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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영주님의 놀이동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최근연재일 :
2022.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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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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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3,890

작성
22.01.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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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023화.

DUMMY

영지민들에게 능력을 일부 밝힌 후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고도 순조로웠다.


[조경시설] [나무] [★]


마나가 차면 [나무] 카드로 하레드 나무와 데트린 나무를 만들고 활을 쏜다.


[수리]


마나가 차면 벌목된 [나무]들을 수리하고 활을 쏘고.


[수리]


마나가 차면 또 다시 벌목된 [나무]를 또 수리하고 활을 쐈다.


“이쪽 길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베렌령에서 나고 자라 숙련된 병사들도 험하여 다니기 힘든 길부터 정비를 시작했다.


[편의시설] [흙길] [★]

[편의시설] [나무길] [★]


특별히 카드를 써서 말이다.


물론 대지의 정령만으로도 평탄화 작업을 할 수는 있지만, 카드로 만드는 [흙길]과 [나무길]과 비교하면 속도와 품질면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흙길]로 한정해서만 비교해도 단순히 평탄화하여 평지로 만들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흙을 단단히 굳혀서 거의 벽돌처럼 느껴질 정도의 길이었다. 예비군 한수호에게 있어서 PTSD를 유발하게 만들었던 비만 오면 쓸려 나가서 매번 작업을 나가게 만들던 부대 뒷산의 흙길과는 차원이 다른 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경사가 있으면 자연스레 계단으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아예 기존에는 돌아가야만 했던 험난한 길도 시스템의 힘으로 개척이 가능했으므로 카드로 만든 길은 단순한 미관상의 효과 이상의 엄청난 효율을 가져다주었다.


“영주님! 이번에 소탕한 놈들입니다. 시간에 늦지 않게 구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주님께서 만들어주신 길이 아니었으면 큰일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길을 만들자마자 확실한 성공사례도 바로 나타났다.


“여기 마나석입니다.”


그렇게 받은 하급 마나석들은 당연히 또 전부 마나를 늘리는데 투자했다.


[수리]


벌목된 [나무]를 수리하고, 그 나무들로 정비된 마차와 수레들이 결국은 목재로 꽉 찼다.


“그럼 다녀올게”

“하아.”

“왜 또 그래. 내가 가야지. 응?”


비록 또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레이시아가 상행을 떠날 때까지도 아직 과녁에 제대로 화살을 쏘아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과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화살처럼 영지도 조금씩은 변하고 있었다.


레이시아가 상행을 떠난 후에는 영주관의 대청소도 했다.


나와 레이시아를 제외하고 정확히 영주관에 딸린 식구는 하녀 셋과 늙은 관리인뿐. 사실 병사들도 영지병이니 결국 내 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영주관에서 계속 머무는 이들이 아니라 병영 소속으로 일종의 당번병 개념으로 돌아가며 나오고 있기에 정확히 영주관 소속으로 고용된 이들은 하녀 셋과 관리인뿐이었다.


“영주님, 모두 데리고 왔습니다.”


하녀장에게 미리 입단속 및 설명을 해두라고 했었기에 다른 설명은 않기로 했다.


“음. 내가 특별한 정령사라는 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네, 영주님.”


하녀장 뒤로 하녀 둘과 관리인도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관리인보다는 하녀장이 실세였기에 대답도 대표로 하녀장이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오늘 할 일도 대충 알고 있고?”

“네. 영주님.”

“그래. 고맙네. 그러면 시작하겠네.”


그 동안 벼르고 별렀던 영주관의 대청소였다.


팟.


허공에 하얀 청소의 정령이 등장하였다.


“헙.”


하녀 한나가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괜찮네. 뭐. 놀라는 것이 죄도 아니고. 대신에 어디 가서 입만 조심하면 될 걸세.”

“네. 영주님.”

“네, 네! 영주님.”


소설에서 보던 이세계물의 주인공들은 하녀들이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경우도 많던데, 나는 레이시아의 눈치가 보여서 젊은 하녀들에게는 일부러 좀 더 단호하게 굴기로 했다. 특히나 이번처럼 레이시아가 상행을 떠났을 때는 좀 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방문을 열게.”


내 방과 레이시아의 방과 욕실 등은 이미 청소가 된지 오래였지만, 식당, 주방, 복도와 하녀들이 사용하는 방은 아직 미개척지.


“네에. 영주님.”


하녀들이 쭈뼛거리며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솔직히 엄청 찝찝했다고.’


하녀들 나름대로 자신의 방을 열심히 청소했을지 모르겠지만, 진공청소기도 없고 공기청정기도 없으며 스팀 청소기도 없는 세상에서의 깔끔함이란 한계가 역력했다. 하다못해 치약으로 청소를 하고 매주 일광건조를 시키는 군대도 여기보다는 수백 배 이상 깨끗하리라.


“여, 여, 여깁니다.”


막내 하녀의 방부터 시작이었다. 청소의 정령이 오래 해묵은 먼지와 곰팡이들을 벗겨내고, 바람의 정령이 먼지들과 쾨쾨한 공기들을 싹 다 몰아낸다. 오래된 석조 바닥은 물의 정령이 물청소를 하고 불의 정령이 건조 및 온기로 AS를 끝마친다.


“어머나.”

“세상에! 으악! 이렇게 더러웠어?!”

“크흠. 그 동안 우리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구나.”


다른 건 몰라도 오래된 침구류와 카페트에 쌓인 먼지와 각질 및 털들을 비롯한 수많은 오염물들이 뭉친 모습은 하녀들에게 있어서 경악을 넘어 송구스러워 할 정도의 장관이었다.


“다음.”


하녀 한나에 이어 안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다음.”


물론 하녀장 역시 무자비한 청소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의 폭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어머나? 이거 때가 안 지던 건데...?”

“하녀장님! 이거 보세요. 여기 그을음이 싹 사라졌어요! 여기 원래 이런 곳이었어요?”

“...둘 다 목소리 좀 줄이렴. 나도 처음이로구나. 이게 원래는 이런 색깔이었구나.”


그러는 하녀장의 목소리도 이미 매우 컸다.


‘와 씨. 이런 데서 만든 음식을 먹었단 말이지?’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웩.’


오래된 주방 식기구들에 이어 수백 년의 세월을 가진 검정 화덕까지도 모두 청소의 정령의 노력 끝에 처음의 색을 찾았다.


“후우. 일단 1차는 여기까지만 하겠네.”

“네? 아. 네. 영주님.”

“다음에는 영주관 외벽을 손 볼 터이니 알아두게. 그리고 하녀장은 잘 확인해보고 부족한 곳이 있으면 내게 말하도록. 저택의 청결 문제는 내게도 중요한 문제니 기탄없이 이야기하게. 알겠나?”

“네. 영주님, 명심하겠습니다.”


하루 만에 끝나기에는 마나가 모자랄 정도의 대청소였다.


‘생각해보니까 청소의 정령이 기가 막히네.’


영주관의 외벽과 외부의 담을 청소의 정령으로 리모델링했고,


‘어우야. 진회색이 아니라 연회색 건물이었네?’


영주관의 마당에는 1성 조경 시설 [잔디밭]을 깔았다.


[조경시설] [잔디밭] [★]


[크기: ???]

[건설비용: 200 마나+α]

[필요재료: 잔디 씨앗]

[필요정령: 정원의 정령 1성 이상 and 대지의 정령 1성 이상]

[제작시간: 1시간+α]


잔디 씨앗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잔디 씨앗 하나로도 건설이 가능했다. 처음 씨앗에서 잔디가 생기고, 물에 떨어진 잉크 방울이 퍼지듯이 잔디들이 쭉 퍼져나간 것이었다. 새파랗고 싱싱한 천연의 잔디들은 딱 보기 좋은 사이즈로 기존의 건물과 정원수를 피해 자연스레 깔렸고, 비록 깨끗해졌지만 여전히 삭막하고 건조한 오래된 영주관의 마당을 한순간에 유럽의 고풍스런 별장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주었다.


“와우.”


최근 학교에 깔린 인조 잔디는 당연히 견줄 것도 없고, 동네공원에 듬성듬성 자란 잔디와도 당연히 비교할 수 없다.


‘최소 유원지... 아니, 이 정도면 EPL의 명문구장급도 못 미치지 않을까?’


TV에서 보면 예술과도 같은 그 잔디 구장들. 볼 때마다 저런 데서 공 한 번 차보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던 그런 잔디도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새파란 잔디밭에 비교하면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아래일 것이 분명했다. 보통 영상물은 실제로 보면 덜 하다는 것을 감안하고서도 확실히 이쪽이 더 뛰어나다.


“...갑자기 축구 마렵네.”


언젠가 성공하면 병사들을 모아서 한 번 축구를 하리라 생각하며, 잔디에 어울리는 [벤치]를 설치하고.


[편의시설] [나뭇잎 파라솔] [★★]


[크기: ???]

[건설비용: 250 마나+α]

[필요재료: 살아있는 나무 또는 나무 씨앗]

[필요정령: 나무의 정령 2성 이상]

[제작시간: 2시간+α]


게임에서는 그냥 파라솔이었던 [나뭇잎 파라솔]도 만들었다.


“헐.”


편의점이나 유원지에서 볼 법한 의자와 테이블이 달린 파라솔 테이블이 아닌, 중앙은 멋들어진 나무와 커다란 나뭇잎들이 그늘막이 되어 햇빛과 비 같은 것을 가리고, 그 밑에는 일체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달린 특별한 파라솔.


“어머나.”

“완전 예쁘다.”

“저런 데서 차 마시면... 꿀꺽.”


하녀들도 절로 욕심을 낼 법한 멋진 파라솔이 만들어졌다.


“...하녀장.”

“네. 영주님.”

“미안하지만 이 파라솔은 내 누나와 함께 처음으로 사용하고 싶네. 그러니 그때까지는 그대들은 좀 참아주게.”

“...네?”

“누나와 함께 첫 기념으로 사용 후에는 하녀들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할 터이니, 그 전까지만 참아달란 말일세.”


오랜만에 살짝 고장 난 하녀장이 잠시 후 감사하다 고개를 조아리고, 뒤에서 꺅꺅 신이 난 하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영주관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편의시설] [이동식 화장실] [★]


[크기: ???]

[건설비용: 250 마나+α]

[필요재료: 살아있는 나무 또는 나무 씨앗]

[필요정령: 나무의 정령 1성 이상 and 대지의 정령 1성 이상 and 청소의 정령 1성 이상]

[제작시간: 2시간+α]


일단 본관 뒤에 [이동식 화장실]을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각기 하나씩 설치했다.


“하아. 이제 설치를 하네.”


기존 영주관의 화장실은 외부에 있는 낡은 돌로 된 화장실 건물이 따로 있었다. 당연히 변기나 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바닥에 오물통을 두고 적당히 차면 퍼다 버리는 아주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저택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침실에는 요강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제 굿바이인가?’


비록 정령이 생기면서부터는 더 이상 냄새에 고통 받거나 내 요강을 하녀들이 치우는 수치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처음에는 진짜 많이 고생했었다.


‘진짜 먹고 싸고 자는 것이 다 문제일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지금껏 내가 보던 판타지 소설에서의 화장실은 암살이 일어나거나 비밀 통로로 사용될 뿐 이렇게 추접하고 더러운 묘사는 없었었다. 뭐 무협지에서는 엿 먹이고 싶은 등장인물이 뒷간에 빠지거나 해서 똥독이 오르는 그런 상황이 종종 일어나긴 했지만, 주인공이 화장실 문제로 고생하는 이야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 놈들도 한 번 이런 곳에서 배탈이 나봐야 해.’


씨발. 거친 나뭇잎이나 해면체 같은 것으로 뒤를 닦아봐야 자기들도 화장실 소중한 것을 알 것이다. 나는 괜히 악담을 하며 화장실의 문을 열어본다. 아니, 시스템을 먼저 열어본다.


[확장]


휴. 다행히 [확장]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분뇨 제거]: 100 마나


은근히 걱정이던 분뇨 수거까지 100 마나만 있으면 끝이란다.


‘나이스.’


비록 비데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도 아닌 재래식 화장실에다가 한 칸짜리 달랑 문 하나에 안에는 양변기도 아니고 그냥 나무 바닥 중앙에 구멍만이 덜렁 존재하고 있지만,


‘이야 고급지다 고급져.’


통짜 나무로 이루어진데다가 못 하나 접착제 자국 하나 없이 통짜로 만들어진 나무 화장실은 흡사 화장실이라기보다는 조금만 원목의 산장 같은 느낌이었다.


똑 똑 똑.


여기 세상에서는 최고급 목재로 사용되는 데트린 나무 씨앗을 사용한 덕분인지 노크 소리까지 청명하고 어쩐지 기품조차 있다.


“와. 쩐당.”


이 정도 되면 아쉬운 건 보드라운 지구의 휴지 정도뿐이다.


‘타나티안 영지에서는 천을 썼었지?’


그래도 나름 명문가라서 오래된 천으로 뒤를 닦고 그것들을 하녀들이 나중에 씻는 방식을 썼던 것 같다. 물론 종이를 쓰는 곳도 있기는 했다. 여기 세상에서는 나무나 풀로 종이를 만드는 제지술이 나름 발달해있기에 비록 비싸지만 종이가 충분히 유통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존나 비싸긴 해.’


그리고 나는 종이의 대량 생산의 방법도 당연히 모른다.


‘에휴. 그냥 여기 법을 따라야지 뭐.’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나는 여기 베렌령에 걸맞은 휴지 대용품을 찾기로 했다.


“이건가?”

“네. 영주님.”

“구해줘서 고맙네.”


남녀로 구분지은 이동식 화장실 사이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네 이름은 앞으로 휴지 나무다.’


크고 부드럽고 작은 솜털 같은 것이 많이 나는 나뭇잎을 보유한 나무의 원래 이름은 겔리온 나무. 활엽수라서 여기 북부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지만, 시스템의 힘은 그 정도는 가뿐하게 무시해줄 수가 있다.


딱.


나뭇잎 한 장을 뜯어본다.


‘음.’


지구에서는 이런 걸로 뒤를 닦아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호박잎이나 머위잎처럼 식용으로 먹는 잎들보다 좀 더 두꺼우면서도 부드러운 것 같다.


‘흐음.’


뒤를 닦아보니 확실히 더 그렇다.


‘어차피 나야 물의 정령으로 비데를 사용할 수 있지만, 레이시아가 쓰기에 괜찮으려나?’


대륙 중부에서는 오래전부터 많이 사용한다기에 별 트러블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랑하는 여자가 사용할 휴지가 없어서 나뭇잎으로 닦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


“하아.”


빨리 성공해서 비데를 만들던가, 아니면 비싼 면직물이나 종이를 사용할 수 있게끔 돈을 많이 벌던가, 그것도 아니면 닦아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그건 좀 아닌가?”


아무튼 화장실과 화장지 나무도 완성하였다.


“음... 이것도 통제를 걸어야 하려나?”


이것도 레이시아를 위해서 처음을 남겨둬야 할까 생각했지만, 인간적으로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서 하녀들에게 이용을 허락하기로 했다.


“어머나! 세상에!”

“냄새도 완전 좋아요!”


하녀들은 놀라고 감동했다. 어쩐지 러브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것만도 같은 반응들이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안나와 한나의 리액션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타나티안 가문에서 교육을 받은 하녀장님마저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니 진작에 만들 걸 후회가 된다.


‘레이시아랑 있을 때 만들어 둘 걸...’


마나석 확충으로 가장 먼저 내다 팔 상품부터 만들고, 상행에 인원을 늘리기 위해서 병영부터 지원을 하느라 영주관이 후순위로 밀려버린 것이었다.


“하녀장님, 여기 좀 보세요!”

“크흠.”

“앗. 영, 영주님.”

“뭐라 하려는 것이 아니니 고개 들게. 앞으로 여기 나뭇잎이 모자라거나 화장실에 분뇨가 차면 내가 정령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면 즉각 내게 말하게. 알겠나?”

“네? 네! 영주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련장으로 향하는 산길을 정비했고, 그 다음에는 다시 병영과 광장 사이의 길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만들 수 있겠나?”

“영주님께서 주신 목재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부탁하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그것을 뜯어서 레이시아를 위한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했다.


어느새 여기 세상에 온 지 반 년.


계절은 늦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의 정점에 이르렀다. 지구처럼 더운 여름은 아니지만, 그래도 햇살이 밝은 날에는 창문을 열고 선선한 바람을 즐길 정도는 되었다. 대충 한국에서는 10월쯤 되는 날씨인 것 같다.


핑-!


날아간 화살이 과녁에 꽂힌다.


“에고.”


100보 거리의 사람의 얼굴만 한 과녁. 굳이 과녁을 얼굴로 치면 귀 정도 맞춘 거 같다. 그러니까 여전히 제대로 맞췄다고 볼 수는 없다.


짝 짝 짝.


박수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헤카인 경이었다.


“역시 그 재능이 아주 어디 가지는 않았나봅니다.”


꼬일 대로 꼬인 해학의 민족인 한국에서라면 비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곧고 곧은 헤카인 경이라서 그대로 칭찬하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 왔대?’


헤카인 경의 수련장소를 빌려서 수련 중이었기에 몰래 왔다고 뭐라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에이... 괜히 그런 칭찬은 사양하겠습니다.”


아부 노노염.

레이시아의 달콤한 칭찬도 아니고 훈훈한 30대 얼굴에 실상은 50대 중반의 아저씨에게 굳이 칭찬을 듣고 싶지는 않다.


“허허허. 아닙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진짜요?”

“네. 영주님. 정말로 빠르게 배우시고 계십니다.”


그래도 강직하기로 이름난 경비대장 헤카인 경이 칭찬을 할 정도면 내 생각처럼 아주 영 꽝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밥 먹고 이 짓만 하는데 뭐.’


보통의 궁수 훈련병들이야 없는 집안 자식들인 경우가 일반적이고, 일과가 있는데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할 수도 없는데다가, 활과 화살 역시 보급품이니 죽어라 훈련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날라리 영주라는 이유로 전담 교관(무려 베렌령에서 최고 실력자)을 두고 하데르 나무와 데트린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을 아낌없이 쏘고 있는 것 아닌가. 지구처럼 여기서도 있는 집 자식들은 기사나 마법사를 지망하지 전문적으로 궁수 훈련만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치 현질을 잔뜩 한 플레이어 같은 내가 보통 무과금의 숙련 속도와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아...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평소에는 바쁘다고 나무를 벌목할 때 말고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헤카인 경의 등장에 물었다.


“허허. 영주님, 상단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네? 오! 어디요? 관문?”

“네. 현재 관문을 통과 중입니다.”


레이시아가 돌아오고 있다는 말에 나는 후다닥 병영을 나섰다.


“영주님!”

“조금 있다 만나요!”


병영부터 관문까지 대지의 정령으로 정비된 길을 나는 박차고 달렸다.



* * *



베렌령의 관문을 눈 앞에 둔 레이시아의 마음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후우. 이제 돌아왔구나. 제이는 뭘 하고 있을까?’


제이크와 떨어져야만 했던 상행의 기간은 레이시아에게도 나름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만약 그리움과 외로움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한수호가 알았다면 매우 좋아했겠지만, 기사라서 속마음을 감추는 것에 능숙한 레이시아가 표현할 리는 없었다.


“기사님~.”


두 번의 상행 동안 이제는 친숙해진 상단주 마리나가 레이시아의 곁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네. 마리나 님.”


말고삐를 부여잡은 레이시아가 공손히 답을 했다.


“이제 그러시지 마시고 먼저 가시라니까요.”


관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베렌령의 영지로 안전한 땅이다. 그러니까 상행의 호위로 따라온 레이시아에게 먼저 가서 영주님을 빨리 만나서 여독을 풀라는 것이 마리나 상단주의 권고였고, 평생을 베렌령에 헌신한 헤카인만큼은 아니지만 곧고 곧은 레이시아는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호위책임자로서의 임무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지요.”


그것도 보통의 상행이 아니라 제이크를 위한 상행이었기에 레이시아는 마지막까지도 성실히 호위에 임했다.


“누나-!”


그런데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정령]으로 크기를 키운 목소리는 웬만한 익스퍼트 기사의 목소리보다 우렁차고 기운 넘쳤다.


“어머나?”


옆에 있던 마리나 상단주를 비롯하여 상행을 나섰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신임 영주 제이크가 레이시아를 아낀다는 것은 이제는 영지민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


“누나-!”


그렇다고 해도 제이크의 행동은 영주나 귀족이라기에는 조금 체신머리가 없는 모습이긴 했다.


“......”


레이시아의 귀가 빨개졌지만,


“거 봐요. 빨리 가보시라니까. 후후.”


두 번의 상행 동안 제법 가까워진 마리나 상단주의 웃음에 쑥스러워하던 레이시아는 목례를 취하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상행의 호위보다 제이크를 보호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한 임무였기에 당연히 거칠 것이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익스퍼트 상급의 여기사 레이시아가 타기에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말이었지만, 패션의 완성이 얼굴인 것처럼 말도 누가 타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랐다.


“누나!”


황급히 말을 세운 레이시아는 숫제 뛰어내리는 듯이 말에서 내린 후에 제이크에게 짐짓 단호하게 말을 했다.


“제이야! 왜 여기까지 나왔어?”


관문까지 마중을 나온 제이크가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반겨주는 모습에 은근히 감동을 받았던 레이시아의 목소리에는 사실 단호함보다는 반가움과 고마움이 좀 더 컸다.


“당연히 마중 나왔지. 아이고.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아, 아니야.”

“누나 물부터 마실래?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뭐 좀 잘 먹었어?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은데? 내가 상행가면 잘 챙겨먹으라고 했잖아. 거기서 맛있는 거 사 먹었어? 어? 안 먹었지? 왜 대답을 못해.”


제이크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


레이시아는 말문이 턱 막혀왔다.


사실 레이시아는 어쩌면 제이크가 마나석을 과연 얼마나 구해왔는지를 처음으로 물어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면서 위해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이크에게는 마나석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니까 그것을 가장 먼저 확인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는 내내 몇 개의 하급 마나석을 가져왔는지를 되뇌면서 말을 탔던 레이시아는 마나석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자신을 걱정하는 이세계표 잔소리들에 순간 당황했다


‘아... 제이는 정말 진심인가보구나.’


고아였기에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레이시아는 백작 부부의 애정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은 레이시아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그녀를 혼내거나 꾸짖은 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레이시아에게는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못내 서운한 지점이었다. 부모님의 부재를 느끼게 만드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왜 대답이 없어? 어? 누나 어디 아파? 누나?”


한수호는 몰랐지만, 레이시아의 충성심과 애정도는 한 계단 더 진화했다. 시스템으로 따지자면 3성에서 4성쯤으로 올라간 정도로 해야 할까? 제이크는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했고 영주관을 어떻게 정비했는지를 자랑했고, 레이시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그 동안의 부재를 메워나갔다.


“아.”

“응?”

“여기 마나석부터 받아.”


그리고 레이시아가 가져온 하급 마나석의 숫자는 바로 3,812개. 다이아로 환산했을 때는 4만하고도 2,056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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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033화. 22.01.26 56 0 23쪽
32 032화. 22.01.25 54 1 23쪽
31 031화. 22.01.24 55 1 22쪽
30 030화. 22.01.22 49 0 25쪽
29 029화. 22.01.21 48 0 24쪽
28 028화. 22.01.20 49 1 18쪽
27 027화. 22.01.19 54 1 21쪽
26 026화. +1 22.01.18 53 1 21쪽
25 025화. 22.01.17 61 1 21쪽
24 024화. +2 22.01.15 58 2 20쪽
» 023화. 22.01.14 57 1 23쪽
22 022화. +1 22.01.13 62 1 23쪽
21 021화. 22.01.12 59 1 24쪽
20 020화. 22.01.11 60 1 24쪽
19 019화. 22.01.10 65 1 20쪽
18 018화. +1 22.01.08 69 1 18쪽
17 017화. +1 22.01.07 70 1 19쪽
16 016화. +1 22.01.06 72 1 20쪽
15 015화. +1 22.01.05 70 1 21쪽
14 014화. 22.01.04 75 1 18쪽
13 013화. +1 22.01.03 81 3 18쪽
12 012화. 22.01.01 79 1 18쪽
11 011화. 21.12.31 80 1 16쪽
10 010화. +1 21.12.30 83 1 20쪽
9 009화. +1 21.12.29 90 1 16쪽
8 008화. +1 21.12.28 99 1 16쪽
7 007화. 21.12.27 97 2 15쪽
6 006화. +1 21.12.25 111 1 20쪽
5 005화. 21.12.24 131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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