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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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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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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 귀환(Return) (2-4)

DUMMY

* * * *


다음날, 1988년 2월 20일 토요일 8시 17분.

대전 유성구, OO호텔.


박철수가 일으킨 미증유의 사건은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다. 회장실이 엉망이 된 터라 회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도 없었기에, 다음날 다시 모이기로 결정했다.


공동체 대표들은 모두 반채림이 잡은 호텔에 숙박했다. 지수 역시 어제는 호텔에서 묵었다. 다수 병력을 잃은 박철수가 다시 쳐들어오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반채림은 한 층을 몽땅 빌린 후 의기력자들을 배치하여 호텔 내외부를 꼼꼼하게 경호하게 했다.


샤워를 하고 복장을 갖춘 지수가 호텔 로비로 나갔다. 출발 시간은 8시 30분. 시계는 대략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로비에는 반채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대절한 소형버스가 막 도착한 차였다. 그녀는 비서에게 버스 확인을 맡기고 지수를 향해 다가왔다.


“수장! 괜찮아요?”


그는 대답 없이 고개만을 끄덕였다. 반채림은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오지는 않겠죠?”

“그러기는 힘들겠죠. 참, 예지망은 어떻게 된 건가요?”


지수의 물음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많은 수의 의기력자들이 어떤 전조도 없이 예지망을 돌파해서 나타났다. 그렇다고 모두 의지봉인 가능자라고 볼 수도 없었다. 반채림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갑자기 범위 안에 나타났다고 했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요. 뭐랄까, 촛불이 갑자기 불붙은 느낌?”

“......”

“일단 확인 중이에요.”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중에, 각 공동체 대표들이 한 명 두 명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수를 본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강력한 적을 견제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어제 지수가 보인 힘은 대표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이는 곧 열릴 회의에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대놓고 말은 못해도 긴장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수는 대표들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강(江)이 안정화된 이래, 그가 힘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평상시에는 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힘을 드러내면 보통사람이 의기력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괴물」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


어제 보인 힘은 같은 의기력자가 보더라도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전사의 육체변화와 마법사의 의지도달공간 사용이 극에 다다랐을 때나 가능한, 그야말로 궁극기窮極技인 「무형霧形」은 지금껏 아무도 도달한 적이 없는 경지였다.


광범위한 적을 장시간, 완전히 속박하는 것은 검술이나 법칙의 활용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일반적으로 의기력자 한 명이 세 명 이상을 상대하지 못하는 것이 상식인 상황에서, 혼자서 아홉을 상대해 여덟을 죽였다고 하면 그것을 누가 믿겠는가.


그렇기에 솔직히 여태껏 한 번도 피로(披露)한 적 없는 기술이었다. 살아온 모든 세월을 통틀어도 사용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시죠,”


버스가 준비되자 반채림이 대표들에게 말했다. 지수를 비롯한 공동체의 대표들은 버스를 타고 거림산업 건물로 이동했다. 5층 회장실은 사용이 불가능했기에, 3층의 회의실로 모였다. 회의실은 넓지 않았지만 다과 등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보다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미리 지정된 자리에 모두가 앉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조용한 분위기였다. 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박철수가 돌린 격문부터 해명 드리겠습니다.”


일순 팽팽한 긴장감이 좌중 사이에 돌았다. 그러나 지수는 명확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크게 숙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릇」과 관련된 내용을 여러분들께 감춘 건 사실입니다.”


박철수의 격문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꾹 참은 웅성거림이 대표들 사이에 퍼졌다. 지수의 사과가 이어졌다.


“독단으로 판단하여 일을 진행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꽤 공들인 행동이 나오자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대표들은 여전히 지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역시 세부적인 해명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기에, 말을 시작했다.


“변명 같습니다만... 말씀드리지 않고 일을 진행한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그릇이 가진 위험성입니다. 물론 그릇을 전술기화 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존재나 보유만으로도 공동체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대표들도 입을 닫았다. 확실히 그릇의 보유는 공동체 사이를 갈라놓을 가능성이 컸다. 여기서 제주 고도(孤島)의 젊은 대표, 양선아가 손을 들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검은색 단발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수장께 여쭤볼 게 있어요.”

“말씀하시죠.”


그녀가 갑작스러운 병마로 퇴진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기업과 공동체의 대표를 맡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었다. 일천해 보이는 경험과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금방 모기업과 제주도 의기력자 사회를 휘어잡았다. 이제는 상당한 수완가로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시선이 집중된 것을 확인한 그녀가 질문을 이어갔다.


“수장 말씀은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두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요. 먼저, 안기부가 그릇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요?”

“... 네. 알고 있었습니다.”


웅성거림이 강도를 높여갔다. 안기부도 알고 있었다는 말은, 수장이 그들과 내통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안기부는 자기들만의 루트로 그릇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제가 그들과 정보를 공유한 적은 없었습니다.”


증거는 없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말이 나올 분위기였지만, 대표들은 그저 서로의 눈치만 살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게 지수와 눈빛을 교환하던 반채림이 손을 들었다.


“대표들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수에게 쏠렸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반채림이 손을 내리며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수장의 말은 사실이에요. 그건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


집중된 시선이 흔들거렸다. 설명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박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짧게 한숨을 내쉰 반채림이 역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 딸, 은정이가 지금 안기부에 있어요.”

“...!!!”


순가 뭔가 크게 흔들렸다. 갑자기 책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호남 평천(平川)의 추정기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문 소리당가!! 딸이 안기부에 있다고!!!!”


흐물한 서남방언에 분노가 섞이자 그 효과는 더욱 컸다. 반채림은 약간 표정을 굳혔다가,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답했다.


“파문당한 아이에요. 제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다고요.”

“그럼 반 회장. 작년 상어에 대한 정보도 그쪽을 통해 나온 건가요?”


서울 강남 호산(虎山)의 김남명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반채림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원래 공공의 안전에 관련된 정보는 공동체간 관계와는 무관하게 공유해야 하니까요. 좋든 싫든, 사이가 나쁘든 괜찮든 간에.”

“안기부에서 먼저 자료를 건넸다는 말인가요?!”

“그랬어요. 그걸 가지고 온 것도 은정이였어요. 조직 장(長)의 명령이라고 했죠.”

“......”


조직 장의 명령으로 공공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공동체에 넘겼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희미해져가던 공동체간 규칙이 대표들 사이에서 새삼 상기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채림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도 깜짝 놀랐다고요. 절 두들겨 팰 때는 언제고, 이제는 책상물림 공무원이 돼서 나타나다니요.”


무거웠던 분위기가 조금 더 풀렸다. 그녀와 딸과의 듀얼은 전국 의기력자 사회에서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시작은 좋은데...’


반채림은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에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실 그녀와 지수는 이번 기회에 안기부와의 관계를 공식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한 상태였다. 다만 워낙 민감한 주제다 보니 말을 꺼내는 타이밍은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걸 빌미로 협력을 강요한 건 아닌가요? 사냥꾼을 모았지만 완전 실패했잖아요.”


김남명의 질문이 이어지자 지수가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강(江) 안에서 상어를 상대할 수 있는 의기력자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대충 들어 아시겠지만... 안기부 의기력자들의 실력은 이쪽 평균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죠. 오히려 먼저 공조를 제안한 건, 저였습니다.”

“!!!!!!”


지수가 먼저 안기부와 접촉했다는 얘기였다. 좌중은 폭탄을 맞은 듯 들끓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좋았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지수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상어는 그날 회합을 알고 있었어요. 이쪽 공동체 구조까지 파악하고 있었죠. 그건 어딘가에 프락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동체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상어에게 대항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안기부를 끌어들였다는 건가요?”

“네. 이쪽에서 상어에 대한 예지 정보를 제공하고...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준비했죠.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배반자나 간첩이 있을지 모르니 수장 독단으로 안기부와 접촉해서 화력을 빌려 썼다는 얘기였다. 대표들은 얘기 자체는 납득하는 모양새였지만, 묘하게 올라오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아따 반 회장! 그라믄 반 회장이 거시기 안기부랑 수장이랑 연결한그요?!! 우리한테는 얘기도 안 하고!!?”

“네.”


예상대로 추정기의 송곳 같은 물음이 반채림을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짧게 긍정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모든 독단적인 행위는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반 문주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비난은 삼가 주십시오.”


지수가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추정기는 지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수장도 너무하요. 어떻게 안기부랑 손잡을 생각을 했단 말이요?!! 우리가 어떤 꼴을 당했는데!!!”


그의 말에는 다른 대표들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의기력자로써 권력에 당해온, 특히 군부와는 상극에 있었던 호남 지역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지수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 역시 최초 안기부에 접촉했을 때는, 그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생겼다. 이제 상황은 단순히 그간의 감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표들의 말씀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


잠깐 뜸을 들이던 지수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린 채, 표정 그대로의 느낌을 담아 말했다.


“마법사의 나무... 그 잔당들이 북괴와 손을 잡았습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본업이 있다보니 약속 지키기도 쉽지 않네요ㅡㅜ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항상 건강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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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7화 : 귀환(Return) (2-1) 21.01.21 42 0 18쪽
133 7화 : 귀환(Return) (1-4) 21.01.16 47 0 12쪽
132 7화 : 귀환(Return) (1-3) 21.01.14 44 0 11쪽
131 7화 : 귀환(Return) (1-2) 21.01.09 47 0 16쪽
130 7화 : 귀환(Return) (1-1) 21.01.07 55 0 20쪽
129 6화 : 슬픔(Grief) (6-4) 21.01.02 47 0 15쪽
128 6화 : 슬픔(Grief) (6-3) 20.12.31 50 0 12쪽
127 6화 : 슬픔(Grief) (6-2) 20.12.26 37 0 13쪽
126 6화 : 슬픔(Grief) (6-1) 20.12.24 37 0 12쪽
125 6화 : 슬픔(Grief) (5-6) 20.12.19 34 0 13쪽
124 6화 : 슬픔(Grief) (5-5) 20.12.17 35 0 10쪽
123 6화 : 슬픔(Grief) (5-4) 20.12.12 33 0 13쪽
122 6화 : 슬픔(Grief) (5-3) 20.12.10 34 0 12쪽
121 6화 : 슬픔(Grief) (5-2) 20.12.05 32 0 14쪽
120 6화 : 슬픔(Grief) (5-1) 20.12.03 40 0 13쪽
119 6화 : 슬픔(Grief) (4-7) 20.11.28 38 0 13쪽
118 6화 : 슬픔(Grief) (4-6) 20.11.26 41 0 12쪽
117 6화 : 슬픔(Grief) (4-5) 20.11.21 42 0 11쪽
116 6화 : 슬픔(Grief) (4-4) 20.11.19 41 0 11쪽
115 6화 : 슬픔(Grief) (4-3) 20.11.14 35 0 11쪽
114 6화 : 슬픔(Grief) (4-2) 20.11.12 44 0 12쪽
113 6화 : 슬픔(Grief) (4-1) 20.11.07 34 0 13쪽
112 6화 : 슬픔(Grief) (3-6) 20.11.05 39 0 12쪽
111 6화 : 슬픔(Grief) (3-5) 20.10.31 3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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