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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린 님의 서재입니다.

초월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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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린
작품등록일 :
2021.01.19 20:40
최근연재일 :
2022.03.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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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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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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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2화 구원자(3)

DUMMY

초월 플레이어 52화

<구원자(3)>


그 틈에서 나온 새빨간 핏물이 진갈색의 모래를 붉게 물들었다.

투둑.

투두둑.

시야가 흐릿해졌다.

모래시계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몸에 있던 힘이 점점 풀렸다.


“쿨럭.”


곧바로 몸을 관통했던 갈고리가 몸을 빠져나오자 대량의 피가 식도를 타고 터져 나왔다.

이내 ‘허상’이 아닌 ‘현실’이란 것을 깨달은 그의 몸은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풀썩 꺾여 버렸다.


-끝났군.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내면의 존재가 검은 불꽃이 타오르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초라하게 타오르고 있던 불꽃, 어느새 그 불꽃은 생명을 모두 소진한 채 불타 없어진 상태이었다.


-그리, 부질없는 일이라고 일렀건만.


실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마수와의 싸움에서 이기지도 녀석의 바람대로 한 방을 먹이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인간은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했다.


-시간이 부족한 탓도 있겠군.


물론 선택은 녀석이 스스로 한 것이지만.

다른 손바닥에는 아직 푸른색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곧 이 푸른 빛도 그의 생명력이 다 한다면 고요하게 불타 없어질 것이다.


* * *


‘죽은 건가.’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은 온통 짙은 검은색 빛깔.

그 무엇도 보이거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주변은 고요했다.


‘여긴 어디지? 천국인가?’


마치 아무도 없는 우주를 떠다니는 것과 같은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평생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 들자···· 죽었다는 것이 더욱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니면 지옥?’


그는 신은 믿지 않았지만 만약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여기는 천국보단 지옥의 색깔이 더 묻어나 보였다.

다른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두려운가.]


그때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점.

모든 것이 사라진 듯 고요한 공간에 주인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


당연히 자신 외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였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거기 누구 있어?’


사내는 재빨리 허공에 대고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방금 들렸던 목소리는 헛것이었을 까.

감각이 무뎌지면서 현실 감각도 줄어든 탓에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정작 자신이 있는 곳도 알지 못했으니.


‘아무렴 어때····.’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는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무뎌진다···.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감각이, 기분이, 생각이 무뎌진다.

정처 없는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된 것 마냥, 이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마음이 편했다.


[두려운가.]


그러던 중, 또 한 번 같은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아까 들렸던 것과 같은 대사와 함께.


‘잘못들은 게 아니야.’


흐릿해지는 의식 속 사내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뜨였다.


‘····이것은. 푸른 불꽃?’


그가 눈을 뜨자 어두웠던 공간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한줄기의 푸른 불꽃.

하지만 그 작디작은 불씨는 그가 있던 공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두려운가.]


목소리는 불꽃 너머에서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

[두려운가.]


같은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같은 말뿐.

마치 이미 대사가 짜인 것처럼 불꽃 너머의 목소리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사내는 일단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을 뒤로하고 불꽃이 묻는 말에 답하기로 하였다.


[두려운가.]

‘아니.’

[그럼. 두렵지 않은 가?]


묻는 말에 맞게 대답하자 곧이어 다른 질문이 달렸다.


‘두렵지 않아. 오히려 편하지.’


이런 것을 왜 묻는 것인지, 의도를 몰랐지만, 목소리가 질문한 내용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었기에 수월하게 답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두렵지 않은 가? 라는 말을 끝으로.

다시는 돌아오는 질문은 없었다.


물론 사내의 질문에도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잘못 말했나? 역시 두렵다고 말했어야····.’


원했던 답이 아니었던 것인지.

시간이 지나도 침묵은 계속됐다.


[이건 두려운가.]


그로부터 한참 뒤.

말없이 홀로 푸른 빛을 내고 있던 불꽃 너머로 또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질문한 것은 처음과 비슷해 보였지만 조금은 달랐다.


‘무엇을····.’


처음에 물었던 질문에서는 현재 그가 있는 이 [공간]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질문하는 것은 다른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푸른 불꽃 밖에.


[이건 두려운가.]


예상대로 같은 질문이 달렸다.

그는 일단 되돌아온 질문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같은 답을 내놓기로 했다.


‘아니.’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 순간.

오래전 잊고 있었던 서늘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눈동자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은 좀처럼 억제할 수 없었다.

이윽고 심장이 '쿵' 하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럼. 이번에도 두렵지 않은 가?]


불꽃 너머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질문했다.

하지만 그는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시야에 비친 인물.


‘····이게····어···· 어떻게’


너무나도 익숙한,

하지만 지금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 그의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자드가 어떻게····.’


그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오래전 어렸을 때의 자신을 지키다 그만 마수에게 희생된 자드가 확실했다.


‘자····!!’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자드가 분명해 보이자 이름을 외쳐려던 순간, 그는 우뚝 멈칫했다.


[그럼. 이번에도 두렵지 않은 가?]


크롸롸롸-

질문과 함께 동시에 들려오는 낯익은 짐승의 소리.


“신이시여.”


다시는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고향을 순식간에 재 덩이로 만들어버린 그 날의 원흉(元兇)

푸른 빛이 스며들지 않은 어둠 사이로 천천히 종말을 알리듯 뜨거운 마그마를 내뿜으며 걸어왔다.

크롸롸롸롸롸-


‘안····안돼.’


이 광경은 마치.

15년 전.

그때의 상황을 똑같이 재현하듯이 한치의 틀린 점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줄어든 손의 크기.

자신의 모습까지도····

어렸을 때로 돌아가 있었다.


‘덤비지마, 도망쳐, 제발.’


말리고 싶었다.

일어서서 직접.

이대로 간다면 자드는 같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몸은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크롸롸롸롹-!!

똑같은 장면이 연출 된다···.

자비로움 없이 뻗는 날이 선 발톱.

여전히 피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내.


‘망할-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이 쓸모없는 새끼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무능했던 자신까지도····.


[그럼. 이번에도 두렵지 않은 가?]


그가 스스로를 자책하던 사이.

질문과 함께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시야에 비친 모든 것이 일시 정지했다.

장면은 마수의 발톱이 금방이라도 자드를 덮칠 것만 같은 위태로운 시점으로 고정됐다.


‘두려워.’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어렸을 적 모습으로 돌아간 그가 움직이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돌아간 것은 신체뿐 만 아니라 어렸을 적의 나약했던 마음조차 함께였다.


[그럼. 이번에도 두렵지 않은 가?]


어렸을 적의 나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생각했다.

마수쯤은 가뿐히 이길 수 있으리라.

그리 여겼다.

하지만···· 나는 강해 보이는 척만 했던 철없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툭. 툭. 툭-

나약한 마음을 대변하듯 흘러나오는 눈물은 그의 뺨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그만.’


잊었다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게 했다.

대체. 무엇을 바라는 걸까?

‘죽음’을 통해 과거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일까.


‘이 정도면 됐잖아····.’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더는 괴롭기 싫었다.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미지의 곳으로····


“네가 죽였잖아.”

‘이 목소린···· 아스라····?’


장면이 바뀌었다.

불길에 타오르는 마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마을 사람들.

15년 전 종말이 닥쳐온 그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네가 죽였어···· 너만 아니었다면 우리 그이는······.”


흐느끼며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

그녀는 자드의 아내이자 언제나 친절하게 그를 맞이 해주던 아스라였다.


“살아있을 수도····.”

‘아냐····.’


부정했다.

이 모든 사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도 않았기에.

금방이라도 심장이 깨질 것 같았다.

유리 조각처럼.


“그래. 너가 죽인 거야.”


그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을 때, 또 다른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도······.”


무너진 잔해들 속.

그때 당시 그와 어울리고 놀았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아스라의 옆에 붙어섰다.


‘아니야····.’


모두가 그의 탓을 하고 있었다.

원망 섞인 목소리들은 하나로 뭉쳐 거대한 가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단 한방이라도 그의 심장을 산산조각 내버릴 것 같은 가시를.


‘내가 한 게 아니야!!’


구에에엑-!

역겨움이 올라와 구역질을 내뱉었다.

닥쳐오는 괴로움을 피하고자 모든 화살을 마수에게로 돌렸다.

자신도 피해자란 듯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 누가 했는데?]


거대한 가시가 그의 눈앞에 서려 있었다.

두 눈을 가린 사내의 앞에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뭐?’

[그럼. 누가 했는데?]


불꽃 너머의 목소리는 시험하듯 물었다.

어떤 것을 낚아채려는 듯이.


‘······.’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뭐가 어쨌든 자드가 죽은 것은 자신 때문이었기에.

나서지 않았다면 도망쳐 나올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겁쟁이처럼 도망친 자신처럼.


[그럼. 누가 했는데?]


세 번째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거대한 가시는 그의 심장을 노리듯 왼쪽 가슴 방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럼. 누가 했는데?]


네 번째 같은 질문이 들렸다.

가시의 뾰족한 끝날이 위태롭게 심장 쪽을 겨누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가시가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차 쾅!

-100.

심장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한 죽음’이 찾아왔다.


* * *


-결국. 그릇이 깨지다니····.


내면의 존재는 모래벌판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죽은 사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꽤 재밌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가지고 놀기도 좋았고····.


허무했다.

기껏 잡아놓은 먹잇감이 그물망을 뚫고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슬픔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제 또 어디서 그릇을 찾아야 할련지····.


그는 근심이 많아졌다.

왕께서 돌아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벌써, 의식 일부가 깨지고 있다 했던.

얼른 도깨비로 승격을 해 한시라도 그분을 모실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언제까지고 내면의 공간에 갇혀 있을 수 업····. 으응?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확실히 죽었을 텐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내면의 존재는 원인을 찾기 위해 손바닥 위를 보았다.


-분명···· 생명력은 다 했는데.


생명력을 나타내는 검은 불꽃은 이미 모두 소멸하여 사라졌거늘.

어째서 이 푸른 불꽃은 이리도 세차게 타오르는 것인가.

화르륵-!!

차분하게 타오르고 있던 푸른 불씨는 모든 것을 불태울 만큼 엄청난 화력을 내뿜었다.

마치 누군가 ‘살아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르륵····

푹.

그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 저 녀석.


피를 흘린 자리에 찬란한 푸른색의 빛이 감돌았다.

거짓말처럼 서서히 일어서는 사내.

잠시 후-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수의 가슴에 무게가 실린 바늘이 꽂혔다.


-인간이 아닌가?


도저히 설명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몸이 관통된 마수는 끈적한 액체를 내뿜으며 증발했다.

그러자 -99라 새겨진 바늘 손잡이에 –100이라는 숫자가 다시 새겨졌다.


<구원자(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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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침투(3) 22.03.18 21 0 12쪽
58 57화 침투(2) 22.03.14 23 0 13쪽
57 56화 침투 +1 22.03.03 38 0 11쪽
56 55화 심장이 없는 사내(3) 21.12.24 85 0 13쪽
55 54화 심장이 없는 사내(2) 21.12.21 31 0 12쪽
54 53화 심장이 없는 사내 21.12.15 38 0 12쪽
» 52화 구원자(3) 21.12.10 35 0 12쪽
52 51화 구원자(2) 21.12.08 33 0 12쪽
51 50화 구원자 21.12.03 35 0 13쪽
50 49화 붉은 목도리(3) 21.11.24 33 0 13쪽
49 48화 붉은 목도리(2) 21.11.16 36 0 12쪽
48 47화 붉은 목도리 21.11.08 37 0 12쪽
47 46화 심연(3) 21.10.29 36 0 12쪽
46 45화 심연(2) 21.10.18 41 0 13쪽
45 44화 심연 21.09.29 40 0 14쪽
44 43화 개미굴의 왕(5) 21.09.27 35 0 13쪽
43 42화 개미굴의 왕(4) 21.09.21 36 0 13쪽
42 41화 개미굴의 왕(3) 21.09.18 37 0 13쪽
41 40화 개미굴의 왕(2) 21.09.16 3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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