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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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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현
작품등록일 :
2017.06.16 22:52
최근연재일 :
2019.04.02 12:16
연재수 :
6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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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71
추천수 :
31
글자수 :
220,138

작성
17.06.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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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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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

DUMMY

“자! 그럼 점심이라도 먹을까? 뭐 먹는 게 좋을까?”


식탁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신발을 신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으니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더라도 더러워질 일이 없었다. 모범을 보이기라도 하려는 듯 여자가 먼저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샤크티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이층에 올라간 그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배고파?”

“응~엄마는 배고프네~샤크티는?”

“나도.”

“일단 아빠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자~엄마는 요리 같은 거 못하니까······”


그녀가 먼저 포기해주었기에 샤크티는 잠자코 있을 수 있었다.

설탕과 소금을 헷갈려하는 건 아니었다. 밀가루와 튀김가루의 용도를 구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두 가지 이상의 양념을 배합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층에서 내려온 남자가 내놓은 것은 기대했던 요리가 아니라 퍽퍽하고 맛없는 건조식량과 물 뿐이었다.


“뭐예요. 이거.”

“식사.”


애초에 그녀가 기대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상황이었다. 수도시설은 완벽하지만 식탁을 비롯한 모든 살림도구, 하다못해 그 흔한 그릇 하나 없는 상태였다.


“나가서 사와요.”

“문제 있나.”

“신선한 채소나 과일 같은 건 생각 안 해봤어요? 적당히 구운 고기나 향기로운 빵 같은 건요? 모처럼 문명과 질서 속에 살고 있는데 그 정도 사치를 부리는 게 죄 인가요! 그리고 샤크티는 아직 한창 자랄 때라고요! 빨리 가서 사와요오오오!!!”


큰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들 집이라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남자는 언제나 그렇듯 같은 표정으로 “알겠다.” 라고 한 뒤 들어올 때 썼던 구멍을 통과해 담장 밖으로 나갔다. 샤크티는 건조식량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배를 채웠지만 그걸 본 여자가 “이따위 쓰레기는 먹는 거 아니야! 우린 더 이상 이런 거 먹지 않아!” 라면서 낚아채는 통에 아버지가 올 때까지 물만 마셔야 했다.


남자가 살 것은 꽤 많았다.

기본적으로 정착생활을 도와줄 도구가 하나도 없었다. 작게는 식기부터 크게는 옷장과 침대까지. 지금 있는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환전을 하긴 했지만 이리저리 쓰고 나니 물건들을 다 살 금액이 되지 않아 먼저 환전소에 들렸다. 아직 서른이 안 되어 보이는 여자가 친절히 맞이하며 자리로 안내한 뒤 사탕과 차를 권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환전할 것에 대해 물었고 남자는 가지고 있던 자루를 테이블 위에 올린 다음 주둥이를 풀어 안에 있던 것을 쏟아냈다.

테이블 위에 번쩍이는 보석들이 쏟아지자 환전소 직원의 표정이 변했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한 번도 본적 없는 흉악한 악당처럼 생긴 남자가 쏟아낸 보석에 대한 의심이었다.

직원이 눈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덩치 좋은 경찰 두 명이 진압봉에 손을 댄 채 남자의 뒤로 천천히 다가왔다. 남자도 대충 예상은 한 것인지 빈 자루에 손을 넣어 아직 남아 있던 서류 몇 장을 직원 앞에 내놓았다.


“보석의 감정서와 출처에 대한 서류다.”


서류를 확인한 직원이 경찰들을 물렸고 경찰들은 내심 실적을 올릴 기회를 놓쳤다는 듯 아쉬워했다.


“예······감정서는······이상 없군요.”


감정서가 발부된 것은 그 도시가 아니었지만 규모가 크고 국가적으로 환전소의 신뢰를 얻고 있는 곳에서 발부한 것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다만 출처에 관해서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출처가 좀······다양하군요?”

“용병이었다. 보석은 용병생활을 대가로 받은 거다.”

“지금은 아니시고요?”

“그렇다.”

“꽤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신 모양이네요. 하른달이나 슈피치르······디온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시프나에서도?”

“아스모나스 전역에서 활동했었다.”

“신상정보와 소속을 밝히시지 않으시면 보석은 도난품으로 취급되어 환전할 수 없습니다.”


“훔치진 않았다.” 라고 말하더라도 믿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론 그가 보석이 도난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야 있었다.

다만 그게 평범한 생활에 방해가 될 방법이었기에 하기 싫을 뿐이었다.


“물론 도난품이라 할지라도 피해자로부터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조사대상에서 제외되며 사유재산으로 인정되기에 압류는 하지 않습니다만 적법한 서류를 추가로 제출하지 않는 이상 도난품으로 의심되기 때문에 환전 등은 이용 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불법으로 환전하실 경우 전액 국가로 환수되며 막중한 벌금과 징역형까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물론 다른 환전소나 보석상에 가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환전 방법은 까다롭지만 그만큼 법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런 나라일수록 암시장 같은 곳도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의 보석을 돈으로 바꿀 방법은 이런 정식 환전소나 인가받은 보석상을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돈은 필요했다.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필리오림이 있나.”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내 신원을 보증할 것이다.”

“직위를 이용해 공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는 중징계를 받습니다. 그게 필리오림이라면 사형까지 가능합니다.”

“신원확인일 뿐이다.”


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원확인 정도야. 라는 판단으로 그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


“팔라둔 필리오림입니다.”

“충분하다. 이걸 가지고 가서 우파나히라고 하면 신원을 보증해 줄 거다.”


허리띠에 달려 있던 금속 장식 하나를 떼어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몇 개의 각이 녹아내린 별 모양의 금속 장식은 볼품없었다. 직원은 그걸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며 확인을 부탁했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직원이 몇마디 질문을 던졌다.


“우파나히라는 건 당신의 이름인가요.”

“믿지 않는 자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신원을 의심 받은 것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당신이라는 개체의 명칭을 정하면 일을 처리하는데 편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불러도 좋다.”

“차라도 한잔 드시죠.”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곤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내 열었다. 안엔 성냥과 궐련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궐련하나를 입에 문 뒤 성냥 하나를 빼내 불을 붙이자 직원이 쓴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내밀었다.


“금연구역입니다. 벌금이 부과됩니다.”


궐련 끝에 불이 옮겨지며 독한 연기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길게 뿜어졌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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