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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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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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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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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슬픔(Grief) (4-4)

DUMMY

그렇게 선박 입구에서의 시선끌기가 성공적으로 돌아갈 즈음, 정은정 과장과 함성필 대리는 선박 후방부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둥그런 선박 표면은 바닷물과 따개비, 각종 수초 등으로 법칙으로도 달라붙기 쉽지 않았다. 순간 함성필 대리가 내밀던 팔을 놓치고 쭉 미끄러졌다.


“!!”

“괜찮아?!”

“괜찮습니다! 계속 가세요!”


뒤쳐진 그를 두고 정은정 과장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손과 발끝에 신경을 집중하며 올라가기를 2분여. 하얀색 글씨로 된 커다란 선박이름을 지나 드디어 난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난간 기둥 하나를 잡고 조심스럽게 눈을 갑판과 같은 위치로 올렸다. 소금기와 금속 냄새가 섞인 싸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자 선박과 비슷한 폭의, 5층 건물 높이를 지닌 상부 구조물(갑판실)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닿지 않아 어둠에 파묻힌 하얀색 갑판실에는 몇 개의 창문만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정은정 과장은 신중한 움직임으로 난간을 넘어 갑판 위에 올라섰다. 소음제거와 윤곽선 교란 법칙을 전개하자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희미해졌다.


금속제 갑판은 소음이 나기 쉬운 구조였지만 발끝은 마치 연기처럼 흘러갔다. 설계도에서 확인한 대로라면 의심 위치는 주로 후미 아래쪽의 기관부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배의 가장 깊숙한 이곳은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다만 갑판실 일부도 의심되는 곳이 있었기에, 둘은 수색을 나누어 실시하기로 미리 약속했다. 기관부를 그녀가 맡고 갑판실을 함성필 대리가 맡기로 했다.


“...!”


이때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갑판에 워커가 부딪혀 나는 발소리였다. 그녀는 그림자가 만든 어둠과 복잡한 구조물 사이에 몸을 숨겼다. 느린 박자의 발소리가 천천히 접근했다. 심장 박동과도 같은 발자국이 빛을 지나 어둠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이어셋의 마이크를 물었다 놓는 식으로 아직 올라오는 함성필 대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이어폰 너머의 잡음이 일정하게 가라앉았다. 멈춘 것이 분명했다.


정은정 과장은 상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빈손의 남자는 무언가를 경계하듯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숨은 곳 바로 앞에서 난간에 기댄 채, 담배를 꺼내어 피기 시작했다. 곧 붉은 광점을 중심으로 흐릿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뒤 남자는 꽁초를 바다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난간을 따라 걷기 위해 몸을 돌린 그 순간이었다. 지근거리에서 남자를 본 정은정 과장이 크게 놀랐다.


‘볼리셔니스트...!!’


그랬다. 특징적인 걸음걸이와 허리춤에 달랑거리는 칼자루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거기에 서양계로 보이는 금발과 얼굴 역시 놀라웠다. 도대체, 무엇이 관련되어 있기에 서양계 볼리셔니스트가 여기 있는 것인가?


이때 갑판부 상층부에서의 시끌시끌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남자는 고개만 살짝 들었을 뿐, 느긋한 걸음으로 선미를 빙 돌아 사라졌다.


인기척이 사라지자 곧바로 함성필 대리가 올라왔다. 정은정 과장은 약지와 중지로 V자를 만들었다. 함성필 대리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볼리셔니스트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미적거릴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속도를 높이면서 이어셋을 당겨 소곤거리듯 말했다.


“여기는 나이너(Niner) 하나. 빅터(V) 발견. 빅터 발견.”

[...!!]


강치환 수사관의 당황이 이어폰 너머로 느껴졌다. 정은정 과장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교전을 피하면서 탐색을 진행한다. 이상.”


일단은 갑판부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방금 남자가 걸어온 쪽을 향했다. 밖으로 나왔으니 분명 열린 문이 있을 터. 역시나 예상대로 살짝 열린 철제문이 보였다. 정면으로 쭉 이어진 좌현부에는 다행이 아무런 인영(人影)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홀스터에서 절칙을 빼 들었다. 칼자루는 칼날을 뽑지 않아도 적당한 길이의 몽둥이로 쓸 수 있었다. 정은정 과장은 열린 틈으로 안을 바라보며,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보통 때라면 취침시간인 만큼 비상용의 간접조명만 켜진 상태. 그녀는 긴장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안도했다. 이런 환경이라면 불완전한 윤곽선 교란 법칙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녀의 뒤를 이어 함성필 대리도 안으로 들어왔다. 복도를 조금 지나자 위아래로 연결된 계단이 나타났다. 여기서 두 사람은 서로의 목적지를 향해 갈라졌다. 정은정 과장은 계속해서 발소리를 죽인 채 아래로 내려갔다. 도면대로라면 두 층 정도 아래에 기관부가 위치했다.


“......”


갑자기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복잡한 철제 구조물로 이루어진 함선 내부는 폐쇄적이면서 음산했다.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올라온 녹은 거품처럼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거기에 내려갈수록 강해지는 엔진의 떨림과 소음은 10대 중반 쯤 TV에서 본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큰 파도에 뒤집어진 배에서 탈출하는 영화였다.


“!!”


이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선원이 대화하면서 코너를 돌아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정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충분히 시야에 들어올 상황이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무르며 조명 사이의 어둠 속에서 멈췄다.


{...??}

{(일본어) 왜 그래?}

{(일본어) 아냐, 잘 못 봤나?}


그들은 약간의 이상함을 발견한 거 같았다. 그러나 희미한 조명 아래의 일그러짐은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졌다. 피로와 배의 진동에 취한 눈이 만든 허상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연기처럼 뒤로 물러나 T자형의 교차로를 이용하여 몸을 완전히 숨겼다.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계속하던 그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복도를 지나갔다. 뒤이어 계단 오르는 소리와 함께 소리는 완전히 멀어졌다. 정은정 과장은 눈을 들고 그들에게서 관심을 두다가, 기척이 사라지자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이제 기관실도 금방이었다.


잠시 뒤, 금속 회전축의 마찰 소리와 함께 두꺼운 원형 잠금쇠가 움직임을 멈췄다. 문이 서서히 움직이자 억눌렸던 엔진소리가 폭발하듯 커졌다. 소음은 머리를 울리며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기관실...’


꽤나 거대한 공간이었다. 2층 건물 높이의 복층으로 된 강철제 상자였다. 그 가운데에는 거대한 엔진이 쇠를 때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이 회전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숨이 막힐 정도의 열기가 볼을 스쳤다. 바닥을 흔드는 진동에 무릎이 떨려왔다.


습하면서, 뜨겁고, 또 진동에 소음까지 가득한 공간은 지옥같이 느껴졌다. 순간 이런 곳에 마약을 숨겼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강치환 수사관의 예감이 이번에는 틀리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그녀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 방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뭐지... 이 느낌은...’


이미 한 명의 볼리셔니스트를 발견했다. 그 뜻은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의 깊게 주변을 둘러보며 가방 혹은 그와 비슷한 물건을 찾았다. 복잡한 곳이었지만, 구조물 대부분이 간격을 지니고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생각 외로 시야가 나쁘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기에는 좋지 않은 장소였다.


그때였다. 무언가 이질적인 물건이 그녀의 시선을 당겼다. 구조물 사이에 놓인 꽤 큰 검은색 보스턴백이었다. 형태만 보면 아까 강치환 수사관이 보여 준 사진의 것과 비슷했다.


“......”


생각 외로 쉽게 발견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인 걸까.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좀 더 자세를 낮추며 동선을 고민했다. 저것이 목표하던 그 물건이 맞는다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통 보란 듯 있는 물건을 그냥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


‘좋아...’


그녀는 오른손을 들고 법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른손 끝부분에 법칙이 차오르면서 어떤 힘이 모였다. 임계점을 돌파하자 쫙 벌린 손가락 사이에서 아크 방전이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으랴-!”


정은정 과장은 전격(電擊)에 휩싸인 오른손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흡사 지렁이 같은 뇌격이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고전압에 교란된 조명이 깜빡였고 각종 접지와 연결부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구조물의 틈 사이에서 그림자 하나가 허공을 향했다. 표막에 흐르는 전류를 방어하며 솟구친, 또 한 명의 볼리셔니스트였다. 전기를 통한 공격은 예상하지 못한 듯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우웃-!!”


이때를 노렸던 정은정 과장의 칼이 날아들었다. 상대는 경련하는 근육을 부여잡으며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칼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맹수와도 같은 외침과 함께, 표막이 푸르게 물들면서 불꽃 타오르듯 휘몰아쳤다. 표막폭주였다.


“으아아!”


마치 갈대처럼 상대방의 칼을 쳐날렸다. 전격, 기습, 표막폭주의 조합은 방어를 완전히 무력화시켰고 곧 치명타가 들어갈 차례였다. 하지만 이때였다. 기관실의 조명이 일순 사라졌다.


“?!!”


누군가 끼얹은 어둠에 상대를 놓쳤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불꽃의 화구(火球)를 기관실 천정으로 날렸다. 불이 꺼지고 0.5초도 되지 않아 붉은 빛이 주변을 물들였다. 순간 알 수 없는 언어로 외치는 서로 다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 수 없음) Ce naiba?!!!”

“(알 수 없음) Volitionist!!!”


광원을 중심으로 집중선 같은 그림자가 사방으로 쫙 퍼졌다. 그리고 가장 큰 두 개의 그림자가 흔들거리는 것을 본 정은정 과장은, 주저하지 않고 뒤에 난입해온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Oprește inamicul!!!”


빛보다 더 붉은 궤적이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들었다. 상대가 칼을 들어 방어했지만, 그녀는 칼날을 밀어내고 그 아래 오른팔을 깊게 잘라냈다. 팔꿈치 아래에서 절단된 오른팔이 허공을 날았다.


“크아아아악!!”


비명은 언어가 달라도 비슷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검붉은 액체는 딱딱하면서도 각진 기관실에 무질서함을 더했다. 그렇게 전투력을 잃은 상대가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리는 동안, 그녀는 당구공 튀기듯 금속벽을 여러 번 박차고 달렸다. 기관실이 좁아 보일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속도를 줄이고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보스턴백이 눈앞에 있었다.


“......”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자 상대도 멈췄다.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적을 보며, 정은정 과장은 보스턴백을 앞에 두고 무릎을 굽혔다. 지독한 엔진 소음 속에서도 지퍼 열리는 소리는 정확하게 들렸다. 그녀는 붉은 조명 속에서 가루가 잔뜩 든, 수십 수백 개의 비닐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 중 하나에 작은 구멍을 뚫어 살짝 맛을 봤다.


“...!!”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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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6화 : 슬픔(Grief) (6-2) 20.12.26 36 0 13쪽
126 6화 : 슬픔(Grief) (6-1) 20.12.24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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