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입문(3)
제2장. 입문(入門)-(3)
아침 운동을 마친 영신이 쉬고 있을 때 반가운 친구들이 찾아왔다.
친구 재우와 찬성이 엄마 지숙의 차에 실려 온 것이다.
7년 전 비극의 그날, 절친 영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는단 소식을 수빈에게 듣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렸던 그날, 친구 영신은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6년 4개월이란 그 오랜 시간을 꾸준히 병실을 드나들었던 놈들. 동반 입대한 군에서 휴가를 와서도 병원을 찾았던 친구, 가족만큼이나 영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다고 표현하던 그런 놈들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석모도에 오겠다고 보채는 놈들을 몸이 완전해지고 나면 보자고 말린 영신이었다. 이제 완전히 정상을 찾은 몸으로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야, 김 영신! 이제 완전 생생하네.”
“이야! 네 달 만에 때깔이 확 달라졌다? 완전 훈남이잖아!”
“그래! 니들같이 배 튀어나온 놈들 보다야 내가 훠~얼 생생하지.”
“네가 건강하다면야 인격으로 정성껏 빚은 내 배를 안주 삼은들 뭔 문제가 되겠냐? 건강해진 친구 한 번 안아 봐도 되겠지?”
“징그러운 놈들! 오늘만 봐 준다.”
와락!
덥썩!
팍팍한 가슴과 튼튼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사나이들의 우정!
‘그래, 너희들만은 나와 평생을 함께 하자.’
어려운 시기에 한결같은 우정을 보여준 친구들을 위해 영신은 내심 고민 중인 일에 대해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요즘 야구를 하다 보니 공을 받아 줄 사람과 수비나 타격을 해 줄 사람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필요했던 참이기도 했다.
영신을 안고 난 찬성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 몸이 다 나은 게 문제가 아니고 키도 더 큰 것 같은데? 몸도 더 단단해지고.”
“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
“그러냐? 몸이야 죽도록 운동을 했으니 좋아졌겠지만 키는 잘 모르겠는데?”
“아냐, 키도 분명히 더 큰 것 같아.”
“재우 너 키가 얼마냐?”
“군에서도 조금 크더라. 난 182cm."
“찬성이 넌?”
“난 179cm"
그러고 보니 재우와 찬성이 조금은 자란 것 같기도 한데도 한참 아래로 보인다.
“진짜 컸나?”
“나도 군에서 2cm나 컸거든! 누워만 지낼 땐 안 크다가 이제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니 몇 년 치를 몰아서 확 컸을 수도 있겠다.”
“언제 한 번 재 봐야겠네.”
“근데 영신이 너 다 나은 것 맞지?”
“보면 모르냐? 완전 다 나았다.”
“너 병원에 있을 때 우리 소원이 뭐였는지 아냐? 세 명이서 밤새 술 마시는 거였다. 오늘 소원 풀자.”
“소원이 그렇게 없었냐? 나와 술 마시는 게 소원이게?”
“짜식아! 그 보다 더한 소원이 어딨냐? 최소한 우리는 그랬다.”
“그래, 고맙다. 니들 덕에 내가 다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낮술은 지 부모도 못 알아본다니 저녁에 하자.”
“그럴까? 그럼 그동안 뭐하지?”
“니들에게 보여 줄 게 있으니 그냥 내 하루 일과가 어떤지나 지켜봐라.”
“보여줄 게 있어?”
“그래.”
“뭐 자랑할 거 있냐?”
“놀라서 기절하지 않음 내 손에 장을 지지마.”
“기절까지?”
“하여간 잔말 말고 그냥 따라와라.”
“하! 기대되는데? 보여줘! 보여줘!”
“하하하! 점심은 먹고!”
점심을 기다리며 친구와 회포를 풀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지숙은 미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벼르던 일을 감행했다. 차에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위한 책들을 한가득 내려놓은 것이다.
“아들! 몸이 회복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지?”
“…….”
“어째 대답이 없니?”
“예.”
“열심히 해야 한다. 재우와 찬성이는 벌써 졸업반이잖아.”
“예.”
“끔찍하다. 다시 고3이라니!”
“그래도 군대 가는 것 보단 낫겠지. 친구, 열심히 해라.”
수북이 쌓인 책을 보니 부담이 확 몰려 왔지만 최소 고졸 자격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영신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엄마가 가져온 책을 정리하며 점심을 먹은 삼총사가 곧 낙가산의 중턱에 있는 영신의 수련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헥헥! 간만에 산에 오르니 힘들어죽겠다. 도대체 뭘 보여주는데 이 고생을 시키냐?”
“환자는 영신이가 아니고 우리다. 영신이 저놈 숨도 안 차 하는 거 봐라.”
“여기가 내가 수련을 하는 장소다.”
“응? 뭐? 수련?”
“무슨 수련?”
“일일이 설명하는 것 보다 내가 하는 걸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영신이 공터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몸을 풀기 시작하자 새삼 친구의 몸이 장난이 아님을 느끼게 된 재우와 찬성이었다.
190cm는 되어 보이는 쭉 뻗은 몸에 85kg이나 될까?
영신의 몸은 상하체의 비율이 적당해 긴 다리를 돋보이게 했고 넓은 어깨를 가졌지만 약간은 말라 보이는 체형에 헬스장에서 만든 굵은 근육과는 구별되는 잔 근육들이 햇살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끈하게 잘 빠졌다고 해야 하나? 마치 다비드의 조각상에서 살짝 살을 뺀 것 같은 느낌? 예술가들이 빚은 조각 같은 몸이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짜식! 잘 빠졌네! 저 놈이 내 친구란 말이지!”
“씨파! 괜히 눈물이 날라 하네. 새끼, 저 몸으로 6년 넘게 병원에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냐?”
“그러게 말이다. 그 병원 확 망해버렸음 좋겠다.”
번데기가 변태를 거듭해 화려한 나비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영신의 변화에 재우와 찬성의 눈이 붉어지고 있었다.
나보다 잘나서 샘이 나거나 화가 나는 친구가 아닌 자랑스러운 친구인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소주 한 잔을 마셔도 언제나 가슴을 시리게 하던 친구가 아니던가? 축하하고도 또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재우와 찬성도 영신이 얼마나 화려한 인생을 살아갈지, 그리고 영신으로 인해 자신들의 인생도 어떻게 변해갈지 아직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몸을 푼 영신이 권법과 각법, 그리고 보법을 섞어 보여주는 동작은 무술의 무자도 모르던 두 친구들에겐 경이로움 그 자체로 보였다.
“저, 저 시끼! 뭐, 뭐야? 뭐!”
“팡! 팡! 소리 들리냐? 저거, 저거! 무, 무, 무협영화에서 이연걸이 보여주던 거 아니냐?”
“우씨! 한 대라도 맞으면 바로 골로 가겠다!”
“말도 안 돼!”
비록 6달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김 정명의 기억이 가져온 효과는 제대로 된 동선을 그리고 있었고 내기가 동작 하나하나에 실리고 있었으니 주먹과 발에서 제대로 된 파공성이 나오고 있었다. 안 놀라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 작가의말
전생이 기억났다고 갑자기 문파를 재건할 마음까지 생긴 건 아닙니다.
그럴 계기가 필요하고 당위성이 있어야 되겠지요. 곧 생깁니다.
6년에 가까운 식물인간 생활에 지친 영신에게 뭔가 새로운 목표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무공을 통해 생겨난 능력을 이용한 것이어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능력이 생기면 뭘 먼저 하고 싶으세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무술 수련만 한다고요?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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