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전생(2)
제1장. 전생(前生)-(2)
깊어가는 가을의 새벽을 깨우는 애절한 음성이 힘을 다해갈 즈음, 지나던 행인에 의해 간신히 구조를 받은 영신이 영등포에 있는 한심대학교 한강한심병원에 실려 온 시각은 새벽 2시 30분이 넘은 시각이었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영신으로 인해 온갖 걱정이 다 들 무렵,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 수빈이 영신의 튀어나온 다리뼈를 보고 기절하지 않은 것은 병원으로 오는 동안에 이 보다 더한 온갖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다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내 아들! 다리가 이게, 이게!”
“어떡해! 오빠, 너무 아프지?”
엄마와 여동생 수빈이가 안절부절 하며 눈물만 쏟아내고 있는 중에 아빠 상현은 의사를 만나 엑스레이 결과를 보면서 아침 수술 절차를 밟고 있었다.
지금은 담당의사가 퇴근하고 없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고 의사가 출근하는 아침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진통제와 다리를 고정하는 응급처치를 받은 영신에게 사고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 손 지숙은 다시 눈물을 쏟아 냈다.
“아이고, 이 다리를 한 애를 데리고 두 시간이나 넘게 끌고 다니다 골목에 버리고 가는 나쁜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우리 아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흐흑!”
“오빠……. 많이 무서웠겠다. 이젠 괜찮아?”
“살려달라고, 외동아들에다 대학도 가야하고, 이제 18살에 죽고 싶지 않다고, 아저씨도 자식이 있지 않느냐고 얼마나 싹싹 빌었는지 몰라요. 도어 락을 잠그는 순간, 그땐 딱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해요.”
“싹싹 빌기를 정말 잘 했다. 그러지 않았음 자칫 큰일 치를 뻔 했을 수도 있었어. 정말 잘했다. 다리야 수술하면 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그래. 수술하고 나서 다시 공부 시작하면 기말고사에 큰 지장은 없을 거야.”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공부 타령이야. 지금 공부가 문제야!”
“왜 화를 내고 그래요? 그럼 학생이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나저나 수술이 잘 돼야 할 텐데 괜찮겠죠?”
“요즘 시대에 다리 부러진 수술 정도야 문제가 될 게 있겠어?”
“그래도 다른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병원은 화상 전문으로 알려진 병원이잖아요.”
“정형외과의사가 있는 대학병원인데 다리 수술 하나 못 할까? 괜한 걱정하지 마. 마취과 과장과 외과교수에게 선택 진료를 신청 했어.”
“대학병원에 오면 다 선택 진료를 받게 돼 있어요.”
“그렇긴 하지만 명색이 교수란 사람이 수술하는데 문제야 있겠어?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니 별일 없을 거요.”
“진통제 때문에 고통이 덜하다지만 수술 할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어떡하겠어? 의사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부모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신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학교는 언제 다시 갈 수 있대요?”
역시 학생이다 보니 학교가 가장 걱정이다.
“방학 전에는 못 갈 거다. 병원에서 보내다 퇴원 후엔 집에서 방학을 보내고 신학기나 돼야겠지.”
“헐! 그동안 꼼짝도 못하고 공부나 해야 할 처지네.”
“호호! 오빠 돈 쓸 일 없고 좋네 뭐. 나에게 빌려간 돈이나 갚지?”
“동생이라고 하나 있는 게 오빠 꼴을 보고도 돈 갚으란 소리가 나오니?”
“살려달라고 빌 땐 외동아들이라고 했다며?”
“야! 그 상황에서 뭔 소리를 못 하겠냐?”
“하여튼! 나같이 예쁜 여동생이 있는데 외동아들이라고 한 주제에! 다시는 돈 빌려주나 봐라.”
“하하! 별 것 가지고 다투는구나. 벌써 5시가 다 돼 간다. 영신인 아침에 수술하려면 조금이라도 자거라. 여기는 내가 지킬 테니 당신은 수빈이 데려다 주고 한 숨 부치고 입원에 필요한 거 챙겨서 아침에 와요.”
“짐을 챙기려면 내가 가는 게 낫긴 하겠지만 당신 피곤해서 어째요?”
“하루 밤 안자는 거야 우습지. 피곤하면 간이침대에서 자면 되고.”
“하이고! 그 덩치에 간이침대에서 자면 볼만 하겠네요. 마침 빈 침대가 있으니 저기서 자면 되겠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얼른 가.”
“아들! 안 아프지?”
“진통제 때문에 견딜 만해요. 병원 밥 먹기 싫으니 맛있는 반찬 좀 해 오세요.”
“알았어! 엄마가 아들 좋아하는 소고기 장조림 잔뜩 해 올게.”
“오빠, 아침에 봐.”
“너는 안 와도 돼. 집에서 잠이나 푹 자.”
“하나 밖에 없는 오빠가 수술 받는데 그럴 수 있나? 재우오빠에게 연락해줘?”
“그래. 수술하고 나면 깁스 하고 뭐 하냐? 재우와 찬성이라도 있음 안 심심하겠다.”
“오케이! 핸드폰에 번호 있지?”
“당근이지!”
“내가 책임지고 재우 오빠와 찬성 오빠에게 연락할게.”
“아들, 간다.”
“예.”
다음날 아침 10시가 되어서 시작된 영신의 다리 골절 수술은 어렵지 않다던 의료진의 장담과 달리 수술 도중 마취가 풀려버리는 믿지 못할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부러지고 깨어진 뼈를 나사를 이용해 맞추고 있는 중인데 마취가 풀려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참을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된 영신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수술실은 우왕좌왕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추가비용을 내고 선택진료를 신청했음에도 마취담당의사는 일요일이라고 출근도 하지 않았고 일 년 차 레지던트가 산부인과 환자의 제왕절개 마취를 동시에 하면서 두 수술실을 드나드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수술에 필수적인 산소통의 산소가 다 떨어져 산소통을 교체해야 하는 일이 추가로 생기고야 말았다.
마취가 깬 상태에서 극도의 고통을 느낀 환자가 공황상태에서 고함을 내지르자 급하게 다시 마취를 했는데, 산소통교체 시간이 길었는지? 아니면 당황한 의료진의 실수로 산소호흡기 튜브를 호흡기가 아닌 식도로 잘못 삽입을 했는지? 그도 아니면 산소 밸브를 열지 않았는지? 결국 무산소 상태로 7분간이나 환자가 방치되는 동안 심장이 정지되는 사태를 빚었고 제세동기를 이용한 심장충격요법을 실시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인간 한계인 무산소 상태 4분을 초과해 뇌사가 진행되는 결과를 피할 수는 없었다.
수술실 밖에서 아들의 비명소리와 의료진이 산소통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모두 본 부모, 김상현과 손지숙은 망연자실, 심장이 바짝 타 들어가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는데…….
예상 수술시간을 훌쩍 넘겨 나타난 의사는 수술 중 마취가 풀려 재 마취를 한 후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충격을 받아 잠시 심장이 멈췄으나 신속한 대응으로 위기를 넘겼으며 곧 깨어날 거라는 말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의료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 김상현과 손지숙은 수술 중에 마취가 풀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아들이 겪었을 고통에 치가 떨리면서도 한편으론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각 의료진은 7분여간 무 산소 상태가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철저한 통제 속에 수술관계자들 입단속은 물론 뇌사상태에 대비해 수술영상 자료를 삭제하는 등의 의료기록들을 조작해 나가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네 시간 후, 깨어나야 할 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 아들, 중환자실에서 일체의 출입을 제한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상한 움직임, 수술 전에 찍었던 뇌 MRI 검사를 다시 하는 것을 본 김 상현은 불안감을 느끼고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환자가 왜 안 깨어나지요?”
“부모님 심정은 아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지금 수술이 끝나고 네 시간이 지났어요. 그리고 당신들 행동이 뭔가 정상이 아니야. MRI 촬영은 왜 또 하는 거요? 속이지 말고 얘기해!”
“저는 간호삽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의사선생님에게 물어보세요.”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코빼기도 안 보이고 마취의사도 자리를 비워 만날 수가 없는데 누구에게 물어 보냐고!”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의사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려볼게요.”
잠시 후 나타난 중환자실 담당의사는 상현과 지숙에게 황당하고도 충격적인 말을 태연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간단한 다리 수술이었습니다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환자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뇌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환자가 워낙 건강한 상태라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시죠.”
“뇌가 이상 증세를 보여? 그게 무슨 말이요?”
“아직은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만 일반인의 몇 배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 왜 그런 거지요? 별일 없는 거지요?”
“글쎄요? 저희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MRI 촬영을 다시 했습니다만 뇌가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증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답답하시겠지만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하! 뇌가 활동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더 많은 활동을 한다는데 뭔 일이 있겠어요? 마취가 안 깨서 그러는 걸 겁니다. 우리 아들, 영신이. 한 숨 푹 자고 거뜬히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상현과 지숙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후로 영신은 기나긴 잠을 자기 시작하더니 영 깨어나지를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으아아아아! 수술한 새끼와 마취한 새끼 다 죽여 버리고 말겠어!”
피눈물을 쏟아내는 부모의 애간장을 다 태우며 식물인간이 된 고2, 김영신의 새로운 인생은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향상성 생명 장치를 주렁주렁 몸에 단 채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제1장. 전생(前生)-(2)끝.
- 작가의말
여기까지의 글은 실제 있은 일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을 식물인간으로 지내고 있는 친구의 아들, 이제 25살이 된 손 영준 군의 기적을 고대하며 적은 글입니다.
아직도 재판 중인 친구와 제수씨에게 기적이 생기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랍니다.
7년이 지난 지금, 가족이 들어서면 눈에 물기를 보인다는 아들 영준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친구 부부를 위해 이 가을에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를 올립니다.
Comment ' 28