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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7:20
연재수 :
17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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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86,548

작성
24.02.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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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75화

DUMMY

“반갑습니다! 신입 헌터 박준혁 27세, 각성 등급은 B급, 특성은 신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원만한 합의를 거친 결과 형은 우리 길드에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됐다.

형은 다른 것보다도 과연 그 유명한 S급 헌터인 아린이가 자신을 받아줄지 제일 걱정했지만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아린이는 당연히 좋다고 형을 반겨주었다.


“으음⋯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규모가 작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공식 길드인 만큼 형이 우리 길드의 헌터로 가입했음을 정식으로 신고할 필요가 있는데 내가 그런 걸 할 줄 알 리 만무하기에 그 절차와 방법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너 뭐하냐?”


형은 그런 내 뒤로 와 모니터 화면을 봤다.

보면 알 테니 뭘 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뭐야, 뭐 이런 걸 찾아보고 있어? 너 설마 할 줄 모르냐?”

“얼마 전까지 식당 주방보조 하던 사람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와~ 겨우 이런 것도 못 하면서 길드 설립할 생각을 했어? 넌 자격이 없다, 자격이 없어, 왜 그렇게 대충 사냐?”


형은 나를 놀려먹으려고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래도 나를 향한 자신의 공격이 광역기라는 건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형이 이 정도 눈치는 있기를 바라며 슬쩍슬쩍 아린이 쪽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동생아, 제발 대책 있게 살아라, 대책 있게~ 너 그러다 나중에 한 방에 훅 간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알아? 도대체 어떡하려고 그러니? 아니, 그나저나 형이 얘기하는 데 자꾸 어딜 보는⋯.”


형은 뒤늦게 내 신호를 눈치채고 아린이 쪽을 돌아봤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형이 내게 던진 비아냥은 100% 전부 아린이에게도 그대로 때려 박혔고 아린이는 자기가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인가 침울한 얼굴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단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다간 아무것도 시도조차 못 할 수도 있으니 일단 도전하는 용기도 필요한 법! 형은 그런 용기를 낸 네가 자랑스럽다! 넌 혼자가 아니야, 삶을 개척해나갈 훌륭한 동료도 있잖아!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부터가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대단한 사람인지 증명해주는 거야!”

“⋯어딜 보고 말하는 거야.”


형은 내가 아닌 아린이의 반응을 살살 살피며 칭찬을 쏟아부었다.

다행히 단순한 아린이는 이어지는 형의 아부에 자신감을 조금 되찾은 듯했다.


“아, 아무튼 형제 좋다는 게 뭐야!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서로 도와야지!”

“⋯그럼 같이 알아봐 주던가.”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할 줄 알아.”

“어? 할 줄 안다고?”

“길드에 있을 때 내가 팀장이라 우리 팀에 신입 들어오면 서류작업 같은 것도 자주 했거든.”

“⋯그럼 진즉에 말 예쁘게 하면서 도와줬으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럴 걸 후회 중이야. 사무실에 프린터 있지?”


형은 헌터관리국 홈페이지에 접속하더니 길드 가입서 양식을 다운받아 두 장을 프린트해 내용을 작성하고 사인했다.


“자, 한 장은 내가, 한 장은 길드에서 보관, 이거 잘 보관해야 한다? 그리고 헌터관리국 홈페이지에 길드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여기 적힌 내용 그대로 헌터 가입 신고하면 돼.”


매끄러운 업무 처리에 나는 처음으로 형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됐고 뭔가 일이 진행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슬쩍 옆에 와 구경하던 아린이도 감탄했다.


“우와~ 되게 잘하시네요.”

“하하! 이 정도는 간단하죠! 제가 있는 이상 실버나이츠 길드에 골칫거리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S급 헌터에게 인정받은 게 기분 좋았는지 형의 어깨가 승천할 듯 높아졌다.


“형 생각보다 되게 유능하다?”

“하하! 당연하지, 인마! 내가 괜히 바다 건너 먼 대륙까지 스카웃 된 게 아니라고!”

“그럼 형이 오늘부터 우리 길드 헌터 겸 서무하면 되겠다.”

“하하하⋯ 뭐?”

“헌터 겸 서무. 아린아, 너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지?”

“준혁 헌터님이 도와주시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형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기 위해 바로 아린이를 끌어들였다.


“하하하⋯ 저, 저만 믿으시면⋯ 되, 됩니다⋯!”


형은 기대감 가득한 아린이의 시선에 거절은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이야기 하자는 듯 나를 곁눈질로 위아래로 흘겨봤다.

그래봤자 뭐 어쩔 건데.

나는 형을 향해 씩 웃었다.




***




“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인생도 진짜 레전드다. 짜임새가 너무 좋아서 어디까지가 진짜고 구라인지 구분이 안 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진짜야, 이 정도 일은 있었어야 내가 그 윤아린 헌터랑 친구 먹은 게 말이 되지 않겠어?”

“외국 나갔다 오니까 동생이 아주 거물이 돼 있네.”


나와 형은 몇 년이나 서로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은 탓에 할 이야기가 많이도 쌓여 있었다.

우린 일하며 이동하거나 남는 시간에 짤막하게 끊어서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고 그걸 전부 이야기하는 데는 며칠씩이나 걸렸다.


형이 길드에 온 뒤로 길드의 상황은 크게 좋아졌다.

여러 사무 업무를 처리하고 방법을 알려줘서 편리한 것은 물론 당장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는 경력직 B급 헌터를 영입했으니 수익도 크게 늘었다.

물론 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쉬엄쉬엄 레이드를 진행하면 C급 던전까지는 무난하게 클리어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 또 이렇게 인생에 태클이 걸리네.”


그렇게 좀 잘 나가나 싶었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인상을 팍 쓰며 짜증 냈다.

내 앞으로 국회에서 우편물이 날아와 있어 뭔가 했는데 각성자들의 집단 테러와 군부대 습격에 대한 국회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서였다.

소은 누나로부터 증인으로 소환될 거란 정보를 미리 들었고 간간이 일의 경과도 전해 들었지만 최근 길드 일로 워낙 바빠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바쁘게 일해도 다음 달 대출금으로 적자가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거 참 귀찮게 됐다.




***




“하암~ 이런 걸 꼭 사야 해?”

“어차피 앞으로 자주 필요할 거야. 미리 사두면 좋지.”


나와 아린이는 형이 추천해준 양복점을 찾았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형은 이런 자리에 절대 빠질 사람이 아니지만 쉴 수 있을 때 쉬겠다며 얌전히 집에서 요양했다.

등이 불편하긴 많이 불편한가 보다.


“딱히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너 체육복밖에 없잖아, 청문회를 체육복 입고 나가려고?”

“안 되나?”

“당연히 안되⋯지는 않겠지만⋯ 좀 그렇잖아.”


청문회 같은 건 나도 처음이라 뭐 정해진 드레스 코드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덜렁덜렁 체육복을 입고 가면 뭔가 반항하는 것 같아 괜히 안 맞을 매도 맞게 될 것 같았다.

소은 누나가 말하는 분위기를 보면 묘하게 우리에게 적대적인 세력도 있는 것 같고 나나 아린이에게나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니 사소한 것에 괜한 위험 요소를 두기 싫었다.


“하암~.”


정장을 고르는 동안 아린이는 아주 지루해 죽으려고 하며 연신 하품만 했다.

해인에서 무기 고를 땐 아주 눈이 두 눈이 땡그래져서 지칠 줄을 모르더니 여기선 30분 만에 녹다운이었다.

나는 옷을 입을 본인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점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아린이에게 겨우 검은색 기성 정장 한 벌과 구두를 사 입히는 데 성공했다.


“⋯어때?”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린이는 불편하지, 방어력 없지, 그렇다고 다른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아직도 이런 걸 뭐 하러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 예뻐, 엄청 잘 어울려.”


나는 그런 아린이는 달래기 위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뭐, 꼭 아부를 위해서 한 이야기는 아니긴 했다.

옷보다 옷걸이가 중요하다고 곧고 늘씬한 아린이의 체형은 슈트핏을 극대화시켜 그냥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대충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뿐인데 시크한 패션모델 같은 느낌이 났고 검은색의 정장과 대비되는 새하얀 얼굴과 은빛 머리칼에 시선이 확 끌렸다.

옷을 추천해준 직원마저 이 정도로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지 놀란 얼굴로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럼 다 끝난 거지? 이제 던전 가는 거지?”

“그래⋯ 던전 가자⋯.”


뭔가 말 더럽게 안 듣는 미운 일곱 살 애를 겨우 병원에 데리고 왔다가 돈까스 먹으러 가는 것 같은 기분에 진이 빠졌다.

나는 던전 가자는 말에 표정이 펴진 아린이를 데리고 길드 사무실로 돌아왔다.




***




“너무 긴장하지 마, 너희를 공격하거나 질책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너희가 진짜 뭘 잘못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억지 부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청문회 끝나고 뉴스 댓글이나 인터넷 글 같은 것도 신경 쓰지 마. 그거 진짜 사람들 반응 아니야, 여론몰이하려고 풀어놓는 댓글부대 같은 거 들어본 적 있지, 그거 진짜 있거든? 99%는 그 댓글부대가 쓴 글이야.”

“네⋯!”


청문회 소환 전날, 소은 누나는 나와 아린이를 불러 청문회를 대비 정신교육을 시켜주었다.


“아, 그리고 청문회장 들어가기 전에 기자들이 너희한테 이런저런 질문 엄청 할 거야. 거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 마. 아예 무시해도 되고 그건 좀 그렇다 싶으면 그냥 청문회에서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그 정도로만 말하면 돼.”

“그, 그건 왜요?”

“우리나라 언론사들 뭐 언론의 객관성, 중립성, 그런 거 가져다 버린 지 오래라 너희가 뭐라고 한마디 했다 하면 그걸로 말장난해서 마음대로 기사 쓸 수 있거든. 그럴 건덕지를 아예 주지 않는 거지.”

“뭔가 좀 무섭네요⋯.”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긴장하는 편이 좋긴 할 거야. 어떤 식으로 크게 한 방 먹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거, 한 번 슥 보고 가면 좋을 거야.”


소은 누나는 나와 아린이에게 종이 몇 장을 나누어주었다.

내일 청문회에서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 리스트였다.

소은 누나는 자신의 업무와 일정을 모두 소화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우리를 위해 이런 것까지 준비해주다니, 형 말고 이런 누나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언니⋯ 그런데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저희가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거죠?”


질문 리스트를 슥 훑어본 아린이는 이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다.

특히 아린이는 청문회가 아니라 표창을 줘도 모자란 영웅인데 말이다.


“⋯이번 청문회는 단순히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그런 단순한 자리가 아니라 그래.”


아린이의 질문에 소은 누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기득권이 걸린 전쟁의 일부라고 해도 딱히 오버는 아니지.”

“기득권이 걸린 전쟁이요?”


테러 사건의 진상 규명 청문회가 기득권 전쟁과 무슨 상관인지 의문이었다.


“이번 일로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하던 두 세력 중 한쪽이 살짝 기울게 될 거야. 대한민국 정부와 헌터관리국, 둘 중 하나 말이지.”

“어⋯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소은 누나가 손짓하자 주전자가 날아와 어느새 비어있는 내 찻잔을 채워주었다.

조금 긴장했다 보니 자꾸 뭘 마시게 돼서 잔이 빠르게 비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제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닌 세상이 됐잖아, 각성자와 일반인, 표면적으론 평등한 것 같지만 솔직히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린 절대 같지도 평등할 수도 없다는 걸.”


나는 소은 누나의 말에 살짝 오싹함을 느꼈다.

누나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또 생각하고 있지만 굉장히 불편하기에 다들 자신의 깊숙한 한곳 어딘가에 묻어둔 민감한 주제를 쑥 끄집어냈다.


“일반인이든 각성자든 계속해서 자신들이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같은 국민으로 두고 싶은 정부와 그런 통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권자가 되고 싶은 헌터관리국, 이번 청문회는 그 둘의 대결이 될 거야. 이제 그림이 조금 그려지지?”


누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떤 구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대충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내일 참가할 장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버린 탓일까, 차의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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