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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황야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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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바퀴
작품등록일 :
2017.12.12 11:55
최근연재일 :
2018.02.19 12:28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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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03
추천수 :
98
글자수 :
259,736

작성
18.01.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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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4. 내가 한다. (1)

DUMMY

일반적으로 전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그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막상 마음 속으로는 굉장히 잔혹하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라고는 생각해도 대체 어떻길래 그 현장이 그런 느낌을 주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건 여기저기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일부 안정화시킨 공간을 제외하고 살 수 없는 이 세계에서도 통하는 말이었다. 몬스터와의 전투는 사냥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간혹 도시를 위협할만한 A+급 같은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나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드리지만 않으면 큰 문제도 없고 설사 전투가 일어나도 나갈만한 인원들은 극소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예상하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왜 내가 생각하지 못했는지는 몰랐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심각하다 못해 끔찍했다.


우선 끔찍한 상황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굳이 살상용 무기가 아닌 제압용 무기를 들고 온 보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가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다면 알 수 있었던 일이었다. 인질의 생사가 중요한 것은 우리지, 정신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좀비처럼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시민들은 우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포착되면, 그곳으로 각종 무기에 의한 공격이 퍼부어지는 형식이었다.


여기서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우리를 찾아내기 위해 말 그대로 ‘사용’된 사람들의 생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저 움직임이 포착되면 그 포착된 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모든 것이 박살 났고,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생사는 보장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의 생사에 아픔과 분노를 느끼는 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철저히 이기적이었고, 자기 중심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이코패스라던가 그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그렇게 큰 충격을 받는 일은 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있어서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들의 죽음에 관해서 굉장히 슬프고 분노를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미처 정신 지배가 풀리지 못하여 보이는 공허한 눈동자. 그리고 죽기 직전 지배가 풀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동자를 한 채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볼 때 그런 감정을 느꼈다.


불쾌감과 무력감.


눈앞에서 사람이 죽기 때문에 느낀 감정은 아니었다. 내가 느낀 이 감정은 마치, 거대한 자연 재해에 쓸려나가는 모든 것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자연 재해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런 일이 얼굴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그 때문에 이 감정으로 인한 분노가 향할 방향이 정해졌다는 것과, 고작 한 명 때문에 이 상황이 벌어지고 휩쓸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분노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느낀 감정은 이랬고, 이것이 바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긴 했어도, 내 정신은 또렷하게 살아있었다. 아까 말했던 그런 감정이 느껴지긴 했지만, 사람들이 죽어갈 때 마다 느껴지는 그 ‘죽음’이라는 힘은 정신을 놓고 싶어도 놓지 못하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서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우선 가장 상태가 좋은 류진영도 붉게 상기된 얼굴로, 폭발음이 들릴 때 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도 정신을 다잡으려는 기합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기합과는 다르게 눈동자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디아는 밭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려 마치 무언가를 쫓기라도 하는 듯 움직이고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해져 그야 말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작은 소녀처럼 보이는 디아가 그러는 모습은 정말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런 디아의 모습이 나아 보일 정도로 이설씨의 모습은 더욱 좋지 않았다.


일단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눈동자에 그나마 초점이라도 잡혀있는 다른 두 명과는 다르게, 이설씨의 눈동자는 초점조차 맺히지 않은 상태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게다가 숨은 쉬는지 모를 정도로 작고 느릿한 숨소리는 혹시 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위태로웠고, 팔다리는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저런 상태라면 뭘 말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설씨와 디아를 이 전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 방법은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한 폭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뚫어야 해! 그래야 갈 수 있다고!”


“알아! 알고 있다고! 나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해봐!”


폭음이 들리는 사이, 류진영이 나에게 소리쳤지만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나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몸을 일으켜 나아가려는 기색만 보여도 공격이 퍼부어지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설씨와 디아를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며 폭발에 죽어나가도, 내 주변인들과 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포위망이 좁혀져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 모습을 보고 류진영이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에, 내가 생각하기에 움직일 수 있을만한 틈이 보였다.


“지금! 움직이자고!”


나에게 뭐라고 하려던 류진영은 내 말을 듣고 입을 다물며 이설씨와 디아에게 손짓했다. 그런 류진영의 모습을 힐끗 바라본 후, 곧바로 내가 찾아낸 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폭발로 일어난 분진 때문에 연막 효과를 내고 있는 공간은 우리 넷의 몸을 가려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이 공간은 그저 분진이 날아와 그런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닌, 그 주변에 떨어진 공격이 어설프게 주변 건물을 무너트려 적절한 엄폐물까지 형성해주고 있었다.


그런 공간을 보며 반쯤 확신했다. 이 공간에 들어가면 처음에 잠깐 흐릿하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엄폐물과 연막을 통해 손쉽게 좀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게다가 일어난 일로 인해서 내가 얼마나 내 생각밖에 할 줄 모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놈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까 분명히 생각했던 것이지만, 여기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나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제정신을 차리고 내 말에 따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버렸고, 그 결과로 긴장과 공포에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던 이설씨와 디아에게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작으면서도, 커다란 문제. 그 문제는 바로 이설씨와 디아가 긴장 속에서 움직이려 하다가, 장비들이 바닥과 벽에 부딪히고 쓸려서 소음을 낸 것이었다.


뭔가 폭발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나게 된 그 소음은 여기저기로 울려 퍼졌다. 분명 지금까지 있었던 소음보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그런 건 상관 없다고 비웃듯 아주 뚜렷하게 사방으로 퍼졌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하얗게 변한 머릿속을 어떻게든 생각으로 채워 넣으려고 애썼고, 그 하얀 공간에 생각이라는 검은 선들이 그려지자 취했던 행동은 아주 간단했다.


소리치고 달리는 것. 그것밖에는 없었다.


“다들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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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6. 그래도 다 끝났으니까요. (1) 18.02.09 56 0 9쪽
61 15. 잡았다. (4) 18.02.08 90 0 8쪽
60 15. 잡았다. (3) 18.02.07 52 0 8쪽
59 15. 잡았다. (2) 18.02.06 46 0 9쪽
58 15. 잡았다. (1) 18.02.05 103 0 9쪽
57 14. 내가 한다. (4) 18.02.02 61 1 10쪽
56 14. 내가 한다. (3) 18.01.31 77 2 9쪽
55 14. 내가 한다. (2) 18.01.30 83 1 9쪽
» 14. 내가 한다. (1) 18.01.29 72 0 8쪽
53 13. 절대로 아니라고 봐. (4) 18.01.27 79 1 8쪽
52 13. 절대로 아니라고 봐. (3) 18.01.26 67 1 9쪽
51 13. 절대로 아니라고 봐. (2) 18.01.25 79 0 8쪽
50 13. 절대로 아니라고 봐. (1) 18.01.24 73 0 9쪽
49 12. 슈퍼히어로 착지라고 하지. (4) 18.01.23 70 0 9쪽
48 12. 슈퍼히어로 착지라고 하지. (3) 18.01.22 75 0 9쪽
47 12. 슈퍼히어로 착지라고 하지. (2) 18.01.20 82 1 8쪽
46 12. 슈퍼히어로 착지라고 하지. (1) 18.01.19 84 0 9쪽
45 11. 표정이 안 좋은걸? (4) 18.01.18 80 1 9쪽
44 11. 표정이 안 좋은걸? (3) 18.01.17 97 0 9쪽
43 11. 표정이 안 좋은걸? (2) 18.01.16 80 0 9쪽
42 11. 표정이 안 좋은걸? (1) 18.01.15 92 0 8쪽
41 10.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죠? (4) 18.01.13 96 3 10쪽
40 10.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죠? (3) 18.01.12 104 1 9쪽
39 10.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죠? (2) 18.01.11 10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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