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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영주님의 놀이동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최근연재일 :
2022.01.27 22:00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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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4
추천수 :
54
글자수 :
30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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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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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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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018화.

DUMMY

첨벙.


물이 밀려나고 그 위로 작은 소리가 그 위를 뒤덮는다.


“하아.”


평범한 사람에 비하면 괴물 취급을 받을 정도로 강력한 신체 능력을 가진 오러 익스퍼트의 기사라도 인간인 이상 당연히 피로가 쌓인다.


레이시아 역시 결국은 사람인지라 한 달 동안의 여정이 피로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까? 기분 좋게 따스한 물이 주는 온기와 물이 몸을 감쌀 때의 느낌은 냉철한 여기사의 입을 열기에 충분했다.


‘...좋다.’


욕실의 수증기에 레이시아의 입김의 섞여든다. 기사라고 편하고 좋은 것을 모르지는 않으므로, 레이시아는 지금의 특별한 목욕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고 좋았다.


‘하아. 제이는 역시 대단해.’


특히나 이건 레이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이크가 마련해준 특별한 목욕이라서 더 좋았다. 가끔은 당혹스럽거나 부담스러울 때도 있긴 하지만 제이크의 애정과 정성을 레이시아는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레이시아도 속으로 매번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따스한 물의 온기에서 제이크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레이시아는 조금 더 온기에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과 바람에 청소의 정령이라는 특별한 정령까지...’


제이시아가 흘끔 눈을 돌린 욕조 밖 물동이에는 아직도 불의 정령이 힘을 발휘해서 팔팔 물을 끓이고 있었다. 혹여 욕조의 물이 식거나 욕실의 온도가 내려갈까 우려했던 제이크가 불의 정령을 머물게 하고 계속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정령과 시야 같은 것을 공유하는 능력은 없으므로 훔쳐보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와... 진짜 마법 같아.’


이 특별한 목욕을 위해 사용된 특별한 능력이 바로 제이크의 것이라는 것이 레이시아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오러 폭주 이후로 제이크가 했던 노력과 실망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데이안 백작을 통해서 전해 들었던 레이시아였다. 그렇지만 막상 그녀가 타나티안령으로 돌아갔을 때는 꿈과 희망을 잃고 폐인이 되어버린 제이크의 모습을 직접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음. 이제는 대륙 전체로 봐도 특별할 거야.’


물론 레이시아는 제이크가 여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하고 유일한 사도라는 것을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건 정령사에 한정해서도 그랬다.


일단 정령사도 희귀하고 특별한 능력이라 어디 가든 대우를 받는 이들인데...


벌써 제이크가 다루는 정령의 숫자만 몇 개인가? 최종적으로 19개의 특별한 정령 능력을 다룰 제이크는 이미 레이시아가 알고 있는 수많은 대륙의 강자들을 넘어 섰다. 아니, 아델린 왕국의 시조인 영웅 아델린이라고 하더라도 제이크만 못 할 것 같았다.


“......”


그런데 레이시아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 * *



아침이라 눈을 떴더니 익숙한 천장이다.


“...후우.”


물론 십 수 년 간 익숙한 지구의 내 방이 아니라 지난 한 달간 익숙해져버린 베렌령 영주관의 내 침실 천장이었다.


‘메인~.’


지구에 일어나면 스마트 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시작이었다면, 여기서는 시스템을 열어보는 것이 기상 후 첫 일과의 시작이다.


[제이크 타나티안]

[◇: 57 [+]] [◎: 417/1,000 [+]]

[현황] [건설] [관리] [상점] [조합] [창고]


비록 어제 잠깐 머물러갔던 다이아의 빈자리가 허전하긴 하지만, 의연하게 정령 친구들을 불러보는 것도 일과에 더해보기로 한다.


‘집합.’


4열종대로 헤쳐모여!


허공에 빨강, 하양, 노랑, 녹색과 푸른색을 비롯하여 갖가지 일렁거림들이 나란히 등장한다.


‘오우 많네? 흐흐흐. 번호!’


애석하게도 아직은 일방적인 감응만 가능할 뿐 정령쪽에서 내 쪽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는 없으니, ‘하나! 둘! 셋! ○○! 번호 끝!’이라는 보고는 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배가 부른 느낌이다.


“그래. 모두 빠짐없이 나왔구만. 오늘 일과도 파이팅 하자. 물병장만 남고 다들 들어가도록.”


물의 정령은 세수를 해야 하니까 남겨두었다.


‘원래 저기 줄을 당겨서 하녀를 부르고 세숫물을 떠오라고 해야 하지만...’


반말이야 먹고 살기 위해서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도 그런 걸로 사람을 부려먹는 건 좀 부담스럽다.


어푸어푸.


물의 정령으로 세수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을 때,


똑똑똑.


레이시아가 아침을 알려왔다.



* * *



우물우물.


역시 밥은 누구와 먹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요리의 정령은 3성부터 조미료인가?’


사실 조미료는 내가 붙인 이름이고 3성부터 간잡이를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음식에 내재된 맛들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데,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짜면 좀 싱겁게 만들고, 싱거우면 좀 짜게 만드는 그런 것 같다.


‘...레이시아랑 밥을 먹는데 그런 게 필요 있을까?’


레이시아가 상행을 떠났을 때 하녀들에게 번거롭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었는데, 홀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와 레이시아와 마주 않아 밥을 먹으니 물고기 수프가 든든하고 맛난 순대국밥처럼 느껴진다.


“누나.”


나의 부름에 레이시아가 황급히 씹던 것을 넘기고 조심스럽게 답을 한다.


“네. 영주님.”

“에이 뭘 그렇게까지 해. 괜히 사람 미안하게. 편하게 먹어.”

“아닙니다.”

“아니긴 자꾸 뭐가 그렇게 아니야. 아닌 건 우리가 남이 아니잖아. 앞으로는 밥 먹을 때 부르면 그냥 편하게 먹고 답해. 알았지?”

“...네. 영주님.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 맞다. 오늘 밥 먹고 일정이 어떻게 되지? 원래 행정관이랑 촌장이랑 다 만나기로 했던 거야?”

“네? 아 네. 그래도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보니까 오늘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주님께서 명하시면 미루겠습니다.”

“아, 아니야. 그건 아닌데, 아이고. 우리 누나 나 때문에 바쁘다 싶어서... 미안해서 그렇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또 아니래. 으휴.”

“......”

“그러면 아침 먹고 가볼 거야?”

“...네. 빨리 처리하고 복귀하겠습니다.”

“아니야. 천천히 해도 돼. 그 뭐냐. 행정관이 뭐 일 벌이려고 하면 그냥 들어주지 말고 말려. 우리 나름의 계획이 다 있잖아. 알지?”

“네. 영주님.”


바로 확신에 찬 대답이 나왔다.


‘오이오이. 나도 믿고 있다구!’


레이시아에게 믿음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막 힘이 난다.


“그럼 나는 건. 강. 을 위해서 수련하고 있을게.”

“네. 영주님.”

“응. 누나는 조심해서 다녀와.”


나는 출근하러 떠나는 직장인 연상 여친을 배웅하는 철부지 대학생 느낌으로 해맑게 손을 붕붕 흔들었다.



* * *



레이시아는 제이크 몰래 피식 미소를 지었다.


‘건강해지고 밝아져서 참 보기 좋아.’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수많은 근심 걱정으로 웃을 일이 없었던 레이시아는 요즘은 행복감에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


‘...귀여워.’


흘끔 고개를 돌렸더니 제이크가 멀리서 손을 붕붕 흔들고 있었다. 영주로서는 체통이 없는 짓이지만, 어릴 적부터 함께 한 레이시아에게는 과거의 향수가 더해져 귀엽게만 보였다. 저렇게 해맑은 제이크가 기사의 꿈이 꺾이고 후계자 자리에서도 위태로워 술집과 도박장을 전전하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레이시아는 다시금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후우, 이제는 과거잖아. 제이는 더 대단해질 사람이잖아. 무려 여신님께서 선택하신 영웅이라고. 제이 말대로 앞으로의 미래는 창창할 거야.’


물론 제이크가 말한 대로 마나석을 모으고 돈을 벌다보면, 응당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신마전쟁 시기, 그러니까 모든 종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하여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던 때가 아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마물들과의 싸움과 가물가물해진 옛 연합의 기억 속에서 언제 왕국간의 전쟁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모두가 제 욕심을 위해 경쟁하는 세상이다.


‘당장에 지금 백작 부인만 해도 가만있지 않겠지. 덴프 후작 역시도...’


그리고 레이시아는 수도의 기사 학교에 있었을 때 느꼈던 수도의 불온한 기류를 떠올렸다.


‘지금은 왕국 정세도 좋지는 않아.’


왕세자가 불운한 사고로 사망한 후에 2왕자와 3왕자 사이에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가 현재 아델린 왕국에서는 매우 큰 골칫거리였다. 단순히 따지자면 다음 적자인 2왕자가 계승을 하는 것이 옳겠지만, 왕세자가 살아 있을 적에 2왕자는 한창 때의 제이크보다 더한 망나니였다. 그리고 현재 국왕이 2왕자의 친모이자 사별한 전 왕비보다 현재 3왕자의 친모인 현 왕비를 매우 아끼고 총애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덴프 후작이 2왕자를 지지했었고... 백작님은 중립이라고 봐야겠지. 만약 한 쪽이 불복이라도 한다면... 이것도 염두에 두긴 해야 해.’


그뿐 만인가.

대륙의 정세 역시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서쪽의 옛 왕국 세 곳을 병합하여 스스로를 제국이라고 선포한 에렌치아 제국이 얼마 전부터 교국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여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물들을 확실히 몰아내기 위해서 다시 연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결국은 대륙을 통일하거나 패권을 쥐겠다는 속셈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기에 우리 왕국도 블레랑스 놈들과 사이가 좋지는 않지.’


블레랑스 왕국의 시조는 아델린 왕국의 시조와 동료였고 친우였지만, 그 시조들이 세운 왕국은 오랜 세월이 지나 경쟁자에서 적대 관계가 될 조짐이 보이는 중이었다.


‘...혹시 세상이 이래서 여신님께서 제이크를 선택하여 힘을 내려주신 것이 아닐까?’


물론 제이크의 친모 일레인의 유품이었던 목걸이에서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만, 어쨌든 그 또한 신의 뜻이리라고 레이시아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제이크를 지켜야하는 검인 것이고.’


제이크가 건네 준 ‘마나 영약’ 역시 크게 보면 여신이 내려준 것이었으니까.


‘여신님, 맹세하겠습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제이를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제이를 지킬 힘과 용기를 내려주세요.’


그 어떤 상대가 앞을 막아도 목숨을 바쳐 제이크를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한 여기사는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제가 계속 제이크 옆에 머물러 있게 해주세요.’


다만 여기사의 걸음에는 어쩐지 아슬아슬한 조바심도 있었다.



* * *



뒷모습‘이’ 아니라 뒷모습‘도’ 예쁘다.


‘어우. 뒤태도 왜 저렇게 예뻐? 그냥 걷는데 무슨 모델 워킹 같네. 캬. 한 폭의 그림이다. 경매에서 중동 석유 부자가 한 2,000억쯤 부를 그림이야.’


사실 나도 그 정도의 그림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른다. 그냥 그만큼 예쁘시다는 거지 뭐. 앞, 옆, 뒤 모두 골고루 예쁜 레이시아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나는 수련장으로 올라섰다.


“흠. 레이시아 오기 전에 청소나 다시 해둘까?”


어째 처음에 뽑았을 때는 꽝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소의 정령은 생각이상으로 쓸 만한 것 같다.


“집안일 해주는 남자.”


최신식 로봇 청소기나 청소 서비스를 불러서 청소를 해도 나만큼 깨끗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매력 있지. 음. 매력 있어. 야 아 그러고 보니 세탁이랑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비우는 거랑 화장실 청소까지도 다 할 수 있잖아? 와... 돈만 잘 벌고 밤에만 잘 하면 진짜 완벽하지 않나?”


그런데 이번만큼은 진짜 자뻑을 할 만한 것 같다.


“크크크.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구박했었는데... 흐흐흐. 내가 엄마한테는 꿈의 남자네. 거기에 요리까지 가능하니까 살림 마스터네 완전... 음. 갈수록 우리 레이샤짱에게 완벽한 남자가 되어가고 있구만. 하하하.”


어디 그뿐 만인가.

총 19종의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일단 번개의 정령이 전기 제품을 충전시키거나 사용할 수 있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텃밭에서 신선한 채소 재배하고, 집안 난방이랑 환기도 잘 할 수 있고, 정원도 만들 수 있겠고, 빛과 어둠으로 조명도 마스터네. 와 씨. 진짜 뭐냐? 나 좀 대단할 지도? 이게 진짜 여신이 관여된 게 맞다면... 신성력이 치유의 힘이니까 응급의 정령 역시 치유력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럼 병원 안 가고 집에서 바로 바로 치료해줄 수 있겠고. 보안이야 뭐 싸우는 능력인가? 아니면 보안감시? CCTV? 잘 모르겠네. 운전? 운전도 잘 하면 좋겠지? 하긴... 기사 달고 다니는 것보다 둘이 다녀야 어. 운전하면서... 흐흐흐.”


힘이 들어야 할 수련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서 수련의 강도를 좀 더 올려본다.


“헤엑 헤엑... 소리 정령으로 자장가 불러주고, 사육은 뭐... 반려동물 하나쯤은 길러줘야 요즘 그림 같은 가정의 표상이지. 애들 키울 때는 적용 안 될런가? 그러면 정령이 보모가 되나? 정령이 베이비시터? 크크크. 야 우리 애들은 무슨 복이냐? 아빠는 특별한 정령사에 엄마는 초천재 초미녀 여기사인데... 크. 부럽다 부러워. 얘들아. 너네 진짜 아빠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어? 나오자마자 그랜절 딱딱 박고 시작해야 돼. 알지?”


물론 아직 자식을 몇이나 낳을지 세부 계획을 세운 적은 없다.


“요리는... 헤엑 헤엑... 그래도 앞치마는 레이시아가 입어야 하는데...? 흐윽. 음... 그래. 기사니까 칼질은 잘 할 거 아냐? 음... 그러면 간만 내가 잡는 걸로 할까? 큭큭. 그러면 되겠다. 좋네 좋아.”


그 전에 가사 분담도 미리 정하고,


“와 씨. 생각해보니까 고기 구울 때 불의 정령으로 하면 존맛탱이겠다 진짜. 와 숯불 대신에 그냥 바비큐로다가... 그거 베란다에서... 그래. 지구로 돌아가면 어디 교외로 가서 마당 딸린 집 짓고 살아야겠다. 그러면... 어? 아니지. 바람의 정령이 있으니까 냄새랑 연기 걱정 안 해도 되잖아. 기름때야 청소의 정령이 있고. 오. 걍 아파트 살아도... 아닌가? 텃밭이랑 정원은... 으으으. 모르겠다.”


정령에 대한 탐구를 빙자한 가족계획(?)을 세우다보니 수련이 하나도 힘이 들지가 않는다.


“허억 허억.”


진짜 힘들지가 않다.

오늘 흘린 땀방울이 레이시아와 함께 흘릴 땀방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으라차차! 힘이 난다 힘이 나!”


역시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확실한 동기부여인 것 같다.



* * *



한 달간의 상행을 마치고 돌아온 레이시아를 가장 반긴 건 당연히 오매불망 일편단심 레이시아바라기 제이크였지만, 애석하게도 베렌령에 산적한 수많은 과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사님, 오셨습니까.”

“네. 오랜만입니다.”

“하하. 어제 광장에서 뵙는걸요.”


제이크가 유난을 떠는 바람에 제대로 이야기와 인사도 못하고 영주관으로 행했던 것을 행정관 조르딘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어제의 일에 레이시아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고, 조르딘 행정관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아 넵. 일단 상행에 관해서는 어제 마리나 상단주님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것만 확인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스 대륙에서 기사는 단순한 검이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춘 엘리트다. 물론 애초의 목적은 마물을 상대할 이를 키워내는 것이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귀족이 되고 많은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지휘관 및 관리자로서의 교육도 같이 받는 것이다. 레이시아가 졸업한 아델린 왕국 기사학교 역시 교과 과정에 행정과 영지업무에 관한 것들이 존재했고, 레이시아는 차석졸업생답게 그 모든 것에 유능했다.


“이건 이렇게 하죠.”


“그건 타나티안 백작님께서 내년까지는 해주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영주님과 상의해서 확인하겠습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제이크를 위해서 레이시아는 꼼꼼하지만 빠르게 밀린 일처리를 끝냈다. 만약 한수호가 봤다면 일하는 모습도 멋지다며 감탄했을 터지만, 아쉽게도 한수호는 수련장에서 홀로 가족계획을 세우는 중이라 확인할 수 없는 멋진 사회인 모드인 레이시아였다.


“그리고... 이게 저희 영지민들이 바라는 발전 계획입니다.”


그 동안 시간만 때우려고 왔던 감찰관들은 절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영지발전계획안을 조르딘 행정관은 꺼내들었다.


“음... 잘 들었습니다. 그 동안 영지를 위해서 애를 쓰신 것이 느껴지네요. 참 좋은 행정관이신 것 같습니다.”

“그, 그 말씀을...”

“아뇨. 죄송하지만 이 문제는 영주님과 제가 생각한 것이 있으니 반려하겠습니다.”

“...기사님!”


일순 조르딘 행정관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사실 원래라면 그러면 안 되지만, 외지인인 영주와 기사에게 자신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방법보다 더 좋은 방안이 뭐가 있을까 조르딘 행정관은 의심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조르딘 행정관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좋은 방안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영지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레이시아의 말에도 조르딘 행정관은 재차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무리를 했다.


“기사님, 좋은 방안이라면 무엇입니까.”

“죄송합니다. 아직은 더 이상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아니, 기사님!”

“행정관님! 저희 영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레이시아의 패기에 조르딘 행정관은 얼음이 되어버렸다.


“믿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레이시아는 질척거리는(?) 행정관과의 면담을 끝마치고, 촌장을 만나서 간단히 영지민들 사이에서의 특별한 사건 사고 같은 것을 듣고, 경비대가 있는 병영을 찾아갔다.


‘...과연 헤카인 경이 받아주실까?’


행정관에게는 거절을 해야 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레이시아가 부탁을 하러가는 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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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1 aizioblu..
    작성일
    22.01.19 10:52
    No. 1

    ㅜㅜ 홀로 가족계획!!! 아직도 한수호라고 지칭하는 건 여전히 분리된 상태라서 그렇겠죠... 동화되는게 좋은지 분리된게 좋은지 저도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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