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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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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6,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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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8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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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8장 약초꾼 오철산을 죽이다

DUMMY

애충태자 재기가 건강을 되찾자 역사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역사가 뒤바뀐다면 티엔 이가 계획한 안배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티엔 이는 고심 끝에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를 거느니 기존 역사의 틀 안에서 개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티엔 이는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나는 애충태자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여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티엔 이는 애충태자의 방에 다시 화로를 들이게 했다. 그것도 전보다 배나 많은 양을 말이다. 그걸로도 안심이 안 됐는지 진사(辰砂)로 환단을 만들어 애충태자에게 먹였다. 진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은을 말한다.


-영안귀비 염씨는 나를 철석같이 믿고 아들에게 환단을 복용시켰고 복용이 장기화하면서 발열과 오한,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냉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방안에 더 많은 화로를 들여놓으라고 했다. 애충태자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을 보며 내 영혼도 조금씩 죽어가는 걸 느꼈다.


하림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림이 티엔 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젠장.”


머리만 복잡할 뿐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티엔 이의 결단력이 대견하면서도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충태자의 죽음을 보면서 티엔 이는 자신의 영혼도 죽어간다는 말을 했다. 그 의미는 다음 구절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애충태자 재기는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병사했다. 나는 태의원 의원들이 책무에 소홀하여 태자가 죽었다고 모함하여 태자를 담당했던 의원들을 모조리 죽였다. 내게 향했던 의심을 일소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흠.”


그때부터 티엔 이는 조금씩 괴물이 돼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충태자가 죽고 나서 티엔 이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개혁에 반대하는 인물뿐 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자들에게까지 죽음의 철퇴를 내렸다.


-애충태자가 죽고 2남 재학이 태자에 봉해졌다. 나는 애충태자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그와 거리를 두고 어떤 청탁도 받지 않았다. 2남 재학 역시 오래지 않아 요절하였고 다른 황자들도 역사의 기록대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비로소 역사가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한데 나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명(明)을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하겠다는 초심도 점점 흐릿해졌고 매사가 귀찮기만 했다. 그러다가 가정제와 틈이 벌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림이 가슴을 졸이며 일기를 읽고 있을 때 미츠키가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왔다.


“하림, 밖에 좀 나가봐야겠어.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

“뭐?”


하림은 무기로 쓸만한 꼬챙이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약초꾼 차림을 한 사내 3명이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그들의 목적지가 동굴은 아닌 것 같았다. 협곡 초입에서 방향을 틀더니 동링산 방향으로 향했다.


“괜찮을까?”


미츠키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동링산으로 가는 길목에 우주선이 있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위장했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이곳을 오가는 자들의 눈을 속이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가볼 테니까 미츠키는 여기 있어.”

“나도 도울게.”

“들키지 않고 다녀오려면 혼자가 나아.”

“알겠어. 조심해.”


하림은 미츠키를 동굴에 남겨놓고 약초꾼들의 뒤를 쫓았다.


‘저들이 우주선을 발견하면 어떡하지?’


하림은 티엔 이가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애충태자와 태의원의 의원들을 죽인 일을 떠올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면······그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혼자서 3명을 상대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보안을 위해 그들을 죽일 각오가 돼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약초꾼들은 중간에 한 번 휴식한 것을 제외하고는 빠르게 이동했다.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현역 군인이었던 하림도 겨우 따라갈 정도였다.


마침내 약초꾼 무리는 우주선을 숨겨둔 능선에 도착했다. 우주선이 있는 곳은 절벽과 맞물려 있어서 굳이 그쪽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약초꾼들도 단순히 지나는 길이었는지 위쪽으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나 개중에는 꼭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일행 중에 오철산이란 자가 그런 인물이었다.


능선 아래를 지나가던 오철산은 멀리 산등성이 위에 낯선 구조물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뭐지? 못 보던 건데.”

“뭐가?”

“저기 벼락 바위 옆에 말이야.”


오철산이 말한 벼락 바위는 다름 아닌 타이푼 1호였다. 십여 년 전에 선체에 벼락이 내리친 적이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사람들은 타이푼 1호를 벼락 바위로 불렀다.


타이푼 1호는 수십 년째 덩굴과 이끼로 덮여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기 전에는 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바위라고 믿었다. 그런데 벼락 바위 옆에 못 보던 바위가 수풀에 덮여 있었다.


“벼락 바위가 벼락을 맞고 새끼를 친 모양이지.”

“하하하.”


오철산의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인생, 돈 안 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자네들 먼저 가고 있어.”

“또 뭐하게? 곧 해가 진단 말이여.”

“잠깐만 둘러보고 갈게. 먼저들 가.”


오철산이 말린 틈도 없이 산등성이로 달려갔다.


“저런 육시랄 놈. 또 지랄병이 도졌구먼.”

“저놈 저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감? 그냥 놔두고 우리 먼저 가자고.”


둘은 바닥에 침을 뱉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철산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에 도착해서 타이푼 3호를 덮고 있는 잡목 더미를 치웠다.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하림이 이를 갈았다.


‘제발 그냥 가라.’


앞으로 2년 아니, 1년만 지나면 덩굴과 이끼로 뒤덮여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걸 못 참고 스스로 명을 재촉하고 있으니 화가 치밀었다.


‘저 빌어먹을 놈!’


오철산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위장이 제거되고 우주선의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자 탕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쇳덩이? 여기에 왜 이런 게······.”


오철산은 등짐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잡목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우주선이 뭔지 알 리 없었다. 오철산은 생뚱맞게도 모역(謀逆: 반역)과 관계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흐흐, 안찰사 대인께 고변하면 포상금을 얼마나 주려나?”


기대에 부풀어 희희낙락 들떠 있던 오철산이 털썩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누군가 걸어와서 오철산의 맥을 짚었다. 하림이었다.


“끝까지 속을 썩이는군.”


하림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려놓고 근처에서 돌을 주워 오철산의 머리를 내리쳤다. 오철산의 머리통이 두부를 으깨놓은 것처럼 곤죽이 됐다.


하림은 흐느적거리는 오철산을 들쳐메고 우주선에서 멀리 떨어진 절벽으로 가서 그대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주변에 오철산의 소지품을 흩트려 놓아 그가 실족한 것처럼 꾸몄다.


* * *


하림은 해가 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인기척을 느끼고 방으로 숨어둔 미츠키가 하림을 발견하고 뛰어나왔다. 하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던 모양이다. 하림을 대하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꼴은 또 그게 뭐고?”


하림의 유니폼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혹시 몰라서 우주선의 위장을 보강하고 왔어.”

“진짜 별일 없는 거지?”


미츠키가 하림을 빤히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피하는 것이 어딘가 수상해 보였다.


“배고프다. 남은 음식 좀 있어?”

“기다려 데워줄게.”


그제야 미츠키가 안색을 바꾸고 취사실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기척이 멀어지자 하림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양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림은 미츠키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의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책상에 놓인 책자를 보는 하림의 눈빛이 애증으로 엇갈렸다.


티엔 이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하림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양심의 가책까지 덜어내지는 못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난 군인이고 적이라고 판단되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어. 나는 지금, 이 시대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티엔 이는 이 수라장 같은 곳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 티엔 이가 했다면 하림도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림에게는 티엔 이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일기가 있었다.


‘티엔 이, 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든과 보리스는 어떻게 된 거지?’


고든과 보리스는 티엔 이와 함께 타이푼 1호에 탑승했던 대원들이었다. 아직 일기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영원히 그들의 얘기를 못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엔 이······.’


고든과 보리스는 각각 영국과 러시아 출신의 우주비행사였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티엔 이의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었다.


티엔 이는 이곳이 과거인 것을 깨닫자마자 자신의 시계를 이곳 시간으로 맞춘 것 같았다. 이 시대의 사람이 된 티엔 이에게 고든과 보리스는 더는 동료가 아니었다. 그들은 명나라의 국익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였다.


그때 미츠키가 음식을 가지고 하림의 방으로 들어왔다.


“밥 먹어.”

“어, 고마워.”


시장했던지 하림은 아예 그릇을 들고 호로록호로록하며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미츠키가 물이 담긴 대접을 건네자 하림이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꺼억 트림을 했다.


“이런 상황에도 배고픔을 느낀다는 게 신기한 것 같아.”

“배고픔은 인간의 존엄성과 반비례한다고 했어. 이곳에 적응하려면 우리도 배고픔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몰라.”

“······.”


하림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 하림이 물끄러미 미츠키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 또 잘난척한다고 생각한 거지?”

“아니. 밥 굶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쳇, 그 말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백과사전을 필사하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광산과 원유 매장지를 엄청나게 찾았어.”

“그래?”

“그걸 우리 소유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이 시대에 제일가는 부자가 될 거야.”

“미츠키는 부자가 되면 뭘 하고 싶어?”

“이곳에 오기 전이었다면 방산 업체를 창업하고 싶다고 했겠지.”


누가 무기 관제사 아니랄까 봐 미래 희망도 그쪽이라니, 미츠키는 참 일관성이 있어서 좋았다.


“한데 여기서는······더 미치도록 무기를 만들고 싶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모두 내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 개틀링 대신 미츠키 기관총, 콜트 대신 미츠키 리볼버, 미츠키 라이플, M1 미츠키 소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드는 거야. 세상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나 미츠키를 기억할 거야.”

“······.”


미츠키는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일단 말문이 터지면 청산유수(靑山流水: 막힘 없이)였다.


“좋은 생각이야. 나도 응원할게.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좀 그렇지 않을까?”


오펜하이머가 만든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사건을 언급한 것이었다.


“우리도 한 방 먹었으니까 돌려줘야 하지 않겠어?”

“하하······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자제하자고.”

“농담 아닌데?”


미츠키가 사악하게 웃어 보이고는 빈 쟁반을 들고 나갔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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