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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로 님의 서재입니다.

너 내.. 도...도도... 독방구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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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광명로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5
최근연재일 :
2024.09.20 13:00
연재수 :
108 회
조회수 :
14,815
추천수 :
308
글자수 :
610,227

작성
24.05.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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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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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2화 정양문(正陽門) (04)

DUMMY

제2화 정양문(正陽門) (04)






만찬장의 모두가 그녀의 윗입술을 주목하던 그 순간. 주책없이 윗입보다 아랫입이 먼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뿌우웅~♡


그것은 다소 귀여운 목소리였다.


"······."

"······."

"······."

"······."

"······."

"······."

"······."

"······."


화린의 건배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갑자기 눈앞에서 펼쳐진 대참사에 할 말을 잃었다.

기영은 배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자신이 지금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술잔을 들었다.

기영이 의자를 일부러 끌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기기긱!


다소 시끄러운 소음이 무거운 정적을 깨뜨리며, 뭇 사람들의 시선이 기영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의 하나같이 의아해하는 "네가 지금 이 상황에서 왜 일어나느냐." 라는 의문의 시선들 속에서 기영이 다소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당 소저의 건배사 잘 들었습니다."




***




한 영웅의 추락은 뭇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비분강개와 교훈을 남기는 법이었다.

'여자가 어딜 감히 앞으로 나서냐'는 혹은 '젊은 사람은 겸손으로 웃 어른들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등의 교훈 말이다.


쑥떡쑥떡

키득키득

와글와글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지는 않는다.

평소 영웅을 시기질투하고, 마음에 새카만 흑심(黑心) 내지 에덴동산에서 하와와 아담을 추락시켰던 구약성경의 뱀과 같은 마음을 지닌 자들은 도리어 영웅의 추락을 자신의 가십거리로 만들어. 맛있게 찢고, 제멋대로 망상을 이어 붙이며 그럴싸한 이야깃거리로 만들었다.


'재미없는 존재가 되었어.'


기영은 스스로가 참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좀 더 때깔이 고운 그런 아이였는데.


'그녀가 진창에 미끄러져서 옷을 더럽히고, 울상을 지으며 결국 끝끝내 눈물 한 방울을 흘렸지.'


분명히 오래 전이었다면 그런 그녀를 보고 함께 슬펐을 것이었다.

그랬을 것이다.

혹은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짜릿해! 가슴 떨리는 희열이 느껴져. 마침내 그녀도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껴.'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는 기이한 감응이 기영의 저열한 영혼 밑바닥. 저 깊은 구렁텅이 속에 있는 잊고 싶지만 도저히 잊어지지 않는 시커먼 기억들을 더 새카맣게 덧칠하는 기분이었다.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어."


멍하니 허공 어딘가를 허무하게 바라보던 기영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지금 화린은 위로가 필요할 거야. 내가 그녀를 위로해줘야겠어. 그녀에게는 분명 지금 사람이 필요할 거야."

'············과거의 나처럼!'


기영의 혼잣말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왕삼이 기묘한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봤다.


'응? 뭐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왕삼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당기영이 어딘지 이전의 당기영과 다른 느낌을 지금 받았다.

과거의 당기영은 분명히 망나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범주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당기영에게서는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깊은 비틀림을 왕삼은 느꼈다.




***




"안타깝지만 지금 아가씨께서는 그 누구의 방문객도 받으실 생각이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주시지요."


어젯밤 화린과 함께 긴 밤을 눈물로 지샌 흔적이 역력한 맹초롱이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방문 앞에 서서 기영을 매섭게 노려봤다.

어제 만찬장에는 당연히 맹초롱도 당화린과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지금 당기영의 옆에서 찰싹 붙어서 서 있는, 왕삼처럼 맹초롱도 어제 당화린의 곁에서 그녀의 수발을 들었다.

그래서 일련의 사건들을 다 지켜봤고, 눈앞의 당기영이 어제의 대참사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제대로 찍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안 돌아가. 나는 내 불쌍한 누이의 곁을 지킬거야."


기영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왕삼을 시켜서 탁자와 의자를 가져오도록 했다.

맹초롱은 그런 뻔뻔한 태도의 기영을 보며, 기가 막혔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맹초롱은 서러움이 북 받친 얼굴로 어깨를 잘게 떨었는데, 여린 소녀에 불과한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당기영의 곁에 있는 왕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은 열두시진 하루종일 붙어서 같이 생활하는 존재들이었다.

맹초롱도 당화린이 정운의 지목을 받고, 사양하지 않고, 건배사를 받아 들였을 때는 속으로 '아이고, 아가씨 또 가문으로 돌아가시면 혼 나시겠네.'라고 골치를 아파했지만.

그 뒤로 벌어진 사태는 고작 사람들의 관심 받기를 좋아할 뿐인 여자애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었다.

더구나 눈앞의 당기영이 "당 소저의 건배사 잘 들었습니다." 라고, 이야기의 마무리를 확실히 지어버림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확실히 각인(刻印)이 되었다.

기승전결이 딱딱 맞아 떨어져서,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한 사고(事故 :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하거나 해로운 일)로 태풍이 불어나간 것처럼 지나갔을 일이 하나의 이야기(敍事)로 승화되었다.

맹초롱은 그 사실이 너무 괴롭고, 가슴이 아팠다.


"당장 나가요! 당장!!! 적어도 당신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맹초롱이 기영의 옷자락을 잡으며 거칠게 밀어냈다.

왕삼이 깜짝 놀라서는 그런 초롱의 손을 잡아서 막았다.


"정신차려! 이분은 당 공자님이야."

"뭘 정신차려요! 지금 우리 아가씨가 어떤 심정으로 누워 계신데, 내가 대신 아파할 수 있으면 내가 다 받아내고 싶은데. 엉엉엉.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뻔뻔한 얼굴로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요. 어떻게!!!!"


맹초롱은 스스로가 너무 분하고, 화가 나서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그저 토해내고 또 토해낼 뿐이었다.

왕삼은 그런 맹초롱의 여린 손을 잡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왕삼의 입장에서 맹초롱은 뼈 마디가 너무 얕고, 살이 무르디 무른 소녀에 불과했다.

손을 잘못 놀리면 툭 하고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여자애였다.


"공자님. 그만 갑시다."


왕삼은 도저히 울고 메달리는 맹초롱을 더 바라볼 수 없었다.


"안 가."

"도련님!!!"


이제 왕삼도 너무 화가 났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뭘하고 계신 것일까.

원래 이런 분이셨나?

왕삼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어나세요!!"


마침내 왕삼의 손이 거칠게 기영의 어깨죽지를 잡아서 힘껏 들었다.

그렇게 하였음에도 기영은 미동이 없었다.

불과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였는데, 과거에 막 당기영에게 빙의하였을 때는 내공을 운영할 줄 몰라서 왕삼을 떨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왕삼. 놔라."

"일어나세요! 제발!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왕삼은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재빠르게 바닥에 무릎을 댔다.


"도련님,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승에서."

철썩!


기영은 패드립을 치려는 왕삼의 뺨을 거칠게 때렸다.


"말을 조심해라."

"말을 조심해야 할 것은 너지."

"드디어 우리 어여쁜 누이의 얼굴을 보는군. 이런 이전에 떡진 모습도 보기는 했지만 오늘은 결이 더 심하군!"

"꺼져."


왕삼의 뺨을 치는 사이에 어느새 방문을 열고, 당화린이 얕은 소복 차림으로 방 밖으로 나왔다.

그녀 역시 맹초롱과 마찬가지로 눈덩이 부분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어젯밤 내내 엉엉 울었던 탓이었다.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나를 만나러 온 거야? 네가, 어디서 감히."

"어디서 감히는 이 오라버니에게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퉷!"


화린이 기영에게 침을 내뱉었다.

산뜻한 미스트가 기영의 얼굴에 뿌려졌다.


"번지르르한 말은 그만 늘어 놓고, 네 얼굴은 더 이상은 보기 싫으니까. 내 방에서 꺼져."

"······기운을 차린 모양이군. 난 또 네가 완전 실의에 빠져서 침상에서 벗어나기도 싫어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지랄 말고 꺼지라고."

"왕삼! 가자."


기영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영이 일어서자 왕삼도 따라서 일어났다.

화린의 방문을 나선 기영은 화린의 방 앞의 복도에 섰다.


"왕삼, 이곳에 탁자와 걸상을 가져 와."

"예? 저희 그만 떠나는 것 아니었습니까?"

"떠나기는 어딜 떠나. 그것보다 부엌에 가서 요리들을 가져 와. 분명히 화린과 그 시녀 모두 배가 무지 고플 거야."


왕삼은 알쏭달쏭한 눈으로 기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무 상대가 낯설게 느껴졌다.

만약 둘의 신분 차이가 그렇게까지 벌어지지 않았다면 대놓고 "누구세요? 당기영 공자님 맞으세요?" 라고 물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일련의 상황들이 너무 기이하고, 이상했다.


"뭐해. 어서 안 가고."

"예."


가슴팍에 영문 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왕삼은 감히 그것을 표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왕삼."

"예. 말씀하십시오."

"방금은 때려서 미안해."

"······."


왕삼은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자신이 방금 기영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을 복기했다.

기영에게 맞은 자리가 따끔따끔 거렸다.


"괘, 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인지. 가슴 한켠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저, 저는 먼저 요리들을 가져오겠습니다."


눈가에 맺히는 물방울들이 낯설게 느껴짐과 동시에 왕삼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남자가 고작 이까짓 일로 감동을 받아서 울다니. 아버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


왕삼을 보내고서, 기영은 당화린의 방문 앞 복도에 탁자를 펴고, 다소 허무한 눈으로 바깥의 풍경을 보았다.

샛초록한 나뭇잎들과 아름답게 지저기는 참새들의 울음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려왔다.


째잭! 짹짹!


그들이 묵고 있는 정양문의 내원에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정원을 살펴보며 기영이 자신의 턱을 굈다.

바깥을 바라보는 기영의 두 눈동자에 옅은 허무가 끼었다.


"나는······ 정말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어."




***




"꺄하하하하하!!!"


당화린의 방문 앞에 돌연 한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화린의 귀를 자극했다.


우걱우걱


화린은 입 안으로, 기영의 시종인 왕삼이 가져온 어향육사(魚香肉絲), 회과육(回鍋肉), 궁보계정(宮保雞丁) 등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자신의 반대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앉아서 열심히 밥을 먹는 맹초롱을 보았다.

두 여인 모두 어젯밤에 서로를 껴안고 엉엉 울면서 밤을 지새웠기 때문에 배가 몹시 고팠다.

적절한 시각에 왕삼이 요리들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초롱아. 바깥에 무슨 일이야?"

"모르겠는데요?"


평소라면 같은 탁자에서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달랐다.

둘 다 너무 배가 고팠다.


"모르겠다고?! 내가 지금 그걸 말하는 것이 아니잖아."


말을 하면서도 고기를 짚는 당화린의 손놀림을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

와구와구!


맹초롱은 당화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눈앞에 놓인 음식들에 코를 박은 채로 흡입하기 바빴다.

그녀도 당화린 만큼 배가 몹시 고팠다.

평소에 먹는 음식량의 2~3배는 더 먹는 느낌이었다.

화린은 기가 막혔다.


"너어어어!"

"궁금하시면 궁금하신 분이 직접 알아보셔야죠."


그제야 맹초롱이 냉큼 대답을 했다.

당화린은 맹초롱의 맹랑한 대답에 속으로 씩씩 거리면서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는 않았다.

그녀가 바깥에 나가는 사이에 눈 앞에 쥐벼룩만한 조그마한 여자애가 탁자 위에 있는 음식들을 다 먹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화린은 그런 도박을 할 수 없었다.


달그락달그락

우걱우걱


화린의 방에서는 요란한 식기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맛있게 요리를 먹는 소리들만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그런 안쪽의 전투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방 밖에서는 이남일녀(二男一女)가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꺄하하하하. 정말로 기영 오라버니는 너무 재밌으신 분이신 것 같아요."

"재미를 따지자면 내가 어떻게 화린을 이길 수 있겠어. 너도 바로 옆에서 직관했으니. 그 재미를 제대로 누렸을 것 아니야."

"아! 그 발언은 너무 짓궂어요. 오라버니."


한창 웃음을 빵빵 터트리던 소녀. 정양문의 문주 정운 슬하의 하나 뿐인 딸인 금지옥엽(金枝玉葉) 정선혜가 당화린의 방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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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3화 천화산(天花山) (01) 24.05.21 209 4 13쪽
19 제2화 정양문(正陽門) (16) 24.05.20 210 4 12쪽
18 제2화 정양문(正陽門) (15) +1 24.05.17 222 4 13쪽
17 제2화 정양문(正陽門) (14) 24.05.16 214 4 12쪽
16 제2화 정양문(正陽門) (13) 24.05.15 206 4 13쪽
15 제2화 정양문(正陽門) (12) 24.05.14 208 4 13쪽
14 제2화 정양문(正陽門) (11) 24.05.13 208 3 12쪽
13 제2화 정양문(正陽門) (10) 24.05.12 237 4 12쪽
12 제2화 정양문(正陽門) (09) 24.05.12 255 4 13쪽
11 제2화 정양문(正陽門) (08) 24.05.11 286 6 12쪽
10 제2화 정양문(正陽門) (07) 24.05.11 261 6 13쪽
9 제2화 정양문(正陽門) (06) 24.05.10 298 6 13쪽
8 제2화 정양문(正陽門) (05) 24.05.10 319 6 13쪽
» 제2화 정양문(正陽門) (04) 24.05.09 369 5 13쪽
6 제2화 정양문(正陽門) (03) 24.05.09 412 5 12쪽
5 제2화 정양문(正陽門) (02) 24.05.08 476 6 12쪽
4 제2화 정양문(正陽門) (01) 24.05.08 561 9 12쪽
3 제1화 빙의 (03) 24.05.08 574 9 12쪽
2 제1화 빙의 (02) 24.05.08 686 10 12쪽
1 제1화 빙의 (01) +3 24.05.08 1,209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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