작성
24.03.0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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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
13쪽

93화

DUMMY

“쟤가 나 죽인대.”


날 처형하겠다는 무라고스의 선포에 나는 후다닥 아린이 뒤로 숨었다.


“우와⋯.”


그 모습을 본 하은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뭐, 왜,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눈으로 할 말 다 해놓고 안 했다고?”


하은은 아직도 날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온다.”


그때 아린이 짧게 말했다.

행동을 개시한 거대 리빙 아머들은 각자 자신의 거대한 무기를 휘둘러 우리가 서 있는 장소를 크게 쓸어버렸다.

싸울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는 실수를 해버렸다.


- 카아아앙!


“⋯⋯⋯⋯?”

“⋯⋯⋯⋯?”


슬슬 공격이 우리에게 닿을 때가 됐는데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만 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되지 않은 나와 하은은 동그래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쿠구구구궁!


그러자 난데없이 거대 리빙 아머의 무기와 몸이 산산이 쪼개져 비산했고.


- 스르릉, 착!


옆에선 아린이가 언제 뽑았는지도 모를 검을 천천히 납도하고 있었다.


“허허허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예 감도 잡지 못한 나와 달리 조금이나마 검의 속도를 느낀 형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같이 길드 생활을 하긴 했지만 던전은 따로 다녔으니 아린이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는 건 형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빠르지?”


나보단 형이 더 강하고 싸움 실력을 가늠하는 눈이 있기에 나는 아린이가 얼마나 강한지 감이 오냐고 반쯤 질문하듯 툭 말을 던졌다.


“빠른 수준이 아니라 인지를 앞서가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눈이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면 뇌에서 내가 본 게 뭔지 분석해야 아, 이게 공격이구나, 라고 인지할 수 있는 건데⋯ 내 뇌가 그걸 인지하는 속도보다 아린이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 빨랐어. 그러니까 그냥 가불기라는 거지. 공격이 날아온다는 걸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맞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방어해?”


형은 그렇게 꽤 디테일한 감상평을 들려주었다.

단순히 빠른 걸 넘어 B급 각성자인 형도 아예 인지조차 할 수 없는 공격이라니, 그 정도면 거의 뭐 즉사치트 그런 거 아닌가?


- 콰앙!


거대 리빙 아머가 무력화되자 화려한 갑옷을 입은 리빙 아머 둘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몬스터의 수준은 그 둘이 훨씬 높아 보였다.


- 카가각! 카각!


하지만 그래봤자 A급 던전의 몬스터 치고 수준이 높은 거지 아린의 눈높이에서는 그놈이 그놈이었다.

아린이는 달려드는 리빙 아머를 그냥 갑옷째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분명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각자 달려들어 검을 두 번 휘둘렀을 텐데 내 눈에는 두 리빙 아머가 동시에 베이는 것처럼 보였다.


“쯧, 쓸모없는 놈들. 결국 내가 직접 나서게 만드는군.”


싸움을 지켜보던 무라고스는 드디어 직접 데스 사이드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크크큭⋯ 얼마 전 각성한 힘을 사용해 보기에 딱 좋은 허수아비들이구나.”


무라고스는 혼자 즐겁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불길한 마력을 스멀스멀 끌어내더니 파악, 하고 날개를 펼쳤다.


- 콰아아아아아!


무라고스가 날개를 펼치자 상당한 마력이 우릴 덮쳤다.

그는 날개를 펼친 것만으로 이 정도 마력을 발산할 수 있다는 자신의 힘을 과시해 기선제압을 하려고 한 것 같지만⋯ 우리 중 그런 그의 행동에 눈 하나 깜짝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라고스 님을 모독한 네놈! 지금 당당히 앞으로 나와 네 놈의 운명에 순응하라! 그리한다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그라고스랑 똑같은 소리 하는 거 보니 그라고스 따까리 맞네.

끼리끼리 노는구나.


“잘 부탁해.”

“응.”


하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아린이 뒤에 뒷짐 지고 가만히 서 있었다.

레이드가 일이 되니 이젠 별 감흥도 없었다.


“⋯지금 그 어리석은 선택, 끔찍이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나 대신 아린이가 앞으로 나서자 무라고스는 얼굴을 무섭게 찡그리며 공격을 개시했다.




***




“⋯⋯⋯⋯.”

“⋯⋯⋯⋯.”

“⋯⋯⋯⋯.”


던전 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할 말을 찾는 데는 다소 시간이 소요됐다.

호기롭게 아린이와 맞붙은 무라고스는 무기를 맞댄 지 단 두 합 만에 양팔을 잘리고 타임을 외쳤다.


“그래서, 왜?”


아린이는 그런 무라고스를 바로 죽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를 주었다.

무라고스가 무슨 짓을 하든 거뜬히 이길 수 있다는 강자의 여유였다.


“저, 저기⋯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저도 그라고스 님처럼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무라고스는 눈을 예쁘게 뜨고 정갈히 무릎을 꿇은 채 부탁했다.


“보시다시피 제가 아직 다 크지 않은 어린 악마인데⋯ 인간은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고 하던데⋯.”

“와하하하하! 아~ 헌터밥 먹은 지 꽤 됐다고 생각했는데 겸손해져야겠다. 진짜 별의별 진귀한 광경을 다 보네~.”


그런 무라고스의 모습에 형은 웃겨 죽겠다는 듯 박장대소했고 무라고스는 보랏빛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마, 마스터! 몬스터 말 따위 듣지 마세요! 빨리 죽여버리고 나가요!”


한시라도 빨리 던전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은은 조바심을 내며 그렇게 말했지만 아린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으로 내게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할지 판단을 내리라는 듯했다.


“음⋯ 우리가 널 살려주면 얻을 게 뭐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일단 무라고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 진짜 몬스터를 살려주겠다고?! 아저씨 미쳤어?!”

“가만있어봐, 죽이는 것 보다 살리는 게 나으면 굳이 죽일 필요 없잖아?”


협상의 물꼬가 트이자 무라고스는 반색하며 자신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 제 무기는 어떤가요? 상당히 좋은 무기입니다!”

“근데 그건 널 죽여도 똑같이 얻을 수 있는데?”

“아, 아닙니다! 이건 제 영혼으로 빚은 물건이라 제가 죽으면 같이 소멸합니다!”

“뭐야, 그럼 쓰다가 네가 죽으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다는 거잖아?”


무기를 팔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길드에서 판매한 무기가 증발했다고 소송이라도 걸려봐라, 상상만 해도 골 아프다.


“그, 그것도 아닙니다! 영혼의 연결을 끊으면 됩니다. 그럼 전용 아이템 스킬은 쓸 수 없게 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히 괜찮은 무기입니다!”

“으음~ 아린아, 얘 무기 어때? 쓸만해 보여?”


A급 던전 보스의 무기니 당연히 좋긴 하겠지만 나는 일단 무기 전문가인 아린이의 의견을 물었다.


“으음~ 뭐,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쓸 수는 있겠지만⋯ 내 취향 아니기도 하고 대낫을 굳이 써야 할 이유도 모르겠는데?”

“그럼 팔면 얼마쯤 나오려나?”

“아, 저, 저기⋯.”


그냥 죽여서 마석을 챙기는 게 이득일까 아이템을 챙기는 게 이득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하은이 슬며시 손을 들며 나섰다.


“내, 내가 한번 봐볼까? 아이템 감정학도 공부해서 조금은 볼 줄 아는데⋯.”

“어? 진짜?”


진짜 별걸 다 공부했네.

나는 하은에게 땅에 떨어진 무라고스의 데스 사이드를 주워 와 건네주었다.


- 파아앗.


하은이 데스 사이드를 잡아 눈을 감고 집중하자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일어났다.

감정할 것이 많은 건지 감정하는 게 서툰 건지 하은은 꽤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고 우리는 그런 하은의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음⋯ 대충 알겠다.”

“어, 어떻습니까?!”


감정 결과에 제일 관심 넘치는 건 역시 무라고스였다.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니 그럴 수밖에.

하은은 뭔가 몬스터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같아 말하기를 탐탁지 않아 했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결과를 알려줘야 하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몬스터의 말대로 영혼으로 빚어 만든 무기라 몬스터가 죽으면 아이템도 같이 소멸하는 건 사실이에요. 또, 연결을 끊어 몬스터의 생사와 관계없이 보유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다만⋯ 영혼의 연결이 끊기면 기능과 성능이 대폭 제한되고 하락해 A급에서 B마이너스급 아이템으로 등급이 하락하는 점, 무기의 형상이 독특해 사용하는 데 적응이 필요한 점, 데스 사이드라는 마이너한 무기라는 점을 종합해 아이템의 가치를 감정하면⋯.”


하은은 혼자 손가락을 접으며 대충 아이템의 가격을 계산했고.


“약 25억⋯ 정도. 아!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고유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희귀성과 화려한 외형에 소장 가치가 있어 구매하는 고객에 따라 약 30억 원 정도까진 협상의 여지가 있어요!”

“““오~.”””


제법 감정사다운 하은의 감정에 우린 가볍게 박수를 치며 감탄했고 무라고스도 살살 눈치를 보더니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하느냐만 남았는데⋯.”


나는 형과 아린이와 한 번씩 눈을 맞추어보았다.

결론은 대충 난 것 같았다.


“그래, 무라고스야. 너도 네 형님처럼 살자. 영혼 연결 끊어.”


우리는 무라고스의 목숨보다 아이템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아이템의 가치를 더 보수적으로 잡아 20억쯤이라고 해도 인당 5억씩이다.

보스인 무라고스를 잡으면 굉장히 비싼 마석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 마석이 20억 이상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수익적으로 보면 그냥 아이템을 받아 가는 게 정배팅이다.


“지, 지금 끊으면 제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안전한 곳에서 끊어도 될까요⋯?”

“그러다 네가 연결 안 끊고 그냥 도망가버리면?”

“무기에 제 영혼을 주입해 놔서 그렇게 도망가 버리면 제힘만 약해져서 손해입니다!”


무라고스의 말에 나는 살짝 하은을 바라봤다.

하은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알아서 하고 우리 이제 던전 안에서 우리가 잡은 몬스터 마석이랑 부산물 수거할 거니까 그 전에 방 빼라?”

“예? 하, 하지만 여긴 제 집 같은 곳인데⋯.”

“못하겠으면 어쩔 수 없고.”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린이가 들고 있는 검을 고쳐 쥐자 무라고스는 이제 반쯤 재생된 팔을 절레절레 흔들며 기겁했다.


“진짜⋯ 살려주는 거야?”

“살려주는 게 더 이득이잖아.”


저 멀리서 도주 경로를 확보하고 우리가 들고 있는 데스 사이드와의 영혼 연결을 해제하는 무라고스의 모습을 보며 하은이 물었다.


“그냥 확 기습해서 죽이면 안 돼?”

“난 괜한 도박하기 싫어. 너도 확실하게 몇억 더 챙길 수 있는 거니까 서로 좋은 거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뭔가 탐탁지 않아 하는 하은에게 옆에 서 있던 형이 그런 말을 했다.


“어쩌면 풀어주는 게 더 좋은 걸지도.”

“네? 왜요?”

“그 왜, 어부들도 산란기에 알 벤 암컷은 잡아도 다시 풀어주잖아, 약간 그런 느낌 나는데. 인류에 대한 위협이라곤 해도 이제 던전이랑 몬스터, 마석, 아이템, 이런 분야에 종사해 먹고 사는 사람이 엄청 많으니까 무분별한 포획으로 몬스터가 멸종해버리기라도 하면 이젠 그게 더 재앙 아닐까? 저렇게 적당히 개체수 조절을 해서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하면 그거야말로 돈 복사지.”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는데 형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는 어디서 오는 거고 얼마나 남은 걸까.

하루만 해도 엄청난 수의 헌터들이 엄청난 수의 몬스터를 죽일 텐데 이러다 언젠가 몬스터가 멸종이라도 하게 되면 헌터들은 하루아침에 전부 길바닥에 나앉는 건가?

그렇게 되면 각성자들은 남아도는 힘을 어디에 쓰게 될까.


“크으윽⋯! 두고 보자!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러 돌아오겠다!”


그런 심오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무기에서 영혼을 분리한 무라고스가 90년대 만화영화의 악당 같은 대사를 치고는 후다닥 도망쳤다.


“어~ 그래, 그라고스한테 안부 전해주고~.”


무라고스가 퇴장하자 던전의 출구가 열렸다.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묘한 보스전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길드는 배정받은 첫 A급 던전을 잘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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