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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린 님의 서재입니다.

초월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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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린
작품등록일 :
2021.01.19 20:40
최근연재일 :
2022.03.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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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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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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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심장이 없는 사내(3)

DUMMY

초월 플레이어 55화

<심장이 없는 사내(3)>


무서운 눈빛으로 고개를 휙 돌리는 그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드리웠다.


“당신이 이곳에 왜····.”

“여기서 더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닐걸세.”


검은 바탕에 어울리지 않는 금빛 목도리를 차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나타난 지는 갈피를 찾기 어려웠지만, 그의 주변에서 흐르는 기류는 예사롭지 않았다.

10구역의 열쇠관리인은 입을 떠억 벌리며 우상을 바라보는 양 존경의 눈빛을 반짝거렸다.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만해주면 안 되겠나?”


보는 이게 하게끔 저절로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자비로움이 가득한 미소를 지은 그가 말했다.

정말이지 선뜻 거절하기란 힘든 미소였다.


‘젠장. 오늘 뭔 날인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목.

실든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라도 삼켰다.

당장이라도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사내의 얼굴에 자비 없는 주먹을 내리꽂고 싶었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방해꾼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다른 층의 사자가 간섭하고 X랄 이지.’


같은 층의 사자라면 몰라도···· 다른 층의 사자.

그것도 심연을 나타내는 검은 목도리가 아닌 다른 것을 상징하는 색이다.

보아하니 짐작 가능한 것은 20층 아래에 있는 붉은 대지의 사자 같은데····.

그 층의 사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금빛으로 물든 목도리에 새겨진 사(使)자를 보면 틀림없었다.


“알겠습니다.”


확실하다면 길게 뺄 필요는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감옥에서 책임을 따르는 사자의 본질을 흐리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역량을 확인해도 이길 수 있을 자신도 없었기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네.”


감정을 억누른 실든의 팔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분하지만 소란을 더 피우는 것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을 그도 자각했다.

힘이 완전하게 풀리자 잡혔던 팔목도 스르륵 풀렸다.

금빛 목도리를 두른 남자 미소는 여전했다.


“저···· 저 혹시.”


열쇠관리인이자 죄수의 축에도 속한 그가 남자를 보며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다른 층의 사····.”

“어이! 열쇠관리인 멀뚱히 서서는, 거기서 뭐 해!”


그러던 중 실든이 성질을 내며 그를 불러 세웠다.

목소리에는 축적된 분노가 함께 느껴졌다.


“나는 여기 남을 테니, 얼른 이놈들 데리고 기둥으로 가.”

“예?···· 아, 옙.”


그는 금빛 목도리의 남자에게 질문할 것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실든이 불러세우는 바람에 당황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은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우울해졌다.

다른 층의 사자를 만나보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이 컸다.


“뭐해 이 자식아! 빨리 안가고.”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워진 실든 사자가 그를 향해 재촉했다.

금방이라도 그를 향해 발길질이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


“자···· 자! 숨이 붙어 있는 죄수들은 구역과 상관없이 모두 내 뒤에 서도록!”


그는 실든이 더 화를 내기 전에 얼른 생존자를 불러세웠다.

그렇게 하여 하나둘씩 모여드는 죄수들.


“지금부터 인원을 확인하기 위해 뒤로 숫자를 세겠다. 첫 생존자부터.”


그는 모두가 들리게 큰소리로 외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차례대로 자신의 숫자를 부르는 죄수들.

본래라면 아무리 열쇠관리인이라고 한들 자신보다 낮은 구역이 하는 말을 이렇게 순조롭게 듣지 않겠지만 10구역은 물론 다른 구역의 죄수들까지도 아무런 불평 없이 그가 하라는 대로 실행했다.


“일흔 하나.”


마지막에 불린 숫자는 71.

현재 확인된 생존자는 모두 합하여 71명이었다.

10구역의 죄수들이 100명이라고 치면 절망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숨이 붙어 있을 수 있는 죄수들까지 세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뒤에 보이는 죄수들은 대부분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온 얼굴들이었다.


“히익.”


운 좋게 붉은 마수를 피해 도망쳤거나 아니면 아예 그곳에 없었거나.

공포에 질린 얼굴이 있기도 했으며, 시체를 보며 구역질을 내뱉는 죄수도 있었다.

웃기게도 그들 또한 악랄한 범행을 저지른 죄수들이었지만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그럼 이동하겠다. 모두들 나를 따르도록.”


인원을 확인한 그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도 탈출이겠구나 하고···· 그런데 조금 있지 않아 그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 말이야. 혹시 어떤 여자애 못 봤어? 죽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그의 발걸음을 멈춰서게 한 것은 어느 죄수 때문이었다.

역시 어딜 가나 말을 안 듣는 죄수 한두 명쯤은 보이는 법.

앞에 보이는 죄수는 사체들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넌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엉?”


새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있으며 새겨진 숫자는 10.

그는 이 죄수가 자신의 구역에 죄수인 것을 확인하고는 빨리 뒤에 붙으라고 강요하듯 말했다.

신입이라서 어리바리 타는 것인가.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내 뒤에 붙어!”


이래서 신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하니.

신경 쓸 것이 두 배로 많아져 피로도 두 배로 쌓인 느낌이었다.

별안간 요근래 신경 쓸 일이 많아질 시점에 신입이 눈치 없게 행동하는 것은 눈엣가시였다.


“잠시만, 아 그래. 너희들도 여자애 좀 찾아주지 않을래? 나랑 같이 들어온 년인데···· 음 그러니깐 성질 까칠하고 얼굴 왼쪽에 멋들어진 흉터가 있걸랑.”


눈치가 없는 걸 떠나서 이 상황에 변태스럽게 웃고 있는 죄수가 말했다.

부탁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인지 대뜸 혀를 내밀고선.


“하아.”


열쇠관리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버릴까.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화를 내기도 귀찮았다.


‘그래, 뒤에 실든 사자도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몰골을 보아선 더 말하는 것은 입만 아프겠거니.

그는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어디가. 여자애 한 명은 찾아줄 수 있잖아.”

‘에휴. 요즈음 들어온 놈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모자란 놈들뿐인지.’


특별한 힘만 믿고 사자에게 까부는 놈도 그렇고, 눈치 없이 구는 놈도 그렇고.

오늘따라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열쇠관리인을 하면서 이래저래 많은 일을 겪었지만, 오늘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없을 것이다.


‘뭐야. 저놈은 또.’


한참 나가던 중 또다시 그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이번에 시야에 보인 인물은 진갈색 머리카락의 여죄수였다.

그녀는 이미 죽어버린 시체들에서 무언가를 건지고 있었다.


“···· 좋아. 이 정도면 앞으로 생활하는 데 충분하겠어.”


흡족한 듯 옅은 미소를 지은 그녀.

이윽고 그녀가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발걸음을 멈춰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열쇠관리인과 두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무언가가 들려있는 손을 뒤로 빼는 여죄수.


“······.”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녀는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을 내비쳤다.


‘가지가지 하는군.’


설마 자신이 모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누가 봐도 범행을 행하는 장면을 보고도?

저 뒤에 숨겨놓은 것은 보나 마나····.


“어 찾았다.”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오던 죄수가 기쁜 듯이 외쳤다.

변태적인 표정에 흥분이 섞인 듯한 얼굴은 저질스러움 그 자체였다.


“너 설마 도둑질하는 거야?”

“뭐래. 이 저질이! 그냥 죽어.”


그녀의 인상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을 대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거짓말까지 이렇게 태연하게 하다니, 역시 내가 선택한 여자는 뭘 해도 다르다니깐.”

“꺼져. 더럽고 추잡한 벌레야.”


경멸에 가까운 폭언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서슴없이 내뱉은 그녀.

곧이어 그녀는 변태적인 죄수를 무시한 채 일렬 맨 뒤에 섰다.


‘그래. 뭐. 신경 쓰지 말자.’


더 이상 신경 쓰는 것은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열쇠관리인은 다시 중앙 기둥에 복귀할 때까지 까불든, 눈치가 없든, 시체의 소지품을 훔치던 신경 쓰지 않고

걸음도 멈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좀 떨어져서 걸어. 역겨우니까.”


그녀는 어느새 뒤에서 혀를 내밀며 다가오는 저질스런 남자를 보고 질색하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접근했다간 아가리를 날려버릴 것이다.


“화내는 모습도 어쩜 이리 멋들어지고~”


그는 그녀가 화를 낼수록 가슴이 뛰었다.

계속 이런 수치스러운 욕을 들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듣고 싶다.


‘아, 아. 좀만 더 심한 욕을····!’


그는 욕을 갈망하듯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이로써 두 명이 추가되었다.

생존자는 71명에서 73명으로 그 수가 늘어났다.


* * *


“먼 길 가느라. 수고했네. 이건 약속한 사례비네.”

“어이쿠, 감사하무니다. 다음에 또 이용하실 일 생기면 언제든 찾아주십숍.”

“알겠네. 그럼.”


덜커덕-

두둑한 사례금을 받은 마부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안장에 올랐다.

그리고는 돌아왔던 길을 다시 힘차게 내달렸다.


“도착했습니다. 저기 커다랗게 뚫린 구멍이 바로 심판의 감옥 입구입니다.”


엑스가 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와- 크다.”

“마치 옛 설화에서나 나올 듯한 크기로군. 허.”


두 사람은 동시에 감탄사를 냈다.

황량한 주변과 대비해서 이질적으로 커다란 검은 구멍이 그들을 맞이했다.

이것을 보고 있자니 정말 자캴드의 말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나오는 듯 꾸며진 것처럼 보였다.


“근데 여기 어떻게 내려가지?”


헬라가 슬쩍 고개를 내밀며 구멍을 내려다보곤 물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구멍 속은 도저히 내려가기 힘들어 보였다.


“이곳은 감옥의 입구입니다. 하지만 내려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긴 하죠.”


엑스도 그녀가 묻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대체, 입구라면서 구멍 아래를 내려보아도 갈피를 못 잡겠으니 말이다.


“사실 여기는 내려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입구라면서 내려가는 방법밖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음, 내려간다고 표현하는 것보단 빨려 들어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블랙홀처럼.”

“내가 아는 그 블랙홀···· 말인가?”

“그렇네.”


블랙홀이란 말에 자캴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꽤나 위험하겠군.”

“그럴지도 모르네.”


흑마법으로 세간에 이름을 날리던 당시. 꽤 푹 빠져 있었던 대상이 블랙홀이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란 매력에.

나중에서야 그 위험성을 알고 연구를 중단했지만.

자캴드가 씁쓸하게 웃었다.


“잠만, 블랙홀이란 게 뭔데?”


그녀는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려가는 게 아닌 빨려 들어간다니?

블랙홀처럼? 그게 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밤하늘에 떠다니는 먼지가 된다는 걸세. 후. 어쩌면 공기처럼 사라질지도.”

“뭐라고?!”


헬라는 몹시 혼란스러운 듯 붉은 머리카락을 쥐어 잡았다.

그런 위험한 곳이 입구에서부터 도사리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으니 당연한 일이였다.


“아닙니다. 그저 빨려 들어간다는 것만 비슷할 뿐 정말 블랙홀에 들어간 것처럼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자캴드의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엑스가 빠르게 부연 설명을 했다.


“응? 위험하다고 했지 않았나? 블랙홀처럼 말일세.”

“위험은 그런 뜻이 아닌 다른 곳에 있네.”

“그게 뭔가?”


이번에는 자캴드가 혼란스러워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엑스는 다섯 손가락 중 두 손가락을 펼쳤다.


“두 가지 갈림길.”

“두 가지 갈림길?”

“그렇습니다. 저희가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안전하게 심연 1층에 바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랑 위험한 마수들을 피해 심연 1층으로 가야 하는 길.”


무엇을 선택할지는 이미 나와 있는 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당연히 안전한 길로 가야!····.”


헬라가 안전한 길로 손가락을 가리키자 그녀가 선택한 손가락이 단호하게 접혔다.

남은 것은 하나의 길.


“아쉽지만, 이 안전한 길은 갈 수 없습니다.”


그녀가 의아해했다.

왜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는 걸까?

그에 반에 자캴드는 알겠다는 듯이 참착하게 펼쳐있는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군.”


<심장이 없는 사내(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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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침투(3) 22.03.18 21 0 12쪽
58 57화 침투(2) 22.03.14 23 0 13쪽
57 56화 침투 +1 22.03.03 38 0 11쪽
» 55화 심장이 없는 사내(3) 21.12.24 86 0 13쪽
55 54화 심장이 없는 사내(2) 21.12.21 31 0 12쪽
54 53화 심장이 없는 사내 21.12.15 38 0 12쪽
53 52화 구원자(3) 21.12.10 35 0 12쪽
52 51화 구원자(2) 21.12.08 33 0 12쪽
51 50화 구원자 21.12.03 35 0 13쪽
50 49화 붉은 목도리(3) 21.11.24 33 0 13쪽
49 48화 붉은 목도리(2) 21.11.16 36 0 12쪽
48 47화 붉은 목도리 21.11.08 37 0 12쪽
47 46화 심연(3) 21.10.29 36 0 12쪽
46 45화 심연(2) 21.10.18 41 0 13쪽
45 44화 심연 21.09.29 40 0 14쪽
44 43화 개미굴의 왕(5) 21.09.27 35 0 13쪽
43 42화 개미굴의 왕(4) 21.09.21 36 0 13쪽
42 41화 개미굴의 왕(3) 21.09.18 37 0 13쪽
41 40화 개미굴의 왕(2) 21.09.16 3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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