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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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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1,470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6.29 17:48
조회
157
추천
1
글자
6쪽

6

DUMMY

누군가에게는 맛있는 식사,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식사, 누군가에게는 맛없는 식사가 끝난 뒤 우파나히는 외출을 서둘렀다.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환전소의 영업시간도 해가 짐과 동시에 끝나리라. 그렇게 판단한 우파나히의 생각이었다.


“나가려고요?”

“그래.”

“도와줄게요. 어차피 당신 말주변도 없이 마구잡이로 말하곤 하니까 다른 사람들 설득하지도 못하잖아요. 우리 귀여운 샤크티는 어떻게 할래~?”


잘 먹어 통통해진 뺨을 양 검지로 콕콕 찌르며 행동을 유도했다. 문도 없고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 둔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보였지만 그냥 같이 나가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도울게.”

“그래그래~그럼 어디부터 가는 거예요?”

“환전소.”


습관처럼 품 안에 주머니를 확인한 뒤 따라오는 지 확인도 하지 않고 환전소로 향했다.

이끄는 것이 아니니 확인할 필요도 없다.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환전소 직원이 환대하며 차와 사탕을 내밀었지만 그걸 즐기는 것은 여자뿐이었다.


“안 먹어요?”

“싫다.”

“맛있는데······샤크티 사탕 먹을래?”

“배불러.”


잠시 후 팔라둔 필리오림이 보내온 서류라는 것을 찬찬히 읽은 직원이 곧 한숨을 한 번 쉬고서 환전수수료 등에 대해 설명했고 우파나히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보석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쏟아냈다. 주머니에서 보석 가루 같은 것들이 조금 떨어지자 여자가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며 조용히 쏘아붙였지만 우파나히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치가 꽤 떨어졌을 겁니다. 아까 방문 하셨을 때 보관함을 빌려드린다고 했는데 왜 거절하신 것 인지는 알 수 없군요.”

“이 사람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 없으니까요.”


샤크티가 보석 가루 중 조금 큰 것을 손가락에 붙인 다음 입 안에 넣었다. 곧 뱉어냈지만 여자가 순간 움찔하며 샤크티의 배를 걷어차려 했었다. 놀란 여자에게 돌아온 거라곤 “맛없어” 뿐이었다. 직원은 이 이상한 가족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떨어진 가치에 대해 재감정이 필요합니다. 본점에 감정사가 따로 없기에 보석 감정에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다시 방문하셔도 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어차피 이거 환전 못하면 시장 갈 돈도 없는 걸요~그건 그렇고 이 차 맛있네요. 좀 더 주시겠어요? 아, 사탕도 좀 더 주세요~”

“네,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은 차와 사탕을 가지러가며 익어가는 햇살이 비춰지는 창문을 한 번 흘겨보곤 환전소 안의 어둠의 양을 측정했다. 아직 어두워지기 까지 여유가 있었다.

차와 사탕을 좀 더 가져온 뒤 직원은 여자와 소소한 내용으로 수다를 떨었고 우파나히와 샤크티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감정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들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처음에 불쾌한 느낌을 받은 것은 우파나히였다. 평범한 신발이 내는 소리가 아닌 군화 따위가 내는 발소리에 여자들이 신는 굽이 높은 신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씀씀이가 헤픈 귀족이나 그 자제가 집에 있던 보석을 바꾸러 오기라도 한 것일까. 별의 별 소리가 들리는 입장에선 불협화음이 따로 없었다.


“어서 오십시······!”


그곳엔 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지는 황금물결이 있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온 풍성하고 밝은 황금빛 머리카락과 도톰하고 붉은 입술, 탄력 있는 피부에 균형 잡힌 이목구비까지. 미녀라고 부를 수 있는 보편적인 조건을 모두 갖춘 그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직원은 놀라 말을 멈췄고 우파나히와 샤크티는 무관심했다. 여자는 한번 흘겨본 뒤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관심을 끊었다.

그녀의 뒤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정렬한 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들렸는데, 괜찮지?”


요염한 듯, 순수한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 직원의 귓속으로 끈적끈적하게 스며들었다.


“네, 네!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간단한 일 때문에 온 거니까.”


화려한 실과 문양으로 장식된 드레스와 몇 가지 장신구가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지만 풍성한 황금물결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그녀 스스로도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을 때 자신의 가치가 더 빛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르는 병력,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권력을 오만한 표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린다. 데려와.”

“네.”


푸른색과 검은 색이 섞인 견장을 찬 서른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 군관이었다. 곱게 빗어 묶은 머리칼 위엔 각을 잡은 군모가 자존심마냥 높게 세워져 있었고 눈빛엔 강인함이 서려 있었다.

린다라 불린 여자 군관은 부하들이 데려온 죄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죄인이라고 인지되는 늙은 노인 한 명이 그녀에게 끌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한 쪽 알이 깨진 안경을 쓴 노인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허둥거리다가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한 뒤 고개를 푹 숙이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행동을 마무리 했다.


“도시 관리자 가문의 그라시아 록셀의 이름으로 명한다. 죄인은 죄를 실토하라.”

“저······저는······”


죄인이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죄를 시인하려는 때, 린다의 시선은 이미 노인을 벗어난 상태였다.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그녀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리자 가문의 미녀가 병력과 죄인을 데리고 와서 죄를 실토하라고 한다. 도시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상황에도 무관심으로 대처하고 있는 세 사람이 의심스러울 뿐. 그녀는 매와 같은 눈초리로 세 사람을 감시하며 허리에 찬 칼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저는······환전소 직원과 공모하여 감정을 부탁받은 보석을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게 누구지?”


아름다우면서도 오만한,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미소가 황금물결의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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