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영주님의 놀이동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최근연재일 :
2022.01.27 22: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717
추천수 :
54
글자수 :
303,890

작성
22.01.04 22:00
조회
70
추천
1
글자
18쪽

014화.

DUMMY

베렌령의 주요 인물들은 총 8명.


첫 번째는 영지의 관문 및 산맥을 수비하는 경비대장.


‘와... 역시 오러 익스퍼트 상급인가? 백작 양반도 그렇더니 포스가 장난이 아닌데? 저게 어떻게 55세야. 우리 막내 삼촌보다도 훨씬 젊어 보이네. 심지어 부소대장도 이 아저씨보다 늙어 보인다.’


심지어 서양과 동양인의 차이를 감안하면, 더더욱 경비대장의 젊은 외모는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양반이 30여 년 전부터 경비대장을 맡고 있다고...’


전체 인구가 총 1천명도 안 되는 베렌령의 현재 경비병 숫자는 74명. 아주 먼 과거에는 타나티안령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파견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몇 몇 인재들을 선별해 타나티안령에서 교육 및 훈련을 받는 것으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때 제이크의 조부에게 직접 스카웃 제의를 받았었을 만큼 유망했던 이가 바로 지금의 경비대장 헤카인이었다.


‘영지의 유일한 기사.’


그렇지만 수많은 기사를 거느린 거대한 영지의 기사들과 비교해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유능한 기사 헤카인은 제이크의 조부가 추천하여 아델린 왕국 기사 시험을 통과한 왕국 공인의 기사였다.


‘그런 기사가 고작 촌동네에 경비대장을 하고 있는데다가 영지민들에게 평판도 좋으니까... 충직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먼저겠지?’


레이시아가 영지 장악을 위해서 반드시 포섭해야 할 인물 1순위로 꼽은 것이 바로 베렌령의 경비대장이었다.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베렌령의 경비대를 맡고 있는 헤카인이라고 합니다.”


역시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라 그런지 외견은 30대 정도였지만, 실제 나이는 지구에서의 아버지뻘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이크 타나티안입니다.”


왕국 기사는 일단 귀족의 신분이니 존대를 선택했다. 사실 원래라면 영주와 영지 내의 무력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상하관계인 것이 일반적이나 아직은 직접적으로 주군의 맹세를 하지 않았기에 나도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음... 그리고 다음은 누구지?’


다음으로는 영지의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관.

32세 조르딘. 평민이다.

앞서 존재감이 뚜렷하던 경비대장에 비교해서 유약하고 순해 보이는 촌부 같은 인상이었지만, 이래 뵈도 아델린 왕국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인재라고 했다.


“영주님, 소인은 행정관 조르딘이라고 하옵니다.”

“반갑소. 제이크 타나티안이오.”


군사, 행정을 담당하는 이들 다음으로는 영지의 살림을 책임지는 행정관이었다. 사실 이쪽은 엄연히 따지자면 영지 소속이라기보다는 왕국의 소속이지만, 베렌령은 왕국법에 의해서 왕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곳이므로 월급 역시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는 존재였다. 헤카인 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쪽 역시 고향을 위해서 재능봉사를 하는 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영주님, 안녕하신가요. 저는 작은 상단을 꾸리고 있는 마리나라고 합니다.”


영지 내의 생산품들을 다른 도시로 가져가 판매하는 베렌 상단의 책임자, 마리나(여, 44세)는 과거에 대륙의 3대 상단에서 일을 했던 경력이 있다고 했다.


‘우리 교수님 생각나네. 아니지. 이쪽은 지구로 치면 해외 유학파 CEO라고 보면 되려나? 뉴욕쯤에서 일을 했다고 보면 되겠지? 오~ 그러니 여자인데 상단주 일을 하고 있지.’


다음으로는 영지 내 어부들이 자체적으로 뽑는 어장漁將.


‘어장? 어장은 많이 당해보기만 했지...’


어장관리... 물론 관리 당할 때는 몰랐고, 관리 밖에 벗어나서야 내가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영주님, 저는 어장을 맡고 있는 다이크라고 하옵니다.”

“그, 그래요. 반갑네. 흠흠.”


지구에서는 생소한 직함이긴 하지만, TV에서 몇 번 봤던 어촌계장 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장 다이크(남, 47세)는 영지 내 조선소造船所 및 대장간의 수장을 겸임하고 있는 장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인구가 작다보니 능력 있는 몇몇이 겸직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공돌이가 근육이 저렇게 매서워? 하긴 여기는 목공일이나 대장장이일이 다 수작업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


그리고 나는 흘끔 또 하나를 떠올렸다. 레이시아가 꼭 집어준 특이사항 중 하나는 다이크 어장이 상단주 마리나와 부부 사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어울리지는 않는 부부였지만, 사람을 외견만으로 판단하는 건 좋은 버릇은 아닌 것 같다.


‘음... 두 사람 딸내미가 수도의 아카데미에 가 있다고 했는데...? 흠. 그러면 걔도 베렌령으로 돌아오려나?’


그렇게 레이시아가 미리 알려준 인적사항을 머릿속으로 되짚어가며 나는 인사를 계속 나누었다. 귀족으로 존대를 해줘야 하는 이는 헤카인 경뿐이지만, 사실 반말이 더 불편하다.


“저, 저, 저는 데켈입니다! 숲지기입니다!”


특히나 이렇게 얼어붙은 상대를 대상으로 반말을 하려면 왠지 불편해진다.


‘...지구에서 치면 형인데.’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조금 덜하긴 하지만, 1학년 때만 해도 2~3살 많은 형들이 엄청 윗사람으로 알던 때가 있긴 했다. 뭐 군대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들을 두고 나서는 좀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되니 왠지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무튼 영지 내 산림자원들을 관리하는 숲지기, 데켈(남, 26세)에 대한 평은 전임 숲지기의 연륜을 모두 이어받은 훌륭한 숲지기이자 사냥꾼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못 미더운데? 특히나 이 자식... 레이시아짱을 보는 눈이 꼭 반한 거 같잖아? 감히? 레이짱은 내 거라고! 쓰읍. 짜식이 보는 눈만 있어가지고. 어? 너는 나중에 두고 보자.’


다음으로는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마법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타나티안 가문의 소개장으로 마탑을 수료한 3써클의 마법사, 하메르(남, 42세).


‘마법사는 적당히 서로 존대를 해줘도 괜찮겠지? 음 잘 해주자. 고작 3써클이라지만 이런 촌동네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못해 그랜절을 박아도 모자랄 일이지. 나중에 그랜절 두 번 간다!’


타나티안령에서 아쉬워 스카웃 제의를 할 정도로 출중했던 경비대장 헤카인에 비해 이쪽은 크게 재능은 없었지만, 그래도 하위 써클의 마법물품을 수리하고 제작하는 것에는 나름 재능이 있는 이였다.


“베렌령의 주인을 맞이하게 되어 여한이 없사옵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저는 크레신이라고 하옵니다. 미력한 재주로 영지민들에게 치료사라고 불리고 있는 늙은이입지요.”


인사말마저도 여유가 절로 느껴지는 초연한 이는 영지 내에서 인망이 높은 촌장 크레신(남, 67세)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치료사이기도 했다.


‘오. 역시 연륜 있는 할배 캐릭터는 하나 있어줘야지. 나중에 약초에 대해서 도움 받으면 되겠다. 흠. 이쪽도 후계자도 있다니까 그쪽을 잘 구슬리면 되려나? 이 할아버지도 믿을 수 있는 존재면 좋을 텐데... 후우... 여기도 그냥 믿고 까볼까? 아니야. 아니야. 일단 안전하게 가자.’


여기까지가 초면인 인사들.


“하녀장도 여기 앉으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영주관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감찰관 들을 보필한 하녀장, 메이린(여, 51세)까지가 제이크 타나티안이 베렌령의 주인으로서 필히 알아둬야 할 필수인물들이었다.


‘오케이, 얼굴 다 익혔으.’


그리고 하녀장을 제외하면 당분간은 내가 직접 대할 일이 없는 이들이기도 했다.


“자 모두 잘 들어주십시오.”


예법상 귀족과 평민이 섞인 상대를 대상으로는 존대를 택하는 것이 맞단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귀족이라고 꼭 반말로만 상대를 대할 필요는 없긴 했다. 물론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아 평민은 귀족에게 반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앞으로 저희 영지의 모든 일들은 여기 레이시아 쥬시트 경을 통해서 할 예정이니, 여기 레이시아 경을 저라고 생각하고 명을 따라주십시오. 어릴 적부터 친누이처럼 생각하던 사이이고, 지금은 그 이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설사 그녀가 제 목에 칼을 들이밀라고 해도 그녀의 뜻이 제 뜻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레이시아와 사전 협조가 되지 않은 거라서 레이시아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지만,


‘조금 감동 받아겠지? 눈나. 내가 그 정도로 진심이야. 흐흐.’


레이시아가 슬쩍 부끄러워하는 바람에 나는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다.



* * *



당찬 이세계표 신임 영주와의 충격적인 대면식이 끝난 후.


제이크와 레이시아 및 하녀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상단주 마리나의 집에서 다시 모였다.


“모두들 보시기에 어떻던가요?”


당찬 여인 마리나의 말을 시작으로 영주 제이크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영주가 없었던 베렌령이라 처음 영주의 부임에 오래전부터 걱정했던 이들이었기에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오러홀이 망가진 후에 매일 술집과 도박장에서 산다더니 꽤나 멀쩡하던데요?”


이건 마법사 하메르의 의문 겸 평가.


“그래. 내가 보기에도 눈빛이 맑았어. 당신이 말한 망나니는 아닌 것처럼 보이던데...”


어장 다이크의 동의와 간략한 평이 뒤를 잇고.


“자기는 그게 전부야? 에휴, 어르신이 보시기에도 그러셨어요? 혹시 어느 정도 회복을 한 건...”


상단주 마리나가 남편 다이크의 무뚝뚝함을 살짝 질책한 후에 최고령자이자 치료사 크레신에게 물었다.


“허허, 그건 아닐 걸세. 걸음걸이, 호흡, 자세부터 모두 망가진 몸이었어. 눈빛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눈동자를 보면 건강 상태는 좋지 않은 듯 보였네. 억지로 버티고 서 있으려고 애를 쓰시던 걸...”


역시나 치료사답게 건강 상태에 대한 평이 따르고,


“아... 정말요? 대장님이 보기에도 그래요?”


이어 마리나의 눈이 향한 곳은 경비대장이자 오러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 헤카인이었다.


“어르신 말씀대로 영주님의 몸이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제수씨께서 말씀했었던 대로 오랫동안 수련을 하지 않은 것도 확실한 것 같고요. 호흡이 매우 짧고 거칠었고, 손바닥의 굳은 살 역시 검을 놓은 지 오래였습니다. 심지어 기사로서의 거리감마저 완전히 놓은 듯 보였습니다. 다만...”


정직한 기사 헤카인으로서는 확실치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에 망설임을 보였다.


“다만 뭐예요? 대장님은 꼭 이러시더라.”

“여보.”

“아 왜~ 내가 뭐 못할 말이라도 했어?”

“허허허. 두 사람은 아직도 여전하구나. 코흘리개 때부터 다투더니 지금도 한창이야. 허허.”


간혹 외지인과 결혼해 데리고 오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은 베렌령 안에서 만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마리나 상단주와 다이크 어장은 이웃집에서 자란 소꿉친구 사이였고, 한 다리 건너면 핏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끈끈하게 이어진 베렌령의 핵심인물들은 한참 웃음을 터트린 후에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죠?”


신임 영주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


“어쩌면 정령일지도 모릅니다. 영주님의 생모께서 원래 하프 엘프의 정령사였다고 하니까요. 정령은 오러홀과도 무관하고요.”


그리고 이들은 어렵지 않게, 다만 그럭저럭 정답에 가깝지만 결국은 오답인 답안지를 도출해내는데 성공했다.


오러가 아닌 무언가.


만약 마법사라면 3써클 마법사인 하메르가 모를 수 없었고, 신성력을 각성했다고 하면 얼굴에서 대번 표가 날 터였으니 남은 건 정령뿐이었다. 사실 이게 여기 세상의 상식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정령사라...”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무슨 자연의 힘을 다루든 영지에는 도움이 되겠지요. 불, 물, 바람, 땅... 그 어느 능력이든지요.”

“이왕이면 물이 좋겠네요. 그러면 비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에이~ 그 정도는 엄청난 정령사여야 해. 그 정도면 어릴 적부터 유명했을 걸? 왜~ 대정령사 메를리앙은 다섯 살 때 사막에 눈을 내리게 했었다잖아.”

“아니, 그건 허풍 아니에요?”


그 후에도 정령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이어졌고, 치료사 크레신이 중재를 했다.


“허허. 정령사라고 확실한 것도 아닌데 괜히 설레발은 아닌지 걱정스럽구나.”

“그러면 가서 여쭤볼까요?”

“되었다. 아마도 영주님께서 비밀로 하시는 이유가 있으시겠지. 마리나,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귀족들의 의중을 함부로 넘보려고 하지 말아라.”


나스 대륙에서는 장유유서도 레이디퍼스트도 ‘왕-귀족-평민-노예’라는 신분제 앞에서 무력한 것이었다.


“후후, 그거야 잘 알죠.”


대륙의 3대 상단 페라인에서 아델린 왕국 동북부의 자유도시 콜린의 지부장까지 역임했던 마리나가 귀족을 대하는 법을 모를 수는 없었다.


“레이시아 경은 수도에서도 유명한 인사였죠?”


영주 다음으로는 여기사 레이시아에 대한 감상이 이어졌다.


“그랬죠. 제가 아는 것만 정말 빵빵한 집안들에서 구혼제의도 많이 받았을 텐데, 여기로 온다고 해서 정말 놀랐었다니까요. 사실 실물은 이번이 처음인데... 와... 진짜 예쁘긴 하더라. 나도 10년만 젊었어도...”

“에이...”

“...어머? 데켈? 너 지금 뭐라고 한 거니?”

“아, 아니에요!”

“아니긴! 너 진짜 죽을래? 야! 아니, 여보! 데켈 저 꼬맹이 혼 좀 내줘요.”


그렇게 사이 좋은 영지민들 사이에서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그 후에 이들이 가장 의문을 가진 것은 장래가 유망했던 여기사 레이시아가 끈이 떨어진 제이크를 따라 이곳으로 왔는지였다. 비록 자신들은 베렌령의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베렌령은 15세에 익스퍼트에 입문한데다가 미모까지 출중하여 장래가 유망한 여기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신임 영주님이 정말 정령사라고 가정을 한다면, 혹여 그 점을 보고 따라온 걸까요? 정령사니까? 어떤 성장가능성을 보고?”

“음... 혹여 후계자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뇨. 그 얘기가 아니에요. 그건 끝났어요. 타나티안 가문에서 사망으로 인한 사고가 아닌 이상에야 후계자가 뒤집히는 경우는 없었던 걸요. 현 백작 각하가 한 번 내린 결정을 뒤집을 일도 없을 거예요. 만약 우리 영주님이 정령사라고 해도 현 백작 부인의 뒤에 있는 덴프 후작가라는 배경을 이겨내지는 못할 거예요. 뭐... 정말 엄청난 정령사가 아니라면요.”


물론 상인인 이상 단정을 내리진 않았다.


“또는 왕국에 다른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죠. 아니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넘어가죠. 그쪽에서 언제는 우리를 신경 썼다고. 음.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그냥 귀족도 아닌 영지의 주인에 대한 평가.


굳이 모반을 꾸미지 않더라도 신분제가 확고한 이곳 대륙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이었다. 만약 이 중에 누군가 영주에게 찾아가 밀고라도 한다면 불경죄로 처벌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 모인 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확고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지켜 보세나.”


끈끈한 믿음으로 똘똘 뭉친 베렌령의 토박이들이 내린 결론은 일단은 기다림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외지인에 대한 의심과 경계 같은 건 아니었다. 무작정 사람을 믿은 금사빠 한수호와 달리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당연히 수많은 시간과 이유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 * *



베렌령에서 가장 가까운 무역 도시 듀오랄까지 상단이 이동하는 시간은 2주. 그냥 단독으로 말을 타고 달리면 사나흘 정도면 가능하겠지만,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를 호위하며 혹여 모를 몬스터들을 경계하며 이동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2주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2주를 걸려서 이동한 상단이 상행을 마치고 다시 베렌령으로 돌아오려면 족히 한 달은 걸리는 일이었다.


“누나, 몸조심해서 다녀와야 해.”


남자친구를 군대로 보내는 고무신들의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응. 돌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진짜 조심해. 혹시 어디 이상한 놈들이 집적대도 넘어가면 안 돼? 알지?”

“......”

“응? 웃겨? 아 웃지 말고. 약속해. 알았지?”


언제 웃었냐는 듯이 정색한 레이시아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리라 답을 했다.


‘불안해. 이래서 보물들은 집에 꽁꽁 숨겨 놓고 사는 거구나.’


갑자기 판타지 영화 속 드래곤이 미녀들을 첨탑에 가둬두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만약 내가 드래곤이라도 그럴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상단주랑 같이 길을 떠나는 선임 경비병(다른 영지에서는 기사급이라는 인물인데 이름은 까먹었다.)이 다가와 인사를 한 것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여신님, 제발 우리 레이시아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나도 모르게 생긴 신앙심으로 기도를 올리는 동안에 레이시아의 모습은 저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후우.”


허전하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다.

그렇지만 레이시아가 없는 한 달 동안...


‘...그래도 뭔가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레이시아도 호감이 생기겠지?’


나는 머물러 안주하지 않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혼자만의 썸을 위해서 되도 않는 놀이동산 게임을 하던 호구 한수호와는 달리 지금의 제이크 타나티안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많다. 나만의 놀이동산이 아니라 레이시아와 함께 하는 놀이동산을 위해서 나는 달라질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주님의 놀이동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리메이크 공지입니다. 22.01.27 78 0 1쪽
33 033화. 22.01.26 51 0 23쪽
32 032화. 22.01.25 50 1 23쪽
31 031화. 22.01.24 51 1 22쪽
30 030화. 22.01.22 46 0 25쪽
29 029화. 22.01.21 44 0 24쪽
28 028화. 22.01.20 47 1 18쪽
27 027화. 22.01.19 51 1 21쪽
26 026화. +1 22.01.18 49 1 21쪽
25 025화. 22.01.17 56 1 21쪽
24 024화. +2 22.01.15 54 2 20쪽
23 023화. 22.01.14 53 1 23쪽
22 022화. +1 22.01.13 58 1 23쪽
21 021화. 22.01.12 55 1 24쪽
20 020화. 22.01.11 59 1 24쪽
19 019화. 22.01.10 62 1 20쪽
18 018화. +1 22.01.08 66 1 18쪽
17 017화. +1 22.01.07 64 1 19쪽
16 016화. +1 22.01.06 69 1 20쪽
15 015화. +1 22.01.05 69 1 21쪽
» 014화. 22.01.04 71 1 18쪽
13 013화. +1 22.01.03 76 3 18쪽
12 012화. 22.01.01 75 1 18쪽
11 011화. 21.12.31 79 1 16쪽
10 010화. +1 21.12.30 81 1 20쪽
9 009화. +1 21.12.29 88 1 16쪽
8 008화. +1 21.12.28 95 1 16쪽
7 007화. 21.12.27 92 2 15쪽
6 006화. +1 21.12.25 109 1 20쪽
5 005화. 21.12.24 122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