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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퇴역병의 무림보은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0 18:15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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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70
추천수 :
570
글자수 :
281,075

작성
24.05.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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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피의 첫걸음 -3

DUMMY

북궁백은 중평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전장에선 항상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북궁백은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중평이 일사회와 적당히 멀어지면 아래로 내려가 빠르게 처치하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급박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최소 반 시진은 걸릴 줄 알았는데 훨씬 일찍 도착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궁백은 황영파가 내려가자마자 정상으로 이동하느라 태안문에 혈서를 묶은 화살을 쏜 것이나 그 소리를 듣고 중평이 건물 밖으로 나온 것을 보지 못했다.

지금 막 정상에 도착해 황영파와 중평을 보고 다급하게 내려온 참이다.


‘내가 정상에 도착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진 탓도 있지만···.’


형편없는 경공술과 무거운 병장기 때문이다.

월량산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험한 산은 아니지만, 산 중턱부터 정상 아래까진 다르다.

경사가 급격히 오르고 뜬금없는 절벽이 솟아있는, 손가락으로 정상을 집어 쑥 뽑아낸 듯한 지형이다.

절벽에 드러난 암석도 단단하지 않아 오르는 내내 상당히 고생해야 했다.

어쩌면 천운이다.

북궁백의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주위를 돌아보며 오합련이 산을 타고 돌아오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느라 늦게 발견했을 테니 말이다.


“내가 묻고 있지 않느냐?”

“그 기문병기(奇門兵器)를 보아하니 당신이 일사회주가 맞나 보구려.”

“당신? 새카만 후배 놈이 무림 선배에게 당신이라니···. 이젠 무림에 선후배의 예의조차 남지 않았구나.”


중평은 기가 찬 표정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북궁백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피차 서로 죽이려는 걸 알고 있는 마당에 호칭이 뭐가 그리 중요하오?”


그러자 중평의 표정이 싹 바뀌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크흐흐. 네 말이 맞다. 서로 몸에 날붙이를 박아넣을 건데 개새끼라 부르면 어떻고 소새끼라 부르면 어떠랴.”


중평은 그렇게 말하며 비사교월검(飛巳咬月劍)의 기수식을 취했다.


“평소에 정파 놈들이 예의 어쩌고 하는 게 우스웠던 참에 오랜만에 정파 놈 멱을 따게 돼서 농이 절로 나왔구나.”

“나는...”

“차앗!”


북궁백이 입을 연 순간, 중평은 보법을 밟으며 삼 장 밖에서 검기를 두른 사복검을 휘둘렀다.

쒜에엑!

크게 호선을 기린 사복검이 날카로운 파공성을 뿌리며 단숨에 양단할 기세로 날아들었고, 북궁백은 이를 언월도로 쳐내려 했다.

중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사복검을 살짝 비틀었다.

그러자 비사라는 이름답게 허공에서 검신이 꺾여 언월도를 피하더니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꿔 폭발적으로 가슴을 찔러왔다.


‘싱겁군.’


중평의 눈에 지루함이 스쳤다.

사복검에 익숙지 않은 무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였다.

저렇게 품이 활짝 열려버린 이상 설사 오합련주 오원평이라 해도 피할 수 없으리라.

그때였다.


촤르륵.

북궁백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혈관이 툭툭 튀어나오더니 전신에서 비늘이 떨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지 싶은 순간 사복검이 큰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왔다.

중평은 사복검을 회수하며 그 정체를 알고 황당해했다.


“갑주라니···. 정파 놈들이 이젠 수치심도 버렸구나.”

“나는 정파가 아니오.”

“그럼 남궁세가가 사파 무인을 빈객으로 맞이했단 말이냐”


북궁백은 품이 넓게 갈라져 나풀거리는 무복을 찢어내며 말했다.

“세상은 정파와 사파로만 나뉘지 않소.”

“무림은 정파 아니면 사파다. 남궁세가의 손님이 된 순간, 넌 정파가 된 것이야. 게다가 정파의 후예인 황영파를 돕고 있지 않더냐?”

“내게 정사 구분 따윈 아무 의미 없소. 난 내 할 일을 할 뿐이오.”

“오합련과 싸우는 게 고작 할 일? 무슨 일을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하느냐?. 황영파에게 목숨 빚이라도 진 것이냐?”


북궁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니오. 그의 형이지.”

“형? 아아. 그러고 보니 군에 끌려갔다던 장자가 있었지. 그래. 이제 좀 이해가 되는군.”


중평이 북궁백의 갑주와 언월도를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놈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니 죽은 모양이구나. 장성에 있는 놈이 집안이 망했다는 건 몰랐을 테니 복수해달라고 하진 않았을 테고, 네가 자의로 도와주는 거겠지?”

“그렇소.”


북궁백의 대답을 들은 중평이 탄식했다.


“그놈 참 기구한 놈이로다. 강제로 전장에 끌려가 사람 하나 살려놓았더니 헛되이 목숨을 내버리려는 놈이었다니. 저승에서도 원통해 피눈물을 흘리겠어.”

“그러지 않을 거요.”

“네놈이 보았느냐?”


북궁백은 입을 다물었다.

유치한 말장난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중평이 혀를 차며 한심해했다.


“빚이라고 다 갚을 필요가 없거늘. 그저 눈 한 번 딱 감고 외면하면 그만인 것을···. 너 때문에 그의 동생은 물론 그가 준 목숨까지 잃게 생겼구나.”

“그건 당신의 편협한 생각일 뿐이오. 사람이란 무릇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할 줄 알아야 하오. 그리고 나는 내 목숨을 걸진 않았소.”


그렇게 말한 북궁백은 언월도를 꼬나쥐고 무섭게 질주했다.

보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투박하기 짝이 없는 달리기였으나, 그 속도와 기세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중평은 즉시 보법을 밟아 거리의 우위를 유지하면서 사복검을 휘둘렀다.


챙. 차앙.

쫓고 쫓기는 가운데 언월도와 사복검이 연달아 부딪쳤다.

그때마다 사복검이 낭창이며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여파에 휩쓸린 나무들이 퍽퍽 터져나가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무슨 힘이···.’


중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복검의 유연한 검신 때문에 손목에 가해지는 여력은 상당히 중화되었지만, 반대로 검신 제어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그와 더불어 경사로에서 뒤를 보지 못하고 계속 물러서기만 하느라 정신이 분산되어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해.’


중평은 지금 상황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튕겨 나온 사복검을 그대로 크게 돌린 후 머리 위에서 힘껏 내리쳤다.

북궁백은 눈을 크게 뜨고 사복검을 주시했다.

시야에 담은 세상을 정확히 반으로 쪼개며 떨어져 내린다.

지금까지 줄곧 펼쳐낸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달리 정직한 검로였으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그 생각대로 사복검이 변했다.

검로는 그대로였으나 반월처럼 휘어져 있던 검신이 곧게 펴지면서 순간적으로 검속을 더했다.

그와 동시에 북궁백이 머리 위로 창대를 들어 올렸다.


까앙. 촤자작.

이 장이 넘는 장검이 된 사복검이 창대를 내리쳤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창대와 부딪힌 부분을 기점으로 검첨이 느슨하게 풀어지며 창대를 휘감았고, 검날과 검날이 얽히면서 창대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흐아압!”


중평은 몸을 회전하며 전력을 다해 사복검을 당겼다.

언월도를 놓지 않은 북궁백은 그대로 허공에 떠올라 크게 반원을 그렸다.

난생처음 보는 병기술에 당황하기도 했고, 중평의 연계가 굉장히 빨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그 대가는 제법 컸다.


꽈직. 꽈직. 쿠웅.

몸으로 나무 다섯 그루를 쓰러트리고 바위에 내동댕이쳐졌다.


“...!”


북궁백은 등이 절로 오그라들게 만드는 엄청난 충격에 입을 떡 벌렸다.

중평이 당기는 힘도 굉장했지만, 갑주의 무게와 언월도의 무게가 합쳐지면서 충격량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몸을 일으켰다.


“얌전히 누워있을 것이지!”


중평이 일갈하며 비사교월검의 오의, 구사헌월참(九巳攇月斬)을 펼쳤다.

사복검을 중심으로 여덟 줄기의 검사가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서로 얽히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며 눈을 어지럽히는 모습이 뱀 아홉 마리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듯했다.


북궁백은 언월도를 단단히 움켜쥐고 사복검을 노려보았다.

머릿속에서 더는 만날 수 없는 전우가 떠올랐다.

화산파에서 왔다던 그는 몸에서 은은한 매화향을 풍겼고,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검법을 펼쳤다.

언젠가부터 야인대 전원과 비무를 시작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와의 첫 비무에서 화려한 검법에 손도 쓰지 못하고 호되게 얻어맞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아무리 복잡하고 많아 보여도 근원은 결국 한 점이야. 그 점을 지워봐. 물론 자네에겐 쉽지 않겠지만.


그 이후로도 수십 차례 비무를 했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점을 지워본 적 없다.

아니, 사실 그 점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검도, 검을 잡은 손도, 손이 달린 팔도, 어깨도, 그의 몸도 아니었다.

거리가 우월한 창으로 어디를 찌르든 그의 초식은 파훼되지 않았다.

그 답은 그가 진원진기를 넘겨주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야 알 수 있었다.


“후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손으로 언월도의 하단을 잡아 옆구리에 끼웠다.

태산처럼 땅을 버티고 서서 눈을 반개했다.


본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사복검과 그걸 다루는 중평을, 그 공간을 시야에 담았다.


떠올린다.


-검의 변화와 상체의 움직임, 보법을 잇는 가상의 점. 그걸 지우면 변검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거야.


찾아낸다.


검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무(武)를 이루는 가상의 중심을.

초식의 근원을.


그리고 지운다.


투확.

북궁백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벼락처럼 언월도를 내밀었다.

사복검을 쳐내기에는 방향이 틀렸고, 중평을 찌르기엔 거리가 짧았다.

언월도가 나아가는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불과했지만,


“헉!”


사복검이 멋대로 치솟았다.

검사는 저들끼리 꼬여 방향을 잃거나 북궁백을 피해 퍼져나갔다.

뱀처럼 땅을 훑던 중평의 보법이 벽을 만난 것처럼 덜컥 멈춰 섰다.


“네놈이 어떻게···!”


중평이 비명 같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구사헌월참을 파훼한 북궁백은 언월도를 멈추지 않고 그의 몸을 찔러 들어가며 속삭였다.


“요란하기만 할 뿐, 깊이는 얕구려.”


그 직후 중평의 몸이 들썩였다.

언월도에 관통당한 그가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북궁백을 들여다봤다.

그는 숨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초, 초절정에 올랐거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의 눈이 빛을 잃었다.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신을 쓰러트린 자가 익힌 유일한 병기술이 십팔반무예라는 것을.

아무리 자신의 검법에 자신 있어도, 그보다 뛰어난 검법을 수십 번이나 겪은 사람에겐 조잡할 뿐이라는 것을.


털썩.

언월도를 뽑아내자 망자가 자신의 집을 찾아 땅을 더듬었다.

방향이라도 알려주듯 빛바랜 눈이 바라보는 풀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언월도의 피를 털어낸 북궁백은 의식을 잃은 황영파의 용태를 살폈다.

옆구리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나왔지만, 환부의 크기에 비해선 적은 양이었다.

그래도 이미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전신이 하얗게 질렸고, 체온이 떨어져 있었다.


“일단 이걸로 버티거라.”


북궁백은 품에서 꺼낸 금창약으로 지혈한 후 환부에 고약을 덕지덕지 바르고 천으로 동여맸다.

그대로 황영파를 들쳐멘 북궁백이 산줄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동쪽이었다.


* * *


“빌어먹을.”


오원평은 태안문주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혈조를 늘어트린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주변은 백 구가 넘는 시체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직 땅에 스며들지 못한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 찰박찰박 소리를 냈다.

오원평은 태안문도의 시체에 칼을 꽂아 넣는 수하들을 지나쳐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일사회의 부회주에게 다가갔다.


“어찌 된 일인지 말하라.”

“려, 련주님. 그것이···.”


오른팔이 떨어져 나간 부회주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그간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노기가 차오른 오원평은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그의 머리통에 혈조를 박아넣었다.

푸들거리는 머리통을 움켜쥔 그대로 살아남은 일사회 무인들을 둘러보며 살기를 뿜었다.


“내가 그토록 참으라 했거늘···!”


일사회 무인들은 흉포한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신음을 삼켰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오원평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자상이 좀 있긴 하지만, 비교적 멀쩡한 청랑대주에게 물었다.


“일사회주는 어디로 갔느냐?”

“정상 아래 절벽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걸 봤습니다.”

“얼마나 됐지?”

“정확지는 않으나 일각은 족히 지난 듯싶습니다.”

“...이미 당했겠군.”


일사회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회주가 죽고 전력도 팔 할 이상 줄었으니 이젠 일사회는 끝이다.

충성심이나 소속감을 느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거나 대접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이 났다고, 다른 문파로 복속되면 다시 말단 눈칫밥부터 먹어야 한다.


“외당주는 일사회 및 수하들과 함께 이곳을 정리하거라.”

“존명.”

“나머지는 나와 일사회주를 찾으러 간다. 두기. 너도 따라오도록.”


아연실색한 얼굴로 부하들의 시체를 멍하니 보고 있던 중평의 제자, 공두기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자.”


오원평은 금방 중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는지 수풀이 죄다 한쪽으로 누워있었던 것이다.

산에 진입하자 피가 묻어 있는 나뭇가지나 풀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의 양이나 잔뜩 짓밟힌 흔적으로 보아 중평이 황영파에게 큰 상처를 입힌 모양새였다.

그 흔적을 따라 올라간 끝에 형편없이 널브러져 있는 중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부님!”


공두기가 빠르게 달려가 중평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어서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목놓아 소리쳐 댔지만, 그 안에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급함과 원망, 그리고 두려움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런 그를 놔두고 전투의 흔적을 살피던 오원평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경지를 숨기고 있었군.’


주변에 흩어진 잔해와 땅에 새겨진 절삭흔을 보면 한 초식에 최소 여덟 줄기의 검사가 휘몰아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중평의 실력으로는 초절정에 올라 내공 효율이 상승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초식은 중간부터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초식이 파훼 당했어. 실로 대단한 놈이구나.’


오원평은 북궁백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꿨다.

중평과 접전이 있었던 걸 보면 최소 초절정 초입, 어쩌면 자신과 동급일지도 모른다.


“저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오느냐?”


무게가 실린 발자국을 발견한 오원평이 수하들에게 물었다.


“형산 방면입니다.”

“형산이라···. 일이 이렇게 되는구나.”


오원평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년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된 이상 한발 앞서 움직여야 했다.


“그만 일어나거라.”


여전히 중평의 시체를 붙잡고 있던 공두기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오원평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네가 일사회를 이을 수 있게 도와주마.”


공두기의 눈이 불안한 듯 흔들렸으나, 이내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뱀의 간사한 혓바닥임은 알면서도 따라야 했다.

이대로는 일사회를 복구하기는커녕 청랑대주를 비롯한 다른 수뇌부들이 자신의 목을 노릴 테니까.

약자도태(弱子淘汰).

그것이 사파의 생리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태안문의 식솔을 남김없이 처리해라. 랑하현 밖으로 태안문 멸문 소식이 빠져나가지 않게 철저히 차단해.”

“하지만 그러기엔 부하들이···.”

“삼일. 삼일만 어떻게든 막아라. 그 후 모든 부하를 데리고 형산으로 집결하도록.”

“서, 설마···.”


그의 생각을 눈치챈 공두기가 몸을 흠칫 떨었다.

오원평은 멀리 형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산을 멸하고 호남성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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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노예의 행방-1 24.06.11 562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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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4.06.09 584 9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4.06.08 608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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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별과 만남-1 24.06.01 727 14 17쪽
25 형산혈사-3 +1 24.05.31 716 10 15쪽
24 형산혈사-2 24.05.30 668 13 13쪽
23 형산혈사-1 +2 24.05.29 701 11 13쪽
22 형산-4 24.05.28 688 11 14쪽
21 형산-3 +1 24.05.27 714 13 14쪽
20 형산-2 24.05.26 716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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