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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조명기(大韓朝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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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재
작품등록일 :
2023.01.13 03:25
최근연재일 :
2023.02.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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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01.1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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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4장 자살 임무

DUMMY

하림과 타이푼 3호의 승무원들은 감상에 빠질 시간도 없이 새로 하달된 명령에 따라 곧바로 타이푼 2호와 작전에 들어갔다.


타이푼 1호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반덴버그 기지에서는 접근 한계선을 설정했다. 그 전에 소행성 정면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면 전자기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전자기 폭풍에서 높은 수치의 감마선과 소립자가 감지됐다. 과학팀에서는 다수의 감마선 폭발이 임박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전에 아포피스를 요격해야 한다.


감마선과 소립자의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전자기 폭풍의 소멸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전자기 폭풍이 소멸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감마선 폭발이 예상된다는 점이었다.


감마선이 폭발하면 감마선 섬광에 이어 잔유휘광(afterglow)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전자기파가 방출된다. 이때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위력이 엄청나서 반덴버그 기지에서 설정한 간섭범위를 우습게 뛰어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윌리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감마선에 노출돼서 헐크로 변하면 저 괘씸한 소행성을 때려 부수고 너희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갈게.”

“사령관님이 100기가전자볼트를 견딜 수 있다면 기대해 보죠. 잡담은 그쯤하고 집중하시죠?”


윌리엄이 하림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 말에 미츠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림, 내 생각인데 미츠키는 일본이 비밀리에 만든 인간형 로봇일지도 모르겠어.”

“······.”


윌리엄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윌리엄은 하림이 충격에서 벗어나 임무에 집중하기를 바랐다. 조종사인 하림이 감정에 휩쓸리면 암석대를 통과할 확률이 더욱 낮아졌다.


“윌리엄, 내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험험, 사람 민망하게 그렇게 직구를 던져버리네.”

“하림은 걱정 안 해도 돼요. 정작 로봇은 내가 아니라 하림이니까.”


마츠키가 하림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녀도 하림이 걱정됐다. 하림과 티엔 이가 친형제처럼 지낸 것을 기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 * *


타이푼 2호와 3호는 침묵을 유지한 채 소행성 아포피스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먼저 요격지점에 다다른 타이푼 2호가 역추진 로켓을 분사하며 발사 각도로 선체를 조정했다.


“타이푼 2호, 요격지점에 도착했습니다.”


하림이 레이더를 보며 말했다.


“가림막 내려.”

“네.”


타이푼 3호의 정면과 좌우 측면에 나 있는 6개의 창문 중 5개의 가림막이 내려가고 관측용으로 하나만 개방하였다. 관측 창문은 방사선 저항 물질을 덧입혀서 방사선의 투과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타이푼 3호의 대원들은 그곳을 통해 타이푼 2호가 소행성을 요격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타이푼 2호는 반덴버그 기지에서 전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접근한계점까지 이동한 후에 핵미사일을 발사했다.


멋지게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핵탄두가 섬광을 번쩍이며 소리 없이 폭발했다. 충분한 거리를 뒀음에도 타이푼 2호가 폭발의 여파로 궤도를 벗어났다.


타이푼 2호는 엄청난 연료를 소모한 끝에 정상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슴을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던 모두는 멀쩡히 살아있는 아포피스와 전자기 폭풍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했다.


아포피스 주위에는 아포피스에서 떨어져 나온 엄청난 양의 암석들이 띠를 이루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핵미사일은 촘촘한 암석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본 우주비행사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동으로 암석층을 뚫고 지나가 자폭하는 것뿐이었다.


반덴버그에서도 상황을 인지했는지 조심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우회적으로 말했을 뿐 자살 임무를 수행하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자세를 잡은 타이푼 2호가 수동 조종으로 전환한 채로 암석층으로 돌진했다. 백업을 위해 타이푼 3호도 타이푼 2호의 뒤를 따랐다.


윌리엄이 성호를 긋고 십자가 목걸이에 입을 맞췄다. 일단 암석대에 진입하면 다신 돌아올 수 없었다. 십중팔구는 핵폭발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암석과 충돌해서 우주 미아가 되기에 십상이었다.


* * *


앞서 나아가던 타이푼 2호기에서 교신이 들어왔다.


-우리도 여기서 작별해야겠군. 윌리엄, 하림, 미츠키, 너희와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아르튀르, 게르트, 조엘, 우리 역시 너희와 팀을 이뤄 행복했다. 행운을 빈다. 친구들······.


타이푼 2호의 작별 인사에 윌리엄이 화답했다. 모두는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그들은 인류의 영웅이자 살신성인(殺身成仁: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림)의 투혼을 발휘한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하림이 주머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조종간에 걸고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아들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음 생에도 제 부모님이 돼 주십시오. 상림이 형, 내 몫까지 아들 노릇 잘해주길 바라. 다들 잘 있어요.’


하림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선체 외곽의 회전체를 작동시켰다. 우주선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회전체는 원심력을 이용해서 인공중력을 만드는 장치였다. 지금은 암석으로부터 우주선을 지켜줄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타이푼 2호가 먼저 암석층으로 이뤄진 고리로 진입했다. 우주선의 외부 회전체에 수많은 암석이 날아와 부딪혔다. 타이푼 2호는 충격으로 휘청거리면서도 그때그때 로켓을 분사하여 중심을 잡았다.


암석 고리대를 통과해야 비로소 안정적인 타격이 가능했다.


전자기파의 간섭은?


우주선이 통째로 충돌할 예정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엔진이 멈춰도 관성의 힘이 작용해서 비행은 가능했으니까.


단, 작전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하나는 핵탄두에 안전장치를 제때 해제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엔진이 꺼진 후에도 우주선의 경로를 정확히 유지하는 것이었다.


전자기 폭풍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핵탄두의 기폭 장치도 먹통이 될 확률이 높았다. 기폭 장치없이 미사일을 폭발시키려면 안전장치를 제거하여 직접 충격을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충격이야 우주선이 소행성과 충돌하면 그만이지만 경로가 틀어지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타이푼 3호도 시차를 두고 암석 고리대에 진입했다. 크고 작은 암석들이 회전체와 충돌하며 우주선 내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타이푼 3호가 고리대의 중간을 통과할 때였다. 앞서가던 타이푼 2호에서 화염이 치솟으며 섬광이 주위를 갈랐다. 대형 암석이 티폰 2호의 엔진과 연료탱크를 찢어놓았다.


다행히 핵폭탄은 무사한 것 같았다. 만약 핵폭탄이 터졌다면 뒤따르던 타이푼 3호도 폭발에 휘말렸을 것이다.


하림과 윌리엄은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잡았다. 애도는 임무를 완수하고 해도 늦지 않았다.


“미츠키 준비해!”

“알겠어요.”


미츠키는 미사일의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스위치에 손을 얹었다. 계획대로 된다면 12메가톤급 핵폭탄이 터지면서 소행성 아포피스는 물론이고 지평면 위에 걸쳐있는 전자기 폭풍까지 산산조각낼 것이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던 걸까? 암석 고리대 저편에서 무시무시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그 파장이 타이푼 3호를 덮쳤다. 엔진을 잃고 관성으로 나아가던 타이푼 2호에서 핵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타이푼 2호기의 무기관제사였던 조엘이 죽기 전에 반사적으로 안전장치의 스위치를 누른 것 같았다.


핵폭발의 여파로 타이푼 3호는 자세를 잃고 소행성의 측면으로 떠내려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멀어서 직격은 면했다는 점이었다.


소행성의 측면은 전자기 폭풍의 직접적인 범위 내였다. 타이푼 3호가 근접 한계선을 넘자 강력한 전자기파가 선체를 훑고 지나갔다. 비행사들은 미리 차단복을 걸치고 있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전자기파에 민감한 통신장비를 시작으로 선체의 기기들이 작동을 멈췄다. 종국에는 엔진과 생명유지장치까지 나가버렸다.


“안돼!”


창밖으로 멀어져가는 소행성을 보며 하림이 울부짖었다. 이렇게 끝나면 인류는 멸망을 면치 못한다.


하림이 엔진 점화 단추를 눌러보지만 소용없었다. 고철이나 다름없게 된 타이푼 3호는 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전자기 폭풍으로 밀려갔다.


* * *


역설적으로 인류의 멸망을 초래한 전자기 폭풍의 내부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우주비행사의 최후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소였다.


하림은 우주복에 표시된 산소 잔여량을 확인하고 씁쓰레 웃었다. 우주복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가지 방식의 계량기가 부착돼 있었다. 디지털은 먹통이었으나 아날로그 계량기는 여전히 작동했다.


17분.


그에게 주어진 우주에서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통신장비가 먹통이라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미츠키가 뜬금없이 담배 상자를 내밀었다. 윌리엄과 하림은 헛웃음을 치고 하나씩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피울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기분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윌리엄이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하고 미츠키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미츠키도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방긋 웃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물기가 보였다. 악바리 같던 그녀도 이 순간만큼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윌리엄이 그녀의 헬맷을 툭툭 치면서 입을 뻥긋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츠키 너도 사람이긴 했구나.


둘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하림이 훈련소에서 배운 수화로 두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윌리엄과 미츠키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향한 채 야유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림이 박장대소했다.


하림은 저들과 같은 팀이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가는 길이 결코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은 작은 관측 창으로 우주가 선사하는 불꽃놀이를 감상하며 차분하게 최후를 준비했다.


* * *


하림은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타이푼 3호 옆으로 거대한 암석이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건가?’


숨쉬기가 답답했다. 산소량을 확인한 하림이 한숨을 쉬었다. 파란색 선이 어느새 빨갛게 변해있었다. 시간상으로도 채 1분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윌리엄과 미츠키도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잠이 든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하림은 그들을 깨우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잠이 든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림은 그를 깨운 암석을 저주했다. 이제는 숨이 막히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어야 했다.


하림이 이를 갈며 암석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앞서 나아가던 암석이 갑자기 나타난 섬광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꼴좋다 이 자식아!’


하림은 암석이 파괴됐다고 생각했다. 잔해가 보이지 않았으나, 죽는 마당에 알게 뭐람.


때가 된 모양이다. 숨이 턱 막혀왔다. 하림은 고개를 돌려 윌리엄과 미츠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최대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호흡이 될 것이었다.


잠시 후,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그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백연은 눈을 감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섬광이 번쩍였다.


암석을 사라지게 했던 섬광과 비슷한 것이 타이푼 3호를 덮쳤다. 백광에 휩싸인 타이푼 3호는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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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자살 임무 23.01.14 1,038 20 12쪽
3 제3장 타이푼 1호의 마지막 교신 +2 23.01.14 1,043 23 11쪽
2 제2장 인류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시도 +2 23.01.13 1,130 21 13쪽
1 제1장 소행성 아포피스(Apophis) +6 23.01.13 1,332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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